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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문대식이 아는 백준열은 자기 사람을 절대 내칠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가 삼명그룹 회장이 되면, 그의 경호 책임은 문대식이 맡을 가능성은 거의 100%라고 봐도 됐다.
경호 쪽에 업을 두고 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의 최종 목표가 뭔지 말이다.
대통령 경호실장? 아니다. 그들은 삼명그룹의 경호실장이 되기를 원한다.
그곳 경호실장은 길어야 최대 5년인 대통령 경호실장과 달리, 평생 예우 받고 살 수 있었으니까. 실제 역대 삼명그룹 경호실장들 중에, 빌딩주가 아닌 자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그 만큼 삼명그룹에서, 그룹 차원 상 확실하게 예우를 해 준다는 얘기였다.
그에 비해 지금껏 역대 대통령 경호실장들은?
적어도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 그들 중에 서울에 빌딩주는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흐흐흐흐....나도 빌딩주 반열에 들어가는 건가?”
그렇게 문대식이 무슨 생각인지 음흉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JYB엔터 사옥으로 일련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서 말이다. 흔히 말하는 기레기들이 독점 취재를 위해 불나방처럼 JYB엔터로 뛰어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막아!”
그런 그들을 누가 막겠나? 당연히 경호팀실에 연락이 왔고, 거기 책임자는 문대식이 아니었던가?
문대식은 경호팀원들을 동원해서 즉시 기레기들을 막는 한편,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백준열이, 언제든 JYB엔터 사옥을 빠져 나갈 수 있게 동선을 짰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시간 쯤 뒤, 그 동선을 통해서 백준열이 조용히 JYB엔터 사옥을 빠져 나갔다.
놀랍게도 그때까지도 기레기들은 JYB엔터 사옥을 떠나지 않고 버텼다.
왜 연예인들이 기레기들에게 치를 떠는 지, 오늘 문대식도 직접 겪어 보니 알 거 같았다.
“진짜 인간 거머리들이네.”
* * *
김 비서로부터 그 일, 즉 삼명그룹에서 백승렬 회장이 내 앞으로 삼명전자 주식 10%를 넘겼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음을 보고 받는데 어째 입맛이 썼다.
“이제부터 귀찮아지겠네.”
당장 두 형들이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 할 거고, 나를 대하는 주위 시선 역시 확연히 달라지겠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인의 관심을 받는 거 자체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살고 싶은 나로서는, 다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처리자 철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전화상으로 이제는 내 귀에 익숙해진 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항공에 조은아 경영본부장이, 왜 대표님께 자꾸 전화하는 지 알아냈습니다.
의뢰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걸 벌써 알아냈다는 철수.
“그래서 그 이유가 뭡니까?”
-그 이유는....
철수의 얘기를 쭉 들으며 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건 철수라는 처리자가 참 유도리, 즉 융통성 있게 일을 잘한다는 거였다.
괜히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말이라는 게 하기에 따라 받아드리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도, 혹은 나쁘게도 만들 수 있었다. 한데 철수는 전자였다.
‘참 말을 기분 좋게 잘 해.’
조은아라는 존재 자체가 내게는 정말 별거 아니다 보니, 내 관심 자체가 그녀보다는 철수라는 처리자에게 더 쏠렸다.
“수고했어요. 약속한대로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철수에게 빠른 시일 내 알아내면 주기로 한 보너스를 흔쾌히 쏘려 했다. 그때였다.
-잠깐만....혹시 그 보너스....원래 보내시던 계좌로 보내실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앞서 의뢰비도 다 그 계좌로 보내왔었고.
“네. 뭐....”
-저....죄송한데 의뢰비 말고 보너스는....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개인 계좌로 받았으면 해서요.
“아아....”
철수의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철수라는 처리자의 의뢰비를, 여태 김훈 대표가 알려 준 계좌로 계속 보내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물론 그 의뢰비 지급은 김 비서가 맡고 있었다. 하지만 김 비서에게 그 계좌를 알려 준 게 나다. 그러니까 그 계좌를 내가 직접 바꾸지 않는 한, 김 비서는 철수의 의뢰비를 계속 그 계좌로 보내겠지.
“그럽시다. 계좌 불러요. 그리고 앞으로 의뢰비도 지금 불러 줄 계좌로 보낼까요?”
-그, 그래 주시면 저희야 고맙죠. 어어. 일단 저희 계좌는 대한은행....
나는 철수가 불러주는 계좌번호를 바로 메모했다. 그리곤 그 메모한 번호를 철수에게 재차 확인했다.
-맞습니다.
“바로 쏘겠습니다.”
나는 기분 좋게 김 비서가 아닌 내가 직접, 내 개인 계좌에서 철수의 계좌로 이체를 시켰다.
천만 원을 말이다. 그랬더니 철수가 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큰 돈 너무도 고맙다고 말이다. 더 시킬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추신과 함께.
“더 시킬 일이라....”
철수의 그 메시지에 나는 생각을 했고....
“아아....있다.”
철수에게 시킬 일이 생각났다.
* * *
바로 박재숙이라는 원귀의 한을 풀어 주는 것.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일을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 줄 필요는 없었다. 누가 했던 그녀의 한을 풀어 주면 그뿐. 그런 내 생각을 견신 시스템이 다 읽었을 텐데, 이렇게 가만있다는 건 그래도 된다는 뜻.
‘하긴....철수라는 처리자를 시켜서 그 일을 해결해도, 결과적으로 나로 인해 그 원한이 해결 된 거니까, 내가 해결한 거나 진배없지.’
나는 그 생각 후 바로 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보너스를 받아선지 철수의 목소리가 많이 밝았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들이 할 의뢰를 맡겼다.
-그러니까 10년 전에 죽은 그 박재숙이라는 여자의 억울함을 이번에 풀어 주란 거네요?
역시 이해가 빠른 철수다. 나로서는 두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서 그 연놈을 어떻게 할까요?
원래 원혼 박재숙은 자신을 죽인 두 연놈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녀의 본심이 아니란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건....철수씨가 판단하세요. 살아도 될 만한 자들이면 살려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그렇지 않고....없어지는 게 나을 거 같으면....”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저희가 잘 조사해보고 나서 신중히 결정하겠습니다.
“그래 주세요.”
그렇게 철수와 통화를 끝낸 나는 인터폰으로 김 비서를 불러서 철수의 바뀐 계좌 번호를 김 비서에게 넘기며 말했다.
“철수라는 처리자의 바뀐 계좌야. 앞으로 그쪽으로 의뢰비를 지급하도록.”
“네.”
근데 평소라면 대답을 하고 바로 뒤돌아서 대표실을 나갔을 김 비서가 계속 서 있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그녀를 쳐다보게 만들었다.
“왜?”
딱 봐도 김 비서는 내게 할 말이 있는 얼굴로 서 있었다.
“저....뭐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어. 물어.”
“정말 삼명그룹 회장이 되실 건가요?”
“왜? 내가 삼명그룹 회장이 되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아, 아뇨. 그게 아니라....”
김 비서는 확실히 내게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막상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가 쉽게 그 얘기를 할 수 있게끔 자리를 펴 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들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내 기억에서 그 말은 싹 지울 테니까.”
“그, 그러시다면....저 대표님과 계약 기간을 연장하고 싶어요.”
“뭐?”
김 비서가 스스로 나와 한 노예 계약을 더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미쳤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 그녀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애초 백준열은 김 비서를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그녀가 원할 시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 줄 생각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 봐도 될까?”
나는 궁금한 걸 바로 김 비서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 비서가 빤히 날 쳐다보며 말했다.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그 이유가 뭔지.”
김 비서가 말도 안 했는데 내가 그 이유를 어떻게 알....
‘아네. 알아.’
김 비서가 복수할 대상이 있다는 걸 백준열은 알고 있었다. 더 자세한 건 백준열의 기억이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나는 이제 알았고, 김 비서가 왜 거지같은 노예 계약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는지도 알 거 같았다.
‘내가 삼명그룹 회장이 되면....내 밑에 김 비서도 그에 상응하는 힘을 갖게 될 거고, 그 힘으로 복수를 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김 비서에게는 복수가 그녀의 남은 인생을, 나라는 악당에게 저당 잡혀도 될 정도로 꼭 갚아야 할 빚인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자.”
내 대답을 듣고 나서 김 비서는 그제야 뒤돌아서 대표실을 나갔다. 그런 그녀를 잠시 애잔한 눈으로 쳐다보던 나.
“아. 맞다.”
나는 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 * *
일본의 여배우 하시모토 나나미의 매니저인 히로시에게 문자 메시지가 온 줄 몰랐다.
내가 그걸 안 건, 좀 전 철수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였다.
김 비서가 대표실을 나가고 나는 철수가 보낸 문자 메시지 위에, 딱 봐도 스팸 메시지 같아 보이는, 일본어로 적힌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뭐야? 진짜 한국에 온 거야?”
나는 바로 히로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히로시가 정말 하시모토 나나미를 데리고 한국에 왔고 당장 나를 만나고 싶단다. 하지만 나는 6시 이후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때 우희를 만나서 그녀와 데이트를 해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전에 나나미를 만나야 한다는 얘긴데....
‘얼추 5시면 되겠네.’
나나미 만나고 바로 우희에게 가면 될 거 같았다. 해서 나는 히로시에게 5시에 그들이 묵고 있는 쉐링턴 호텔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 통화를 끝냈다.
한데 히로시와 통화하는 동안 어째 느낌이 찜찜했다. 그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느낌이 마치 누가 내 물건에 손을 댄 걸 알게 된 뒤, 느끼는 불쾌하면서 더러운 기분이랄까?
아무튼 아직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어째 하시모토 나나미도 그렇고 그 매니저인 히로시도 느낌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뭐 만나보면 알겠지.”
나는 그들의 만남을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일본의 여배우가 나를 보러 일부러 서울에 왔는데 만나는 줘야 할 거 아닌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일합작드라마는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고, 그들을 다시 일본으로 돌려보내면 내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그렇게 잡은 약속을 나는 김 비서에게 알리면서 동시에 내 경호팀장인 문대식에게도 연락을 했다.
-그러니까 5시까지 쉐링턴 호텔에 가실 거란 말씀이시죠?
“어.”
근데 문대식이 갑자기 빠릿빠릿해진 거 같았다. 뭐 나야 문대식의 열심히 일해 주면이야 좋지만, 녀석의 갑작스런 변화가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김 비서가 급하다고 가져다 준 결재 서류를 좀 살피고 거기 사인을 막 할 때였다. 문대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왜?”
-쉐링턴 호텔 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벌써라니요? 한 시간이 지났는데.
그 말에 시간을 확인하니 정말 문대식과 통화하고 한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나는 결재한 서류를 김 비서에게 넘기고 곧장 대표실을 나섰다.
“이쪽으로....”
“어....”
그런데 문대식이 나를 지하주차장이 아닌 1층 구내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뭐야? 여기는 왜....”
“지금 밖에 기자들 쫘악 깔렸습니다. 지하주차장까지 다요.”
“뭐?”
문대식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내가 삼명그룹 후계자로 낙점 됐다지만, 언론에서 이정도 핫한 반응을 보일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삼명그룹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 언론이 이렇게 예의 없이 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에이. 설마....”
점심 먹고 오는 길에 나는 견신의 미션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 목숨을 좀 구했고.
그때 경찰 측에 잘 얘기를 했다.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 처음 내가 누군지 몰랐던 경찰은 내가 용감한 시민 상을 받을 거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 알고 나서, 내 앞에서 더 이상 그 말을 하는 경찰은 없었다. 그때 앞장서서 움직이던 문대식이 말했다.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제가 알아본 결과, 누가 대표님이 횡단보도에서 사람들을 구한 걸 퍼트린 거 같습니다. 그 때문에 별의별 기레기들이 다 몰려왔고요. 좀 전에는 삼명그룹 경호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쪽 경호 인력을 이쪽으로 보냈다고. 내가 필요 없다는 데 굳이 말입니다.”
잠시 후 문대식은 구내식당에 딸린 식자재 창고로 나를 데리고 갔고, 거기 대기 중인 트럭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타세요.”
“뭐? 지금 나보고 저 트럭에 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