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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사실 마당에는 백준열의 경호팀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백준호가 백준열을 공격할 때 자기 자리를 지킬 뿐 일체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백준열을 곧 죽일 듯 달려드는 백준호의 경호원들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움직였지.
그런데 일방적으로 백준열을 공격하던 백준호가 자빠져 버리고, 분노한 백준호가 자기 경호원에게 백준호를 어떻게 하라고 소리쳤을 때도, 백준열의 경호팀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호팀장인 문대식만 유일하게 백준열 쪽으로 움직였을 뿐. 그것도 호주머니에 손 넣고 천천히. 그랬는데....
툭! 툭!
백준열이 한 방에 기절 시켜 버린 백준호의 경호원 옆에 다가간 문대식. 그가 발로 의식을 잃은 그 경호원을 건드리더니 백준열에게 물었다.
“어디 다 확 묻어 버릴까요?”
그 물음에 백준호와 그의 경호원들 모두 부르르 몸을 떨며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들 다 문대식의 말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묻긴 뭘 묻어. 우리가 조폭도 아니고....”
나는 됐다며 손사래를 치며 백준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백준호 쪽 경호원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내 말 대로 그들 월급 주는 대상을 이제 지켜야겠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해서 나는 그들 경호원들 벽에 가로 막힌 채, 그 건너 백준호를 향해 말했다.
“형님. 나도 내일모레 30살입니다. 손찌검은 좀 아니죠. 주위 보는 눈도 있는데 작작 좀 합시다.”
나는 그 말 후 백준호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그대로 그들 옆을 스쳐 지나서 삼명가 본가 저택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도 백준호 쪽 경호원과 내 쪽 경호팀원들이 팽팽하게 대치 중이었다.
누구 차를 대문 앞에 댈지를 두고서 말이다. 근데 내가 먼저 나오자 자연스럽게 백준호 쪽 경호원들이 물러났고, 대기 중인 우리 차가 대문 앞으로 왔다. 그 차 문을 뒤따라 저택을 나온 문대식이 재빨리 열었고 나는 그 차에 탑승했다.
그걸 보고 내 쪽 경호팀원들이 우르르 차에 탔고, 모든 이동 준비가 끝나자 맨 앞쪽 경호차가 출발했다. 그 다음 내가 탄 차가 그 차의 꽁무니를 쫓으면서, 삼명가를 나서게 된 나는 곧장 JYB엔터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여자 경호팀원이면서, 또 내 여자가 이기도 한 정민지를 봤다. 그러자 어제 철수라는 처리자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생각 날 수밖에 없었다.
‘정민지가 양태석의 처제였다니....’
나는 힐끗 옆을 쳐다봤다. 혹시 문대식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랬더니 또 눈치는 귀신같이 빠른 문 팀장이 말했다.
“할 말 있으시면 그냥 하십시오. 뭘 또 제 눈치를 보고 그러십니까?”
“눈치는....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말하지 마십시오.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뭐? 문 팀장이 뭔데 나보고 말하라 마라야? 난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
“누가 뭐랍니까? 말하기 싫으신 거 같으니까, 말하지 말란 건데.”
“아니. 갑자기 말하고 싶어졌어.”
청개구리도 아니고. 문대식의 도발에 홀라당 넘어간 나는 그에게 정민기가 양태석의 처제임을 밝혔다.
“네? 민지씨가....그 조폭 두목의 처제라고요? 아니 그 인간 언제 결혼까지 했담.”
그런데 문대식이 진심으로 놀란 거 같았다. 두 눈이 동그래진 게 말이다. 그런 그에게 내가 물었다.
“그런데 정민지는 언제 이쪽에 합류한 거야?”
내가 알기로 정민지는 탑스타 유혜라의 근접 경호를 맡고 있었다. 그 역할은 유혜라가 싫다고 하지 않는 한 올해까지, 나는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둘이 자매처럼 친해 보였고, 또 유혜라의 안전도 좀 걱정이 됐고 말이다.
“어제 오후부로 유혜라 쪽에서 필요 없다고 해서, 회사로 바로 들어오겠다는 거, 제가 집에 가서 푹 쉬고 내일 아침에 그냥 본사로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잘했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문대식에게는 얘기해야 할 거 같았다. 정민지가 내 여자란 걸 말이다. 뭐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네에? 말도 안 돼!”
그런데 그 말을 했더니 문대식이 버럭 화를 냈다.
‘뭐야?’
내가 속으로 기가차하며 그를 쳐다보자, 그제야 문대식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내게 사과를 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런 그에게 내가 도끼눈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문 팀장. 혹시 정민지씨 좋아했어?”
“네? 누, 누가 누굴 좋아해요? 아니거든요.”
“뭐 맞고만.”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라면서 문대식은 나를 보지 못하고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우는 건 아니겠지?’
근데 간간히 소매 눈가를 훔치는 게....어째 내가 진짜 문대식을 울린 모양이었다.
* * *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문대식이 정민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단 소리다.
이미 정민지는 내 여자였고, 나는 정민지의 남자다. 쌀이 익어 밥이 되어 버렸는데 어쩌겠나?
정민지가 그렇게 좋았으면 나보다 먼저 고백하고 자기 여자로 만들었어야지.
“....”
차 안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졸지에 실연당한 남자가 되어버린 문대식 때문에 차마 무슨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제주도 사시는 윤재구 회장님이시다. 안 그래도 어제 윤재구 회장이 보낸 사람들에게서, 윤 회장이 내게 넘기기로 한 주식들을 잘 넘겨받았다는 얘기를, JYB엔터 법무 팀장을 통해 퇴근 전에 보고 받았었다.
그때 바로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어야 했는데, 어제는 너무 바쁜 관계로 깜빡했었다.
“안 그래도 전화 하려 했는데....”
나는 잘 됐다 생각하면서 윤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허허허. 이거 늙은이가 아침부터 주책없이 전화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어제 일로 전화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어제 일? 아아. 주식 말이로군. 그거야 당연히 주기로 한 거니 준 거고. 그거 가지고 고마워 할 필요는 없네.
“그래도요. 사람이란 게 어디 그렇습니까? 요즘 한입가지고 두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이 넘쳐나는 세상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회장님께서는, 충분히 제게 고맙다는 말씀을 들으실만 하십니다.”
-뭐 내가 그렇게 고맙거든 내 부탁하나만 들어 주게.
“네?”
-왜 어려운가?
“아, 아니요. 그게 뭔지 일단 말씀해 보시죠?”
-자네 밑에 조폭 조직 있잖아? 태석파라고.
“하하하하. 회장님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 군요. 조폭 조직이라니....누가 들으면 제가 조폭 조직이나 끼고 사업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겠군요?”
-이런....내가 말실수를 했군. 늙어서 그래. 이해해 주게. 하여튼 태석파란 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잡아 갔다지 뭔가? 그 사람 좀 빼내 주시게.
“뭐 알아는 봐 드리겠습니다. 그 사림이 누군지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철기라고....명일 흥신소 사장이고, 서울 흥신소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네.
윤 회장이 최철기란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그 자가 누군지 바로 생각이 났다. 바로 차은석 부문장의 뒤를 캤던 그 흥신소 대표였다. 그리고 양태석에 의하면 정재욱의 지시를 받았고. 나는 최철기를 알면서도 모른 척 윤 회장에게 말했다.
“혹시 언제 잡혀갔는지 아십니까?”
-어제로 알고 있네.
“어제라....시간이 좀 흘렀군요. 아시다시피 하루가 지나면 어떻게 됐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양태석은 내가 없애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위인은 아니었다. 그러니 최철기는 아마 살아 있을 거다. 아직 양태석의 조직에 잡힌 체 말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자인지에 따라서 사정은 달라지겠지. 만약 나와 차은석 쪽에 차후 위협이 될 자라면....
‘제거가 불가피 하니까....’
섣불리 윤 회장에게 최철기를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는 확답을 줄 수 없었다.
-으음. 어제 밤에 자네에게 전화 했어야 했는데....여차해서 그러지 못했군 그래. 뭐 지금이라도 알아봐 주게. 살아 있다면 내가 그 자 목숨 값을 두둑이 지불 할 테니 살려 주는 쪽으로 힘 써주고.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윤 회장과 통화 후 나는 곧바로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양태석은 통화 연결 음이 딱 한 번 울렸는데 내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최철기 말인데 아직 거기 데리고 있지?”
-네. 뭐 따로 지시 내릴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 자를 좀 봤으면 해서.”
-대표님께서 직접 보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어. 내가 보고 물어 볼 게 좀 있어서. 어디서 보면 될까?”
-저희 쪽에서 그 자를 데리고 가면 아무래도 좀 그렇고. 근처 화정빌딩에서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화정빌딩? 아아. 거기....”
화정빌딩은 바로 JYB엔터 사옥이 있는 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25층짜리 빌딩으로,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내 소유 빌딩이다. 그 빌딩주인 나는 거길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 양태석은 거기를 용케 기억해 냈다.
“좋아. 거기서 보도록 하지. 시간은?”
-대표님께서 편한 시간을 정해 주십시오.
“오늘 점심을 화정빌딩에 있는 중식당에서 먹으면 되겠네. 점심 먹고 나서 볼 테니까, 12시 30분까지 그 자를 거기로 데리고 와 줘.”
화정빌딩 안에 비어 있는 사무실이나 아니면 그곳 기계실을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그 정도는 양태석이 자기 재량껏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시간 돼?”
-네?
“그냥 점심이나 같이 할까 해서.”
-됩니다.
“좋아. 그럼 12시에 화정빌딩에 중식당에서 보자고.”
나는 양태석과 통화를 끝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시간 끌어서 좋을 거 없지.”
좀 전 문대식도 그렇고 정민지 문제로 자칫 양태석과 오해의 여지가 생길지 몰랐다. 해서 나는 오늘 양태석과 점심을 먹으면서 그에게 나와 정민지의 관계를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 직후 청와대 김순철 비서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대통령 사위 최지훈에 대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에, 이쪽에서 더 죽는 소리를 좀 했더니 알았다며 먼저 전화를 끊었다.
* * *
최철기가 태석파에 잡혀 오기까지 그 과정이, 사실 순탄치가 않았다.
최철기 밑에 정보원들도 한 싸움 하는 자들이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태석파에서도 조직에 최정예라 할 수 있는 구舊 사신대 조직원들이 동원 됐다.
사신대는 태석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태천파의 소수정예 기동부대로, 그들 조직원들을 고스란히 태석파가 흡수했고, 지금처럼 태석파 보스인 양태석의 지시에만 움직였다.
그 사신대를 상대로 최철기의 흥신소 직원들이 나름 분전을 했지만, 다들 제압 되었다.
그 과정에서 피를 본 만큼 최철기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다치면 안 되는데....”
흥신소 직원들은 몸이 재산이었다. 그런데 그 귀한 몸을 조폭들과 싸워 다쳤으니 앞으로 그들 생계가 막막해질 수밖에. 그나마 병원에 가서 치료라도 받고 있다면 다행인데....
최철기가 아는 한, 그 정도 융통성을 지닌 직원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명일 흥신소의 2인자라고도 볼 수 있는, 주용수 실장이 당시 경기도에 일이 있어 나가 있은 탓에, 그가 무사하다는 점이었다.
주 실장은 다행히 최철기가 인정하는 융통성 있는 직원이었다. 아마 그가 다친 직원들을 지금쯤 잘 챙기고 있을 터였다. 더불어 최철기를 살리기 위해서 모종의 조치도 취하고 있을 테고.
최철기는 지금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 실장에게 전에 상세히 얘기해 뒀었다. 주 실장이 그가 시킨 대로 하고 있다면....
“지금쯤 무슨 말이 나올 때도 됐는데....”
어제 여기로 잡혀 온 최철기. 바로 심문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차은석이라는 여자 뒷조사를 시킨 정재욱에 대해서 전부 다 얘기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운 좋으면 이대로 살아서 여길 나갈 수도 있겠다고.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그를 풀어 줄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태 잡혀 있었고.
철컹!
그때 최철기가 잡혀 있던 창고의 철제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 온 조폭들.
“일어나.”
최철기는 그를 데리러 온 조폭들에게 둘러싸인 채 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눈이 가려진 채 차에 태워져서 30분쯤 이동했고, 다시 그 차에서 내려서 어딘가로 끌려갔고,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는, 또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풀렸는데....
‘여기는....’
창밖을 통해 보이는 건물들만 봐도 여기가 어딘지 바로 알아차린 최철기.
그는 지금 그가 있는 텅 빈 사무실 안을 둘러 봤다. 사무실 안에는 그를 이리로 데려 온 4명의 조폭들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는데 잠시 뒤....
“뭘 이렇게 많이 시켜주시고....”
“짜장면이 다섯 개인걸 보니, 저 자식 것도 시켜 주신 거 같은데?”
“그러네. 어이. 이리 와.”
그래도 어제부터 느낀 건데, 이들 조폭들이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는 않았다. 정작 흥신소 운영 중인 최철기는 먹는 거 가지고 자기 직원들에게 치사하게 굴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