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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걸 어떡하나 잠시 고심하던 나는 남소라에게 물었다.
“거기서 니 배역이 뭔데?”
여주인공은 아닐 거다. 남소라가 그 정도 인지도 있는 여배우는 아니니까.
-파스타 가게 사장 와이프요. 여주인공하고는 친구고요.
그러니까 조연급 치고는 비중이 꽤 높은 축에 들어가는 역할이었다. 내가 봤을 때 그 역할이 남소라에게도 잘 어울렸다.
“저기....그 역할 정말 하기 싫어?”
-네.
그런데 남소라의 생각이 너무 확고부동했다. 나는 그런 남소라를 어떻게 설득 시킬까 고심하다가....
‘이런 멍청한....’
남소라는 성격이 털털하고 시원시원했지만 한번 아니면 죽어도 아닌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를 여기서 내가 설득하려든다면, 그녀는 더 안하려 들게 뻔했다. 그렇다면 남소라 같은 성격은 어떻게 다뤄야 하나? 그건 그녀의 지금 짜증나는 심정부터 다독여 주고 나서 잘 얘기하면 됐다.
그러려면....
‘한 빠구리 해야지.’
왜냐하면 내 여자들 중에서 남소라가 제일 색정녀거든. 백준열과의 섹스에서도 가장 적극적이었고. 그건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소라가 내 배위에 올라타면, 그녀의 짜증도 눈 녹듯 녹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어딘데?”
내 물음에 그녀가 이동 중 지금 위치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녀가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특급 호텔이 어딘지 생각했고....
“파라다이스 호텔 앞에서 보자.”
-호텔이요?
내 입에서 호텔 이름이 거론되자 남소라의 목소리 텐션이 확 올라갔다. 그녀도 지금 나와 빨리 한 빠구리 하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남소라와 통화를 끝내자, 내 옆에 타고 있던 문 팀장이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들었지? 파라다이스 호텔이다.”
잠시 뒤 JYB엔터의 지하 주차장을 나온, 나를 태운 차는 파라다이스 호텔로 향했다. 그렇게 20분쯤 뒤, 차는 파라다이스 호텔 앞에 도착했고, 나는 차에서 내리며 남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어디야?”
-호텔 로비요.
“알았어.”
나는 문 팀장에게 차 키를 받고 그와 경호팀을 그 자리에서 다 퇴근 시켰다. 문 팀장은 내가 내일 아침까지 여기 파라다이스 호텔에 묵을 줄 알고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 * *
파라다이스 호텔 안으로 들어가서 로비를 쭉 살피니 남소라가 창가에 혼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곧장 그쪽으로 다가갔다.
“왜 혼자야?”
내가 묻자 나를 돌아보던 남소라. 그녀가 바로 대답을 했다.
“매니저 있으면 귀찮기나 하지....아까부터 그 거지 같은 드라마 해야 한다고. 어찌나 틱틱 거리기에 보내 버렸어요.”
거지같은 드라마라니? 내가 알기로 그 ‘파스타 줘’는 시청률 25%짜리 대박 드라마다.
그것도 모르고 저러고 있는 남소라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피식 거리고 웃었는데 그걸 또 남소라가 보고 말했다.
“남자가 뭔 웃음이 그리 헤퍼요.”
“뭐?”
내가 웃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다. 아무튼 남소라는 백준열을 상당히 띄엄띄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백준열은 그리 가볍게 볼 자가 아니다. 그의 눈 밖에 난 자들이 왜 실종 처리 됐겠나?
남소라가 진짜 백준열의 실체를 몰라서 그렇지, 그걸 알고 나면....
‘달아나겠지. 살고 싶다면 말이야.’
백준열의 본성은 자기 밖에 모르는데다가 냉정하고 잔인했다. 그건 당장 그의 곁에 있는 김 비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남소라가 김 비서에 비해서 그에게 특별한 존재인가?
그건 아니었다. 남소라도 백준열에게 있어서, 김 비서나 다름없는 육노예일 뿐이었다. 그가 데리고 놀다가 싫증나면 언제든 페기처분 해 버릴 수 있는....
‘와아. 그래도 김 비서까지 없애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 생각을 해서 떠오른 건지 모르지만, 좀 전 내 머릿속에 백준열의 기억이 떠올랐다. 백준열은 애초 김 비서를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쓸데까지 김 비서를 곁에 두고 쓰다가, 그녀를 대체 할 여비서가 생기면....김 비서는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김 비서 만큼 그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런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줬다가 백준열의 적 중 하나가 그녀를 포섭이라도 한다면....
‘그 생각은 나도 이해가 돼. 하지만 자유롭게 풀어주되, 내 곁에 계속 두면 되잖아?’
굳이 그녀를 없앨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저번에 내 뇌의 기질질환을 치료한 게 정말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기질질환을 치료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김 비서를 없애야 한다는 백준열의 생각에 동의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누군지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렸다.
나는 백준열의 몸에 완벽히 빙의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몸의 주인은 확실히 백준열이었고, 그가 남긴 습성이나 기억이 내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걸 나만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어째든 나란 존재에 대해 좀 더 성찰해 볼 필요성을 느끼면서, 나는 남소라를 데리고 1층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남소라는 빠구리 만큼이나 먹는 것도 좋아했다. 해서 나는 먼저 먹는 걸로 그녀의 짜증나 있는 마음을 풀어 줄 생각이었다.
“정말 다 먹어도 돼요?”
레스토랑 메뉴판을 들고 거기 있는 거 다 시킬 기세의 남소라. 그런 그녀를 보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돼. 대신 살찌면 네가 빼야지.”
“뭐라고요?”
“그럼 니 살을 내까 뺄까?”
“흥!”
내게 대 놓고 콧방귀를 뀌고 난 남소라. 그녀가 비교적 준수하게 주문을 했다. 당연히 나는 내 것도 그녀가 주문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남소라가 주문한 대로 달라고, 레스토랑 직원에게 말했는데....
“대표님. 좀 전에 제가 주문한 거, 제가 다 먹을 거거든요. 그러니까 대표님도 드실 거 주문하세요.”
“뭐?”
남소라는 분명 두 사람 먹을 음식을 주문했다. 그래서 그 중 하나가 내가 먹을 건 줄 알았고. 하지만 아니었다. 남소라가 그 두 사람 먹을 음식을 혼자 다 먹을 거란다. 해서 나도 따로 내가 먹을 음식을 주문했다.
“와인은?”
“마실래요.”
그리고 둘이 마실 적당한 와인을 주문했고, 음식이 나오자 둘은 느긋하게 그 음식을 즐기면서 먹었다. 남소라가 2인분을 시키는 바람에 식사 시간이 좀 길어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맛있게 디너를 먹고 후식까지 다 챙겨 먹고는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때 남소라가 말했다.
“대표님. 팔짱 껴도 돼요?”
“당연히 되지.”
내가 흔쾌히 팔을 내밀자 그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내 팔짱을 꼈다. 그걸 보고 나는 남소라의 기분이 확실히 많이 풀렸음을 알 수 있었다.
* * *
나는 남소라와 팔짱을 낀 체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곧장 로비를 가로 질러서 호텔 객실로 올라갔다.
당연히 여기 VVIP고객인 나는 프런트 쪽에 내가 왔다는 티만 냈다. 그걸 보고 프런트 안의 호텔 직원이 뛰어와서 내게 방 키를 건넸다.
그걸 받아서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나는 프런트 쪽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뒤돌아 프런트 쪽을 쳐다봤다. 그랬더니 거기에 문성일보 사주인 홍익태가 있었다. 어디서 데려 왔는지 날티 풀풀 풍기는 젊은 여자 둘을 옆에 달고서 말이다.
근데 프런트에서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아마도 홍익태가 나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인 *소리가 잘 들립니다.*를 통해서, 홍익태와 프런트 직원 간에 나누는 대화를 전부 다 생생하게 엿들었다.
“지금 나와 같은 여기 VVIP고객이 되겠다고? 쉽지 않을 텐데?”
서울에 있는 특급 호텔들의 VVIP고객이 되려면 1년에 들어가는 돈이 수백억이나 필요하다. 물론 여기 파라다이스 호텔의 VVIP고객이 되려면, 여기 로얄스위트룸의 1년 치 방값을 한 번에 지불하면 되겠지만, 그 금액이 대략 40-50억이나 되는 데, 그가 쭉 살 집도 아니고 호텔비로 매년 그 정도 돈을 지출 할 정도로, 문성일보 사주인 홍익태가 그렇게 돈이 많은가?
내가 알기로 그 정도로 펑펑 돈을 써도 될 정도는 아니었다.
역시나 이 호텔의 VVIP고객이 되려면 들어야 하는 40-50억의 돈이 부담이 됐던지, 홍익태는 성질을 내며 두 여자를 데리고 파라다이스 호텔을 나섰다. 그때였다. 내 머릿속으로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디링! 변태 홍익태로 부터 접대부 김성희를 구하시오. 김성희를 구해주면 개지수 10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뭐?”
별 희한한 견신 시스템의 미션에 내가기가 차 할 때, 내 옆에 남소라가 말했다.
“아까부터 뭔 혼잣말을 그렇게 해요? 보니까 저 아저씨와 두 여자들을 보는 거 같던데. 아는 사람들이에요?”
남소라의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기가 찰 소릴 내 뱉었다.
“뭐야? 대표님도 설마 저 아저씨처럼 2대 1로 하고 싶은 거야?”
“뭐?”
“근데 그건 딴 골빈 년들하고 해. 나는 동성 끼고 그 짓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남소라의 그 말에 나는 부끄러워서 주위를 살폈다. 혹시 주위에 누가 있어서 그 말을 들었다면 부끄러울 노릇이니까. 다행히 엘리베이터 앞에는 우리 둘 만 있었고, 막 지하로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올라와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타기나 해.”
나는 남소라의 등을 떠밀어 엘리베이터에 태운 뒤, 곧장 이곳 호텔 로얄스위트 룸이 있는 21층을 버튼은 눌렀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앞서 내게 말한 미션의 추가 설명인 거 같았다.
-....이대로 두면 김성희는 1시간 뒤에 죽습니다. 그녀에게는 해피라는 애견이 있는 데, 그녀가 죽게 되면 해피가 너무 슬퍼 할 거라며 견신께서 특별히 내신 미션입니다.
‘뭐야? 견신께서 직접 내신 미션이었어?’
그렇다면 당연히 해야지. 하지만 1시간이면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일단 급한 대로 나는 홍익태에게 「개방울」아이템을 사용했다. 홍익태와 두 여자들이 아직 파라다이스 호텔을 떠나지 않았는지, 홍익태에게 「개방울」아이템의 효력이 발휘가 됐다. 이걸로 홍익태가 어디를 가는지 나는 이제 알 수가 있었다. 「개방울」아이템이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았을 때는 반경 얼마 안에서만 홍익태의 행방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3UP이나 된 상태라, 서울 전 지역에 걸쳐서 홍익태가 어디 있어도 나는 찾아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1시간은....’
자칫 홍익태를 쫓아가다가 미션을 수행할 시간을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가만....’
그런데 또 생각을 해 보니 홍익태가 변태 행각을 벌이다가, 두 여자 중 한 명인 김성희를 죽인다는 건데, 그것도 1시간 안에 말이다.
그러려면 그 짓을 벌이기 위한 장소, 즉 다른 호텔에 들어가야 하지 않나? 또 그 짓을 하기 전에 좀 씻기도 해야 할 거고.
그런 부수적인 시간을 감안했을 때, 홍익태가 한 시간 안에 김성희를 죽이려면 무조건 가까운 호텔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다면 나한테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거지.’
내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로얄스위트룸이 있는 21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렸다. 나는 남소라를 데리고 방키 번호의 로얄스위트룸에 들어갔다.
“와아....”
남소라는 로얄스위트룸의 널찍함과 고급스러움, 그리고 빼어난 뷰에 구경하기 바빴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근처에서 누구 좀 만나고 올 테니까, 구경 실컷 하고 씻어. 필요한 거 있으면 룸 서비스 이용하고.”
“네.”
내 말에 무신경하게 대답하는 남소라를 두고 나는 로얄스위트룸을 나섰다.
견신이 내 준 미션을 수행하러 가기 위해서 나는,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갔다. 거기에 내가 문대식에게서 받아 챙긴 차키의 차가 있었다.
삐삑!
다행히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가까운 곳에 그 차가 주차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차를 타고 일단 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개방울」아이템의 능력을 사용해서 위치 추적에 들어갔다.
“명신호텔?”
내 생각대로 홍익태는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채 5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호텔로 두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은 특급 호텔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슨....
‘나도 프런트에 가서 체크인을 해야 한다는 얘기.’
나는 명신호텔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프런트로 가서 객실 하나를 체크인 했다. 그 다음 방키를 받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내 객실 번호는 704호인데, 정작 나는 13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거기 1307호에 홍익태가 두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