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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박충교는 임 전무가 회사가 챙기는 40%의 스폰비 중에, 그 절반인 20%를 날로 먹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네. 전무님!”
여자 화대, 즉 몸값이나 삥땅치고 사는 동질감 때문일까? 박충교는 임 전무를 대하는 게 예전만큼 어렵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지금처럼 밝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면 임 전무도 그에게 꼬박꼬박 돈을 챙겨 주는, 박충교에게 비교적 친절하게 대했다. 한데....
-야! 너 지금 어디야?
목소리 톤이 이미 친절한 임 전무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임 전무는 지금 박충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다 알면서 왜 굳이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박충교는 일단 대답을 했다.
“파라다이스 호텔이요.”
-너 지금 지수 데리고 거기서 당장 나와.
“네? 하지만 그러면 스폰서가....”
-이제 그거 끝이야.
“네? 그게 무슨....”
-회사 방침이 바뀌었다고. 그러니까 잘리기 싫으면 지수 데리고 회사로 바로 들어 와.
회사 방침이 왜 바뀐단 말인가?
“아아....”
그때 박충교는 저번 주에 대표와 대표 아들이 한꺼번에 비명횡사한 사실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유족이 주식을 헐값에 누군가에게 넘겼다는 소문이 있었고 말이다.
“새로 오신 대표님 지십니까?”
-그래.
아무래도 새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자리에 오르신 분께서는, 스폰서의 도움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임 전무와 통화를 끝낸 박충교가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여배우 이지수에게 말했다.
“스폰 물 건너갔다. 가자.”
박충교의 그 말에 얼어 있던 이지수가 그제야 웃으며, 그를 따라서 좀 전 그들이 타고 올라 온 엘리베이터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렇게 좋냐?”
그때 박충교가 그걸 보고 한심하다는 듯 이지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지수가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대답했다.
“네. 좋아요.”
“너한테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어.”
“인기? 스타가 되는 거? 다 좋죠. 하지만 제 힘으로 갖고 싶어요. 인기도, 스타도.”
“아이고. 말은 잘해요. 어떻게 연기도 지금처럼 똑 부러지게 해 주면 안 될까?”
“지금처럼 요?”
뭔가를 깨달은 듯 보이는 이지수, 하지만 박충교는 그런 그녀보다 오늘 챙길 수 있었던 400만원이 너무도 아까웠다.
딩동댕! 촤르르르!
그때 위에서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고, 둘은 그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맡겼던 차를 받을 때, 박충교는 발레파킹 비를 내야 했다. 이곳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발레파킹은 기본적으로 제공 되는 서비스가 아니었던 것.
“에이C.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주차하는 건데....”
이런 건 경비 처리도 안 된다며, 박충교는 소속사로 갈 때까지 그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해서, 기어코 이수지에게 발레파킹비의 절반을 받아냈다.
* * *
“아니. 왜 이렇게 안 와?”
오기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도 여자 연예인이 오지 않자, 안 그래도 화가 나서 그걸 풀려고 여기 온 홍익태는 더 열이 받았다. 그래서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비서실장이 알아보겠다고 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0여분이 더 흐르고, 홍익태는 직감했다. 오늘 빠구리로 화를 푸는 건 애초에 틀려먹었다고 말이다. 그때 비서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뭐, 뭐라고? 왔다가 돌아가? 왜?”
-그, 그게....그쪽 대표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뭐, 뭐? 이런 XXXX...."
홍익태의 입에서 욕설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거기 당장 심층 취재 들어가. 다 파서 반드시 문 닫게 만들어. 어. 그래. 스폰! 거기 연예인들 다 스폰서가 있다고 해.”
-대, 대표님. 그러다가 대표님이 거기 스폰서라는 게 탄로라도 나면....
앞뒤 생각 없이 화가 나서 막 지껄여대던 홍익태는, 비서실장의 말에 그제야 자기도 찔리는 데가 있는지 말을 흐리며 말했다.
“스폰서 얘기는 안하는 게 좋겠네. 어째든 그걸 기자나 경찰이 파서 좋을 건 없을 테니까....”
결국 홍익태는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서 단골 룸빵으로 향했다. 룸빵의 여자들은 그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째든 오늘 그의 화는 풀어야 했기에, 그는 최대한 호스티스 같이 않은 여자 둘을 선택해서 그녀들과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즐겼다. 그리고 비교적 일찌감치 2차로 그녀들을 데리고 근처 호텔로 향했다.
근데 하필 그 호텔에서 홍익태는 이제 그에게 원수나 다른 없는 녀석을 만났다.
“저, 저 개새끼....”
근데 그의 옆에는 홍익태와 같이 있는 룸빵 호스티스들과는 차원이 다른 쭉쭉빵빵 미인이 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동안 수십 명도 넘는 여배우들을 스폰 해온 홍익태였다. 그는 백준열과 팔짱 끼고 있는 팔등신 미인이 여배우라는 걸 한 눈에 알아봤다.
스윽!
그런데 백준열이 그를 보고도 모른 척 태연하게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런 그에게 호텔 프런트에서 직원 하나가 후다닥 뛰어가더니, 두 손으로 정중히 그의 손에 방 키를 건네고 돌아왔다.
그걸 보고 프런트에서 방을 잡고 있던 홍익태가 버럭 외쳤다.
“저 새끼는 바로 들어가는 데, 나는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그러면서 자신이 문성일보 대표임을 밝혔다. 하지만 호텔 프런트에서 돌아 온 대답은....
“방금 전 그분께서는 저희 호텔 VVIP고객이십니다. 혹시 저희 호텔 VVIP고객이신지요?”
“그, 그건 아닌데. 그깟 VVIP고객 해 주면 되잖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좀 전 VVIP고객님께 해드린 거처럼, 체크 인, 아웃 필요 없이 언제든 저희 호텔을 이용하실 수 있는, 프리패스 유트라이즈 혜택을 쓰실 수 있으십니다. 그에 앞서 일단 저희 VVIP고객이 되시려면 연간 이용액이 20억을 넘으시거나....”
“자, 잠깐만? 얼마라고?”
“20억입니다. 고객님.”
“그, 그러니까 그 새끼가 여기 호텔비로 연간 20억을 쓴다고?”
20억이 뉘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더군다나 백준열은 이곳 호텔 말고 다른 호텔들도 여럿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근데 그 모든 호텔들이 지금처럼 VVIP고객이라면....
‘에이....설마....’
설마 싶었지만 홍익태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아는 백준열이라면 충분히 그러고 살 인간이란 걸 말이다. 그렇다면 매년 호텔에만 들어가는 돈만해도 수백 억 원에 달한다는 얘긴데....
아무리 재벌가의 자제라도 호텔비로만, 그렇게 펑펑 쓰고 살수는 없었다.
백준열의 그런 씀씀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홍익태를 보고 호텔 프런트 직원이 말했다.
“고객님. 아까부터 저희 VVIP고객님을 ‘새끼’라고 하시는데 실로 듣기 거북합니다. 혹시 저희 VVIP고객님과 그 정도 친분이 있으신 분이신가요? 그게 맞다면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뭐, 뭐라고?”
그러니까 지금 눈앞의 호텔 직원이 백준열에게, 자신이 백준열을 새끼라고 부른 걸 대놓고 고자질 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뒤쪽에 CCTV카메라를 가리켰다.
CCTV에 다 찍혔으니 딴 소리 하지 말란 얘기였다.
“이런 C....하아....가자....서울 시내 호텔이 여기뿐인 줄 아나.”
결국 홍익태는 여기 호텔을 이용하지 못하고, 두 여자들을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보고 호텔 프런트 직원들이 다들 웃고 있었다. 그게 호텔 직원들의 친절한 웃음인지, 아니면 홍익태를 비웃는 웃음인지는, 누구보다 홍익태가 잘 알았다.
‘내 저것들을....’
화를 삭이려고 호텔 왔다가 화만 더 나서 호텔을 나간 홍익태.
그는 그길로 근처 호텔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새벽 2시쯤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강간 및 폭행, 상해죄로 현행범으로 체포돼서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됐다. 그리고 언론사 사주 치고는 의례적으로 아침에 그의 범행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면서, 문성일보 측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 * *
오전에 블랙 머니의 대표실에서 홍익태의 전화를 생 까고 있던 내게 JYB엔터의 김효석 실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 그래도 블랙 머니에서의 볼일을 거의 다 본 터라 JYB엔터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김효석 실장도 내가 오늘 오전에 내가 블랙 머니 쪽 투자사 일을 처리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진짜 급한 일이 아니면 이렇게 전화를 걸어 오진 않았을 터.
“무슨 일이지?”
살짝 걱정이 되면서 나는 김효석 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네. 말하세요.”
-대표님. 공정위에서 QH엔터에 대한 조사가 오늘 있었는데....
홍대복 대표의 실종에 다가 소속 연예인의 불공정 계약 문제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게 된 QH엔터. 주가 폭락에 회사 내부 분위기는 그야말로 흉흉했는데, 그걸 김효석 실장이 개입해서 내부적으로 안정을 시키고 있었다. 한데 공정위 조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나?
그 말을 듣자마자 백준열의 기억에 공정위에 아는 사람이 떠올랐다. 확실히 인맥하나 만큼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백준열이었다.
“알았어요. 내가 손을 쓸게요. 그리고 저번 주에도 말했는데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말인데요. 유족들로부터 지분 인수가 끝났습니다. 대주주 자격으로 오늘 한 번 찾아가셔서....거기도 기강을 좀 잡아 주세요.”
-네. 여기도 공정위 문제만 해결 되면, 제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 갈 테니까 바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현재 내가 인수한 두 곳의 연예기획사를 도맡아 챙겨 줄 사람은 김효석 실장 밖에 없었다.
해서 TVM으로 보낼 생각이었던 박인호 부대표도, 당분간은 JYB엔터에 남아서 해 오던 대로 전반적으로 회사 운영을 해 줘야만 했고.
그러니까 지금 김효석 실장을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로 빨리 보내려면, 갑자기 QH엔터를 빡세게 조사 중인 공정위부터 빨리 해결해 줘야 했다.
“공정위에 부위원장 김석현이라....”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의 줄임말로, 독점 및 과점을 방지하며 부당한 공동행위와 불공정거래를 규제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고 공정하면서 자유로운 경쟁의 촉진을 도모하는 기관이다.
공정위원장은 장관급이고 부위원장은 차관 급이었다. 부위원장인 김석현은 공정위의 2인자로 당연히 파워가 있었다. 김석현이란 이름이 생각나면서 그와 백준열이 어떤 관계인지도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검찰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검경 쪽을 확실히 챙겨온 백준열이었다. 공정위 같은 곳도 당연히 챙겼다.
“형님 동생하는 사이라....”
나는 바로 김석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준열아.
“형님. 좀 격조했죠?”
-그랬나? 우리가 본 게....한 달이 좀 넘었네. 미안하다. 내가 요즘 워낙 바빠서....
“형님 바쁜 거 모르는 사람 있나요.”
-그래도 다음 주쯤 되면 여유가 생길 거야. 그때 한 잔하자.
“네. 그러시죠.”
-그래서 용건은?
백준열의 기억에 김석현은 합리적인 성향의 인물이었다. 구질구질하게 사설 같은 건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실은 제가 인수하려고 좀 흔들어 놓은 연예기획사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밑에서 공정위에 신고까지 한 모양인데....”
-회사 이름이 뭔데?
“QH엔터라고....”
-어디 보자....조사 들어가 있네. 그래서 어떻게 해줘?
“공정위 사람들이 너무 일을 열심히 하려 드네요. 작은 연예기획사 하나 두고서요. 대기업이나 그렇게 할 것이지.”
-후훗. 알았어. 철수 시킬게.
“고맙습니다. 형님.”
-뭘. 네 말대로 공정위가 구멍가게나 털어서 위신이 서겠냐? 얘기 끝이지?
“네.”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끊는다.
김석현은 진짜 바빠 보였다. 나와 통화하면서도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게, 내 예민한 귀에 다 들렸다.
* * *
재경직 5급 공채에 합격한 민경식. 그는 기재부에 지원했다가 공정위로 발령을 받고,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공정위에 와서 일을 해보니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진짜 돈이 되는 곳이란 걸 말이다.
특히 그가 공정위에서 처음 일할 때는, 위에서 워낙 많이 해 드셨기에 그에게 튀는 콩고물도 상당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공정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바뀌면서, 위에서도 눈치 보기 급급했다.
그러다가 굵직한 대기업의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행위나 규제에 관한 사항이나 기업결합의 제한 사항이 아닌, 자잘한 군소기업,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해서 중소형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의 불공정 계약조항에 대한 시정조치를 불응한 곳에 대한 신고가 들어왔고, 거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민경식은 돈 될 만한 걸 찾아냈다.
‘이 정도면 몇 억은 챙길 수 있겠군.’
그가 찾아낸 불법 사실들을 막기 위해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는 이곳 연예기획사의 대표는, 무조건 그에게 돈을 찔러 넣어 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의 전권은 그에게 있었기에, 위에서도 여기 일에 대해 관여 할 일 따위도 애초부터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