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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 검사는 평소보다 내 전화를 편안하게 받았다.
-네. 백 대표님. 하하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네. 뭐 좋은 아침이네요.”
주위에 누가 있어서 억지로 연기하는 건 아니었다.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냥 기분이 좋아서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는 건....
“나 검사님, 아니 이제 나 부부장 검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이고. 우리 사이에 무슨....그냥 계속 나 검사라고 불러 주십시오.
빙고! 맞았다. 아직 검찰청 인사 발표가 난 건 아니지만 알게 된 거다. 자신이 이번 인사에서 부부장검사로 승진하게 됐다는 걸 말이다.
‘다행이네.’
대검 최고위 인사에게 얘기는 했었다. 구체적으로 감찰부장과 차장 검사에게 말이다. 그게 먹혀 든 건지 나 검사가 이번에 승진을 하게 된 거고.
혹여 나 검사가 자기 실력으로 그 자리를 꿰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지.’
왜냐하면 중앙지검 정도 되면 우연 같은 건 없으니까.
라인 혹은 빽 없이 평검사에서 부부장검사로 승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저 밑에 지방의 지청이라면 또 얘기가 다르겠지만.
실력? 정말 대박 사건 하나 물지 않는 한, 그 실력이란 것도 결국 검찰이라는 조직 내에서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정식으로 승진하시면 그때 내가 제대로 한 턱 쏘겠습니다.”
-아이고. 승진은 제가하는 데 백 대표님께서 왜 쏘십니까? 제가 쏴야죠. 하하하하.
“뭐 누가 됐건 어떻습니다. 축하하고 기뻐하면 된 거지.”
마치 나 검사가 지금 승진이라도 한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나는 그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내가 전화한 용건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살짝 양념을 쳤다.
“이거 나 검사님이 부부장검사가 되시고 그 위까지 노리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거 같긴 한데....”
-그게 뭔데요?
나 검사는 바로 관심을 보였고 나는 강원도 XX요양원의 원장 집에서 나온 포렌식한 데이터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당장 보내 주십시오.
나 검사가 내가 던진 미끼를 바로 덥석 물었다.
“네. 지금 바로 퀵 서비스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앙지검 반부패부에서 움직여 준다면 제대로 불을 지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그 불을 활활 타 오르게 만들 바람이 필요했다. 그 바람은 바로 언론이 해결해 줄 것이고 그 언론은 이미 내 수중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나 검사와 잠시 시시콜콜한 얘기를 더 나누다가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내 옆에 문 팀장에게 포렌식한 데이터가 든 USB를, 지금 즉시 중앙지검으로 퀵 서비스로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 * *
내 옆 자리의 문 팀장이 포렌식한 데이터가 든 USB를, 중앙지검으로 퀵 서비스 보내는 걸 두고 한창 통화 중일 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김 비서였다. 나는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
“어.”
-삼명그룹 본사 비서실과 통화 했는데....
“그러니까 오늘 밤 10시에 힐튼 호텔 라운지 바Bar에서 보자는 거지? 알았어. 그렇게 하자고 해.”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최종 약속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이걸로 삼명그룹의 새로운 실세, 이동훈 비서실장과 만남이 오늘 밤에 이뤄지게 됐다.
이동훈 실장이 무슨 소리를 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만나는 자리 일 거다.
‘진짜 싫은데....’
나는 삼명그룹 후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또 아이러니한 게 삼명그룹의 힘은 계속 쓰고 싶었고 필요했다.
문제는 그 힘을 내가 내 마음대로 쓰려면. 내가 삼명그룹의 주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왜냐하면 그 힘이란 게 절대 나눌 수 있거나, 누가 대신 가지고 있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젠장....”
일 많고 골치 아픈 삼명그룹 회장 자리는 싫은 데, 그 회장이 갖는 힘은 또 가지고 싶고....
‘이럴 때는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네.’
막 그 생각을 할 때 내 눈에 내 소유의 아크로텔 빌딩이 보였다. 작년에 리모델링을 해서 그런지 새 건물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저 빌딩을 원하는, 날파리도 늘어나고 있었고.
잠시 후 차가 아크로텔 빌딩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 빌딩주 전용 주차장에 내 차를 대려는 데....
“뭐야?”
그 곳에 누가 떡하니 차를 대놨다. 그걸 보고 문 팀장이 이곳 관리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그러니까 이 빌딩 팔라고 찾아 온 작자가, 저 차 주인이란 거군?”
“네. 관리인은 저 차가 워낙 비싼 차라, 함부로 견인 조치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고요. 주말에는 뺄 줄 알았는데....”
“법적으로 해결 해.”
이런 일은 감정적으로 나가는 쪽이 진다. 이런 일 하라고 고문 변호사가 있는 거고.
“네.”
문 팀장이 내 고문 변호사에게 연락하는 동안, 나는 먼저 차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신경이 거슬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문 팀장이 내 옆에 왔고,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관리인한테 가서 여기 팔라고 지랄 떠는 인간이 누군지 좀 알아보고 와.”
“알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타고 있던 사람이 내리자, 나와 경호팀원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문 팀장도 같이 타고 관리실이 있는 1층에서 내렸다. 그리고 쭉 위로 올라간 엘리베이터는 블랙 머니가 전 층을 쓰고 있는 8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곧장 블랙 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박 비서가 나를 수행해서 곧장 회의장으로 향했다.
* * *
월요일 아침. 블랙머니의 주간 회의를 주관한 뒤 나는 대표실로 향했다. 그리고 박 비서로부터 내가 시킨 일들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특히 내 주 관심사는 방송, 언론사, 즉 TVM과 문성일보의 지분을 얼마나 확보 했는가 였다.
“TVM은 45%를 넘겼습니다.”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얼마라고 했지?”
“7%입니다.”
“끝났네. 국민연금 이사장 연결해.”
다른 금융기관과 골치 아픈 외국투자사와 얘기하고 자실 것도 없었다.
“접니다. 이사장님. 잘 지내시죠? 네. 저도 필드 나가고 싶은데 요즘 일이 좀 많아서....하하하하. 물론입니다. 요즘 배가 맛있더라고요. 집으로 한 박스 보내겠습니다. 네. 그러죠.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국민연금 이사장과 통화 후 나는 바로 박 비서에게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한데 연락해서 위임장 받고, 바로 임시주주총회 열어서 경영권 확보 해.”
“네.”
“그 다음 문성일보는?”
“어제까지 32% 확보가 됐습니다.”
거기에 오늘 윤재구 회장으로부터 들어 올 5.1%의 주식까지 합쳐지면 총 37%가 넘는 주식을 확보하게 된다. 그에 비해 지금 최대주주인 홍익태는 29% 뿐이고. 당연히 주주총회가 열리면 기관과 외국투자사들은 홍익태가 아닌 내 편을 들 거다. 그게 그들에게 남는 장사니까.
“그쪽도 임시주총 열어서 경영권 바로 가져 와.”
“네.”
지이이잉! 지이이잉!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온다고 내가 윤재구 회장 생각을 하자, 제주도에 있는 그 양반이 내게 전화를 해 왔다.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목소리가 밝은 게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군?
“제게는 회장님은 박씨를 물어 오는 제비만큼이나 반가운 분이니까요.”
-하긴. 손님은 빚 같으러 온 손님이 최고지. 내가 미적대는 걸 제일 싫어해서. 또 빚지고는 못 참고. 자네에게 넘기기로 한 주식들 오늘 다 정리하고 싶은데?
“저야 그래주시면 고맙죠.”
-자네 회사가 JYB엔터라고 했던가?
“네.”
-거기로 사람을 보내지.
“고맙습니다.”
-제주도는 또 언제 내려 올 건가?
“요즘 좀 바빠서....”
-오면 연락 해. 그리고 엘베 병원 데리고 가는 거에 대해서 내가 참견을 좀 했으면 하는데?
“얼마든지 그렇게 하십시오.”
-고맙네.
윤재구 회장은 엘베가 임신을 했을 거라 믿는 거 같은데 곧 죽을 녀석이 무슨....
그러고 보니 엘베 때문에라도 다음 주 쯤 제주도에 가긴 가야 할 거 같았다. 물론 시간이 된다면 말이다.
우리는 서로 고마워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통화를 끝냈다. 그리곤 내 앞의 박 비서에게 물었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문성일보까지 얘기하셨습니다.”
“아아. 맞다. 그 다음 삼명호텔은....”
나는 박 비서와 향후 주식 투자에 관해 40분 정도 더 얘기를 나눈 뒤, 그를 대표실에서 내보냈다. 괜히 바쁜 사람 더 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휴우....대충 준비는 된 셈인가?”
이로써 신비 에이전시의 뒷배로 볼 수 있는, 3명의 장로들을 털어내기 위한 사전 준비가 끝나자 내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문성일보 사주로 알려져 있는 홍익태의 전화였다.
아마 좀 전에 우리 쪽에 주식을 판 문성일보의 대주주들 중 하나가 양도세를 낸 모양이었다. 성질 급한 홍익태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한테 전화를 건 거고. 나는 그냥 생 깔까 하다가 옛정을 생각해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형님? 야이 개새끼야. 뚫린 입이라고....
백준열이 아무리 개새끼로 불린다지만, 본인 앞에서 그 소리를 하면 듣는 개새끼가 기분이 좋겠나? 나는 바로 홍익태의 전화를 끊었다. 그랬더니 즉시 걸려 오는 홍익태의 전화.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끊어 버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 근데 무식하면 민폐야 민폐. 에이....”
홍익태는 그나마 내게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마저도 자기 발로 뻥 차버렸다.
* * *
주말에 횡성에 골프장에서 골프치고, 거기 한우 육회 배터지게 먹고 데려간, 그가 큰 돈 들여서 스폰하고 있는 여자 연예인도, 맛있게 먹어 치운 홍익태.
그가 느긋하게 아침으로 소머리 국밥을 먹고, 서울로 출발 한지 한 시간 쯤 되었을 때였다. 문성일보 대표 비서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어. 강 실장. 지금 가는 중이야. 뭐? 지, 지금 뭐라고 그랬어? 장동구 그 새끼가 우리 주식을 죄다 팔아?”
홍익태도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진 않았다. 비록 신문사 일이 그의 관심사 밖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밥그릇을 걷어 찰 정도로 어리석은 우인愚人은 아니었다.
“그, 그래서 딴 놈들은? 뭐? 충식이랑 민석이도 주식을 팔았다고? C발. 헉! NC투자운영도....”
지금까지 홍익태가 언급한 대주주들의 주식만 합쳐도, 지금 홍익태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과 거의 맞먹었다. 이건
“그럼 대체 그 많은 주식들이 누구한테 넘어간 거야? 뭐? 어, 어디? 블랙 머니? 아니 거긴....백준열 개새끼 투자사잖아?”
발끈한 홍익태. 그는 자기 핸드폰에 저장 되어 있는 백준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백준열이 그의 전화를 받았고. 빡친 홍익태는 백준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욕부터 끌어 부었다.
띠띠띠띠띠띠....
그랬더니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백준열.
“여보세요? 야! 이 개새끼가 내 전화를 끊어?”
씩씩거리며 다시 백준열에게 전화를 건 홍익태. 하지만 백준열은 그 뒤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개새끼가 내 전화를 안 받아?”
처음에는 화를 내며 길길이 날 뛰었던 홍익태. 하지만 그 화가 계속 가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서서히 현실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게 된 홍익태.
“하아. C발....좆 됐네.”
백준열과 통화가 됐을 때 어떡하든 그를 잘 설득했어야 했다. 욕부터 끌어 부을 게 아니라 말이다.
뒤 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홍익태. 하지만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 사이 그를 태운 차가 문성일보 사옥에 도착했다.
바로 대표실로 올라간 홍익태. 그가 막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낼지를 두고 임원 회의를 막 열기로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대, 대표님. 임시주주총회가 모레 열린다고....”
“뭐?”
그 말을 듣는 순간 홍익태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미 임시주주총회는 열리기로 되어 있었고, 그가 가진 주식은 24%, 원래는 29%였는데 아는 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5%의 주식을 팔아 그 돈으로 딴 곳에 투자를 좀 했다.
“C발....하필이면....”
분명 200%의 투자 수익을 자신했던 지인. 그런데 며칠 전부터 연락이 안 된다.
알아보니 벌써 해외로 튀고 없었다. 자신의 재산을 싹 정리하고, 가족들까지 데리고 날라 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가 투자한 곳은....저번 주에 증권거래소에서 전격적으로 상장 폐지시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