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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TVM과 문성일보, 서진제약,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명호텔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윤 회장이 바로 대답했다.
“좋아. 넘기지. 만약....자네가 삼명전자 지분을 원했다면, 나는 자네 제안을 거절 했을 걸세.”
그러니까 윤 회장에게 있어서 자신의 소중한 애견도, 삼명전자 주식에 비할 바는 아니란 소리였다.
‘과연 윤재구 회장답네.’
저런 면이 있으니 사채꾼에서, 일약 주식 투자의 대부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거겠지.
“혹시 삼명전자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계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뭐 자네가 알아보려고 들면 알아 낼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숨길 필요 없겠지. 내가 보유한 삼명전자 주식은 대략 3%정도 될 걸세.”
“와우! 대단하시네요. 개인이, 오너가의 일원도 아니면서, 삼명전자 주식을 3%나 보유하시다니 말입니다.”
“사실상 삼명전자 주식이 내 목숨 줄이나 마찬가지라서. 정말 악착같이 샀네. 하지만 그 이상을 살 수는 없었지. 그랬다가는....”
“제 부친이 회장님을 가만 두지 않으셨겠지요.”
“잘 아는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니까요.”
“그 말이 사실이었어.”
“네?”
“백 회장이 자기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점찍었다는 소리 말이야.”
“에이. 아닙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속으로 좀 놀랐다. 제주도에 처 박혀 있는 양반이 그건 또 어떻게 알았데?
‘역시....’
윤 회장은 제주도에 있으면서도 서울 쪽 동향을 계속 살피고 있었던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삼명그룹 내에도 아직 퍼지지 않은, 내 얘기를 이렇게 빨리 알 수는 없었다.
“한데 자네가 말한 게 정말 가능하긴 한 건가?”
“그럼요.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바로 윤 회장의 애견인 윤정식에게 다가갔다.
‘이제 15분밖에 안 남았다.’
견신 시스템이 말한 대로라면 윤정식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윤 회장과 약속한 대로 둘이 서로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내가 윤정식의 상태를 살핀 뒤 윤 회장을 부르자, 그가 기대 섞인 얼굴로 내게로 다가왔다. 그때 나는 내 눈앞에 뜬 상태창의 인벤토리에서 역 스킬 1회 이용권을 꺼내서, 그걸로 「말하는 개」스킬을 윤 회장의 애견 정식에게 사용했다. 그러자 내 눈앞의 상태창의 인벤토리에서 역 스킬 1회 이용권이 싹 사라졌다.
[이름: 백준열(Lv8)]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2Up), 「개좆」(2Up)], 「개목걸이」(2Up), 「개코」(2Up), 「개방울」(2Up), 「개 알약」(일,2Up-1일 10회, 외상과 일부 내상(체내 초기 종양, 기질질환, 1일 1회) 한정), 「개불알」(1UP)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2Up), 「충견」(일,2Up), 「개 끗발」(역,2Up), 「개호구」(역,2Up), 「만능 오프너」(일,2Up-방문, 차문, 금고문 한정), 「개멋져」(일,2Up), 「개 짖는 소리」(일,1Up)
[인벤토리: 개톤백(In), 역 아이템 1회 이용권, 「1회용 개 물약-종양치료제」
[특성: 개(4차UP진행 중)]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친화력이 뛰어납니다.*
[개지수: 60]
나는 인벤토리 항목에서 역 스킬 1회 이용권이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눈앞의 상태창을 지우고 윤 회장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회장님 애견이 운명할 때까지, 둘 사이에 대화가 가능해 집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 숨 넘어 갈 듯 헐떡거리고 있던 윤정식의 말이 먼저 들려왔다.
“아따. 죽겠네. 나 좀 안 아프게 진통제 좀 놔 주라.”
“허억!”
윤정식의 말을 알아들은 윤재구 회장. 그가 기겁하며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런 그에게 진정하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어서 더 얘기를 나누세요.”
내 말뜻을 알아들은 윤 회장이, 곧장 윤정식에게 다가가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 정식아. 아빠다. 내 말 들리니?”
“당연히 들리지. 아빠는 다 좋은 데 목청이 너무 커. 그래서 내가 난청이 빨리 온 거라고.”
“이, 이럴 수가....정말로 정식이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그럼 둘이서 오붓하게 얘기 나누세요. 저는 이만....”
나는 윤 회장과 윤정식이 둘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그 방을 나왔다.
“앞으로 12분....”
윤 회장과 그의 애견 윤정식에게 주어진 이승에서 마지막 남은 시간이었다.
* * *
10분은 금방 간다. 화장실 가서 엘베를 내려놓고, 손 좀 씻고 김훈 대표가 내게 소개해 준 그 철수란 자와 간단히 통화하고 나서, 다시 엘베를 안아들고 그 방으로 가니....
“정식아! 정식아!”
12분이 지나고 윤 회장의 애견 정식은 머나먼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는 노크 후 그 방으로 들어갔다.
“크흑흑흑흑....”
윤 회장이 죽은 애견 정식을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둘 사이 무슨 얘기가 오고갔는지는 모르지만, 애견 정식이 윤 회장에게 마지막에 꽤나 감동을 준 모양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계속 울지.
“훌쩍....훌쩍....내가 못난 꼴을 보였군.”
하지만 윤 회장의 눈물도 내가 그 방에 들어가고 10분쯤 뒤에 그쳤다.
“어떻게 애견은 잘 보냈습니까?”
“덕분에....고마웠네.”
“뭘요. 그냥 해드린 것도 아니고.”
“그래도. 세상에 돈으로 되지 않은 일도 많잖은가? 자네가 오늘 여기 오지 않았다면, 나는 정식이가 어떤 생각으로, 나와 살다가 갔는지 영영 몰랐겠지. 약속한대로 내가 보유한 TVM과 문성일보, 서진제약, 삼명호텔 주식을 전부 자네에게 넘기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근데 의외야. 다른 주식들이야 자네도 투자사를 운영하니 그렇다 쳐도, 삼명호텔이라니....혹시....아니야. 뭐 내가 남의 집안 일에 굳이 신경 쓸 필요 없겠지.”
윤 회장은 확실히 내게 묻고 싶은 게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걸 대 놓고 묻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삼명그룹 후계자 문제에, 자신이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걸 테지.
아끼던 애견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윤 회장은, 이제 산 사람이 해야 할 후속 조치를 취하느라 바쁠 테니, 여기 더 있을 수는 없었다.
“아끼시는 애견의 죽음에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고맙네.”
나는 마지막으로 윤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엘베에게 죽은 윤 회장의 애견 정식을 보여 준 뒤,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곤 우리 애월 별장과는 완전 다른 모습의 윤 회장 저택을 나와 애월 별장으로 향했다. 그때 내 품에 안겨 있던 엘베가 말했다.
“너도 내가 죽으면 저렇게 슬퍼 해 줄 거지?”
“당연하지. 넌 특별히 3일장을 치러주도록 할게.”
“3일장이라....개 팔자 치고 나쁘지 않네.”
엘베는 제주도에서 잘 살고 있으니 자기 걱정 말라고 했다. 대신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되면 그때 연락할 테니, 그때는 바로 와 줘야 한다고 해 내 가슴을 좀 아프게 만들었다.
엘베와 같이 점심을 먹은 나는 굳이 엘베를 유혜라에게 소개 시키지 않았다. 유혜라는 몰랐는데, 엘베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나마 너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여자였는데....다시 만나는 거냐?”
“어. 그렇게 됐어.”
“잘해 봐라. 저 암컷과 사이에서는 아이를 낳아도 좋겠다.”
“뭐?”
“왜? 너도 널 닮은 2세를 봐야지.”
“뭐 굳이....”
“더 살아보면 알게 될 거다. 이제 됐으니 그만 가 봐라. 너 바쁘잖아?”
“그래. 갈게.”
나는 2시쯤 엘베와 작별을 하고 애월 별장을 나섰다.
* * *
유혜라도 그렇고 나도 내일은 바쁠 예정이었다. 그래서 애월 별장에서 점심을 먹을 때, 가급적 일찍 서울 가서 쉬자는 쪽으로 얘기가 됐다.
원래 오늘 내 스케줄은 엘베를 만난 뒤, 오후에는 제주경찰청 최철호 과장을 만날 예정이었다. 제주도내의 중국 세력들에 대한 견제 책에 대해 좀 더 얘기를 나누려고 말이다.
더불어 제주도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좀 있었고.
하지만 최 과장이 하도 일을 잘해주고 있어서, 내가 굳이 그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 부동산 투기 문제는 내가 서울에 가서 전화로 얼마든지 그와 상의를 해도 됐고.
또 차은석 부문장 문제로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제주경찰청의 형사과장 정재욱 문제도 해결 되었다 보니, 내가 제주도에 더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물론 제주 풍광과 낚시를 즐겨도 될 테지만, 그건 어제 오늘 충분히 했고 딱히 더 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우리는 성산 호텔에 들렀다가, 짐 빼서 바로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휴우. 안 걸렸다.”
공항 가는 길에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자, 내 옆의 유혜라가 물었다.
“뭐가 안 걸려요?”
“거기 호텔 사장한테 말이야.”
“호텔? 아아. 성산 호텔 말이군요. 거기 사장이 왜요?”
“왜 자기 주제는 모르고 욕심만 많은 사람 있잖아? 거기 사장이 딱 그런 류거든.”
당연히 성산호텔에 묵기 전에, 나는 거기 사장인 임규식에 대해서 알아봤다. 그랬더니 서울에 가 있다고 했고 그래서 거기 호텔에 묵기로 한 것이다. 한데 내가 제주도에 왔다니 그 소식을 듣고 그 인간이 제주도로 온다고 했다 지 뭔가? 그 얘기를 오늘 아침에 나는 성산호텔의 지배인에게 들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임규식 사장이 오후 2시 비행기로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로 온다는 걸 알아냈다.
해서 나는 3시 30분에 김포공항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그러니까 임규식이 성산호텔에 도착하면, 우리는 제주공항에 도착해 있을 테고, 그가 제주공항으로 달려 올 때 우리는 비행기를 탔거나 이륙했을 거란 얘기다.
뭐 보나마나 임규식이 지랄을 할 테지만 어쩌겠나? 그와 자꾸 엇갈리는 걸 말이다.
“요트는 어쩌기로 했다고요?”
그때 차 안에서 유혜라가 내게 물었다.
“요트는....”
유혜라와 같이 선상 낚시를 즐겼던, 그 낚시광 경호팀원 둘이 요트를 타고 남해로 가서, 거기 요트를 정박시키기로 했다고 하자 유혜라가 말했다.
“그냥 요트만 옮겨 놓으라고 하진 않았을 테고, 혹시....”
“맞아. 월요일 오전까지 월차를 내고 밤샘 낚시 후, 올라와서 오후부터 근무를 하기로 했다더라고.”
“와아. 대단하네요.”
“괜히 자기들을 낚시광이라고 했겠어? 근데 정말 안 아쉬워? 제주도 오기 쉽지 않잖아?”
“그렇긴 한데....볼 거 충분히 보고, 하고 싶은 거 해 봤으니까 괜찮아요. 여기서 충전했으니 이제 서울 가서 열심히 돈 벌어야죠.”
유혜라는 최근 영화와 드라마 출연을 두고 고민을 좀 한 모양이었다. 한데 제주도에 와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영화를 찍기로 말이다.
“그 영화 제목이 뭐라고 했지?”
“‘애니’요.”
‘애니’라면 나도 알았다. 재작년에 ‘과감한 스캔들’로 820만 관객을 동원한 정명철 감독이 내년에 개봉하게 되는 영화인데, 역시 히트를 쳐서 75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다. 그러니까 유혜라가 작품을 잘 고른 셈.
‘가만....근데 그 작품에 유혜라가 나왔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아는 ‘애니’라는 영화에 유혜라는 없었다.
‘아아. 맞다. 유혜라는 이때 드라마를 찍었지. 제목이....내 스타와 100일이었나?’
그 드라마는 한일합작드라마였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가 일본에 진출하면서 찍게 되는 드라마에서, 그녀의 경호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진부한 스토리랄까?
진짜 배우 유혜라의 일본 진출 작이었는데, 시청률이 좋지는 않았고 결과적으로 유혜라의 일본 진출도 그길로 좌절 됐었다.
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유혜라가 ‘내 스타와 100일’이라는 한일합작드라마가 아닌, 영화 ‘애니’를 선택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잠깐 생각해 봤더니....
‘나 때문인가?’
이 당시 백준열은 일본 드라마와 합작 드라마를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실제 한일합작드라마에 투자까지 했었고. 그가 그런 이유는....
‘하시모토 나나미....’
올해 데뷔한 일본 여배우로 청순한 역할은 물론 불량소녀, 갸루걸로 일본아카데미상에서 수상까지하는 실력파 여배우로 성장하는 그녀에게 백준열이 제대로 꽂힌 것.
실제로 한일합작드라마인 ‘내 스타와 100일’에서 나나미는 일본 여배우로 나와서 유혜라보다 더 관심을 끌었고, 탑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한마디로 드라마 만들어서 남 좋은 일만 시킨 셈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백준열이 그렇게 노력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나미와는 별 썸씽도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소문에는 나나미가 백준열을 거절했다고 했는데, 그 진실이야 본인들이나 알겠지.
물론 지금은 내가 일본 드라마도, 일본 여배우도 관심이 없다보니, 한일합작드라마와 나나미라는 일본 여배우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김 비서가 국내에 있다면 바로 물어 봤을 텐데.
‘가만....지금쯤이면 몰도바 호텔 아니면 공항에 있겠네. 전화 해 봐?’
나는 잠깐 고심하다가 결국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걸 보고 옆에 유혜나가 물었다.
“어디 전화하시는 건데요?”
“어. 김 비서한데.”
“김 비서면 해외 출장 보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 지금 국제 전화 거는 거야.”
잠시 후 김 비서가 내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공항이야?”
-아뇨. 아직 호텔이에요. 좀 있다가 공항가려고요.
“뭐 좀 물어보려고 전화 했어.”
-말씀하세요.
“혹시 한일합작드라마에 대해 알아?”
-네. 대표님이 일본 드라마에 관심이 많으셔서, 일본 방송국과 수차례 접촉을 하셨고, 그 중에 TSB와 손을 잡고 한일합작드라마를 추진하려 하셨는데....
“그랬는데?”
-생각 안 나세요? 사카모토 마시로 국장과의 악연 말이에요.
김 비서의 그 말을 듣고 나자 바로 백준열의 기억 속에 일본 TSB 방송사와 그 사이의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