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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김동만은 10억이란 돈에 눈이 멀어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이 별장의 주인이 누군지 깜빡했었다.
‘미친....’
그는 상대의 말을 듣고 방금 자신이 뭔 뻘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설사 상대가 자신의 개를 10억을 주고 샀다고 해도, 과연 그 10억을 받고 자신이 무사했을까?
그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삼명家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고, 그걸 안 백승렬 회장이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동안 제주 별장을 잘 관리해 줬으니, 과연 그 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하라는 관리는 안하고, 거기서 개나 키워 팔아 떼돈 벌어서, 이젠 관리인 짓도 때려 칠거라 생각할까?
‘당연히 후자지.’
당장 10억이 생기는 데 이 나이 먹고 여기서 뭐 하러 더 일하겠나? 그 돈으로 여생 편하게 먹고 즐기다가 가는 거지.
근데 그가 모셔 봐서 알았다. 삼명家의 사람들은 남 잘 되는 꼴을 못 봤다. 그러니 백승렬 회장은 김동만이 이곳 별장 관리인 자리를 관두고, 여생을 편하게 지내게 그냥 둘리 없었다.
‘안 죽이면 다행이지.’
사람 관계에서 가장 확실한 대처는, 바로 그 엮인 사람을 죽여 버리는 거다. 죽은 자는 말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뭐야?“
윤재구는 이곳 관리인이 별장 주인 얘기를 꺼내자 ,얼굴빛이 사색이 되는 걸 보고 느꼈다.
여기 별장의 주인이 예사로운 인물은 아닐 거란 걸 말이다.
‘아무래도 따로 알아보는 게 낫겠군.’
옆집 별장 주인이 누군지 알아보는 건 윤재구에게 일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린 게 흥신소이듯, 이곳 제주도에도 그런 흥신소가 꽤 있었으니까.
“뭐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오.”
어차피 눈앞에 꽉 닫힌 대문이 열리지 않는 한, 자신의 애견 윤정식이 교배한 암캐를 구입하긴 틀려먹었다는 걸 깨달은 윤재구. 그가 그 말 후 자기 양옆의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가자.”
윤재구는 뒷짐을 진 채 왔던 길을 되돌아서 자기 소유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택에 들어서자, 정원에 대기 중이던 경호팀장에게 물었다.
“제주도에서 제일 능력 있는 흥신소가 어디야?”
“흥신소요?”
“그래. 흥신소. 거기 연락해서 나 바꿔.”
그 말 후 곧장 저택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윤재구. 그런 그를 보고 경호팀장이 혼잣말로 말했다.
“흥신소라....”
경호팀장은 제주도의 흥신소 업체를 알아보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전무님. 회장님께서 갑자기 흥신소를 알아보라고....”
그렇게 열심히 그 누군가에게 윤재구 회장에 대해 떠들고 난 경호팀장. 그는 제주도 흥신소 중에서 대충 눈에 띠는 업체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네. 거기 흥신소죠? 네. 의뢰할 게 있어서 그런데....잠시 만요.”
경호팀장은 그 핸드폰을 들고 식탁에서 가볍게 도토리묵에 탁주 한 사발 마시고 있던 윤재구 회장에게 다가갔다.
“회장님. 여기....”
그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윤재구에게 건넸다. 윤재구는 그 핸드폰을 받아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흥신소 맞소? 내 의뢰 좀 할까 하고. 무슨 의뢰고 하니....”
윤재구는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저택의 주소를, 그쪽에 불러 주며 그들이 뭘 해줘야 하는 지 얘기했다.
“그 집 옆집 주인이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서 연락 주시오. 한 시간 안에 하면 비용을 따블로 주도록 하지.”
그렇게 제주도의 흥신소와 통화를 끝낸 윤재구. 그가 비어 있는 막걸리 잔을 들어 보이며 경호팀장에게 물었다.
“한잔 할 텐가?”
“아뇨. 저는 됐습니다.”
경호팀장의 거절에 윤재구가 더는 그에게 술을 권하지 않고, 그 잔에 탁주를 따라 마신 후 몸을 일으켜, 주방을 나서며 말했다.
“정식이 녀석도 막걸리라면 환장하고 좋아했는데....”
그 말 후 윤재구는 그의 애견 윤정식이 누워 있는 방으로 향했다.
* * *
유혜라와 아침에 모닝 빠구리를 하고 나서, 씻고 늦은 아침을 먹은 뒤 우리 일행은 애월 별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차로 이동 중 내 옆 자리는 유혜라가 앉았고. 어제와 달리 여기가 제주도라서 그런지 몰라도 유혜라는 화색이 밝았고 말도 재잘재잘 많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가급적이며 들어 주고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러는 사이 애월 별장에 도착한 우리는 차에서 바로 내렸다.
“어머나! 무슨 별장이 이렇게나 커요?”
유혜라는 애월 별장의 크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지.”
그런 그녀를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갔다. 도착 5분 전에 여기 별장 관리인에게 전화를 해뒀더니, 알아서 대문을 활짝 열어 놨다.
“와아. 이게 마당이라고요? 무슨 운동장 만해요.”
유혜라는 이곳 별장의 널따란 정원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정원 구경 더 하고 들어올래?”
“그래도 돼요?”
“되지 그럼.”
해서 나는 유혜라는 별장 정원에 두고 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현관 안에서 별장 어르신이 나를 보고 먼저 인사를 했다.
“어쩌다가 그러셨어요?”
5분 전 내가 전화했을 때 ,별장 어르신이 그랬다. 일하다가 다리를 접질렸다고 말이다.
“집 청소를 하다가....”
보나마나 내가 온다고 무리하게 저택 청소를 한 거 같았다.
“엘베는요?”
“자기 방에 있습니다.”
나는 엘베를 여기 맡길 때, 녀석의 독립 된 생활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별장에 방 하나를 녀석에게 내어 주게 했었다.
별장 어르신은 내 그 말을 잘 따라 준 것이고.
“어딥니까?”
“저쪽....”
별장 어르신이 절뚝거리며, 나를 기어코 직접 엘베가 쓰고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아니. 위치만 알려주면 된다니까.”
“어떻게 그럽니까? 이 방입니다.”
“알았어요. 이제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어르신은 쉬세요.”
“그럼 죄송하지만 쉬겠습니다.”
“죄송할 거 없어요. 그냥 저 없다고 생각하시고 푹 쉬세요.”
그렇게 별장 어르신을 먼저 보내,고 나는 엘베가 쓰고 있는 방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 안 한가운데 푹신한 이불 위에 엘베가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누가 봐도 팔자 좋은 개의 모습이었다.
* * *
나는 이곳 별장 건물에 들어 설 때, 이미 견신 시스템의 스킬 중 「말하는 개」를 사용했다. 따라서 엘베의 말을 나는 바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엘베. 나 왔어.”
“일찍 왔네? 근데 빈손이야?”
“요즘에 누가 뭘 사들고 다녀? 필요한 거 있으면 같이 나가서 사면되지.”
“나간다고?”
나의 나간다는 말에 엎드려 있던 엘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빨리 나가자.”
그리곤 내게로 쪼르르 달려와서, 나를 올려다보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나가기 전에 어르신 왜 다친 거야?”
내 그 물음에 엘베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더니 말했다.
“김씨 넋 놓고 있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어.”
“사다리?”
“어. 저기 사진에 먼지 털다가.”
별장 거실에는 내 조부와 증조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근데 거실 층고가 워낙 높다보니, 사진이 걸려 있는 데를 청소하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하지만 먼지만 털면 되니까 조심만하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엘베 말에 따르면 여기 별장이 지어지고, 어른신이 여기서 그 일을 하면서 다친 적은 한 번 없었다니까.
“그런데 왜 넋이 나가?”
“그게....”
엘베의 설명이 쭉 이어지고 나는 황당한 눈으로 엘베를 쳐다봤다.
“옆집 주인이 너를 얼마에 사겠다고 했다고?”
“짜잔~ 무려 20억! 그 인간, 개 보는 눈은 있어서....”
아니. 세상에 20억 하는 개가 어디 있나? 뭔가 사연이 있다면 또 모르지만. 그렇다면 옆집 주인이 엘베를 원할 때는 무슨 사연이 있다는 얘기.
‘뭐지?’
내가 그걸 궁금해 할 때였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그때 다리 다친 어르신 생각이 난 나는, 엘베 방을 나와서 인터폰 비디오 화면을 통해서 누가 초인종을 눌렀는지 확인했다.
“응?”
그때 웬 눈에 익은 노인의 얼굴이 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노인이 누군지 백준열의 기억이 내게 알려주었다.
“윤재구 회장?”
2000년대까지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다가, 이후 투자사를 차려서 운영했고, 지금은 주식 투자의 대부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 그가 차린 투자사가 바로 JG자산투자운영으로, 지금도 투자사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기는 했다.
물론 그가 아파서 제주도로 가 버리면서 옛날 그 명성처럼 대단한 투자사로 인정 받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러니까 나와 윤재구 회장은 아는 사이란 얘기네?”
한 일 년, 백준열은 윤재구 회장과 손을 잡고 주식 투자를 했었다. 그때 백준열은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과 주식 투자로 승승장구 하고 있었을 때였고.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윤재구 회장과 백준열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피 튀기는 주식 투자 싸움의 결과 양쪽은 서로 손해를 입고 결국 휴전을 맺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윤재구 회장이 당시 쓰러졌다는 걸, 백준열은 뒤늦게 알게 됐다. 그러니까 쓰러졌음에도 윤재구 회장은 백준열로 하여금 휴전 제안을 받아드리게 만들면서, 자기의 손실을 최소화 한 것이다.
왜 삼국지에 보면 죽은 제갈량이 살아 있는 사마의를 놀라게 해 달아나게 만든 얘기가 나오지 않는가?
그처럼 백준열도 쓰러진 아픈 윤재구 회장에게 당한 것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승자는 윤재구 회장이었던 것.
그 뒤 백준열은 가급적 윤재구 회장과 연관된 투자는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 만큼 윤재구 회장은 백준열에게도 경외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 늙은 사채업자 하나 못 이기다니....’
내가 볼 때 윤재구 회장은 완전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었다. 당시 백준열의 주식 투자를 너무 안정적으로 하려 했다. 하긴 실패할 경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겠지. 그 때문에 너무 조심하다가 윤재구 회장의 노림수에 번번이 속으면서 실패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실패할 주식 투자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반드시 성공할 주식 투자만 하고 있는 내게, 그 어떤 변수도 먹혀들지 않으니 윤재구 회장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소용없었다.
만약 윤재구 회장과 내가 다시 붙는다면 그때는....
‘윤재구 회장을 탈탈 털어 버리고, 그를 알거지로 만들어 벌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딩동! 딩동!
그때 윤재구 회장이 누르는 초인종 소리에, 상념에 빠져 있던 내가 정신을 차렸다.
* * *
내가 쉬라고 했는데도 어르신이 절뚝이며 또 나왔다. 그리고 인터폰 비디오 화면에 비친 윤재구 회장을 보고는 툴툴거림 말했다.
“내가 안 판다고 했는데 또 오다니....”
“뭐가요?”
나는 이미 엘베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어르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어르신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얘기는 쏘옥 빼고 윤재구 회장이 10억에 엘베를 사겠다고 한 말을 전했다.
“제가 나가서 따끔하게 얘기를....”
“아니. 됐어요. 제가 나갈게요.”
“도련님이 굳이 나가시지 않으셔도....”
“엘베 주인은 저니까 제가 나가서 얘기하는 게 맞죠.”
그렇게 나는 안 그래도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을 저택 안에 남겨 놓고, 직접 대문 쪽으로 향했다.
철커덩! 끼이이익!
그리고 철제 대문을 열자, 윤재구 회장이 굳은 얼굴로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나를 못 알아봤다. 하지만 이내 나를 알아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윤재구 회장님.”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아아. 이런 내가 깜빡했구나. 네가 삼명그룹 막내란 걸 말이다.”
“여기 별장 관리인에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제 애견을 사고 싶으시다 고요?”
내 그 말에 윤재구 회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그, 그 암캐가 네 개였나?”
윤재구 회장이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일단 나와의 대화가 끊기지 않게, 되물으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었다.
“윤 회장님도 애견이 있으신 걸로 아는데....회장님 같으시면 그 애견을 과연 돈 받고 파실 겁니까? 또 남이 그 애견을 암캐 어쩌고저쩌고하면 기분이 좋을까요?”
내 그 말에 윤재구 회장이 ‘아차’한 얼굴로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이내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네. 내가 말실수를 한 거 같군.”
자신의 말실수를 이렇게 바로 사과 할 줄 아는 윤재구 회장을 내다 다시 볼 때였다. 그가 바로 이어서 말을 했다.
“자네 말처럼 애견을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그래선 안 됐어. 그래서 말인데....같은 애견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내 부탁 좀 들어 줄 수 없겠나?”
숙였던 머리를 다시 들어 올린 윤재구 회장이, 너무도 애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