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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걸그룹 이름까지 다 정해 놓은 상태라, 여기서 또 소속사에서 태클을 걸고 들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에휴....”
걸그룹 레드문의 매니저 김상민 팀장은, 자기 상관인 매니지먼트 파트 실장과 통화 후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런 그에게 운전 중인 로드 매니저가 뚱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팀장님. 그러면 우리 애들 이대로 데뷔 못하는 겁니까?”
안 그래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심부름과 운전만 잘해 주면 되는, 이제 막 매니저 일을 시작한 신입 로드 매니저가, 굳이 몰라도 될 걸 알고 싶어 하는 게, 김상민 입장에서는 신경이 많이 거슬렸다.
“하아. 태석규씨. 그것까지 그쪽이 알 필요 없으니까,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어요.”
“아니 어떻게 모른 척하고 있습니까!”
버럭 소리치는 태석규. 그 때문에 김상민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고! C발, 놀래라. 태석규씨. 당신 미쳤어?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김상민이 운전석의 태석규를 쏘아보자,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태석규가 사과부터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우리 애들의 데뷔가 이대로 무산 될까 걱정이 돼서....”
“데뷔가 무산 되다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제발 말조심 좀 하세요. 특히 애들 있을 때는 더더욱.”
강상규는 인력 지원을 받은 건 좋았지만, 자기보다 한 살 많은 태석규가 온 게 애당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도 화를 낼 때 편하게 말을 좀 놓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말을 높이고 있으니 둘의 관계가 더 어색하게 느껴지고 말이다.
“그렇지만 말씀하신대로면, 우리 애들 데뷔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닙니까?”
“하아. 그래서요?”
“네?”
“태석규씨 무슨 빽이라도 있어요? 우리 애들 데뷔 늦춰지지 않고, 지금 그대로 데뷔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빽 말입니다.”
“아니 그건....”
막상 큰 소리 떵떵 쳐 놓고, 대책은 전무하면서 또 무능한데 한심하기까지 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 김상민의 눈에는 태석규가 바로 그런 존재로 보였다.
“그런 빽 없으면 제발 가만히 있어요. 실장님과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니까.”
김상민은 여기서 더, 별거도 아닌 태석규와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탠데, 여기서 태석규로 인해 더 열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빽 있습니다.”
“네?”
“제가 백준열 대표 빽으로 여기 취직했거든요.”
“....”
JYB엔터에서 최고의 빽이 누구겠나? 바로 대표인 백준열이다. 근데 태석규가 그런 백준열의 친구라고?
“진, 진짭니까? 태석규님?”
너무 놀란 김상민은, 자신이 태석규씨를 태석규님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제가 왜 팀장님께 거짓말을 합니까? 준열이 제 친구 맞고요. 빽은 확실하니까 지금부터 제가 뭘 어쩌면 되는지 얘기 해 주십시오.”
태석규가 잔뜩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 * *
태석규는 일을 저질러 놓고 후회하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재벌 3세로 살 때부터 말이다.
그 습관을 태석규는 여태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내가 미쳤지. 거기서 왜 그런 소릴....”
태석규는 김상규 팀장한테, 자신이 백준열 대표의 친구라고 떠벌린 걸 후회했다.
그 상황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태석규는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거기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 바로 김 팀장한데 자기가 레드문 아이들을 위해서, 뭐든 다 해 줄 거처럼 큰소리 떵떵 쳐 놓은 게, 진짜 문제라면 문제였다.
김 팀장은 신중하게 위에, 그러니까 매니지먼트 파트 실장과 상의 해 보고 나서, 내일 말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들이 내일 태석규에게 뭘 부탁할지, 그는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친구는 개뿔....”
태석규 자신이나 친구로 여기고 있지, 정작 백준열은 그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미친놈....”
그걸 알면서 태석규는 버젓이 김상규 팀장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걸 어쩌지?”
쓸데없이 시간을 끌어 일을 그르치는 것도 문제지만, 태석규처럼 호가호위하려는 것도 문제였다. 근데 그 호가호위 즉,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큰소리친다는 말처럼, 정작 태석규는 큰소리를 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진실은 호랑이의 실체가 없었으니까. 한마디로 태석규의 말은 개소리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냥 출근하지 말아버려?”
내일 회사 갔다가 어떤 쪽팔리는 꼴을 당할지 몰랐다. 그 생각에 회사가기가 싫어진 태석규. 그는 집에 가는 길에 소주 다섯 병을 사 들고 갔고, 그 다섯 병을 다 마시고는 그대로 뻗어 버렸다.
“으으으으....물, 물....”
다음 날 그가 잠에서 깼을 때, 이미 시간은 정오를 넘긴 상태였고, 꺼 놓은 핸드폰을 켜자 김 팀장으로부터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그 문자 중 몇 개를 확인한 태석규. 그의 얼굴이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C발....”
재벌 3세였던 태석규. 그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만사가 귀찮아졌고, 그 문제를 회피하기 일쑤였다. 그게 습성이 됐는데. 그 습성이 여기서 또 나왔다.
하지만 재벌 3세였을 때는 그가 친 사고를, 그가 회피해도 그룹 차원에서 어떻게든 해결이 됐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재벌 3세가 아니었다.
“에이. 몰라.”
그걸 망각한 태석규는 만사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다시 꺼버리고 그대로 다시 뻗어 잤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핸드폰에 최후의 문자 메시지가 한 통 날아왔다. 발신처는 JYB엔터였고....태석규의 불성실함에 다음 주부터 회사 나올 필요가 없다는....해고 통보였다.
그러니까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었다. 태석규를 특별 채용할 때, 백준열이 JYB엔터 인사부에 그렇게 지시를 내려놓은 것.
태석규가 사고 치면 바로 자르라고 말이다.
인사부는 그 지시를 따랐고, 태석규는 겨우 잡은 일자리를 날려 먹었다. 다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 *
김훈은 포섭에 성공한 신비 에이전시의 처리자 금명훈을, 일단 비어 있던 창고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곤 분위기 좋은 김훈의 단골 바Bar로 그를 데리고 가서, 같이 술을 마시며 좀 더 터 놓고,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눴다.
“으음....그러니까 신비 에이전시의 뒤를 봐 주고 있는 존재들이 셋이나 있단 소리군?”
“네. 그들을 저희는 장로님으로 부릅니다. 신비 에이전시를, 말씀하신대로 대표님이 합병 하시려면, 먼저 그들에게 인정을 받든지, 아니면....”
“그들을 쳐내든지 해야겠네.”
김훈은 갑자기 골치가 아파왔다. 처리자들 끼리 해결할 문제라면, 어떤 식으로든 그가 나서서 설치면 해결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처리자가 아닌 자들이 에이전시에 끼어 있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특히 그 자들이 권력자나 재벌이라면....
그들은 애초부터 김훈이 어쩔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속이 타들어 간 김훈이 언더락스로 마시던 양주를 벌컥벌컥 다 마시고 나서 금명훈에게 물었다.
“그 세 장로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
그러자 금명훈이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곤 스트레이트 잔을 쭈욱 기울인 후 입을 열었다.
“장로들에 대한 정보는 지도부 처리자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으음. 그래?”
번뜩이는 김훈의 눈빛. 그걸 보고 금명훈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후. 혹시 저처럼 신비 에이전시의 지도부 처리자를 납치 하실 생각이시라면....”
“라면?”
“포기 하시는 게 좋습니다.”
“왜?”
“저야 납치가 되도 12시간까지 에이전시에서 찾지 않지만, 지도부 처리자는 다릅니다. 듣기로 몸에 칩을 심어서 납치 같은 걸 당하면, 그 즉시 에이전시의 집행부에서 눈치 채게 되어 있으니까요.”
“너도 몸에 칩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저 같은 일반 처리자와 지도부 처리자가 같은 칩을 쓰겠습니까? 그들에게는 특수 칩이 심어져 있단 얘기죠. 상당히 고가의, 위치 추적뿐만 아니라 도청까지 가능한....”
실제 금명훈은 김훈이 풀어주자마자, 급하게 신비 에이전시에 연락부터 취했다.
12시간 안에 그들과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쪽에서 그를 찾아 나선다니, 김훈도 금명훈이 신비 에이전시에 연락하는 걸 내버려 뒀었고.
“고가의 특수 칩이란 말이지?”
그때 김훈이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럴 것이 처리자들이 쓸 수 있는 최첨단 장비를 구입하는 데, 요즘 혈안이 되어 있던 김훈이었다.
그런 그가 좀 전 금명훈이 말한, 신비 에이전시의 지도부 처리자의 몸에 심어져 있다는, 그 고가의 특수 칩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장비를, 최근 미국에서 구입한 게 생각이 난 것이다.
“명훈씨. 지도부 처리자 한 명 밖으로 끌어 낼 수 있겠어?”
“네?”
김훈은 자신의 생각을 금명훈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금명훈이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김훈에게 물었다.
“정말 그런 장비가 있단 말입니까?”
“인체의 전자파를 차단하는 장치인데 그걸 쓰게 되면, 그 지도부 처리자의 몸에 심어져 있는 그 칩도 몇 분은 작동이 멈출 거야. 그때 그 칩을 찾아내서 제거하고, 너 처럼 그 지도부 처리자를 납치하면 되겠지.”
“하지만 그러려면....먼저 제 몸에 심었던 그 칩부터 찾아와야 하지 않을까요?”
금명훈의 그 말에 김훈의 단골 바Bar의 문이 열리면서, 금명훈을 납치한 두 명의 처리자들이 그곳에 나타났다.
* * *
김훈은 금명훈을 포섭하는 데 성공하자 같이 있던 두 처리자들. 그러니까 김훈이 금명훈을 납치 해 오게 시켰던, 두 처리자들을 속초시로 급히 보냈다.
그들을 거기로 보낸 이유는, 바로 금명훈의 몸에 심어져 있었던, 그 칩이 도로 필요해졌기 때문에.
금명훈은 신비 에이전시에 연락을 하기 전에, 두 처리자들에게 자기 몸에 심어져 있었던 칩을 어떻게 했는지부터 물었다.
그러자 두 처리자 중 한 명이 그 칩을 속초시로 가져가서, 그곳 시외버스터미널 사물함에 넣어 두었다고 대답했다.
금명훈이 납치 되어 서울로 옮겨지는 걸, 신비 에이전시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난 금명훈은 신비 에이전시로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위치가 지금 속초라고 밝혔다. 속초에 있는 이유도 두루뭉술하게 이야기 했고.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금명훈이 김훈 대표에게 말했다.
“저를 계속 신비 에이전시 소속으로 두고 활용할지, 아니면 지금부터 대표님 밑에서 일할지 지금 정해 주시죠?”
금명훈의 그 말에 김훈은 잠깐 고심하다가, 두 처리자들을 속초시로 보냈다.
김훈은 금명훈을 신비 에이전시 소속 처리자로 좀 더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혹시 그를 활용해서 신비 에이전시에서 뭔가를 빼내거나, 다른 처리자를 유인해 낼 수 있는 문제니까.
그러려면 금명훈에게서 빼낸 그 칩을, 도로 그의 몸에 심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금명훈은 신비 에이전시 소속 처리자로 되돌아 갈 수조차 없었으니까.
금명훈에게 그 칩은 자신의 신분증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비 에이전시에서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를 증명할.
“왔네.”
자신의 단골 바Bar에 등장한 두 처리자들을 보고 김훈이 말하자, 그 옆에 앉아 있던 금명훈이 스트레이트로 양주잔을 쭈욱 비운 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러면 지시하신대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그에게 김훈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술잔을 기울인 뒤,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곤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신형 핸드폰을 하나 꺼내더니, 그걸 금명훈에게 건넸다.
금명훈은 그 핸드폰을 잘 받아 챙긴 다음, 김훈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세웠다.
“자아. 갑시다.”
그리곤 막 바Bar 안으로 들어 온 두 처리자들에게로 다가가서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뒤 금명훈은 아까 자신의 옆구리에서 빼낸 칩을, 도로 그 자리에 넣고 봉합하는 귀찮은 시술을 거친 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금명훈이 지금 살고 있는 성수동의 원룸은 신비 에이전시에게 구해 준 곳이었다.
즉 그곳은 은밀하게 감시 체제가 갖춰져 있었다. 그러니까 집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금명훈은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뭐 그렇다고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서도 저들의 의심을 살 수 있었기에, 금명훈은 피곤한 듯 씻고 바로 자는 척 연기를 했다.
집안에 전부 불을 끄고 나면 말만 하지 않으면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금명훈은 불 꺼진 집 안에서 홀로 침대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아는 지도부 처리자는 전부 3명이었고, 그 중에 당장 접촉이 가능한 지도부 처리자는 한 명 뿐이었다.
‘은병세 팀장을 밖으로 끌어내려면....’
워낙 돈 욕심이 많은 은병세 팀장이었다. 그것 말고는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게 금명훈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으음....”
해서 고민 끝에 금명훈은 아까 김훈 대표에게 받은 핸드폰을 꺼냈다.
거기에 저장 되어 있는 김 대표라는 번호로, 금명훈은 열심히 문자를 찍어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초조하게 김훈 대표로부터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10분, 20분, 30분이 넘어가면서 점점 금명훈의 얼굴이 굳어 갈 때였다.
지이이잉!
드디어 기다리던 김훈 대표에게서 답장이 왔다.
[내일 아침까지 확실한 상한가 주가 정보를 보내주도록 하지.]
“휴우우....”
그 답장을 보고 나서 금명훈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로서 내일 아침에 신비 에이전시 아지트로 가면, 자신의 상관인 은병세 팀장을 은밀하게 밖으로 유인해 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