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95화 (39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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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네, 뭐....”

마치 배도철 차장이 자신을 챙겨주는 자상한 상관인 것처럼, 자신을 미화해서 얘기하긴 했지만. 어째든 사이버 수사대를 맡으라고 한 건 사실이라, 정재욱은 일단 유만식 청장에게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유만식 청장이 갑자기 탄식을 하며 말했다.

“사이버 수사대는 그저 허울 좋은 이름일 뿐이고, 사실은 스마트 치안대를 맡는 건데, 정 과장이 생각보다 생각이 짧군. 내 서울에 알아보니 그걸 제주도에서 제일 먼저 도입하면, 청장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던데 말이야. 배 차장 말대로 자네가 그 스마트 치안대를 맡기만 해도, 그 공이 오롯이 자네 몫이 되었을 테고, 올해는 힘들어도 내년에는 무조건 서울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을 테고 말이야.”

유만식 청장의 그 말에 정재욱은 자신이, 배도철 차장이 차려 놓은 잔칫상을 엎은 거나 진배 없었다.

“그, 그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정재욱. 그런 그를 보는 유만식 청장과 배도철 차장은 둘 다 안타까운 얼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둘 중 배도철 차장은 연기 중이었고, 속으로는 쾌재를 외치고 있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알아서 그만 둘 텐가? 아니면 사법처리에 들어갈까?”

유만식 청장의 입에서 징계라는 말은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그 말은 이 건을 경찰 내부의 일로 가져 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얘기. 그러니까 선택지에 정재욱이 계속 경찰 조직에 몸담는 걸 배제 시켜 버린 것이다.

“하아....”

탄식과 함께 정재욱이 힘없이 말했다.

“그, 그만 두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찰 옷은 절대 벗지 않겠다던 정재욱. 하지만 그도 결국 배도철 차장의 갈굼과 처 놓은 덫에 걸리자, 어쩔 수 없이 그만 두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좋네. 그럼 사표 써서 배 차장에게 제출하게. 퇴사 처리는 내가 인사부에 얘기해 놓을 테니까 신경 쓸 거 없을 거고. 서울 가려거든 가도 되네.”

유만식 청장은 더 이상 정재욱에게 미련 따윈 1도 없는 거처럼 냉정하게 얘기했다. 그리곤 배도철 차장을 보고도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자네가 말한 급한 일이 뭔지는....이따 오후에 듣도록 하지.”

“네? 아아. 알겠습니다.”

능구렁이 유만식 청장이, 아무래도 배도철 차장의 꿍꿍이를 눈치 챈 거 같았다. 하지만 배도철은 거기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정재욱에게 사표 쓰게 만드는데 성공한 이상, 박대순 청장의 비호를 받게 됐으니, 제주경찰청장인 유만식 따윈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뭐 못 건드리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형이 서울경찰청장이 된 마당에, 유만식 청장은 배도철을 홀대 할 수 없었다.

* * *

경찰차장실을 나와서 곧장 자신의 방으로 간 정재욱.

“하아아....”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 쉰 뒤, 책상 서랍 속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컴퓨터에서 사직서 한 장을 프린터 해서 접어놓고, 편지 봉투에 사직서라는 글을 적었다. 그 다음 그 봉투 속에 사직서를 넣고, 자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놔두고 가도 되는 건 남기고 꼭 가져가야 할 것만 챙기니, 짐이라고는 어깨에 메는 슬림 백 하나로 충분히 커버가 됐다.

정재욱은 제주경찰서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직서를 들고 경찰차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배도철 차장이 거기 없었다.

“차장님. 볼 일이 있으셔서 잠깐 나가셨습니다. 아아. 안 그래도 과장님 오시면 뭘 주실 거라고, 저보고 잘 받아 놓으라고 하셨는데....”

새파란 의경이 그 소리를 하는데 정재욱은 정말 기가 찼다.

“허어....”

하지만 어쩌겠나? 이제 끝났는데 말이다. 정재욱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품속에 넣고 있던 사직서를 의경에게 건넸다.

“어? 어어?”

의경은 설마 배도철 차장이 자기보고 받아 두라고 한 게, 형사 과장 사직서인줄 몰랐던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에게 정재욱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거 차장님께 잘 전해 드리고, 내가 그러더라고 이 말을 꼭 전해 드리도록.”

“네. 말씀하십시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반드시 돌아 올 테니까 그때 보자고.”

그 말 후 뒤돌아 선 정재욱은 곧장 자기 방으로 갔고, 챙겨 놓은 슬림 백을 메고 제주경찰청을 나섰다. 그렇게 정재욱이 주차장에서 자기 차를 타고 공항을 막 출발했을 때, 볼일 보고 돌아 온 배도철 차장. 그가 막 경찰차장실로 들어가려는 데....

“충성! 차장님. 여기....”

정재욱이 사직서를 맡긴 의경이 나타나서, 배도철 차장에게 정재욱의 사직서를 건넸다.

“오오. 그래.”

배도철은 반갑게 그 사직서를 받아 챙겼다. 그때 의경이 배도철에게 말했다.

“차장님. 정재욱 과장님께서 전해 드리라고 한 말씀이 있는데....”

“새끼가 끝난 마당에 가지가지 하네. 그래. 뭐라고 떠들고 갔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 시며, 반드시 돌아 올 테니까 그때 보자셨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끝나면 끝나 거지. 돌아올 오긴 개뿔, 너희 아버지 복직하는 게 떠 빠를 거다.”

배도철은 정재욱이 남긴 말을 일축하고, 경찰차장실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 * *

배도철은 자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제주경찰청 인사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데 청장님이 특별히 전화하셔서, 우선적으로 퇴사 처리 중에 있단 말이지? 알았어. 아아. 사표는 내가 받았는데....알았어. 인사부로 지금 보내도록 하지.”

배도철은 자기 방 밖으로 나가서, 좀 전 그에게 정재욱의 사표를 건넸던 그 의경을 불렀다. 그리곤 그에게 정재욱의 사표를 다시 넘기며, 그 사표를 인사부에 갖다 주라고 지시를 했다.

그 뒤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 온 배도철은, 자신의 매형이자 신임 서울경찰청장이기도 한 김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데 바쁜지 김대성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배도철은 자기 업무를 보면서 30분 뒤에, 다시 김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김대성이 드디어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어. 처남.

“매형. 바쁘신가 봐요?”

-아무래도 그렇지. 부임한지 얼마 안 됐으니까.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왜? 무슨 일 있어?

“매형도 참. 제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합니까?”

-어어. 그랬잖아? 여태까지. 그래서 전화 안 오면 처남이 잘 사는구나 하고 살잖아. 우리 부부가.

“허어, 참나.”

김대성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과연 그의 말 대로였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만 배도철은 자신의 누나와 매형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평소 그가 잘 먹고 잘 살 때는, 두 사람에게 거의 전화 한 적이 없었다.

-뭔데? 빨리 얘기해. 나 곧 회의장에 들어가 봐야하거든.

“딴 게 아니라 박대순 청장님이 지시한 거 있잖아요?”

-박 청장님이....아아! 정재욱 과장 말이로군?

“네. 정 과장한테서 오늘 사표 받아냈습니다. 사표 수리 된 상태고요.”

-그래? 잘 했네. 적어도 한 달은 버틸 줄 알았는데. 정 과장 생각보다 과대포장 된 면이 있은 모양이었군. 알았어. 내가 박 청장님한테 잘 말해 줄게.“

아무래도 자기 입이나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박대순 청장이 정재욱이 그만 둔 걸 전해 듣는 거 보다, 서울경찰청장인 김대성에게 듣는 게, 더 플러스 요인이 될 거란 걸 배도철은 잘 알고 있었다.

“부탁 좀 할게요. 매형.”

-어어. 그래. 지금 가. 또 전화하자.

뚜뚜뚜뚜뚜뚜....

자기 말처럼 김대성이 진짜 바쁘긴 한 모양이었다. 매번 매형에게 전화하면 자기보다 먼저 전화 끊는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 정도로 자신에게 유독 신경을 많이 써 주는 매형 김대성이었다.

친형이 없는 배도철에게 김대성은 진짜 형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아. 이제 마음 편하게 일 좀 해 볼까?”

배도철은 그를 일약 서울로 보내 줄 프로젝트, 스마트 치안대 창설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거기 남은 잔재, 즉 정재욱의 흔적을 싹 다 지워 나갔다. 그리고 그가 퇴근할 무렵, 그 보고서를 기안하고 작성한 사람은, 이제 정재욱이 아닌 배도철이 되었다.

* * *

김대성 서울경찰청장은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박대순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김 청장.

바쁘긴 박대순 경찰청장도 마찬가지였지만, 자기 오른 팔인 김대성의 전화는 받아주었다.

“청장님. 전에 말씀하셨던 그 정재욱 과장 말입니다.”

-제주도 정 과장?

“네. 제 처남이 사표 쓰게 만든 모양입니다.”

-그래? 잘 됐네.

“그래서 말인데. 약속 하신대로 제 처남 다음 정기 인사 때, 서울로 불러 주십사하고 전화 드렸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킬 테니 걱정 마. 가만 보면 무슨 처남을 친동생보다 더 챙겨. 나도 김 청장 같은 사위가 있었으면 좋겠네.

박대순 청장은 전부터 그래왔다. 김대성 같은 남자가 또 있었으면 자기 딸과 결혼 시켰을 거라고 말이다. 그만큼 박대순 청장은 김대성이라는 남자의 인성을 좋게 봤다. 그런데....

박대순 청장과 통화를 끝낸 직후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으음....”

누구 전화인지 확인 하자마자 김대성 청장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오고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잠깐. 여기서 10분만 쉬었다가 가지.”

김대성은 바로 출발해야 늦지 않는다는 비서의 말도 무시하고 10분 간 쉬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쉬지 않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딱 10분간 누구랑 조용히 통화를 했다.

“....데 박 청장이 개입되어 있어서 손쓰기가 좀....뭐 일단 XX경찰서로 특수부 형사들을 보내서 XX요양병원장의 집에서 나온 주요 증거들은 다, 서울로 챙겨 오라고 지시를 내려놓을 테니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네. 네. 그렇기는 한데....라서 일단 제 선에서 그쪽에 피해가 가지 않게 막아 보겠습니다. 아뇨. 이번 일에는 서진그룹에서 가급적 나서지 말아주십시오. 그게 저를 돕는 길입니다. 네. 회장님께도 제가 안부 전하더라고 꼭 좀 전해 주시고. 네. 실장님도 수고 하십시오.”

그렇게 통화를 끝낸 김대성은 남은 두 가지 스케줄을 더 소화하고 나서, 반쯤 파김치가 된 상태로 서울경찰청으로 복귀했다.

원래는 외부 스케줄 끝나고 바로 퇴근해서 집으로 가야했는데, 사적으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다시 서울경찰청으로 돌아 온 김대성.

그런 그가 서울경찰청의 청장실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전화한 곳은, 청 내 특수부 사무실이었다. 거기 팀장이 김대성의 전화를 받았다.

-네. 청장님.

“특수부 XX경찰서 보내라고 한 건 어떻게 됐나?”

-좀 전에 XX시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증거들 챙겨서 서울 오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고 봤을 때, 밤 9시는 돼야 올 거 같습니다.

“그거 박 팀장이 좀 챙겨. 어디건지는 박 팀장도 잘 알지?”

-네. 서진그룹 쪽 거 아닙니까. 제가 직접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특수부의 박수일 팀장이 그때까지 퇴근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증거들 일일이 확인 다하고 집에 가도 가겠다는 소리였다.

“그래. 박 팀장이 좀 수고 해줘.”

아무래도 서진그룹 쪽 일은 김대성이 특별히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왜냐하면 경찰청장이 되려면 권력에 줄을 잘 대어야 하지만, 돈 줄인 재벌도 꼭 끼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현 경찰청장인 박대순에게 삼명그룹이라는 뒷배가 있듯이, 김대성에게도 서진그룹이 있었던 것이다.

김대성의 지금이 있기까지 서진그룹이 물심양면 도와 준 것을 김대성은 잊지 않고 있었고, 그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서울경찰청장인 그가 지금 이렇게 직접 챙기는 거고 말이다.

“어어. 나중에 퇴근하기 전에 나한테 전화 한 통 해주고.”

그렇게 특수부 팀장과 통화를 끝낸 김대성은 그제야 퇴근 준비를 했다.

* * *

우주그룹 재벌 3세였다가, 지금은 평범한 걸그룹 로드 매니저가 된 태석규. 그는 며칠 사이 그 걸그룹 멤버들과 완전 친해졌다.

“오빠. 수고하셨어요.”

“어어. 너희들도 오늘 하루 고생했다. 어서 들어가서 쉬어.”

아직은 데뷔를 한 것도 아닌 아이들이었다. 사실 태석규가 일찍 아이를 낳았으면 큰 애가 멤버들 중 막내 나이는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태석규에게 그가 맞은 걸그룹 멤버들은 딸이나 조카같이 느껴졌다. 비록 정식 매니저도 아닌 로드 매니저에 불과하지만, 태석규는 그가 맞은 걸그룹 ‘레드문’의 멤버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꼭 데뷔 무대를 가지고, 또 큰 인기를 끌어서 누구나 아는 탑 스타의 반열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았다.

근데 아이들 숙소에 다 내려주고 회사로 가는 길에, 그 아이들 매니저가 누구랑 나누는 전화 통화를 엿듣고 태석규는 기분이 팍 상했다.

“....데 그럼 아이들 데뷔가 MP4 컴백 뒤로 미뤄진다는 거잖아요? 하아. 지금도 늦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기다립니까? 그래서 실장님은 뭐라고 하셨는데요? 네? 그건 아니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같은 실장인데 그 정도 말도 못합니까? 네? 실장이라도 급이 다르다고요? 헉! 그러니까 김 실장의 직급이 전무....어휴. 그럼 잘 참으셨네요. 그러니까 위에서는 걸그룹을 두 개로 쪼개서 일단 반응을 보고 하나만 데뷔 시키던지, 아니면 둘 다 데뷔 시키던지 하겠단 거네요? 하아. 알겠습니다. 일단 애들에게 잘 얘기는 해 보겠지만....”

당연히 이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이대로 데뷔 하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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