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94화 (39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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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요즘 우리 에이전시에 일이 많다는 건 너도 알 테고. 해서 나는 더 많은 처리자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처리자들의 수는 한정적이고, 제대로 된 처리자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해서 나는 기존의 처리자 에이전시를....합병 할 생각이다.”

“뭐? 합병?”

'합병'이란 두 개 이상의 기업들이 법률적으로나, 사실적으로 하나의 기업으로 합쳐지는 것을 말한다.

금명훈은 처리자 에이전시를 무슨 기업처럼 여기는 김훈의 생각이 참신하달까?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좀 허황된 논리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해서 금명훈은 좀 더 김훈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 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 인수합병의 대상이....설마 우리 신비 에이전시란 얘긴가?”

“맞다. 이왕 인수할 거 큰 곳을 인수하고 싶었다. 해서 네 도움이 필요하다.”

김훈의 진정성 있는 그 말에, 금명훈이 열심히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건 어쩌면 배신이 아니라, 그에게 있어 절호의 기회 일 수도 있었으니까.

왜 성즉군왕 패즉역적'(成卽君王 敗卽逆賊)이라고 하지 않던가?

즉 성공하면 충신, 혹은 군왕(영웅)이 되지만, 실패하면 역적이 된다는 말로, 만약 금명훈이 김훈을 도와서, 정말로 신비 에이전시와 김훈 에이전시의 합병이 이뤄진다면....

‘나는 일약 부상해서, 에이전시 지도부의 일원이 될 수 있단 거지.’

김훈은 자신의 말을 듣고 나서 금명훈의 눈빛이 점점 탐욕스럽게 변해 가는 걸 보고 확신했다.

-성공이겠군.

그런 김훈의 예상대로였다. 잠시 후 금명훈이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뭘 도우면 되겠소?”

금명훈이 말을 높이자, 김훈은 싱긋 웃으며 그에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신비 에이전시의 조직에 대해 알고 싶소. 또 재정이나 예산 규모도 알 수 있으면 좋겠고.”

일단 신비 에이전시의 정확한 규모를 알고 싶다는 김훈의 말에, 금명훈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비 에이전시 소속 처리자들의 수는 대략 50명 정도고, 한해 예산은 4천에서 5천억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소만.”

“그 50명의 처리자들 중 지도부는 몇 명이며, 처리자들 이외에 보조 인원, 그러니까....”

김훈의 질문이 점점 더 디테일해지자 금명훈은 싱긋 웃었다. 김훈의 이런 접근법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기는 법인데, 김훈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훈의 질문에 대답하는 금명훈의 태도도 점점 더 진지해지고 있었다. 더불어 금명훈을 보는 김훈의 눈빛도 점차 탐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인재를 보면 가만 두지 못하는 김훈답게, 금명훈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의 값어치를 금세 알아차린 김훈.

그가 자신이 신비 에이전시에 대해 알고 싶은 걸 다 듣고 난 뒤 금명훈에게 말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고....같이 갑시다.”

그 말을 하며 김훈이 먼저 금명훈에게 손을 내밀었고, 잠시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던 금명훈.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김훈의 손을 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 대표님.”

“잘 해봅시다.”

그렇게 힘차게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을, 금명훈을 납치 해 온 두 처리자들이,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둘 다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제주경찰청의 형사과장 정재욱. 그가 다크서클로 판다 눈을 한 채 경찰차장실을 노크했다.

똑똑똑!

“들어 와!”

안에서 경찰차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재욱은 경찰차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0여분 뒤, 더 짙어진 판다 눈을 하고 정재욱이 나왔다.

“하아아....”

그리곤 정말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 쉬고는 맥없이 자기 방, 그러니까 형사과장실로 걸어갔다.

“아아....”

형사과장실에 겨우 들어간 정재욱. 그는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는지 바로 자기 방 응접소파에 앉았다. 그리곤 그때까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결재 판을 쳐다보고는,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에 핏기마저 싹 사라지면서, 들고 있던 결재 판을 좀 전 그가 들어 온 문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파라라라락!

그러자 결재 판 안에 그가 어젯밤을 새서 만든, 사이버 수사대 설립안의 서류가 튀어 나와 비산하며, 형사과장실 안으로 흩뿌려졌다. 그걸 보고 정재욱의 입에서 살벌한 욕설이 튀어 나왔다.

“C발 좆도....진짜 더러워서 더 못해 먹겠네.”

요 며칠 경찰차장의 갈굼에 정재욱은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버틴 건 주말이 있어서였다. 한데....

좀 전 들고 들어간 보고서를 보고 경찰차장이 그랬다. 주말에 출근해서 보고서 마무리 지으라고 말이다.

“지가 뭔데. 나보고 주말에도 경찰청 나와서 일하라 마라야?”

당연히 정재욱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똑똑똑!

자기 방 노크 소리에 이미 신경질이 나 있었던 정재욱이 버럭 소리쳤다.

“누구야?”

그러자 방밖에서 형사계장이 말을 해왔다.

“과장님. 저 윤 계장입니다.”

“들어와요.”

직급은 밑이어도, 나이는 자기보다 10살이나 더 많은 형사계장이었다.

어느 정도 예우를 해줘야했다. 거기다 정재욱은 형사과장이지만,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형사과를 아직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베테랑이자 제주도 토박이기까지 한, 형사계장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

“무슨 일입니까?”

그래도 지금은 기분이 정말 나쁜 상태의 정재욱이라, 내 뱉는 말이 딱딱할 수밖에 없었다.

형사과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정재욱이 보이는 냉랭한 반응에도 형사계장, 윤 계장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과장님. 혹시 다른 일도 맡으셨습니까?”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형사 계장을 빤히 쳐다보는 정재욱. 그런 그에게 윤 계장이 자기 말이 무슨 뜻인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좀 전에 저희 제주경찰청 게시판에 경찰차장님께서, 과장님이 새롭게 조직을 갖추게 되는 사이버 수사대를 맡게 될 거라고 하셔서요.”

“뭐, 뭐라고요?”

엊그제 얘기해 놓고 기어코 그를, 제주경찰청에는 필요도 없는 사이버 수사대에 넣으려는 경찰차장 때문에, 정재욱이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렸다.

“내 이 인간을....”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정재욱이 형사과장실 문을 열고 나가는 걸 보고, 윤 계장이 피식 거리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차장님. 지금 그리로 갔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조직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닙니까? 네.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죠. 네.”

경찰차장과 간단히 통화 후 전화를 끊은 윤 계장. 그가 형사과장실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

“화분은 창가로 두고....저쪽에다가 난초를 놔야겠네.”

그는 자신이 이 방으로 오게 되면, 그가 쓰게 될 가구와 집기류들 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두루두루 살피다가, 준비해 온 줄자까지 동원해서 방 치수까지 꼼꼼히 재어 본 뒤, 형사과장실을 나섰다.

* * *

제대로 눈이 돌아가 버린 정재욱.

“개새끼. 내가 안한다고 했는데....”

씩씩거리며 경찰차장실로 향한 정재욱은 금세 목적지에 도달했다. 원래는 노크를 하고 들어가야 하지만, 돌아버린 정재욱은 그런 것도 없이 벌컥, 경찰차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차장님. 제가 사이버 수사대 안한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잖습니까?”

“그래서 뭐?”

“네?”

“우리 경찰청에서 자네가 제일 적합하니 맡기려는 거뿐이야. 나도 너 한데 그 자리 맡기는 게 마냥 좋은 줄 알아?”

“그러니까 저 말고 차장님이 좋아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세요.”

그때였다. 갑자기 경찰차장이 정재욱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를 떠밀며 말했다.

“나가. 너 하고 더 할 말 없어.”

“이, 이게 무슨....”

“나가라고. 빨리.”

정재욱은 경찰차장이 뜬금없이 그를 차장실 밖으로 떠밀자 기가 찼다.

당연히 나이 많은 경찰차장이 힘에서 그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경찰차장이 미는 척하면서 그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아야! 이런 변태 늙은이가....”

안 그래도 경찰차장 때문에 빡 쳐 있었던 정재욱. 그런 그가 여기 오면서 거의 이성을 잃고 있었는데, 거기에 경찰차장이 제대로 기름을 끼얹었다. 그러니 활활 타 오를 밖에.

“으아아아....아이고! 내 허리....나 죽네. 나 죽어.”

정재욱은 또 미는 척하며 자신의 젖꼭지를 교묘히 꼬집으려는 경찰차장을 그저 뿌리쳤다.

그랬더니 경찰차장이 과하게 벌러덩 뒤로 넘어지면서, 허리를 잡고 나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정재욱은 경찰차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통에 듣지 못했다. 누군가 경찰차장실 안으로 들어 오는 걸 말이다.

“아이고. 이제 하다하다 별 짓을 다하네. 노망 나셨어요?”

정재욱은 자기가 뭘 한 것도 없는 데,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고 있는 경찰차장을 비꼬며 말했다. 그때였다.

“뭐? 노망?”

뒤에서 누가 말을 했고 돌아보니....

“헉!”

살벌한 얼굴로 정재욱을 곧 잡아먹을 듯 쏘아보고 있는, 제주경찰청장이 거기 서 있었다.

* * *

서울의 박대순 경찰청장으로부터, 사실상 오더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제주경찰청의 배도철 경찰차장.

그는 그 오더를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완수하고, 이번 스마트 치안대 건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다음, 올해 안으로 서울로 발령 받아 상경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배도철은 매일 같이 형사과장 정재욱을 들들 볶아댔다.

그러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오전부터 정재욱에게 주말에도 제주경찰청에 나와서 일하라고 했다.

“저런 놈한테는 쉴 틈을 주면 안 돼.”

왜냐하면 정재욱 같은 놈은 틈을 주면, 그 틈을 비집고 튈 놈이었으니까.

한데 그게 제대로 정재욱을 빡치게 만든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배도철이 제주경찰청 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글이, 녀석에게 확실히 기름을 들이 부었고 말이다.

“어. 그래? 수고 했어. 내가 청장님께 자네를 형사과장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도록 하지. 어.”

그걸 형사계장이 전화로 먼저 알려 주었다. 그리고 형사계장 말대로 제대로 빡친 정재욱이 잠시 뒤, 경찰차장실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는 배도철에게 따졌다.

그런 정재욱을 보고 배도철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이제 다 됐다. 그 인간만 오면....’

왜냐하면 배도철은 오늘 정재욱의 경찰복을 벗겨 버리기 위해서, 녀석이 도저히 빠져 나가지 못할 덫까지 준비했다.

형사계장과 통화하자마자, 바로 제주경찰청장인 유만식에게 전화를 건 것. 차장실로 급히 좀 와 달라고 말이다.

당연히 하급자가 상급자를 오라 가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요즘 유만식 청장이라면 가능했다.

왜냐하면 제주경찰청장 자리에 유임되고 나서 사람이 싹 돌변한 유만식은, 청장실에 있는 시간보다 제주경찰청 안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배도철이 급한 일이라며 빨리 좀 와 달라고 하면, 유만식은 득달같이 달려와 줄 것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왔네.’

꼭지가 제대로 돈 정재욱은 경찰차장실 문을 열고 들어 올 때 문을 닫지 않았다.

때문에 유만식 청장은 굳이 문을 열 필요 없이, 열려 있는 문을 통과해서 경찰 차장실 안으로 들어오면 됐다.

‘지금....’

배도철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정재욱에게 떠밀려 뒤로 벌러덩 넘어진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고 정재욱이 기가차서 한 말을, 그 뒤에 등장한 제주경찰청장 유만식이 직접 자기 귀로 다 들었다.

“정 과장. 너 미쳤어?”

“청, 청장님!”

상관 폭행죄는 단순히 경찰청 내 징계로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사법처리가 불가피 했다.

정재욱은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곧 깨닫고 절망했다.

반면 자기가 준비한 덫에 정재욱이 제대로 걸려들자, 허리를 잡고 꼼짝도 못하겠다고 낑낑 거리던 배도철.

그는 고개를 숙인 체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런 그를 보고 제주경찰청장 유만식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배 차장. 그렇게 아파? 119 구급대라도 불러 줘?”

“으으윽....저는 괜찮습니다. 그 보다 부끄러운 꼴을 보였습니다. 상관이 되어 부하 하나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유만식 청장 앞에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타도 될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배도철을 보고 정재욱은 망연자실 한 채,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 데, 정작 입 밖으로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우만식 청장의 살벌한 얼굴과 기세에 완전 주눅이 들어서 말이다.

“어떻게 된 거야?”

“....”

그래서 유만식 청장이 해명할 기회를 줬는데, 정재욱은 그걸 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고, 그때 배도철이 연기가 또 빛을 발했다.

“제 잘못이 큽니다. 오늘 아침 게시판에 올린 글 때문에, 정 과장과 저 사이에 오해가 좀 있었습니다.”

“오해?”

“네. 사이버 수사대 말인데. 정 과장이 그저께 저보고 거기 맡기 싫다고 했거든요. 근데 저는 이걸 정 과장이 맡아, 성과를 내서 다시 서울로 갔으면 좋겠다 싶어서....저 딴에는 정 과장 생각해서 해 준 일인데....정 과장이 그만 이성을 잃고서....”

“허어. 배 차장의 말이 사실인가?”

배도철의 말을 다 듣고 난 유만식 청장이 정재욱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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