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93화 (39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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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VVIP를 위한 로얄스위트룸답게 방이 많은 게 이럴 때는 좋았다.

“둘 다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봐.”

나는 일부러 두 방을 향해 그렇게 큰소리로 외쳤다.

“....”

근데 두 여자들 방에서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벌써 잠든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내가 두 여자 중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게, 그녀들 딴 엔 불만인 듯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여기서 한 여자만 선택했다가, 다른 여자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아아아아함! 피곤하다.”

시간이 새벽 2시 30분이 다 됐다. 나는 빈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꼬꾸라졌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

그때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내가 의식이 깨어감에 따라, 더 크고 선명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으으으....”

결국 잠에서 완전 깨어버린 나는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고, 그게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 둔, 내 핸드폰이 울리면서 나는 소리임을 알게 됐다. 나는 누구전화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운 상태로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 저예요.

‘저가 누군데?’

나는 그 말을 하려다 말았다. 왜냐하면 목소리 주인이 누군지 방금 생각이 났거든.

“어. 다희야.”

-지금 어디세요?

“나? 호텔이지 어디긴. 깼어?”

-휴우. 놀랐잖아요. 날 두고 가신 줄 알고.

“아냐. 잠이 좀 안 와서 호텔 로비에 내려왔다가, 바람 좀 쐬고 막 올라가려던 참이었어.”

거짓말도 참 청산유수로 잘 나왔다. 이전 삶의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 이렇게 거짓말을 잘하는 건 순전히 백준열의 영향 탓일 거다.

-빨리 오세요. 저 곧 가봐야 해요.

“알았어.”

나는 다희와 통화를 끝내고 나서, 그제야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을 할 수 있었다.

“5시 40분?”

달랑 3시간 잤다. 그러니 머리도 몸도 무거울 수밖에. 하지만 일어나야 했다. 다희를 보러 가야 하니까.

나는 비틀거리며 내가 쓰던 방을 나와서, 냉장고로 가서 시원한 생수부터 마시고 확실하게 정신을 차린 뒤, 내 상태를 한번 점검했다.

“음....”

그리고 괜찮다 싶자, 로얄스위트룸을 나와서는 다희가 묵고 있는 객실 1407호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 * *

나는 소지하고 있던 전자키로 1407호의 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표님!”

어젯밤에 처음 여기서 다희를 봤을 때처럼, 그녀가 쪼르르 내게 뛰어와서 내 품에 안겼다.

그런 그 녀에게 내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더 자지 않고?”

“저 지금 가 봐야 해요.”

“오늘 쉬는 날이라면서?”

“그렇긴 한데 아침에 일찍 집에 가 봐야 해서요.”

“집?”

“네. 성수동 본가, 그러니까 제 가족들이 사는 집, 그 집말이에요.”

“아아. 그렇지만 여기서 더 쉬다가 바로 집에 가면 되잖아?”

이곳 쉐링턴 호텔에서 성수동까지는 택시를 타면 금방이었다. 하지만 다희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러고 어떻게 가요? 또 가족들에게 줄 선물들도 챙겨 가야 해서, 제가 사는 집에 어차피 들렀다가 가야 해서요.”

“뭐 그렇다면야....”

“저어. 근데....”

“말해. 괜찮으니까.”

나는 다희가 내게 할 말이 있어 보이자 편하게 말하라고, 최대한 얼굴 표정을 밝게 지었다. 그러자 그제야 다희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 동영상 말인데요....확보 하셨다면....”

“아아. 그거라면 앞에도 말했지만, 내가 동영상 원본 확보했으니까 오늘 중으로, 어떡하든 너에게 보내 줄게”

어째든 내가 다희, 그녀 자신의 동영상을 순순히 그녀에게 주겠다니, 그제야 다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고맙습니다.”

“오전 중으로 내 경호팀장에게서 연락이 갈 거야. 그럼 어디서 만나서 그 동영상 CD 원본을 받을지 정해서, 거기서 만나서 그거 챙겨 가.”

“네.”

다희는 내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진호 대표처럼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자, 그제야 마음에 좀 놓이는 모양이었어.

“차는?”

“직접 몰고 왔어요. 지하 주차장에 있고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드릴게요. 대표님 때문에 추 대표에게서 벗어 날 수 있게 됐어요.”

다희는 보아하니 아직 추진호 대표가 죽은 사실을 모르는 거 같았다.

나는 그 얘기를 해 줄까 말까 잠시 고심하다가 결국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까.

“다희야.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진호 대표 말인데....”

“그 인간이 왜요?”

“사실 어제 죽었다.”

“네?”

추진호 대표가 죽었다는 내 말에 다희가 많이 놀란 듯 얼굴이 창백해지며 사색이 됐다.

“어, 어떻게요?”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겠는지, 추 대표 사인에 대해 내게 물어왔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해 주었다.

“국도변의 낭떠러지로 차가 굴러서....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다 죽은 걸로....”

“....”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다희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내, 내가....죽으라고 그렇게 염불하고 기도 할 땐 안 죽더니....이제 그럴 필요 없어지니까 덜컥 죽어 버리네. C발. 좆같은 신들 같으니라고. 내가 당신들을 믿으면 진짜 개년이다. 흑흑흑흑....”

그러니까 지금 다희는 너무 억울해서 울고 있었다. 저 하늘 위에 계신다는 여러 신들까지 싸잡아 욕 해가면서 말이다.

* * *

신비 에이전시 소속의 처리자 금명훈.

“으으으윽....”

그가 머리가 깨질 거 같은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렸을 때, 제일 먼저 그의 눈 띈 것은 바로 콘크리트 벽이었다.

“헉!”

당연히 금명훈은 자기 몸부터 움직여봤다. 하지만 팔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입까지 틀어 막히진 않은 상태.

금명훈은 바로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그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는 대충 파악이 됐다.

그는 널찍한 창고 건물로 보이는 곳의, 의자에 묶인 신세로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지이이징! 척! 지잉!

그때 위에서 인위적으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시선을 올리니 감시 카메라가 보였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며 창고 안의 모든 곳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창고 문이 열리고 세 명의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너, 너희들은....”

금명훈은 그 세 명의 남자들 중 둘은 용케도 알아봤다. 그들은 바로 자신을 기절시키고 여기로 데려 온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두 남자들은 금명훈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무관심한 얼굴이었고, 정작 다른 한 남자가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 아무개라고 합니다. 그쪽과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의 말에 금명훈은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내 잔뜩 겁먹을 얼굴로 그 남자를 보고 말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저, 저를 어떻게 하려고 여기로 데려 온 겁니까? 돈, 돈 때문이라면 은행가서 더 인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누가 봐도 잔뜩 겁먹은 순진한 일반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납치당했을 때 보일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금명훈의 명연기에 그 남자가 피식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거 봐요. 신비 에이전시 처리자 양반. 내가 말했을 텐데. 동종 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걸 서로 증명하는 귀찮은 가정은 제발 좀 생략 하자고.”

말을 높이던 남자가 갑자기 끝에 가서 말을 놓으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자, 금명훈도 더는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지, 그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신비 에이전시 소속이란 걸 알면서 건드렸다는 건,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단 건가?”

금명훈의 그 물음에 그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

“무슨 각오?”

“어디 소속 처리자들인지 모르지만, 우리에 대해 뭘 모르는 거 같은데....”

금명훈은 자신이 속한 신비 에이전시가, 어떤 곳인지 눈앞의 얼치기 세 처리자들에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그를 여기로 납치 해온 자들 중 하나에 의해 끊겼다.

“모르는 건 너지. 서울에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처리자 에이전시가 어딘지도 모르니 말이다.”

“뭐?”

“혹시 최현일 처리자 에이전시는 들어 봤나?”

“물론이다. 규모 면에서는 처리자 에이전시에서 가장 큰....설마 너희들이 그럼?”

“아니. 우린 거기 처리자들 아냐. 우리는....”

“됐어.”

금명훈은 자신의 납치 해 온 자들 중 하나가, 막 자기들이 어디 처리자 에이전시 소속인지 밝히려는 걸 막은 그 남자를 홱 쏘아봤다. 하지만 그 남자는 금명훈의 눈총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투덜거렸다.

“이거 봐봐. 최현일 에이전시는 알아도 우린 모르잖아.”

근데 그 남자의 반응에 금명훈을 납치 해 온 두 남자들이, 갑자기 표정이 굳어서는 그 남자 앞에 머리를 숙이며 면목 없다는 듯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희들이 무능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대표님?”

그래도 처리자로 꽤 오랜 세월 밥 벌어 먹고 살아 온 금명훈.

그도 처리자 세계에 대해서는 꽤나 잘 아는 편이었다. 그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처리자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대표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서울에만 열 손가락 안이었고, 전국적으로 봐도 20명이 넘지 않았다. 적어도 처리자 에이전시에 대표 소리를 들으려면, 처리자 수가 최소 30명은 되어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 금명훈의 눈앞에 그 남자는 그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처리자 에이전시 대표란 소리고....

‘가만, 서울에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처리자 에이전시에다가, 대표가 김 아무개 라면....헉! 설, 설마 김훈 에이전시? 그리고 지, 지금 저 인간이 그 김훈 에이전시의 대표인 김훈?’

금명훈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걸 보고 그 남자가 말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아 챈 모양이네. 맞아. 내가 그 김훈 에이전시의 대표 김훈이다.”

“....”

그 남자가 자신이 누군지 자기 입으로 밝히자, 금명훈의 입이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 * *

김훈은 바쁜 와중에도 자기 에이전시 소속 처리자들 중 2명을 진짜 어렵게 빼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비 에이전시 소속 처리자 한 명을 잡아오라고 시켰다.

그 결과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다. 천만다행으로다가, 상대는 자신이 누군지 알자 순순히, 그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금명훈이란 얘기군.”

“그렇다.”

금명훈은 상대가 처리자 에이전시 대표지만 자기보다 어려 보이자 말을 놨다.

외국 생활을 오래한 김훈이다 보니, 한국식 높임말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편이었다. 그래서 금명훈의 반말에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좋아. 명훈씨.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물어 봐라. 아는 대로 대답해 주도록 하지.”

금명훈은 자기가 지금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상대가 자기처럼 사람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처리자들이었다. 그 하나 죽이고, 흔적을 지워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오히려 금명훈은 대범하게 나가고 있었다. 그가 알기로 요즘 이 바닥으로, 처리자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그처럼 유능한 처리자를 제거하는 거 보다는, 활용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건, 처리자 에이전시의 대표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해서 금명훈은 어떡하든 김훈 대표에게 잘 보여서, 자신의 목숨도 구하고 또 직장도 더 큰 쪽으로 옮겨가는, 일석이조의 해피엔딩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속한 신비 에이전시 말인데....”

“거기가 뭐?”

“처리자가 몇 명이야? 대표에 지도부 전부 다 포함해서.”

“....”

하지만 정작 김훈 대표의 물음에 금명훈은 얼굴을 확 찌푸린 채 섣불리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것이 다른 건 김훈 대표가 물으면 뭐든 다 대답해 줄 의향이 있었던 금명훈이지만, 신비 에이전시의 내부 정보를 대 놓고, 김훈 대표에게 떠들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알면 금명훈은 신비 에이전시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고, 그럼 평생 신비 에이전시의 집행자들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테니 말이다.

참고로 집행자들이란 처리자 에이전시에서 배신자를 처벌하는 권한을 가진, 대표 밑의 집행부에 소속 된 처리자들을 말했다.

그들은 에이전시의 업무는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오로지 대표의 지시에 따라 에이전시 조직을 배신한 처리자들을 제거하는 임무만을 맡았다.

금명훈은 지금 당장 죽는 것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신비 에이전시의 집행부에 쫓기다가 결국 처참하게 죽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도 덜컥 겁났다. 그런 금명훈을 보고 김훈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신비 에이전시 쪽이 무서워서 말을 못하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

“왜지?”

“신비 에이전시는 곧 없어질 거거든.”

“뭐, 뭐라고?”

“내가 거기를 집어 삼킬 생각이니까.”

“....”

김훈의 말에 금명훈은 잠시 미친 놈 쳐다보듯 그를 쳐다봤다. 그걸 눈치 못 챌 김훈이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김훈도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상대에게 그만큼 기가 막힐 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느 날 누가 나타나서 뜬금없이 그 보고 김훈 에이전시를 내가 집어 삼키겠다고 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까?

해서 김훈은 좀 더 자세히 자신의 생각을 금명훈에게 전하기로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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