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80화 (3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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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김명수도 누구보다 욕심 많고 영악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눈앞의 서진그룹이 탐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러니까 그의 형인 김명진 회장만 없다면, 그가 서진그룹의 회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쪽에 의뢰를 했었는데, 깜짝 놀라며 바로 그 의뢰를 취소했다.

왜냐하면 김명진 회장의 목숨 값이, 무려 3조 5천억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 돈을 의뢰비로 당장 지급한 능력이 김명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김명수는 깨달았다. 사람에게는 자기 주제란 게 있단 걸 말이다.

이런 사실은 사실 김명진 회장도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김명수 보다 그쪽에 대해서 더 많이, 잘 알고 있었다.

김명수에게 그쪽을 소개 시켜 준 것도, 이건 비밀이지만 알고 보면, 김명진 회장이 의도한 바였으니까.

능력은 안 되면서 탐욕스럽기만 한 자기 동생에게, 자기 주제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일 수 있었지만, 사업에서 도박, 혹은 모험을 즐기는 김명진 회장다운 결정이랄까?

어째든 그 결과, 김명수는 자기 주제를 알고 형인 김명진 회장에게 바짝 엎드렸고, 그의 지시를 누구보다 잘 따르는 수족 중 하나가 됐다. 이렇게 말이다.

“형님께 어서 알려드려야지.”

김명수는 김명진 회장의 개인 폰으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 명수야.

“형님. 그쪽에서 배 원장을 처리했답니다.”

-으음....알았다. 검경 쪽에는 이미 손을 써 뒀다. 언론 쪽도 손을 그룹 차원에서 손을 쓰기 시작했고.

“휴우. 그럼 이번 일은 해결 된 거나 마찬가지겠네요.”

-그렇지. 수고 했다.

“제가 벌인 일인걸요. 오히려 형님과 그룹에 폐를 끼쳐 송구할 뿐입니다.”

-쉬어라.

김명수는 기분 좋게 김명진 회장과 통화 후, 그가 좋아하는 프랑스산 와인을 땄다.

“으음....역시....”

그리고 그 와인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배 원장.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기원할 게. 뭐 그 동안 해 온 짓을 보면, 천국은 못 가겠지만. 크크크크크.”

그래도 사람을 죽인 거에 대한 자책감은 드는지, 김명수는 그쪽에 의뢰를 하고 그 결과가 나오고 나면, 이렇게 취하도록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취한 그는 늘 그렇듯, 두 다리 쭉 뻗고 달게 잠을 잤다.

* * *

동생인 김명수의 전화를 받고 난 김명진 서진그룹 회장. 그는 눈앞에 비서실장이 건네는 서류를 받아서 살피고는 한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손으로 이마를 비비며 말했다.

“이거 사실이야?”

“네.”

15년 째 김명진 회장을 곁에서 모시고 있는 비서실장은, 그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을 때면, 저렇게 손으로 이마를 비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비서실장이 건넨 서류의 내용이, 김명진 회장의 심기를 상당히 건드렸다는 소리다.

“JYB엔터의 백준열이라....그러니까 이번 일의 발단이 된 그 환자의 아들이....녀석의 경호팀장이란 거네. 이거, 이거 일이 제대로 꼬인 거 같은 데?”

김명진 회장은 그 말을 하면서, 이마를 비비던 손을 턱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손으로 털을 쓸었다. 그걸 본 비서실장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럴 것이 김명진 회장이 뭔가 중요한 결정, 그러니까 도박에 가까운 짓을 벌일 때, 저렇게 손으로 턱을 자주 쓸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김명진 회장은 이번 일을 두고, 뭔가 위험한 결정을 하려 들고 있었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면 가장 죽어나는 게 바로, 서진그룹 전략기획실과 비서실이었다.

요즘 들어 잠잠하던 김명진 회장이었다. 그 덕에 전략기획실장과 자신도 예전 몸무게를 회복했고. 그런데 여기서 또 김명진 회장이 사업 상 도박에 가까운 위험한 결정을 내린다면, 비서실장인 그는 또 다시 위태위태한 외줄타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백준열이....역시 그때 제거 했어야 했나?”

김명진 회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이번에는 턱을 쓸 던 손으로 자기 뒷목을 만졌다. 그걸 보고 비서실장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럴 게 김명진 회장이 저러는 건, 진짜 골치 아픈, 풀리지 않는 난제가 생겼을 때 보이는 반응이었으니까.

비서실장이 여태 김명진 회장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이런 일련의 버릇들을 한 번에 다 하는 건 지금 처음 봤다.

그만큼 김명진 회장이 JYB엔터 백준열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비서실장도 그제야 간파가 됐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굳이 이렇게나 신경 쓸 정도인가?’

그래봐야 백준열은 재벌 3세 일뿐이었다. 물론 그냥 재벌 3세가 아닌, 국내 굴지의 대재벌인 삼명그룹 재벌 3세였다. 하지만 그래봐야 재벌 3세고, 김명진 회장은 엄연한 재벌가의 오너였다.

백준열이 삼명그룹의 후계자라도 된다면 모를까. 비서실장이 알기로 그는 삼명가의 막내로 후계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나가 봐.”

이번 일을 두고 김명진 회장의 고심이 깊은 모양이었다. 혼자서 더 생각 하려는 걸 보니 말이다. 근데 그 말에 비서실장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네.”

대답 후 회장실을 나서는 비서실장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럴 것이 김명진 회장이 혼자 생각을 한다는 건 그 일, 그러니까 사업 상 도박에 가까운 위험한 결정을 내릴 공산이, 그만큼 크다는 소리였으니까.

비서실장의 경험 상 이런 식으로 회장실을 나가고 나서, 대개 한 시간 안에 김명진 회장은 폭탄을 터트렸다.

회장실을 나온 비서실장은 그처럼 아직 퇴근하지 못하고 대기 타고 있는, 전략기획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전략기획실장이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물어왔다.

“좆 됐다.”

-아아....

그 시각부로 서진그룹의 전략기획실과 비서실이, 비상운영체제로 돌입했다.

* * *

비서실장을 내 보낸 뒤,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은 장고에 들어갔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하수들이나 그런 거고, 자기 같은 고수에게 장고는 필승의 카드다.

“으음....”

하지만 백준열을 상대로 싸우는 걸 두고, 생각은 많은 데 선뜻 그 필승의 카드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경우 포기하는 것도 괜찮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상대에 있었다.

“내가 손을 내민다고, 그 손을 덥석 잡을 백준열이 아니란 거지.”

그 말을 중얼거리며 연신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쓸던 김명진 회장. 그가 아까 뱉었던 말을 또 했다.

“역시 그때 제거 했었어야 했어. 사위 삼을 욕심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김명진 회장은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백준열과 형님, 동생하며 가깝게 지낼 때, 그쪽, 즉 처리자 에이전시에 의뢰를 해 봤었다.

백준열을 제거하는 데 몸값이 얼마나 드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랬더니 그쪽에서 백준열 제거에 580억을 불렀다.

그 나이 치고 어마한 몸값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 백준열과 자신의 딸을 결혼 시키려 한 계획이 무산되고, 백준열과 사실상 관계가 틀어졌을 때, 김명진 회장은 이번엔 진짜 백준열을 제거할 생각으로 처리자 에이전시에 의뢰를 했었다.

근데 그때 백준열의 몸값이 2배 넘게 튀어 있었다. 무려 1천 200억으로 말이다. 의뢰비가 너무 비싸서 김명진 회장은 백준열을 제거하는 걸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떨까?”

갑자기 처리자 에이전시에서 매긴 백준열의 몸값이 궁금해진 김명진 회장. 그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자신의 개인 폰을 챙겨들고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잠시 후, 음성 변조가 목소리가 그의 개인 폰에서 들려왔다.

-코드 5번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단골 고객 답게 김명진은 바로 의뢰를 넣었다.

“JYB엔터 백준열 대표를 없애고 싶은데....”

그러자 여태 의뢰를 하면서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탄식을 상대가 흘렸다.

-으음....

그리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어마 무시한 금액이 김명진의 귀로 들려왔다.

-의뢰비 책정 결과....50조입니다. 의뢰하시겠습니까?

“얼마라고?”

-50조입니다.

원래 추병진이 의뢰했을 때 30조였었던 백준열의 몸값이 그 사이 50조로 불어 있었다.

당연히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김명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그런....”

-의뢰하시겠습니까?

재차 상대에서 강한 어조로 물어오자 정신이 든 김명진. 그가 재빨리 의뢰를 취소했다. 자칫 여기서 말실수 했다가, 처리자 에이전시와의 인연이 끊길 수도 있었다.

“아니. 의뢰 취소하겠다.”

-의뢰는 취소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뚜뚜뚜뚜뚜뚜뚜....

의뢰를 하지 않자 상대 처리자 에이전시에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허어....50조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백준열의 몸값에 김명진 회장의 고심이 더 깊어졌다. 그쪽에서 그 정도 몸값을 산정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백준열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어.”

김명진 회장은 백준열과의 싸움을, 섣불리 결정지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 비서실장을 불렀다.

“네. 회장님.”

갑자기 결연한? 아니 비장한 얼굴로 나타난 비서실장. 그런 그에게 김명진 회장이 말했다.

“퇴근하자고.”

“네? 뭐, 뭘 하자고요?”

비서실장은 당연히 김명진 회장이 사업 상 도박에 가까운 위험한 결정을 내린 걸, 이제 그에게 얘기하려는 줄 알았다.

“뭐야? 퇴근 하자는 말도 못 알아듣고. 박 실장. 어디 아파?”

“아, 아닙니다. 퇴, 퇴근하시죠. 하하하하.”

비서실장은 속으로 김명진 회장이 당장 사업 상 도박에 가까운 위험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도 알았다. 지금은 김명진 회장이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뭔가 문제가 생겨서 잠시 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뒤로 미룬 거뿐이란 걸 말이다.

그 문제가 해결 되면....김명진 회장은 분명 사업 상 도박에 가까운 위험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남을 분이니까.

그 길로 김명진 회장은 퇴근을 했고, 서진그룹 전략기획실과 비서실에 걸린 비상운영체제도 바로 해제되었다.

* * *

신비 처리자 에이전시로 들어 온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곳 소속 처리자 금명훈은 강원도로 열심히 차를 몰았다.

“강원도 XX요양원. 배성근 원장이라....”

자살로 위장한 제거는 언제나 까다로웠다. 그가 처리자로 20년 넘게 일해 오고, 이런 식의 처리를 수백 번도 넘게 해 왔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그 동안 발달한 경찰의 과학수사 시스템이 문제였다.

분명 자살로 보이기 잘 꾸몄는데, 그걸 타살로 규정해 버리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처리자 에이전시 윗선에서 일 똑바로 못한다는 질책을 받아야했다.

때문에 처리자들도 그에 맞게 더 신중하고 실수 없이 일 처리를 해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현장의 처리자들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배성근 원장이라는 작자를 없애는 거 보다, 어떻게 흔적 없이 자살로 잘 위장하는 가에 더 신경 쓰고 있는 금명훈이었다.

그렇다보니 그는, 자신이 모는 차에서 20-30미터 정도 떨어져서, 그의 뒤를 쫓고 있는 승용차 한 대가 있다는 것도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서 제거하는 건 어렵고....그렇다면 차 안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건데....”

금명훈은 배성근 원장을 차에서 어떻게 제거할지 계속 생각하면서, 현재 그가 있다는 강원도 리베라 컨츄리 클럽으로 향했다. 거기서 배성근 원장이 골프 치고 있다니, 그 골프 회동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도중, 그를 제거하면 될 거 같았다.

그랬는데 신이 돕기라도 한 걸까? 상황이 금명훈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배 원장이 XX요양원으로 갔다고?”

강원도 XX시에 도착하고 나니, 희소식이 그에게 전해져 왔다. 차 안에서 자살로 위장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것도 XX요양원은 병원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

거기서 배 원장을 제거하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금명훈은 곧장 XX요양원으로 갔고, 거기서 열심히 뭘 챙기고, 또 서류를 분쇄하고 있는 배 원장을 쭉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한숨 돌리고 쉴 때, 조용히 그가 있는 방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헉! 누, 누구....우웁!”

배 원장이 금명훈을 발견 했을 때 ,이미 마취제가 묻은 손수건이 그의 입을 가리고 있었다. 마취제를 흡입한 배 원장은 정신을 잃었고, 그렇게 쓰러진 그를 금명훈은 생각해 둔대로 자살로 위장해서 그를 죽였다.

그 뒤 자신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고, 유유히 XX요양원을 나온 금명훈.

“운이 좋았어.”

흡족해 하며 자신의 차에 막 타려던 그의 몸이 갑자기 굳었다.

“젠장....”

어째 오늘 운이 좋다고 했더니, 억세게 재수 좋았던 오늘이, 사실은 재수 없는 날이었던 모양이었다.

처리자라면 주변 경계가 기본이었다. 하지만 금명훈은 해선 안 될 방심이란 걸 했고, 그 결과....

“윽!”

그의 왼쪽 어깨가 뜨끔했다. 그리고 머리가 핑 돌면서 온 몸에 힘이 쭉 빠진 금명훈은, 맥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털썩!

그렇게 금명훈이 쓰러지고 나서 10여초 뒤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금명훈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금명훈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2인 1조로 움직임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 그때 금명훈을 살피던 사람이, 금명훈의 어깨에 꽂힌 마취총 주사기를 빼낸 후 말했다.

“완전 갔어. 들고 가자.”

“어.”

그 말에 겨누고 있던 권총을 치운 다른 사람이, 권총을 뒤춤에 꽂고는 동료가 있는 쪽으로 가서, 같이 기절한 금명훈을 들고 그들이 타고 온 차 쪽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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