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75화 (37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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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몰도바의 키시나우는 사실 관광지로 인기가 있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몰도바는 유럽에서 가장 적은 관광객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유럽 최빈국으로 알려진데다가, 나라의 크기도 작다 보니 이렇다 할 관광거리도 없었다.

원래 구 소련의 일부였지만, 소련에서도 가장 낙후 된 지역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소련 시대에도 다른 연방국가들 같이 눈에 띄는 발전 같은 건 없는 곳이었고.

몰도바는 경제의 40%를 농업에 의지하는 농업국가다. 결국 가진 것은 땅에서 만드는 와인과 사람 밖에 없는 곳이다 보니, 좋은 와인과 미인의 나라로 밖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태석규의 말처럼 태석규의 선친이 몰도바에 갈 일은, 와인과 여자 밖에 없단 소리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 더....

‘비자금 은닉해 두기 딱 좋은 곳이었지.’

물론 지금도 몰도바는 조세피난처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거기보다 버진아일랜드가 조세회피처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더 세금이 낮고 규제가 거의 없는데다가, 시설과 장비들이 잘 갖춰져 있었으니까. 그러니 몰도바의 비밀스런 자금도 그쪽으로 많이 빠져 나가고 있는 추세였다.

근데 내가 태석규에게서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도 문제였다.

‘거기 어느 세월에 갔다 오냐?“

거기 왔다 갔다 하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사흘은 걸릴 텐데 말이다.

이때는 한국에서 몰도바 가는 직항도 없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빈을 경유해서 가게 되면 16시간이 걸린다.

이걸 또 백준열이 기억하고 있었고, 거기다 심지어 몰도바의 카시나우에 간적도 있었다.

‘뭐 하러? 거기까지 왜 갔는데?’

근데 그건 또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

나는 삼명그룹도 몰도바에 비자금이 있지 않나 싶었다. 그 비자금 관리를 백승렬 회장이 막내아들인 백준열에게 맡긴 거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추측에 백준열의 기억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에이. 몰라....’

지금 중요한 건 태석규를 통해서, 몰도바 어디에 비자금을 숨겨 놓았는지 알아내는 거였다. 나는 한창 비자금에 대해 떠들고 있는 태석규를 불렀다.

“태석규?”

그러자 태석규가 하던 얘기를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에게 내가 불쑥 물었다.

“너 몰도바 가 본 적 있지?”

“어어. 있어. 거기서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그럴 거 같아서. 나도 거기 한 번 가 볼까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얘기 좀 해 봐.”

나는 이번에는 비자금에서 몰도바로 화제를 바꿨고, 태석규는 자신이 어떻게 몰도바에 갔는지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동안 몰도바에서 뭘 했는지 얘기했다.

그러다 그가 흥청망청 달러를 쓰다 보니 돈이 떨어졌고, 그래서 한국에 전화해서 돈 보내라고 지랄을 떨었더니, 그의 부친이 몰도바의 시티 은행에 가보라고 했다.

“시티 은행? 거기부터 자세히 말해 봐.”

“자세히 말할 것도 없어. 시티 은행에 들어갔더니 거기 아버지 개인금고가 있더라고. 그래서 그 개인금고에서 백 달러짜리 뭉칫돈 20개 챙겨 나온 게 다니까.”

태석규의 개인금고란 말에 내 입 꼬리가 스윽 위로 올라갔다.

“그 개인금고 말인데....”

나는 태석규에게 그 개인금고를 어떻게 들어갔는지 더 자세히 물었다.

‘그렇군.’

드디어 태석규의 선친이 어디다 어떻게 비자금을 숨겨 놓았는지, 눈치 차린 나는 웃으며 태석규에게 말했다.

“내가 봤을 때 너한테 매니저 일이 천직 같다. 열심히 해라.”

“어? 어. 그래.”

“나 간다.”

그 말 후 나는 태석규는 쳐다보지도 않고 승합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차 안에서 태석규라 뭐라고 했는데 바로 생 깠다. 녀석에게서 볼일 다 봤는데 뭐 하러 녀석과 말을 섞겠나.

단지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 충분한 단서를 줬으니 녀석이 우리 회사 매니저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배려는 해 줄 생각이었다. 물론 내 배려는 딱 거기까지고 이제 녀석과 나는 완전 남남이다.

* * *

태석규를 만난 뒤 차로 복귀한 나는 앞쪽 조수석의 김 비서를 보고 말했다.

“김 비서. 출장 좀 갔다 와야겠어.”

“출장이요? 어딘데요?”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김 비서는 나대신 출장을 많이 갔었다. 때문에 내가 출장을 언급해도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냥 무덤덤해 보였다. 뭐 내가 가라면 갔다 오면 된다는 식이랄까?

“몰도바.”

“네?”

하지만 출장 갔다 올 곳이 몰도바라고 하자, 그제야 놀란 듯 뒤를 돌아보는 김 비서. 그런 그녀에게 나는 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오늘 밤 비행기타고 출발해서, 거기 볼일 보고 하루 쉰 다음에, 일요일 오전 비행기 타면 월요일 아침에 한국에 올 수 있을 거야.”

“....”

그러니까 기어코 월요일 아침에는 정상 출근하란 소리였다. 내 그 말에 어처구니 없어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 비서. 하지만 내가 가라는 데 제가 어쩔 거야?

“하아. 알았어요. 그럼 지금 바로 퇴근할게요. 짐도 챙겨야 할 거 같고.”

근데 신기하게도 김 비서도 그렇고, 나도 몰도바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 정작 묻지도 말하지도 않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백준열의 기억이 바로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기밀을 요하는 중요한 사안은 백준열이 미리 김 비서에게 말하지 않는 단 거로군. 그녀가 한국을 떠날 때나, 아니면 몰디브에 도착하고 나면, 그때 내가 알아서 전화로 그녀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는 거네.’

즉 김 비서와 나 사이에 그런 룰이 있었고, 그건 그녀와 나만이 보일 수 있는 환상 케미라 말 할 수 있겠다.

“문 팀장. 차 한 대 김 비서한테 내 줘.”

“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

“어느 세월에....차 내주고 아예 김 비서 공항까지 데려다 주라고 해.”

내 그 말에 김 비서가 또 뭐라고 하기 전에, 문대식이 잽싸게 대답해 버렸다.

“알겠습니다.”

“....”

문대식이 그렇게 하겠다니 김 비서도 더는 거절하지 못했고, 이내 차에서 내렸다.

그런 그녀를 내가 탄 차 뒤에 따라 붙던 경호 차량이, 그녀를 태워서는 출구 방면으로 나갔다.

그걸 보고 내가 옆에 타고 있던 문대식을 쳐다보자, 그가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우리도 출발 해.”

그렇게 나를 태운 차가 크리스털 빌딩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왔고, 어디로 갈지 묻는 문대식에게 내가 말했다.

“회사로 다시 가.”

아직 퇴근시간이 되려면 멀었으니 도로 회사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런 나를 문대식이 빤히 쳐다봤다.

“뭐?”

“아니....회사 밖으로 나오면 다시 안 들어가시는 분이, 다시 회사로 가시겠다니까....”

“회사에 할 일이 있어서 가는 거니까, 가라면 좀 가.”

“네. 들었지? 회사로 간다.”

문대식의 말에 그제야 운전석의 경호팀원이, 뒤쪽 눈치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운전을 했다.

* * *

회사로 돌아 온 나는 곧장 김훈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근데 전에는 재깍 받더니 요즘 바쁘다고 내 전화를 한참 있다가 받았다. 그래도 받는 게 어디냐 생각하며 그에게 말했다.

“어제 내가 말했던 거 어떻게 됐어요?”

-아아.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추진호 대표가 숨겨 놓은, 동영상 원본과 비리 장부들 말씀이시군요?

“그걸 일일이 언급하는 거 보니 아직 찾지 못했거나, 아니면 깜빡 한 모양이네?”

-하하하하. 눈치가 백단이십니다. 다행히 후자는 아니고 전자입니다. 그 일을 맡겨 놓은 처리자 쪽에서 아직 전화가 오지 않아서 말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쪽에 알아보고 나서 연락 드려도 될까요?

확인 전화가 필요하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그러라고 할 밖에.

“알았어요. 그럼 알아보고 전화 주세요.”

그렇게 김훈 대표와 통화를 끝냈는데, 그때 김효석 실장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두 가지 일로 나를 찾아왔는데, 하나는 이번에 데뷔하는 걸그룹을 하나가 아닌 둘로 나눠서, 동시에 진행하자는 것과 다른 하나는 현재 매집 중인 QH엔터의 주식이, 오늘만 해도 당장 20%를 넘길 거 같으니, 내일이라도 당장 긴급임시주주총회를 열어서 QH엔터에 우리 쪽 사람을 대표로 세우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영입 한 해피걸스 멤버들을 주축으로 한, 걸그룹을 하나 더 론칭하고 싶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기존 해피걸스의 팬덤이 공고한 편이라, 그렇게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팬덤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실력과 괜찮은 노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해피걸스 멤버들이 다들 악바리 근성이 강하니 실력이야 트레이너 붙이면 늘 거고, 문제는 작곡인데 얼마 전 대표님께서 영입한 그 작곡가와 블랙아이, 그리고 라이언에게 곡을 좀 부탁해 볼까 하는데....”

“그렇게 하세요. 물론 그들을 맡고 있는 차은석 특수 1부문장과는 얘기를 잘 하셔야 할 겁니다.”

“차 부문장과는 계속 소통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새로운 걸그룹 데뷔는 투 트랙으로, 두 개의 걸그룹이 동시에 데뷔하는 걸로 진행하고, QH엔터 주식을 이렇게 빨리 끌어 모았다고요?”

“네. 아까도 말씀 드렸는데 오늘 접촉한 3명의 대주주들이 바로 주식을 넘기는 바람에, 주식 시장에서 끌어 모은 주식과 합쳐보니, 주식 보유량이 20%를 훌쩍 넘겼지 뭡니까.”

“20%면 경영권 가져 올 수 있는 거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내일 당장 긴급임시주주총회 열어서 QH엔터 경영권 가져 오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표로 내세울 사람은 정했고요?”

“네. 제가 나서긴 좀 그렇고 해서, 제가 아는 선배 중에 지금 집에서 놀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에게 부탁 좀 할까 합니다.”

“김 실장이 추진해 나갈 일이니까, 김 실장이 믿을만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게 맞죠. 그렇게 해요.”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렇게 내가 김실장과 얘기를 막 다 끝냈을 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 전화인지 바로 확인하니 김훈 대표였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전화라 내가 그 전화를 받으려 하자 김효석이 말했다.

“저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김효석을 보내고 좀 천천히 김훈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 * *

입소문이 괜히 무서운 게 아니었다.

“와아....이렇게나 일이 많아지다니....”

김훈 대표의 처리자 에이전시가 삼명그룹과 일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의뢰를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현재 김훈 대표의 에이전시는 삼명그룹 일을 해주기에도 빠듯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쪽 의뢰는 많이 할 수 없었고, 원래 공급이 적은데 수요가 많다보면 값이 오르는 게 시장의 원리 아니겠는가?

덩달아 의뢰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해서 원래 의뢰비 보다 5배나 올랐는데, 그 의뢰비로도 의뢰를 하겠다는 고객이 줄을 선 상황.

그렇다보니 김훈 대표 본인은 물론 아지트에 일하는 처리자 출신자들 까지 다 달라붙어서. 밀려 온 의뢰를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그로 인해서 돈은 엄청 벌어들이는데 처리자를의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었다.

“대표님. 1조 조장이 죽겠다고 하루만 쉬게 해 달라는데....”

“보너스 천만 원 지금 입금한다고 해요.”

“네.”

김훈은 불만이 터져 나오는 처리자들에게 바로 돈으로 입막음을 하며 현 상황을 계속 이어 나가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이니까.

이 물이 언제 빠질지 모르는데, 물들어 왔으니 좋다고 놀 거 다 놀고, 노를 저어서 언제 돈을 번단 말인가?

“천만 원 넣어 드렸더니, 1조 조장님께서 죽어도 일하다가 죽으실 거랍니다.”

다행히 돈으로 막고 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 근데 그 해답을 김훈 대표는 의외로 가까운데서 찾아냈다.

“그러니까 백준열 대표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뿐만 아니라 QH엔터까지 집어 삼키려 하고 있단 말이지?”

안 그래도 규모 면에서 국내에서 제일 큰 곳이 JYB엔터였다. 근데 거기다가 대형 기획사와 중소 기획사를 동시에 합병하려는 백준열을 보고 김훈은 그의 욕심에 혀를 내둘렀다.

“합병이라....”

그러면서 김훈도 인수합병에 대해서 생각이란 걸 해보게 됐다.

만약 김훈이 다른 처리자 에이전트를 인수합병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만 된다면 김훈 에이전트는 밀린 의뢰를 다 맡을 수 있게 될 것이었고, 그에 따른 자본이 확보 된다면 그 규모를 키워 나가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다.

문제는 처리자 에이전트는, 여느 기업처럼 주식을 사들이면 인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점이었다.

“하지만....”

인수합병하려면 또 못할 것도 없었다. 인수하고자 하는 처리자 에이전트의 대표를 만나서 잘만 담판 지으면 말이다. 하지만 그 대표를 만나는 거 자체가 어려웠다.

예전의 김훈이었다면 이런 생각 자체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김훈에게는 돈이 있었다. 제 아무리 만나기 어렵고 까다롭다는 처리자 에이전트 대표라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프리패스, 그게 바로 돈이니까.

그 돈을 쳐 바르자, 김훈이 만나고자 하는 처리자 에이전트 대표가, 그와 기꺼이 만나 주겠다고 했다.

“이거지. 하하하하.”

그 대답을 듣고 기뻐하며 기분 좋게 웃고 있던 김훈 대표. 그런 그에게 백준열의 전화가 걸려왔다.

“뭐지?”

김훈은 자기가 백준열에게 맡은 일이 있나 생각하며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백준열의 말을 듣고서야, 어제 백준열이 급하게 전화해서 자신에게 의뢰한 게 그제야 생각났다. 워낙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받은 의뢰였고, 그때는 김훈도 직접 의뢰를 맡아 처리 중에 있었던 터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누군가에게 그 의뢰를 맡겼는데....그게 바로 세르게이와 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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