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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결국 차 안에서 해피걸스 멤버들을 설득하게 된, 그녀들의 전 매니저 강기석.
이번에도 그의 예상대로 해피걸스 멤버들은, 자신과 같이 JYB엔터로 소속사를 옮기는 것에 동의를 해 주었다.
‘휴우. 다행이다.’
자신은 했지만, 혹시 몰라 내심 걱정했었던 강기석. 비록 말은 안했지만, 그녀들이 자신을 믿고 그렇게 하겠다고 해 준 걸, 모를 강기석이 아니었다.
‘애들아. 고맙다. 반드시 너희들을 최고의 걸그룹 멤버들로 만들어 주마.’
속으로 그런 다짐을 수십 번도 더 한 강기석. 그런 그가 막상 해피걸스 멤버들과 같이 SVS방송국을 빠져 나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현재 그가 진짜 맡고 있는 연예인인 여배우 오진주였다.
‘진주도 데리고 가야지.’
해서 차의 방향을 JYB엔터가 있는 쪽이 아닌, 오진주의 집 쪽으로 돌렸다.
물론 오진주가 아직 그녀 집에서 대본 연습 중인지 확인은 해 봐야겠지.
해서 차를 몰아 오진주 집으로 가면서, 강기석은 오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몰라서 그녀 집 전화가 아닌, 그녀 핸드폰으로 말이다. 그런데 신호는 가는데 오진주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강기석이 슬슬 오진주 걱정을 시작했을 때, 마침 오진주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네. 오빠.
“진주야. 왜 이렇게 늦게 전화 받아?”
오진주는 천생 거짓말을 못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티가 바로 났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 그게....마트에 뭐 좀 사러 나오느라....
“너 지금 어디야?”
-네? 그, 그게....
“거짓말 나쁜 거다. 특히 매니저와 배우 사이에.”
-죄, 죄송해요. 실은....
몇 마디 안했는데 순진한 오진주는 이실직고를 했다. 그녀가 지금 어디이며 어쩌다 거기 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뭐? 그런 걸 매니저인 나와 상의도 안하고, 덜컥 하겠다고 하면 어쩌니?”
-죄, 죄송해요. 작가님 사정이 딱해서....
“그쪽 사정이 진짜 어려운데, 너는 왜 불러내서 오디션을 보니? 그리고 입봉 작가가 연기 10년 넘게 한 너에게 지적 질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 그렇죠?
원래 강기석이 오진주 곁에 있었으면, 그녀가 겪지도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가 없었기에 생긴 기가 찬 이번 일을 두고, 사실 강기석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오진주의 매니저이니, 그녀가 벌여 놓은 이 일도 지금부터 그가 해결하는 게 맞았다.
“진주야. 너는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만 해. 오빠가 지금 거기로 갈 테니까.”
-네. 오빠.
오진주도 자신의 귀가 얇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기석이 그녀 매니저로 오고 나서, 무조건 강기석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다.
“우선 그 여자들한테 가서....”
강기석은 오진주에게 지금 오디션을 보고 있는 두 작가들에게 돌아가서, 어떤 식으로 말하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게 하고. 만약 그녀들이 이상한 소리 하거든, 매니저와 상의해 보고 얘기해도 되냐고, 말하고 나한테 전화 걸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거기 어딘지 주소 빨리 보내고.”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잠시 뒤, 강기석의 핸드폰에 오진주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강기석은 바로 확인하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가깝네.”
강기석은 이내 차선을 옆으로 옮기고는,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했다.
* * *
보통 TV에서 드라마라고 하면, 일일 연속극이나 주말 드라마, 혹은 주중 미니시리즈와 같은 장편 드라마들을 떠올리는데, 예전에는 한 편에서 열 편 미만의 단편드라마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특히 단편드라마는 장편 드라마에 비해 소재와 아이디어 면에서 제약이 적어, 신선한 아이디어를 지닌 신인 작가들, 그리고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인기를 끈 단편드라마는, 장편드라마의 퀄리티에 버금가는 탄탄한 구성과 재미를 가졌었다.
사실 김미주 작가도 입봉은 단편드라마로 했었다. 그랬기에 자기 보조 작가가 입봉을 앞두고, 예민하게 구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해는 됐는데, 그걸 받아 주는 입장에서는 사실 짜증날 일이었다.
‘작작 좀 하지.’
기껏 자신이 불러 온 연기자를 앞에 두고 지적 질을, 그것도 10분 넘게 하니 김미주 작가도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그때 오진주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그걸 보고 김미주 작가도 눈살을 찌푸렸다.
‘오디션 중에 핸드폰을 꺼두는 건, 기본 상식 아냐?’
오진주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못 지키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자, 오진주를 보는 김미주 작가의 눈도 싹 바뀌었다.
물론 오진주 본인이 그 걸려 온 전화를 받겠다는데, 그걸 제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받으라고 했더니, 냉큼 핸드폰 들고 오디션장을 나가 버렸다.
“하아....”
“으음....”
오진주의 오디션을 보고 있던 두 작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때 이번 단편드라마의 작가가 말했다.
“정말 실망이네요. 저는 걸려 온 전화 바로 끊을 줄 알았는데....”
“그러게. 오진주 배우. 에티켓이 좀 없네.”
끼리끼리 논다고 김미주 작가나 단편드라마 작가나, 둘 다 성향이 비슷했다.
예의를 중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건 말이다. 그리고 늘 그들이 제일 우선이었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면 따끔하게 얘기해야겠어요. 배우 이전에 사람부터 돼야지....”
“그러렴.”
두 사람이 오진주가 돌아오면 한 소리 하기로, 암묵적으로 동의를 해 놓고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자신의 매니저인 강기석과 통화를 끝낸 오진주가, 다시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섰다. 오진주는 쪼르르 두 작가가 있는 쪽으로 와서는, 그녀들과 마주 보는 곳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매니저가 급한 일로 전화한 거라서....”
그때였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단편드라마 작가가 오진주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죄송한 짓을 왜 해요?”
“네?”
“그렇지 않아요? 죄송한 거 알면서 전화는 왜 받냐고.”
대 놓고 정색하며 말하는 단편드라마 작가. 그런 그녀를 보고 오진주가 황당해 할 때였다.
“그래. 오디션 장에서 오디션 보는 데, 핸드폰 켜 놓은 건 예의가 아니지.”
김미주 작가가 옆에서 거들었다. 오진주는 그제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왜 나왔나 이해가 됐다.
* * *
강기석은 착해서 늘 이용만 당하는 오진주에게 충고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고 말하는 버릇을 좀 들여.
그래서 강기석과 통화 후, 오진주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생각하기에 지금 그녀가 이런 오디션을 받고 있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았다.
‘나는 하나도 안 아쉬운데?’
정작 아쉬워야 할 상대가, 그녀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자기 할 말 다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도 할 말을 좀 했다. 왜 죄송한 짓을 하느냐고 따지기에 말이다.
“매니저가 급한 일로 한 전화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뭐?”
“지금 저한테 반말하신 건가요?”
“아니 그건....”
“진주씨. 뭘 또 양 작가가 말실수 좀 한 거 가지고....”
“김미주 작가님. 작가님이 저 평생 먹여 살리실 거예요?”
“무, 무슨 소리를....”
갑자기 불똥이 자신에게로 튀자, 김미주 작가가 움찔 거리며 몸을 사렸다. 그런 그녀에게 오진주가 따지듯 말했다.
“그렇잖아요? 골랑 사흘 찍는 단편드라마 때문에, 지금 저보고 주말 드라마 접으라고 하시니까요.”
“하아....누, 누가 주말 드라마 접으랬다고....”
“매니저 전화 받지 말라면서요? 저 그 전화 안 받았으면, 주말 드라마 출연 날아갔어요.”
오진주의 그 말에 단편드라마 작가와 김미주 작가의 입이 합죽이가 됐다.
오진주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녀의 매니저인 강기석이 말해 준 대로 자기가 주도적으로 판을 이끌어 나갔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저도 얘기 좀 할게요. 김 작가님. 고맙다면서요? 그래 놓고 저를 여기로 부르신 건, 제가 그래도 되는 배우라서 그런 건가요?”
“아, 아냐. 진주씨. 오해야. 내가 말했잖아? 여기 있는 양 작가가 입봉 작이라서 불안해서....”
“그러니까 옆에 계신 작가님은 배려해 줘야 하고, 저는 아니란 거네요?”
“그, 그건....”
“양 작가님? 입봉 축하드려요. 근데 입봉 작가가, 10년차 배우에게 지적 질은 좀 아니지 않나요?”
“나도 작가로 글 쓴지 10년은 넘은 베테랑....”
“그 베테랑이....그래서 무슨 작품 하셨는데요?”
“....”
“김미주 작가님. 작가님은 진짜 베테랑이시죠? 그렇다면 내일 촬영 들어가는 단편드라마, 그것도 주연도 아닌 조연 배역을 하겠다고, 당장 나서 줄 배우가 있다고 보세요?”
그렇게 시작된 오진주가 찔러 대는 팩트 폭행에, 단편드라마 작가와 김미주 작가의 얼굴이 빠르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 * *
탑 스타급 배우가 아닌 한, 배우들은 감독이나 작가에게 철저히 을乙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김미주 작가와 단편드라마 작가는 알고 있었고. 때문에 오진주가 조목조목 맞는 말을 하고 있어도, 둘은 쉽사리 그녀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됐어. 그만 해.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래요. 하지 말아요. 10년 차 배우? 그래 봐야 무명 배우 주제에, 어디서 작가에게 이래라 자래라야?”
“대신 앞으로 내 작품이랑, 내가 아는 작가 작품에 출연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나도 당신 같은 배우 절대 안 써. 그러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져.”
“와아....”
오진주는 자신이 강기석이 시킨 대로 하면, 두 작가가 이런 식으로 강하게 나올 거라고 말한 강기석이 존경스러워졌다.
강기석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김미주 작가와 단편드라마 작가의 이런 강압적 대처에, 팍 기죽었을 오진주였다.
하지만 그걸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에, 오진주는 크게 놀라지 않고 바로 적절하게 대응해서 말했다.
“안 그래도 그만 두고 싶었는데, 두 분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 단편드라마 출연하기로 한 건, 작가님이 거부해서 취소 된 걸로 알고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진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꾸벅 두 작가에게 인사까지 하고는 뒤돌아섰다.
그런 그녀를 보고 김미주 작가와 단편드라마 작가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특히 당장 내일 오진주를 촬영장으로 보내야 하는 단편드라마 작가는 얼굴이 사색이 됐다.
“작, 작가님....”
그런 단편드라마 작가가 애처로운 얼굴로 옆에 김미주 작가의 팔을 붙잡았다.
이게 자기 일이라면 김미주 작가는 벌써 오진주를 내쫓았다.
하지만 자기 보조 작가의 일이다보니, 그러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 쉰 뒤, 오디션 장의 문을 막 열려는 오진주를 향해서 외쳤다.
“진주씨. 잠깐만!”
김미주 작가의 외침에 오진주는 열려던 문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는 뒤돌아섰다. 그런 그녀에게 김미주 작가가 말했다.
“우리가 미안해요. 진주씨에 대한 배려가 모자랐어. 인정 해. 그러니까 우리 양 작가 살려 주는 셈 치고, 이번 단편드라마에 출연 좀 해 줘요.”
그 말을 하며 김미주 작가가 옆에서, 여전히 그녀 팔을 잡고 있던 단편드라마 작가를 쳐다봤다. 그러자 단편드라마 작가가 그제야 잡고 있던 김미주 작가의 팔에서 손을 떼며, 오진주를 보고 말했다.
“사, 사정 좀 봐줘요. 그럼 그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니까.”
두 작가가 사과하고 나오자, 오진주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봤다. 비록 단편드라마지만 작품은 좋았다. 배역이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치고는 비중이 높았고. 특히 배우로서 단기간에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딱 좋았다. 단지 그녀가 자존심만 좀 굽힌다면....
“좋아요. 약속이니까 할게요.”
오진주가 그렇게 단편드라마 출연을 막 확정 지었을 때였다.
똑똑똑!
오디션 장 밖에서 노크 소리가 일더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웬 젊은 남자 한 명이 오디션 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그 젊은 남자를 보고 오진주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오빠!”
* * *
젊은 남자의 정체, 그러니까 오진주가 오빠라고 부른 이는, 바로 오진주의 매니저인 강기석이었다.
오진주로부터 이곳 오디션 장 위치를 문자 메시지로 전해 받은 그는, 마침 그가 차로 이동 중인 위치에서, 이곳 오디션 장이 가까운 걸 알고는, 바로 이쪽으로 차를 몰아왔다.
막상 도착하니 마침 오디션 장의 건물 입구 쪽에 주차 되어 있던 차가 빠지면서, 주차 문제도 쉽게 해결한 강기석.
그는 해피걸스 멤버들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오진주가 오디션 받고 있는 오디션 장으로 올라갔고, 마침 그가 오디션 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두 작가가 오진주에게 사과하고, 또 오진주가 단편드라마에 출연하겠다고 말하는 게 들렸다.
“쯧쯧....또 지 마음대로....매니저와 상의를 하라니까.”
혀를 차며 그 말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강기석은 오디션 장 문에 노크를 했다. 그리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진주의 매니저인 강기석이라고 합니다.”
넙죽 오디션 장 안에 있는 두 작가에게 인사부터 한 강기석. 그가 두 작가를 향해서 웃으며 말했다.
“오진주 출연에 대한 세부적인 조건 조율은, 그녀의 매니저인 저와 상의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오진주는 착하고 순진하지만, 그녀의 매니저인 강기석은 아니었다. 등장부터 만만찮아 보이는 강기석을 보고, 두 작가 긴장한 체 동시에 꼴깍 마른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