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65화 (36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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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SVS 가요 순위프로그램 ‘인기차트 100’의 녹화를 만족스럽게 끝낸 뒤, 강기석은 해피걸스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SVS방송국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때 해피걸스 리더 예나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6시부터 하는 행사만 없었어도, 숙소에 가서 파티 하는 건데....”

좁은 엘리베이터 안이라, 예나의 말이 그대로 강기석의 귀에 들렸다.

“파티? 무슨 파티?”

그래서 강기석이 예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예나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헤. 무슨 파티긴요. 오빠 매니저 복귀 축하 파티죠.”

그러자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나머지 해피걸스 멤버들이 일제히 강기석을 보고 말했다.

“오빠. 축하해요.”

“매니저 복귀 환영!”

그런 그녀들을 돌아보며 강기석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너희들 매니저 복귀하는 게, 어떻게 축하할 일이니? 고생길이 또 열렸는데.”

“뭐, 뭐라고요?”

“어떡해. 오빠한데 우리는 짐 덩어리들에 불과한가 봐.”

“오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제이나. 짐이야?”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안이 우울해졌다. 여기서 잘못 말했다가는 곧 울음바다가 될 거 같아서, 강기석은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너희들은 내 복 덩어리들이지.”

“....”

하지만 한번 다운 되어 버린 해피걸스 멤버들의 기분을, 강기석의 그 말이 되살리지는 못했다.

“좋아. 오늘 저녁에 파티 하자.”

“진짜요?”

단순한 제이나가 좋다며 언제 우울 했냐며 방긋 웃었다. 하지만 리더인 예나와 다른 멤버가 바로 그런 제이나를 다시 우울 모드로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행사 가야 하잖아요?”

“아아. 맞다. 그 놈에 행사....”

“이잉....행사 싫은데....”

보아하니 QH엔터의 홍대복 대표가, 해피걸스를 행사를 핑계로 이곳저곳 돌리도록, 스케줄을 짜라고 QH엔터 직원들에게 시킨 모양이었다.

그때 강기석이 고개를 내저으며, 해피걸스 멤버들에게 말했다.

“행사 안 가도 돼.”

“네? 혹시 행사가 취소됐어요?”

“아니. 너흰 앞으로 그런 행사 갈 일 없을 거야.”

“....”

그게 무슨 소리냐며 해피걸스 멤버들이 강기석을 쳐다 볼 때,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지하 4층입니다.

촤르르르!

“일단 내리자.”

강기석이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말하자, 그 뒤를 따라 나머지 해피걸스 멤버들이 우르르 그 뒤를 따라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 *

강기석은 일단 해피걸스 멤버들을 차에 태웠다. 그리고 차에 시동은 걸어 놓고, 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이미 해피걸스 멤버들이 초롱초롱하게 눈빛을 빛내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앞으로도 행사 안 뛰어도 된다는 거 무슨 소리에요?”

리더인 예나가 대표로 물었고, 강기석은 그런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내가 한 말 그대로다. 너희들....앞으로 이상한데 가서 노래 부르고 춤추지 않아도 돼.”

하지만 해피걸스 멤버들이 강기석에게 듣고 싶은 말은 그 이유였다. 왜 행사 뛰지 않아도 되는지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하는 말 잘 들어. 오늘 나는 QH엔터를 관뒀어.”

“네?”

강기석이 뜬금없이 퇴사했음을 밝히자, 해피걸스 멤버들의 눈이 다들 동그래졌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여전히 QH엔터에 속한 연예인이었으니까. 즉 강기석이 QH엔터를 떠났다면, 그 접점이 사라졌으니 그는 더 이상 그녀들의 매니저 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연예기획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어진 강기석의 말에 해피걸스 멤버들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강기석의 말대로라면 그와 그녀들은 이제 완전히 남남이었으니까. 하지만....

“근데 도저히 나만 못 가겠다. 그래서 너희들도 데리고 갈까 하는데....너희들의 생각은 어떠니?”

“네? 우, 우리를 데리고 오빠가 옮겨가기로 한 연예기획사로 가겠다고요?”

“그, 그게 가능해요? 우리 계약은요?”

해피걸스 멤버들이 강기석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 거렸다.

그녀들이 QH엔터와 맺은 전속 계약서가 있는데 그걸 뻔히 잘 아는 강기석이, 그걸 모르고 그녀들을 자기가 옮겨 갈 연예기획사로 데리고 가겠다고, 이렇게 쉽사리 말 할리 없을 테니까.

“너희들도 알거야. 너희들의 계약이 얼마나 노예계약인지 말이야. 해서 너희들이 옮겨갈 연예기획사에서, 그 계약 무효 소송을 재기할 거야.”

“아아....”

그러니까 재판으로 가겠다는 얘기였다. 해피걸스 멤버들도 재판으로 끌고 가면 자신들이 이긴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 앞선 사례가 이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무려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소속사에서 2심, 3심 질질 끌고 가면서 말이다.

그 동안 그 아이돌 그룹은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결국에 해체 된 거나 마찬가진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요즘도 몇몇 아이돌 그룹이, 소속사와 노예계약을 체결 했지만, 그걸 들추지 못하고 참으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강기석은 소송이란 말에 다들 걱정이 되는 듯, 불안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는 해피걸스 멤버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재판이 너희들의 장래에 악 영향을 미치지 일은 없어. 왜냐하면....너희들이 나와 같이 들어갈 연예기획사가 바로....JYB엔터니까.”

“네? 어, 어디라고요?”

“언니. JYB엔터래. JYB엔터! 요즘 제일 핫한 소속사!”

“우와아아아. 진짜에요? 진짜 우리가 JYB엔터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 맞다.”

“맙소사. JYB엔터라니....”

일단 해피걸스 멤버들은 자기들이 JYB엔터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다들 기뻐했다.

하지만 이내 우려 섞인 말들이 하나 둘씩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근데 거기서 우리를 계속 걸그룹으로 활동하게 해 준데요?”

“해피걸스라는 그룹명은 어차피 더 쓸 수 없는 거잖아요? 맞죠? 그러면 우리는 무슨 그룹명으로 활동해요?”

“설마 거기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죠?”

“그, 그건 좀....JYB엔터 같이 큰 소속사라면 연습생들 실력이 장난 아닐 텐데....”

그런 그녀들의 걱정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강기석이 말했다.

“걱정 할 거 없어. 너희들 4명은 JYB엔터의 새로운 걸그룹으로 바로 활동하게 될 테니까. 물론 해피걸스란 그룹명을 쓸 수는 없어. 그 그룹명의 상표, 저작권은 QH엔터에 있으니까.”

강기석의 그 말에 리더 예나가 바로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JYB엔터에서 새로 나올 걸그룹 멤버로, 확정 된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네요?”

“그런 셈이지.”

아직 정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강기석은 김효석 실장의 능력을 믿었다. 그라면 강기석이 계획한 대로, JYB엔터에서 해피걸스 멤버들이 주축이 된, 새로운 걸그룹을 만들어 줄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저는 좋아요.”

제일 먼저 리더 예나가 결정하자, 다른 멤버들도 바로 동의하고 나섰다.

“저도요.”

“JYB엔터 걸그룹으로 다시 데뷔라? 이거 꿈은 아니죠? 우리가 제 2의 MP4가 되는 거라고.”

“모두 Okey? 제이나도 OK!”

“좋아! 다들 동의한 걸로 알고, 그럼 JYB엔터로 간다?”

강기석이 자세를 바로하고, 차 핸들을 잡으며 외치자 해피걸스 멤버들이 일제히 외쳤다.

“네. 가요. Let's go!”

“고고고고!”

강기석은 그제야 차를 출발시켰고, SVS방송국 지하 주차장을 나온 차는 곧장 JYB엔터 사옥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강기석이 데리고 가야 할 연예인이, 그녀들만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다.

* *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강기석이 해피걸스 일로 오진주의 집을 나서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오진주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진주는 대본 연습 중에 말이다.

원래는 매니저인 강기석에게 가야 할 전화였다. 근데 그녀에게 간 것은 전화를 한 사람이 예전 오진주가 출연했던 드라마의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오진주가 출연했던 사극 드라마에서, 오진주가 보여 준 감성 연기가 마음에 들었던 중견 작가 김미주.

그녀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보조 작가 중에 한 명이, 이번에 KVS의 단편드라마도 입봉 하는데,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그 동안 보조 작가로 고생한, 자신의 제자나 마찬가지인 보조 작가였다.

이미 대본은 김미주도 봤는데 괜찮았다. 연출하는 PD의 인맥도 괜찮아서 주연급 남녀 배우 섭외도 끝났고.

그런데 배역 중에 감성적인 연기가 필요한, 조연 역할을 맡은 배우가 촬영을 불과 이틀 앞두고,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하게 되었다.

“어쩌죠? 선생님? 저 어떡해요? 네?”

보조 작가는 혹시 자신의 입봉작이 찍지도 못하고 접게 될까봐 호들갑을 떨며 걱정을 했다. 그런 그녀를 김미주가 달래며 말했다.

“드라마 엎는 게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니? 걱정 마. 남PD는 뭐래?”

“당장 그 정도 감성 연기를 할 수 있는 조연 배우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시죠. 찾고는 있다는데....”

“으음. 나도 한 번 알아볼게.”

그렇게 본격적으로 자기 인맥까지 동원해서 연기자를 찾아 나서게 된 김미주. 그런 그녀가 우연히 자신이 작년에 썼던, 사극 드라마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오진주가 나왔다.

“맞다. 오진주 배우가 있었지.”

그래서 김미주는 오진주가 그 배역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오진주에게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김미주는 당연히 그 연락처가 오진주 매니저의 번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진주가 직접 그 전화를 받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속으로 더 잘됐다 싶었다. 왜냐하면 당사자니까 섭외도 빨리 이뤄질 테니까.

“진주씨. 요즘 바쁘지?”

-네. 곧 SVS드라마 들어 갈 거라서....

“어머. 축하해. 진주씨는 잘 될 줄 알았어.”

-감사합니다.

“저기....이런 부탁을 해도 되려는지 모르겠는데....자기 단편드라마에 출연 좀 해주라.”

-단편 드라마요?

“어. 내 보조 작가가 이번에 입봉 하는데....”

김미주가 사연을 쭉 설명하자, 착한 오진주가 결국 그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고마워. 진주씨. 내가 오늘 일 잊지 않을 게.”

-아니에요. 어려울 때 돕고 사는 거죠.

오진주는 어차피 이번 주말까지 대본 연습만 할 계획이었다.

김미주의 말에 따르면 오진주가 해야 할 배역은, 내일부터 시작해서 주말까지만 찍으면 된다고 했다.

뭐 촬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흘이면 드라마 출연과 대본 연습을 충분히 병행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오진주는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않은가?

* * *

김미주와 실컷 얘기를 다 끝내 놓은 상태에서, 김미주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오디션이요?”

-진주씨. 미안. 작가가 너무 불안해해서.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이 되겠다나?

“그, 그렇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잖아. 진주씨. 나 봐서 여기 와서, 자기 명품 연기 한 번 보여 주라. 어?

사실 작년에 김미주 작가의 사극 드라마에 출연한 것도, 따지고 보면 PD 때문이었다.

김미주 작가는 애초 무명 배우인 오진주를 탐탁지 않게 여겼었다.

그래 놓고 오진주가 그 배역을 소화하자, 그제야 감성 연기니 뭐니 하면서, 미안함에 호들갑을 떨었던 김미주 작가.

그러니까 오진주가 김미주 작가 봐서, 갑작스럽게 오디션 보러 갈 필요는 없었다. 막말로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착한 오진주.

“알았어요. 거기 어딘지 주소 문자로 좀 보내 주세요.”

-그럼 한 시간 안에 여기로 올 수 있겠네?

“네? 아아....”

그래도 여배우인데 꾸미는데 만 한 시간은 걸린다. 그런데 한 시간 안에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미안. 내가 좀 바빠서 그래. 올 수 있지?

“네. 갈게요.”

원래는 미용실에 들러야 했는데, 시간이 없는 관계로 자신이 급하게 메이크업과 머리를 손 본 오진주. 그 직후, 그녀는 차 키를 챙겨서 집을 나섰고, 김미주 작가가 보내 준 문자 메시지의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는, 그곳으로 직접 차를 몰아갔다.

“어서 와. 진주씨. 근데 조금 늦었네?”

김미주 작가는 오진주가 5분 정도 늦었다고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죄, 죄송합니다.”

사실 근처에 주차할 곳이 없어서 늦었는데, 그 말을 하자니 자기가 매니저도 없는 배우라고 상대가 오해할까 봐, 차마 그 말은 못한 오진주.

“진주씨. 내가 인생 선배로서 말하는데, 약속 시간은 꼭 지키는 게 좋아.”

“네. 앞으로는 약속 시간 꼭 맞출게요.”

“그래. 가자.”

김미주는 오진주를 오디션 장에 있는 자신의 보조 작가에게로 데리고 가서 소개 시켰고, 즉석에서 그 작가가 건넨 대본을 받아서 감성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자 보조 작가의 굳어 있던 얼굴이 바로 펴졌다.

“좋네요.”

“내말 맞지?”

“근데 연기 하실 때 쪼가 좀 있으신 거 같으신데....왜 쪼가 심한 배우들의 단점이 뭔 연기를 해도 다 비슷해 보인다는 거 아시죠? 그래서 캐릭터가 획일화 되어 보이고....맡으신 배역인 최영주는 소심하고 평범해서 인간인데, 연기하실 때보면 좀 다르게 보인다고 할까? 그러니까 제 말은....선과 악이 공존하는....”

오진주는 갑자기 골머리가 지끈 거리며 아파왔다. 자신이 맡은 배역이 무슨 주연 배우도 아니고, 조연 연기하는 데 작가가 바라는 게 너무 많았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그녀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그녀 매니저인 강기석이었다.

“저 전화 좀....”

“어어. 그래. 받고 와.”

두 작가 모두 불쾌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를 여기로 부른 김미주 작가가 마지못해 허락하자, 오진주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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