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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사람은 누구나 한 성질을 한다. 그걸 도덕적인 잣대로 절제할 줄 알았을 뿐.
근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폭발한다. 지금이 그랬다.
“수빈이. 잘못했다.”
해피 걸스 멤버들과 수빈이 티격태격 거릴 때, 늘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재미교포 출신의 멤버 제이나. 그녀가 도끼눈을 뜨고 수빈을 쏘아보며 말했다.
“뭐?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년이 뭐래? 그 눈깔 깔아라!”
제이나의 말에 바로 가시를 펼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빈. 하지만 평소 조용하던 제이나가 그녀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나오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래. 수빈이 니가 잘못했어.”
“다른 건 다 참아도, 그룹을 망치는 건 참을 수 없어.”
“맞아. 사과해.”
멤버들 전체가 들고 일어나서 그녀를 성토하자 확실히 놀란 듯 보이는 수빈. 하지만 수빈의 성질머리는 애초부터 틀려먹었다. 거기다 자존심 강한 그녀가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할리 없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너희들, 나 지금 왕따 시키는 거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수빈. 그것에 격노한 리더 예나.
“왕따! 너 진짜 안 되겠구나.”
“그래. 어디 너 진짜 따 한번 당해 봐라.”
“말이면 단 줄 아나. 너 일루 와.”
하필 전 연예기획사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해서, 그곳을 나온 경력이 있는 해피 걸스의 멤버, 유나가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리면서, 수빈에게 달려들었고 싸움이 시작됐다.
“아악! 이거 놔!”
“못 놔. 이년아.”
제대로 악을 쓰고 싸우지 않아서 그렇지, 유나가 날 뛰자 쩔쩔 매던 수빈.
그래도 미친년 값을 한답시고 수빈이 유나와 같이 머리채 잡고 싸우기 시작하자, 다른 멤버들이 움직였다.
“너 오늘 죽어 봐.”
“이런 년은 좀 맞아야 해.”
순딩순딩하던 멤버들이 빡치자 더 무섭게 돌변했다. 특히 미국에서 복싱을 배운 적 있는 제이나가 휘두르는 주먹은 매서웠다.
퍽! 퍽!
“아아악! 사람 살려!”
당연히 1대 1로 싸울 때와 1대 4로 싸울 때는 달랐다. 수빈도 나름 반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한 손에 네 손을 감당해 낼 수는 없었다.
결국 수빈을 상대로 일방적인 집단 폭행이 시작 되었고, 수빈은 몸을 웅크리고 자기 방어하기 급급했다. 그런 수빈의 몸을 나머지 멤버들이 가차 없이 밟고 때리고 있을 때였다.
“그만!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귀에 익은 하이 톤의 남자 목소리. 그 소리가 수빈으로 인해 날아가 버린 해피 걸스 멤버들의 이성을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오, 오빠!”
“기석 오빠다!”
해피 걸스 멤버들이 두들겨 패던 수빈은 내버려 두고, 반가운 얼굴로 우르르 그녀들의 전 매니저였던 강기석에게로 몰려갔다.
* * *
강기석은 해피 걸스 멤버들의 숙소에 도착하자, 익숙하게 근처에 비어 있는 곳을 찾아내서 차를 댔다. 그리곤 연립주택 3층에 위치한 해피 걸스의 현 숙소로 올라갔다.
띠띠띠띠띠띠!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숙소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습관적으로 눌렀다.
띠리릭! 철컥!
그러자 숙소 현관문이 열렸고, 자연스럽게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강기석은, 자신이 아는 한 절대 그럴 리 없는 착한 해피 걸스 멤버들이, 누군가를 집단 폭행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기겁했다.
하지만 그 놀람도 잠시, 바로 소리쳐서 해피 걸스 멤버들의 그런 난폭한 행동을 저지시킨 강기석.
그런 그를 보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와서, 세상 순진한 얼굴로 반가워하는 해피걸스 멤버들.
“오빠. 보고 싶었어.”
“기석 오빠. 우리 안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말도 없이 가기 있어요?”
“전화 좀 자주 하지.”
“너희들 진짜....”
좀 전까지 자신들이 뭔 짓을 하고 있었는지도 잊은 듯 보이는, 해피 걸스 멤버들을 보고 강기석이 기가 차 할 때였다.
“C발년들. 감히 나를 이렇게 만들어? 내가 너희들 가만 둘 거 같아!”
수빈이 딱 봐도 엉망진창인 꼴로 씩씩대며 해피 걸스 멤버들을 향해 삿대질을 해 댔다.
그러자 그제야 자기들이 좀 전까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해피 걸스 멤버들. 그녀들이 강기석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강기석이 있는 쪽으로 걸어 온 수빈이 그에게 말했다.
“매니저님도 보셨죠? 이제 어쩔 거예요? 저 이거 못 참아요.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수빈이 강기석 앞에서 악을 써가며, 자신이 당한 것에 대해 분노를 토로하고 있을 때였다. 강기석이 제이나를 보고 물었다.
“왜 그랬어?”
다른 멤버들은 몰라도 제이나는 참았어야 맞았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복싱한 한 그녀의 경우 사람을 때리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강기석이 늘 그녀에게 싸움 나면 너는 피해 있으라고 했고, 여태 그 말을 철저히 지켜 온 제이나였다.
“수빈. 나쁘다. SVS PD 전화 받았다.”
“뭐라고?”
제이나의 그 말에 전세가 바로 역전 되었다. 바로 다른 멤버 유나가 가세했다.
“저년, 아니 수빈이 SVS PD한테 우리 숙소 있다고 말했어요.”
유나의 말에 강기석이 일그러진 얼굴로 수빈을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전화 받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 그거야....당신 우리 매니저도 아니잖아? 전 매니저가 무슨 상관인데.”
좀 전까지 강기석을 보고 매니저라고 했다가 자기가 불리해지자, 전 매니저라며 그를 바로 깎아 내리는 수빈. 그런 그녀의 인성에 강기석도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알았어. 상관 안할 테니까. 나가.”
“뭐?”
“애들아. 저년 내 눈앞에서 치워 줄래?”
어차피 강기석이 있을 때 해피 걸스 멤버도 아니었다. 그러니 수빈에 대한 애정은 손톱만큼도 없었던 강기석. 그는 수빈을 숙소에서 내쫓는데 일고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악. 이거 놔. 놓으라고....아아악!”
네 명이서 수빈 하나 쫓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좀 전까지 악에 받쳐서 두들겨 패던 수빈이었다. 해피 걸스 멤버들의 손속에는 인정사정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해피 걸스 기존 멤버들이 골칫덩어리 새 멤버 수빈을 숙소에서 쫓아내는 동안, 강기석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 * *
해피걸스 리더 예나가 조심스럽게 생각 중인 강기석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SVS PD가 수빈과 통화 중 전화를 끊었는데....이제 어쩌죠?”
아무래도 활동 중인 걸그룹의 리더인 예나가, 지금 뭐가 급한지를 제대로 짚고 있었다.
“그 PD, 남자였어?”
“네. 남자 목소리였어요.”
수빈이 통화한 SVS PD가 남자라는 말에 강기석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SVS 가요 순위프로그램인 ‘인기차트 100’의 PD는 두 명이었는데, 그 중 여자 PD는 깐깐하기로 유명했다. 그에 반해 남자 PD는 돈 좋아하고 여자 밝히는, 문제가 좀 있는 작자였다.
강기석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에서, 그 남자 PD 전화번호를 찾아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윤 PD님. 저 강기석입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자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네. 근데 좀 전에 듣기로 저희 수빈이한테 전화 하셨다고. 네. 아니 그게, 수빈이 한테 문제가 좀 있어서 그 애 빼고 기존 멤버들로만 활동하기로 했거든요. 네. 당연히 아니죠. 저희 지금 SVS방송국에 다와 갑니다. 네. 아참. ‘헤라’ 잘 있죠? 그때 찍은 사진 아직 잘 가지고 있습니다. 네. 제가 원하는 게 뭐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 애들 좀 늦을 거 같은데, 윤 PD님이 조금만 신경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SVS 윤 PD와 통화를 끝낸 강기석이 외쳤다.
“얘들아. 빨리 의상 챙겨. 메이크업 받으러 가자.”
그때였다. 어느 새 의상 다 챙기고 나갈 준비를 끝낸, 해피 걸스 멤버들이 강기석 앞에 서 있었다.
이심전심이랄까? 강기석이 통화 할 동안 그가 뭐라고 할지 알고, 해피 걸스 멤버들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잠시 감격어린 얼굴로 해피 걸스 멤버들을 쳐다보고 있었던 강기석. 그가 그녀들 뒤의 벽시계를 보고 다시 외쳤다.
“다 챙겼으면 나가자.”
강기석은 해피걸스 멤버들과 같이 숙소를 나와서, 자신이 몰고 온 차에 태우고는, 그녀들의 메이크업을 전담해서 해주고 있는 강남의 한 미용실로 출발했다.
그 사이 해피걸스 숙소에서 쫓겨 난 수빈. 그녀는 당장 경찰서로 달려갈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 그랬다간 그녀 걸그룹 인생도 이대로 쫑 날 거 같았다.
그래서 해피걸스의 진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전화 걸어도 받지 않는 그가, 수빈의 전화를 받을 리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QH엔터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황 차장님 계시죠?”
현재 QH엔터의 실세라 볼 수 있는 황치열에게, 자신이 해피 걸스 멤버들에게 집단구타 당한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던 수빈.
“네? 안 계시다고요?”
지금 상황에서 수빈은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특히 회사는 그들 직원인 강기석의 말을 더 믿지 그녀 말을 믿을 리 없었다.
“아뇨. 됐어요.”
결국 다른 QH엔터 관계자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은 수빈.
“이제 어쩌지? 아아!”
그때 그녀의 뇌리에 전에 황 차장에게서 받았던 명함이 생각난 수빈.
“분명 지갑에 넣어 뒀는데?”
지갑을 뒤진 그녀는 이내 황치열의 명함을 찾아냈다. 그리곤 그 명함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띠띠띠띠띠....
하지만 황치열의 핸드폰은 통화 중이었고, 무려 한 시간을 계속 전화 건 결과, 드디어 그와 통화가 연결 됐다.
“황 차장님. 저 수빈인데요?”
-수빈?
“네. 해피걸스 새 멤버요.”
-하아. 수빈아. 내가 지금 무지하게 바쁘거든. 그러니까 문제가 있으면 매니저에게 얘기 해.
뚜뚜뚜뚜뚜뚜....
“여보세요? 에이 씨....”
그 말 후 대뜸 전화를 끊어 버리는 황치열. 어떻게 연결한 전환 데. 제대로 열 받은 수빈이 다시 전화 했지만 황치열의 전화는 또 통화 중이었다.
* * *
김효석 실장은 백준열 대표가 출근하자마자 그를 찾았다.
“무슨 일인데요?”
백준열은 김 비서를 시켜서 차를 내 오게 해 놓고서는, 그 차가 나오기도 전에 김효석에게 출근 댓바람부터, 자신을 찾아 온 이유를 물었다.
“QH엔터라고 아시죠?”
“네. 그런데요?”
그곳 대표인 홍대복을 실종 처리 시킨 당사자가 바로 자신인데 당연히 모를 리 없지.
“혹시....QH엔터 인수합병하시는 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QH엔터를 요?”
JYB엔터는 이미 외적으로 체급을 키울 만큼 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준열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합병하려는 건, 그로인해서 발휘 될 시너지 효과가 충분히 컸기 때문이었다.
일단 단숨에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고, 특히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가 구축한 중국과 일본, 동남아 쪽으로 인프라를 통해서, JYB엔터가 좀 더 글로벌한 엔터테인먼트사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QH엔터 같은, 엔터 업계에서는 나름 중견 기업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거길 인수 합병해 봐야, 안 그래도 비대한 JYB엔터의 체급만 키울 뿐, 그다지 큰 메리트는 없었다.
김효석은 자신의 말에 시큰둥한 얼굴 표정을 짓는 백준열을 보고 그에게 말했다.
“QH엔터를 인수하시되, 그곳 알짜배기 연예인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정리 해 버리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거기 직원들의 고용승계와 계약 된 소속 연예인들을 다 받지 말자는 말이군요?”
“그렇지요. 제가 거기 있어서 누구보다 그곳에 대해 잘 압니다. 저희 쪽으로 데려 오면 대박 날 연예인이 거기 몇 명 있습니다.”
백준열은 김효석의 ‘대박’이란 말에 눈빛을 강하게 빛내면서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좋습니다. 거길 인수한다고 칩시다. 어떤 식으로 인수할지 다 생각하고 여기 오신 걸 테지요?”
“네. 지금 QH엔터는 대표가 실종 된 상태로....”
김효석은 대표 부재 상황에서 곧 QH엔터의 대주주들이, 새로운 대표를 선임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주식 시장에 나온 QH엔터의 주식을 사들이고, 또 주가가 더 떨어지기 전에 주식을 팔려는 대주주들이 있을 테니, 그들과 접촉해서 그들 주식을 사들이면, 대략 20-30%의 주식만 획득해도 QH엔터의 경영권은 손쉽게 백준열이 쥘 거라고 봤다.
“그렇게 경영권을 쥔 다음에....QH엔터에서 쓸 만한 연예인들은 다 저희 회사로 옮기고, QH엔터 주식 팔아치운 뒤, 손 털어 버리면....”
“좋군요. 좋아. 그래서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백준열은 김효석이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지금 김효석에게 필요한 건 돈이라는 것도.
“대략 50억에서 60억이면 됩니다.”
“싸군요. 오늘 중에 결재 올리세요. 바로 집행할 수 있게 조치해 둘 테니 말입니다.”
김효석은 50-60억이 싸다는 백준열의 배포에 감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재벌 3세가 아냐.’
더불어 그런 재벌 3세가 대표로 있는 JYB엔터에 들어 온 게, 또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 아시겠지만 제 발이 좀 넓습니다. 정재계에 두루두루 말이죠.”
“네.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금상첨화라고, 백준열은 돈만 많은 게 아니었다. 인맥도 대단해서 JYB엔터에 들어와서, 일 처리하는 데 있어 막히는 곳이 없었다. 다들 JYB엔터라고 하면 알아서 척척 일들을 처리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더 일할 맛이 났다.
들어 올 때는 다소 긴장한 얼굴이었던 김효석 실장. 나갈 때는 환하게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표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