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55화 (35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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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무엇보다도 오진주는 외모도 괜찮은 편이라, 회사에서 신경만 좀 더 써줬다면 탑 스타까지는 아니어도 주연급, 연기파 여배우로 제 몫은 충분히 다 해 낼 수 있는 배우였다.

그런데 QH엔터에서는 그런 오진주를 방치했고,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매니저도 붙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감이 바닥을 친 오진주가 점점 더 진흙 속에 파묻혀 간 것이고.

강기석이 그런 그녀를 맡고 나서, 그걸 한눈에 알아보고서 그가 한 건, 그냥 진흙 속에 그녀를 밖으로 끄집어 내 준 것 뿐이었다.

나머지는, 빛나는 그녀가 알아서 드라마 오디션에서, 자기 몫의 배역을 따 낸 것이고 말이다.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이러다 저희 회사 정말 문 닫는 거 아니겠죠?”

“QH엔터가 구멍가게도 아니고. 엄연히 주식회산데 그리 쉽게 망할 리 없어. 그러니 넌 걱정 말고, 다음 주에 있을 대본 리딩 현장에나 신경 써.”

“그 드라마 대본은 이미 다 숙지했어요. 근데 그 드라마까지 잘못 되는 건 아니겠죠?”

말이 씨가 된다고 해야 하나? 하필 그때 강기석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그 드라마 PD였다.

“네. 장PD님. 네? 아닙니다. 그냥 연예계에 돌고 있는 뜬소문 일 뿐입니다. 그럼요. 저희 회사가 왜 망합니까? 네? 해피 걸스가요? 그럴 리 없는데....네. 제가 알아보고 해피 걸스 매니저에게 담당PD님께 전화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네.”

굳은 얼굴로 통화를 끝낸 강기석. 그가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광현. 이 새끼는 도대체 아이들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무슨 일인데요. 오빠?”

강기석은 자신이 맡아 온 연예인들에게 그랬듯이, 오진주에게도 자신을 ‘매니저님’으로 부르지 말고 ‘오빠’로 부르게 했다.

오진주가 진짜 화난 얼굴의 강기석을 보고 묻자, 그가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하아....나 대신 해피 걸스 맡은 이광현 팀장이 연락이 안 된다네. 오늘 SVS 가요 순위프로그램인 ‘인기차트 100’의 PD가, 우리가 들어갈 드라마 PD와 친한가 봐. 그래서 네가 QH엔터 소속 배우란 걸 알고 있는 드라마PD가 나한테 전화를 한 거고. 우리 회사에 안 좋은 소문 도는 것에 대해서 궁금했던 거 같고.”

“해피 걸스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글쎄. 이제부터 알아 봐야지.”

그 말 후 강기석은 제일 먼저 해피걸스 매니저인 이광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SVS PD가 전화 걸어도 안 받는 전화를, 강기석이 걸었다고 해서 받을 리 없었다.

강기석은 바로 해피걸스의 코디네이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코디도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 되겠다.”

강기석은 가급적 해피 걸스 멤버들에게는 전화를 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해피 걸스 멤버들 중에서 강기석과 가장 친했던 멤버인 제이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랬더니 제이나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어째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해피 걸스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그녀였다. 언제나 상큼하고 톡톡 튀는 목소리가 매력적인 제이나가, 이렇게 풀 죽고 가라앉아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제이나. 나 기석 오빠야.”

-오빠! Where are you? 여기 큰일 났어.

“큰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수빈이가 예나 언니랑 싸운다.

“뭐?”

예나는 해피 걸스의 리더이며 맏언니다. 해피 걸스의 메인 보컬이기도 한 그녀는, 차분한 성격에 이해심이 많아서 밑에 멤버들을 잘 이끌었다.

강기석이 해피 걸스 매니저 였을 때, 만약 예나가 없었다면 지금의 해피 걸스도 없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만큼 해피 걸스에 있어서 예나는 정신적인 지주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예나가, 그것도 새로 들어간 멤버 수빈이랑 싸운다고?

“미꾸라지 한마리가 기어코 해피 걸스를 흙탕물로 만드는구나.”

-미꾸라지? What?

재미교포인 제이나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하는 건 아직 좀 서툴렀다.

“너희 매니저는? 이광현이 어디 있어?”

-이 매니저님? 몰라? 아침에 안 왔어.

“뭐? 그럼 거기 숙소란 얘기야?”

-어. 맞다. 숙소.

“이런....‘인기차트 100’ 출연은 어쩌려고...”

SVS 가요 순위프로그램인 ‘인기차트 100’의 PD가 난리가 난 게 이해가 됐다.

비록 녹화라지만 지금쯤 해피 걸스 멤버들은 SVS방송국 대기실에 가 대기타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해피 걸스 멤버들이 아직 숙소에 있다면....

이 사실을 SVS PD가 알아선 안 됐다. 그래서 강기석이 제이나에게 말했다.

“제이나.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멤버들한테 가서 어디서 걸려오는 전화나 핸드폰 절대 받지 말라고 해. 어서.”

-알았다.

그렇게 제이나와 통화를 끝낸, 강기석이 오진주를 보고 말했다.

“진주야. 너 대본 연습하고 있어. 나 애들 숙소 좀 갔다가....”

원래는 ‘갔다가 올게.’라고 해야 맞았다. 하지만 해피 걸스 숙소에 갔다가 바로 올 수는 없었다. 거기 가면 애들 데리고 SVS방송국으로 당장 가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해피 걸스의 매니저가 아닌 오진주의 매니저였다. 매니저로서 자기 연예인은 버리고, 다른 연예인의 스케줄을 챙긴다는 건 분명한 직무유기였다. 그런 강기석의 심정을 이해한 듯 오진주가 말했다.

“전 괜찮으니까 애들 살펴 주세요.”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오빠 없을 때 저 혼자서도 잘 다녔어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어서 가 보세요. 애들 기다리겠다.”

“그, 그래. 고맙다. 이해해 줘서.”

강기석은 후다닥 차 키를 챙겨서 오진주의 집을 나섰다. 그렇게 그가 해피 걸스의 숙소로 열심히 차를 몰아 갈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환지 확인하니, 얼마 전 QH엔터를 퇴사하고 다른 연예기획사로 이직한, 전 콘텐츠 사업부 본부장인 김효석이었다.

* * *

자신이 운전 중일 때는 전화를 잘 안 받는 강기석이었지만 김효석의 전화는 받았다. 왜냐하면 김효석은 회사를 관두기 전까지, 강기석이 가장 의지했던 본사 임원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현실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네. 본부장님.”

-명철이 한데 대충 얘기는 들었다. 회사 꼴이 말이 아니라고?

“명철이 녀석은 뭐 하러 그런 얘기를 본부장님께 해서는....”

-우리가 남이냐? 그 정도 말을 할 수 있지. 그래서 넌 어쩔 거야?

“뭘 말입니까?”

-명철이는 내가 거두기로 했다.

“....”

우명철을 김효석 본부장이 거두기로 했다는 말은, 곧 자신도 데려 가려고 전화를 했단 소리였다. 하지만 우명철과 달리 강기석은 바로 김효석 본부장의 그 제의를 수락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직도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연예인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김효석이 누구던가? 그런 강기석의 속내를 간파해서 말했다.

-너 오진주 관리한다며? 오진주 데리고 넘어 와. 법적인 문제는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김효석 본부장의 입에서 법적 처리 얘기가 나왔다는 건, 오진주를 문제 없이 QH엔터에서 빼내 올 수 있단 얘기였다. 그런데 강기석에게는 오진주가 다가 아니었다.

-뭐야? 왜 대답이 없어?

김효석은 자기가 이렇게까지 해 주면, 강기석이 당연히 자기에게로 올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죄송한데....해피 걸스는 안 됩니까?”

-해피 걸스! 야! 걔들은....하아....기석아. 너도 알겠지만 어느 연예기획사에서, 자신들의 주축 연예인을 순순히 넘기니? 이건 법적 문제가 다가 아냐.

“그렇다면 저도 못 갑니다.”

-너 거기 있다가 좋은 꼴 못 봐. 그래도 좋아?

“어쩔 수 없죠. 뭐.”

-하아. 이런 답답한 놈을.... 그래. 일단 알아 는 보마. 해피걸스를 우리 회사로 데려 올 수 있는지.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마.

“고맙습니다. 본부장님.”

-끊어.

뚜뚜뚜뚜뚜뚜....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강기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김효석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후후후후. 성질은 여전 하시네.”

강기석은 김효석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가 나서면 비록 해피걸스를, 그대로 다른 연예기획사로 데려가서, 지금처럼 하던 활동을 마저 이어나가게 만들지는 못해도, 그 멤버들로 그곳에서 걸그룹을 만들어서, 걸그룹 활동만큼은 계속 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제 애들을 어떻게 설득시키는가, 그게 문제인가?”

좀 전까지만 해도 암울했던 강기석의 기분이, 그래도 김효석과 통화 후 많이 밝아졌다.

왜냐하면 김효석 때문에, 어떻게 살길이 열릴 거 같았으니 말이다.

* * *

QH엔터의 대표인 홍대복 빼고 다들 우려 했던 일이 터졌다.

새롭게 해피 걸스 멤버로 합류한 수빈은, 자존심이 세고 자기 고집이 강했다.

그래서 아니면 죽어도 아니었는데, 그런 그녀의 성향은 해피 걸스의 기존 멤버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그래서 합류 한 그 시점부터 부딪치기 시작한 멤버들의 갈등은, 이제 거의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리더라고 그걸 중재해 보려고 나섰던 예나마저도, 수빈의 고집 앞에 두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

“그래. 니 마음대로 해.”

“뭐? 내 말이 틀렸으면 뭐가 틀렸는지를 말해. 그렇게 질렸다는 듯 말하지 말고.”

-네가 질리게 하잖아? 너는 어떻게 너만 생각하니?“

“그럼 내 파트는 내가 지켜야지. 니들 시키는 대로 했다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라고?”

“그게 어떻게 꿔다놓은 보릿자루야? 네가 가져 간 파트가 나보다도 많은데?”

“그러면 뭐해? 메인 파트는 하나도 없는데.”

“뭐, 뭐? 메인 파트?”

수빈은 정말 자신의 주제를 너무 몰랐다. 그녀가 메인 파트를 가져 갈 실력이라도 됐다면, 그나마 그녀의 이런 억지를 다른 멤버들도 이해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맡은 파트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해, 해피 걸스에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이없게도 메인 파트를 요구하고 있었다.

“하아....도저히 얘기가 안 되네. 그만하자.”

“그만하긴 뭘 그만해. 네가 시작하자면 하고, 네가 그만두자만 내가 그만둬야 해?”

“그러면 어쩌자고?”

“어쩌기는 파트 다시 바꿔야지.”

예나는 더는 수빈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어나서 나가려는 데....

팍!

“아악!”

“가긴 어딜 가!”

뒤에서 수빈이 먼저 예나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챘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머리 못 놔?”

“못 놓겠다면?”

“이게....”

그렇게 예나와 수빈이 머리채를 잡고 싸웠고, 그걸 말리려고 뛰어 들어 온 멤버 둘도, 이내 그 싸움에 끼었다. 왜냐하면 말리는 도중에, 수빈이 두 멤버가 예나 편을 든다며, 그녀들의 머리채를 잡았기 때문에.

해서 3대 1의 싸움이 벌어졌는데....놀랍게도 그 싸움의 승자는 수빈이었다.

연습하고 무대에 섰을 때나 발휘 했으면 좋았을, 악바리 근성을 수빈은 싸움에서 발휘한 것이다. 또 예나나 해피걸스 다른 두 멤버들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수빈에 비해 덜 전투적이었고.

그들의 싸움은 또 다른 멤버인 제이나 때문에 끝이 났다.

“매니저님 전화 왔다. 지금부터 전화, 핸드폰 못 받는다.”

그게 무슨 소린지 수빈도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날 뛰지 않자 싸움은 알아서 끝나졌던 것.

“제이나. 그게 무슨 소리야? 전화, 핸드폰을 못 받는다니?”

수빈에게서 겨우 풀려난 리더 예나가 제이나에게 묻자, 제이나가 자신이 좀 전에 강기석에게 전화 받은 걸 밝혔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수빈이 발근하며 말했다.

“뭐? 강기석 팀장은 우리 매니저 아니잖아?”

하지만 다른 멤버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기석 오빠가?”

“그래서 오빠가 뭐랬는데?”

다른 멤버들이 다들 강기석이 제이나에게 전화한 사실에 고무 되어 있을 때, 제이나가 강기석이 왜 일체 전화나 핸드폰으로 걸려 오는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는지 설명했다.

“흥!”

하지만 다른 멤버들과 달리 수빈은 콧방귀를 끼고는 딴 쪽으로 가버렸다.

그런 그녀를 다른 멤버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제이나가 하는 말에 다들 집중했다.

“아아. 맞다. 오늘 ‘인기차트 100’에 출연하기로 한 날이잖아.”

“우리 지금 풀 메이크업에 머리하고 SVS 방송국에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 그러게.”

“매니저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까부터 전화 했는데 안 받으셔.”

“설마 이렇게 펑크를 내는 거 아니겠지?”

걸그룹이, 그것도 최정상급 인기 걸그룹도 아닌데, 감히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 출연에 펑크를 낸다?

그건 곧 지상파 방송에 앞으로 출연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때 그녀들이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었던 그때, 새로 들어 온 해피 걸스의 사고뭉치 멤버가 또 거하게 사고를 쳐 버렸다.

“저, 저기 수빈이 전화 받고 있는데?”

“뭐?”

기겁한 해피 걸스 멤버들이 우르르 수빈에게 달려갔다. 그때 수빈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요? 지금 다 숙소에 있는데. 매니저요? 몰라요. 여보세요? 아이 씨. 지금 먼저 전화 끊은 거야?”

수빈이 자기 핸드폰에 대고 성질을 내고 있을 때, 대표로 리더인 예나가 그녀에게 물었다.

“수빈아. 너 지금 누구랑 통화 한 거야?”

“누구긴. C발! SVS PD지.”

“아아!”

그 말을 듣고 충격 받은 예나가 쓰러졌다.

“예나야!”

“언니!”

다행히 예나 옆에 다른 멤버가 있어서 쓰러지는 그녀를 붙잡기는 했지만, 해피 걸스 숙소 안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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