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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354화 (35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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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원래라면 오늘 아침에 삼명家 본가에 갔었어야 했다. 하지만 저번에 이어서 오늘도 가족 아침 식사가 취소되었다.

이동훈 비서실장의 말에 따르면 다음 주도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굳이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이 실장이 그랬다.

전 사모님과 전 삼명호텔 대표가 외국으로 나가고 나야지, 백 회장님께서 정상적인 가족 아침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될 거 같다고 말이다. 아무튼 나야 일주일에 두 번이나 본가에 가서 아침 먹는 귀찮은 짓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여기는....”

국내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 뼈다귀 해장국 체인점인, 이곳의 뼈다귀 해장국은 콩가루가 들어갔는지, 국물 맛이 얼큰하면서도 고소했다.

워낙 가게가 넓어서 빈자리도 많아, 나는 경호팀원들도 다들 해장국 한 그릇씩 먹도록 배려했다.

패스트푸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문한 뼈다귀 해장국이 빨리 나왔고, 또 경호팀원들이 빨리 해장국을 먹어치웠기에, 내 식사 시간 동안 그들도 해장국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애들 너무 배부르면 안 좋은데....”

자기 입맛이라며 해장국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운 문대식이, 내 앞에 앉아서 뻔뻔하게 그런 소릴 잘도 내 뱉었다.

해장국 가게에서도, 나는 문대식이 챙겨 온 국내 일간지와 스포츠 신문을 쭉 훑었다.

어제처럼 일간지 몇 군데에서, 임페리얼 호텔 대량 해고 사태에 대해서, 살벌한 논평을 해 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언론에서 몰아가면, 정부 입장에서도 가만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주에 국세청이나 금감원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우리 데이비드 부회장님이,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뭐 데이비드야 모를 수 있다고 쳐도, 그 능구렁이 브룩스 회장은 잘 알고 있겠지.

자기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 브룩스 회장이니,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하긴 할 것이다.

“브룩스 회장이라면....”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았다. 국세청이나 금감원을 움직일 수 있는 쪽의 권력자 말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총선을 앞두고, 나름의 권력 판짜기가 이뤄지는 중이었다.

이럴 때 예상밖에 쉽게 나가떨어지는 게 이전 권력자다.

브룩스 회장은 백준열을 싫어했다. 백준열도 인종차별주의자인 브룩스 회장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고. 둘 다 대 놓고 서로를 비방하지는 않았지만,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었다.

“임페리얼 호텔이라....”

내가 호텔 쪽으로 그리 관심이 많은 건 아니다. 내게 호텔은 제 2의 집이나 마찬가지인 곳.

사업하는 사람에게 집은 들어가서 쉬는 곳이지,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곳은 아니지 않나? 그런 고민은 호텔리어가 하면 되는 거고.

그런데 백지연 삼명 호텔 대표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삼명 호텔의 주인 자리가 비었다.

거기에 임페리얼 호텔이라는 다국적 호텔 기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휘청거리고 있었고.

“삼명 호텔과 임페리얼 호텔의 합병이라....”

일단 파이는 확실히 컸다. 당연히 이슈도 크게 될 것이고. 삼명 호텔을 단숨에 한국 호텔 계의 원티어로 만들 테니까.

1등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걸 성사 시키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뒷일은?

“역시 귀찮아....”

안 그래도 요즘 바빠 죽겠는데, 괜한 일 만들어서 개고생을 사서 할 필요 있을까? 나는 임페리얼 호텔 합병 생각을 바로 접었다.

“준비 다 됐습니다. 이제 가시죠.”

그 사이 경호팀원들이 자기 자리로 복귀했고, 아침 식사 계산까지 끝난 모양이었다. 나는 보고 있던 스포츠 신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로 가는 동안 심심한데, 그 스포츠 신문의 연예 기사나 볼까 하고서 말이다.

* * *

철수는 세르게이의 감성이 이렇게 여릴 줄 몰랐다.

철수가 자신의 전처 얘기를 시작하자, 그걸 묵묵히 들어주던 세르게이. 그가 휴지를 옆에 두고 펑펑 울었다.

“크흑흑흑....훌쩍훌쩍....잘 했어.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뭐.”

근데 이게 울 일인가? 정작 얘기하는 철수는 담담한데 말이다.

철수 입장에서야 안 된 건 그의 전처와 그 전처가 낳은 아이지, 그와는 직접적으로 연관도 없었으니까.

뭐 어째든 세르게이가 자신이 공금을 쓴 사실에 대해서, 쉽사리 이해해 준다니 철수 입장에서야 다행스러운 일이긴 했다.

“자아. 마셔.”

그런데 술은 왜 권하는 걸까? 철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어째든 그렇게 시작 된 맥주가 소맥으로 바뀌고, 양주로 바뀌면서 오피스텔 안이 빈 맥주 캔과 소주 병, 양주병으로 넘쳐났다.

“더 마셔.”

“으윽....세르게이....나 더 못 마시겠어.”

“그래도 마셔. 심적으로 괴로울 땐, 역시 취해서 뻗는 게 최고야.”

보아하니 세르게이가 철수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철수는 심적으로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신 세르게이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하도 술을 먹여 대서 말이다.

“아이 병원비 걱정은 하지 마. 내가 내 친구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둘 거 같아? 병원도 최고 좋은 대로 바꾸고....”

역시 세르게이가 철수의 말을 잘못 이해한 거 같았다. 전처의 아이는 철수의 아이가 아닌데 말이다.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철수가 말했다.

“세르게이. 그 아이는....”

그런데 얘기하는 도중 취기가 치밀어 오른 철수는, 그만 거기서 의식을 끈이 끊기고 말았다.

“으으으윽....머리야.”

술을 이것저것 섞어 마시다 보니 아침이 되어 깨었을 때, 철수는 머리가 깨져 나갈 거 같았다.

“우욱!”

당연히 속도 안 좋았고. 해서 화장실부터 달려 들어간 철수. 그는 아침부터 변기를 붙잡고 한 바탕 난리를 떨었다.

“으으....죽겠다.”

더 이상 게워 낼 게 없자, 그제야 화장실 밖으로 나온 철수. 그가 오피스텔 안을 살폈는데 어째 세르게이가 보이지 않았다.

철수의 시선이 옷걸이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거기 걸쳐져 있던 세르게이의 트레이닝복이 보이지 않았다.

“와아....”

간밤에 그렇게 퍼 마시고도 아침에 운동을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하여튼 자기 몸 관리 하나는 철두철미한 세르게이였다.

* * *

벌컥벌컥!

철수는 다 토해 내고 빈 속에, 시원한 생수를 들이 부었다.

“크으으....”

그러자 정신도 들고, 몸에 생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거 같았다. 이왕 일찍 일어난 김에 대충 주변을 치우고 운동을 나가도 나갈 것이지. 지금 오피스텔은 간밤에 철수가 술에 취해 필름 끊기기 직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오피스텔 바닥이 온통 빈 캔 맥주와 소주병, 양주병의 지뢰밭이었다.

세르게이는 이 지뢰밭을 유유히 피해서 운동 나갔겠지? 좀 치우고 나가도 됐을 텐데 말이다.

“에구.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지.”

투덜거리며 허리를 굽힌 철수가 널려 있는 빈 캔 맥주와 소주병, 양주병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 뒤 창문 열고 청소기로 청소를 한 후, 싱크대에 잔뜩 쌓인 설거지 거리를 다 설거지했다. 그리곤 설거지하기 전에 씻고 불려 놓은 쌀을 전기밥통에 넣고 취사선택을 한 철수가, 해장을 뭐로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벨레레레레~

전화가 걸려왔고 받으니 세르게이였다.

-해장국 뭐 사? 콩나물 해장국 콜?

세르게이의 그 말에 철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작 좀 전화하지. 그랬으면 밥 안 지어도 됐을 텐데.’

하지만 그의 속은 어서 해장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어. 콩나물 해장국 좋지. 빨리 사와.”

-10분이면 가.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정확히 10분 뒤에, 세르게이가 콩나물 해장국을 포장해서 왔다.

“후루룩....후루룩....크으으....”

철수는 정신없이 해장국을 떠먹었고, 속이 풀리자 그제야 세르게이를 보고 말했다.

“세르게이. 어젯밤에 말이야. 내 전처의 아이는....”

철수는 세르게이의 오해를 가급적 빨리 풀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얘기를 꺼냈는데....

“김훈과 좀 전에 얘기 했어. 일을 더 늘리기로.”

“뭐?”

“돈이 필요하잖아? 그렇다면 더 열심히 일을 해야지.”

“그, 그렇기는 한데....”

철수는 막상 세르게이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이 싹 바뀌었다. 굳이 세르게이와 오해를 지금 풀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유가 어째든 게을러터진 세르게이가 열심히 일을 하겠다지 않은가?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지. 오해야 뒤에 풀어도 됐다. 그 오해가 풀렸을 때, 철수와 세르게이의 통장에 돈이 수십억 쌓여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보다 더 좋은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나?

‘그래. 세르게이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철수는 전처의 아이를 한 동안 자기 아이로 여기기로 했다.

* * *

블랙아이와 성공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의 앨범 제작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던 김효석 실장. 그런 그에게 그의 전 직장인 QH엔터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 명철아. 어쩐 일이야?”

김효석이 QH엔터에 있을 때 ,콘텐츠 사업부에 데리고 있었던 우명철 대리.

면접 때 그가 보여 준 패기 넘치는 모습에 반해, 그를 직접 뽑은 것도 김효석 자신이다 보니, 그에 대한 애정이 컸는데, 우명철은 그런 김효석을 잘 따랐다. 그러니 더 예뻐할 밖에.

안 그래도 QH엔터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명철 만큼은 JYB엔터로 데려 올 생각을 하고 있었던 김효석이었다.

그런데 우명철이 알아서 이렇게 먼저 전화를 해 주니, 김효석으로서는 이게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잘 계시죠?

“그럼. 잘 있지. 일도 재미있고. 넌 어때?”

-저는....하아....본부장님. 저희 회사 망할 거 같아요.

“뭐?”

-홍 대표. 검찰에 연행 된 거 아시죠?

“알아. 근데 아직 안 나왔어?”

홍대복 대표의 화려한 인맥을 아는 김효석. 그는 홍 대표가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제 나왔다고 하는데....아직 회사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어요. 문제는 황 차장이에요.

“황치열이가 왜?”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 같아요.

“무슨 수작?”

-QH엔터의 대주주들에게 계속 연락을 하고, 그들과 접촉하느라 회사에 붙어 있지를 않아요. 그게 뭘 뜻하겠어요?

“황 차장이 QH엔터 대표 자리를 노린다는 거야?”

-그렇죠. 그 때문에 회사가 지금 술렁거리고 난리도 아니에요. 지금이라도 황 차장에게 붙으려는 사람들과 이직을 준비 중인 사람들로 말입니다.

김효석은 우명철의 얘기를 가만히 경청하면서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이는 김효석이 뭔가 집중해서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그럴 때마다 잔머리 굴린다고 뭐라고 했다.

하지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데, 그 버릇이 고쳐 질 리 있겠나?

-....데 진짜 문제는 현장입니다. 저희 소속 연예인들이 흔들리는 걸, 현장의 매니저들이 잡아줘야 하는데 그들이 이직하려고 자기 일을 등한시 하니....특히 해피 걸스 매니저의 경우, 아예 출근도 하지 않아서....

“잠깐, 해피 걸스의 매니저면 강기석이 아냐? 기석이가 그렇게 무책임한 녀석이 아닌데?”

-하아. 강기석 매니저님은 벌써 황 차장 눈 밖에 나서, 오진주라고 기억하시죠? 그 조연급 여배우 매니저하고 계십니다.

“그래?”

김효석이 QH엔터 본사에서 JYB엔터로 데려 오고 싶어 한 직원 우명철이라면, 현장에서 데려 오고 싶었던 직원이 바로 강기석이었다.

우명철도 그렇고 강기석도 QH엔터에서 찬밥 취급을 받고 있는 걸 확인한 김효석은 속으로 잘 됐다 싶었다.

“그래서 너는 어쩔 거야?”

-네?

“너도 선택을 해야지. 이런 일에 중간은 없어. 황 차장 편에 붙던지, 아니면 이직을 하던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지. 너도 그 정도는 알거 아냐?”

우명철도 사회생활 5년차다. 그걸 모를 리 없는데 하도 답답하니, 김효석에게 전화를 해서 조언을 구하려는 거겠지.

-본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제가 황 차장에게 붙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이직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차피 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명철이 김효석에게 전화를 건 순간 말이다.

“너 황치열이 밑에서 일할 수 있겠어?”

-....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하는 우명철.

“그럼 정해졌네. 짐 싸서 여기로 와.”

-네?

“내가 거둬야지 어쩌겠어.”

-하, 하지만 거기 들어가려면 서류 전형하고 면접 같은 거 봐야 하지 않나요?

“그런 거 필요 없어. 내가 여기 3인자인데 무슨....”

-3인자요?

“그래. 직위는 실장이지만, 직급은 무려 전무다. 됐냐?”

-우와아. 본부장, 아니 김 전무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실장이라고 불러 임마.”

-네. 김 실장님. 충성!

그렇게 우명철을 스카우트 하는 데 성공한 우명철. 그는 내친 김에 현장에서 고생 중인 강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강기석은 QH엔터 본사 황 차장과 한판 하고 나서, 회사 간판 해피 걸스의 매니저에서 졸지에 무명 여배우의 매니저를 맡게 됐다.

하지만 뭐든 열심히 하는 성격의 그이다 보니, 그 여배우를 맡자마자 드라마 두 개에 출연을 확정 지으며, 그가 왜 QH엔터의 매니저들 중 최고 인지를 증명했다.

하지만 QH엔터에 잇따른 악재가 터지면서, 어제 출연 확정 된 두 개의 드라마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강기석이 맡고 있는 여배우 오진주의 역할을, 다른 여배우에게 넘기기로 했다고 말이다.

이에 강기석이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그쪽에서 곧 망할 연예기획사의 여배우를 쓸 수 없다며 더 강경하게 나오니, 강기석으로 써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강기석은 지금 오진주의 집이었다. 늘 그렇듯 오진주의 상태를 살피고, 스케줄 얘기도 할 겸 그녀 집을 찾은 것.

“오빠. 저는 괜찮아요.”

아무래도 당사자인 오진주가 더 실망이 컸을 텐데, 그녀는 오히려 자기 매니저인 강기석을 위로했다.

“아냐. 이게 다 내가 무능해서 그래.”

“오빠가 왜 무능해요. 저 같은 거 데리고 불과 일주일 만에 드라마 배역을 두 개나 따내신 능력 있으신 분이신데.”

“그걸 따 낸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나는 그 자리를 마련해 준 거 뿐이고.”

“그러니까 그 자리를 만들어 주신 게 어디냐고요. 전에 매니저들은 그런 건 하나도 안해주고, 내 탓만 주구장창 했는데 말이죠.”

오진주의 그 말에 강기석은 가슴이 아팠다. 오진주는 조연급의 여배우로 취급받고 있지만, 연기력만 따지고 보면, 주연급 여배우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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