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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348화 (34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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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네. 차관님. 하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격조했죠. 네. 이번 신임 청장님께서요? 내일....저야 영광이죠. 네. 아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굽실거리며 통화를 하고 난 서장이, 계면쩍게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독극물 운운했던 형사를 보고 말했다.

“그 둘, 네 말대로 독극물 숨기고 있다가, 그것 먹고 죽은 걸로 처리 하자고.”

“네?”

“그렇게 정리해. 사건 더 키우지 말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보아하니 서장은 중랑경찰서에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은 다 덮으려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승진해서 여길 떠나기 전까지,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말년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일주일이야. 딱 일주일만 조용히 있으라고.”

그 말 후 휑하니 서장실로 가버리는 서장을 보고, 형사들은 다들 안 됐다는 얼굴로 독극물 운운한 형사를 쳐다봤다.

일이 어떻게 되든 책임은 저 형사가 다 져야 할 테니 말이다.

그 형사도 다른 형사들이 자신을 왜 쳐다보는 지 깨달은 듯 얼굴을 구겼다.

“내가 미쳤지.”

그 형사는 괜히 말 잘하는 자기 입을 손으로 때렸다.

그도 자신이 오지랖이 넓다는 건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형사는 나름 확신이 있었다. 비록 개발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EMP를 이용한 최첨단 특수 장치를, 암묵적으로 암시장을 통해 판매하고 있었다.

그걸 구입한 자들이 그 장치를 이용해서, 오늘 여기 CCTV카메라 장비를 2시간 동안 못 쓰게 만들었다면....

“하아....”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 당장 그런 장치가 있다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 아니 EMP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EMP, 즉 Electromagnetic Pulse, 우리말로 전자기펄스라는 이 말은, 핵폭발에 의하여 생기는 전자기 충격파를 말한다.

그러니까 핵폭발이 일어나면 전자기파와 중성자가 생성되는데, 이때 생성되는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전자기파인 감마선 광자가, 대기 중으로 확산되면서 콤프턴효과(Compton effect)가 일어난다. 즉, 고에너지 상태의 감마선 광자가 에너지 단위가, 낮은 원자핵과 충돌하면서 원자핵보다 질량이 작은 전자가 방출되는데, 감마선 광자로부터 에너지를 받은 전자의 이동으로 강력한 전기장과 자기장이 형성되고, 핵폭발 이전 단계의 전기장을 강력하게 변동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방출된 고에너지 전자가, 물결 형태의 진동 운동을 시행하면서 강력한 전자기펄스, 즉 EMP가 발생되는 것이다.

EMP는 전자회로로 들어가 전류가 되는데, EMP가 지닌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회로가 버틸 수 없는 정도의 과전류가 흐르게 되고, 이 과전류가 전자회로를 파괴시킴으로써 반도체로 작동하는 모든 전자기기, 즉 통신 장비, 컴퓨터, 이동 수단, 전산망, 군사용 장비 등이 마비된다.

그 형사는 이미 그 EMP 기술이 원하는 영역에 한하여, 원하는 만큼의 피해를 줄 수 있도록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EMP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EMP 차폐 기술도 개발되어 있다는 것 역시.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단 거고, 그걸 알고 있는 사람도, 고작 경찰서 CCTV카메라 장비하나 마비시키겠다고, 그 비싼 EMP를 이용한 최첨단 특수 장치를 썼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을 거란 점이었다.

“뭐해? 서장님 지시대로 처리하지 않고?”

어느 새 나타난, 서장의 따가리로 불리는 형사과장이 그 형사를 쪼아댔다.

“네.”

그 형사는 어쩔 수 없이 서장이 시킨 대로, 죽은 두 가해자가 몰래 지니고 있던 독극물로 자살 했다는 조서를 꾸며야 했다.

* * *

아무래도 한국에서 외국인 세르게이가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부분을 철수가 대신했는데,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철수는 XX병원에 들어가서, 의사 가운을 걸치고 의사인 척 행세를 했다.

어차피 병원 진료가 끝난 상황. 병원 안은 한산했고, 종합병원인 만큼 의사도 많아서 철수가 의사가 아닌 걸 알아 볼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응급실로 들어간 철수. 그가 형사 두 명이 지키고 있는 응급실 한쪽으로 걸어가서, 태연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경도 두부손상이 의심되기 때문에, 지금 바로 CT촬영하러 가야 합니다. 두 분도 따라 오실 거죠?”

철수가 무신경한 얼굴로 두 형사를 쳐다보자, 그들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철수의 모습은 누가 봐도 피로에 찌든 응급 당직의의 모습이었다.

지금 환자 베드에 누워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환자 베드 칸막이에 끼어 있는 신석기는, 양손 뿐 아니라, 양발에도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낙상방지를 위해 올려 진 그 칸막이에 말이다. 그만큼 형사들은 신석기를 위험한 범죄자로 보고 있었다. 하긴 저 큰 손이 주먹을 쥐면 그게 흉기지.

“자아. 그럼 갑니다.”

철수는 능숙하게 그 이동용 환자침대를 밀고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당연히 그 엘리베이터에 형사 둘이 동승을 했고.

-3층입니다.

촤르르르!

하지만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은 철수와 이동용 환자침대뿐이었다. 물론 그 이동용 환자 침대에 신석기가 누워 있었고.

다시 닫힌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2층입니다.

촤르르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기절한 두 형사가 차례로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세르게이. 그가 기절한 채 널브러져 있던 두 형사를, 가까운 지하 주차장의 차량 사이로 옮겨 놓았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조치였지만, 세르게이에게 필요한 건 10분의 시간이었다.

그 10분 안에 세르게이는 타깃을 제거하고 이 병원을 떠날 테니, 그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그렇게 두 형사를 보이지 않게 숨기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철수가 3층 CT촬영실 앞에서 세르게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이동 환자 침대 위의 신석기는 쿨쿨 잘도 자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보고 철수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와아. 진짜 크긴 크네. 표피가 두꺼운 돼지의 경우, 주사 바늘이 쉽게 부러진다던데....”

신석기를 두들겨 팬 사람이, 왜 녀석의 머리만 집중적으로 때렸는지 철수도 이해가 됐다.

머리 말고 몸통은 때려 봐야, 별 데미지를 입히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만큼 이 녀석은 투실한 지방층은 몸에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세르게이!”

그때 세르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쿨쿨 잘 자고 있는 이동 환자 침대 위의 신석기를 보고, 바로 철수에게 말했다.

“그냥 여기서 처리하자.”

“여기서?”

“어. 이거 하나면 되는 데 뭐.”

그 말 후 세르게이가 호주머니 속에서, 제법 큰 검정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리곤 철수에게 말했다.

“저 놈 머리만 살짝 들어 봐.”

철수는 세르게이가 시키는 대로 신석기의 머리를 들었다.

“C발. 존나 무겁네.”

철수가 투덜거리며 신석기 머리를 들자, 세르게이자 그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웠다. 그리고....

“허어업....”

비닐봉지가 신석기의 머리를 감쌌고, 그로 인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된 신석기.

녀석이 숨 막혀서 잠에서 깼다.

쿠쾅쾅쾅쾅!

그리곤 살아보겠다고 처절하게 발버둥을 쳐댔다.

“잡아!”

그런 녀석은 뒷전이고, 세르게이와 철수는 이동용 환자 침대만 잘 붙잡고 있었다.

철수는 그가 잡고 있는 이동용 환자 침대가, 하도 심하게 흔들려서 무슨 지진이 난 거 같았다. 그렇게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3분여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숨을 못 쉰 거구의 신석기가 몸을 축 늘어트렸다.

* * *

미리 그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었던 세르게이.

그는 엘리베이터의 환풍기가 작동하지 못하게 손을 썼다. 이로써 이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히는 순간 완전 밀폐된 공간이 되었다.

그때 철수가 무슨 돼지를 한 마리 이동용 환자 침대에 싣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 형사 둘이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탔고.

세르게이는 실제 신석기의 거구를 보고 놀랐다. 150Kg이 넘는다고 했지만, 세르게이가 보니 170Kg은 나갈 거 같았다.

이렇게 타깃을 직접 보고 나니, 세르게이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킬러였을 때야 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처리자로 티 내지 않고, 이런 녀석을 없애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르게이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바로 신경가스가 들어 있는 스프레이를 뿌렸다.

물론 티 나지 않게 조심해서. 세르게이와 철수만이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숨을 참고 있었고 그 안에서 한 번이라도 숨을 쉰 사람은....

털썩!

신경가스를 맡고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신경가스는 사실 사람의 신경기능을 마비시키고 살상까지 하는 위험한 독가스인데, 러시아에서 그걸 적절히 희석시켜서 기절까지만 시키게끔 만들었고, 그걸 세르게이는 한국에서 잘 활용하고 있었다.

저번 택시 안에서 철수가 홍대복을 잡을 때도, 이 러시아산 신경가스를 사용했었고.

이 가스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환기가 되는 곳에서는, 공기 중으로 잘 날아가 버린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철수가 이동용 환자 침대를 밀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신경가스가 대부분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그렇지만 세르게이는 그때도 숨을 참고 있었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에도, 여전히 숨을 참고 있었다.

그가 숨을 쉰 건, 엘리베이터 안에 형사 둘을 엘리베이터 밖으로 내던지고 나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온 뒤였다.

“후아아....헉헉헉....”

가쁜 숨을 고르며 세르게이는 형사 둘을 치우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의 CT촬영장 앞에는 당연히 사람이 없었다.

원래 세르게이의 생각은 타깃을 CT촬영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 안에서 제거하는 거였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게, 굳이 그럴 필요 없어보였다.

해서 준비해 온 비닐봉지를, 타깃의 머리에 씌우고 질식사 시켰다.

“잠깐!”

세르게이는 증거물을 남기기 않으려고, 철수가 신석기의 머리에 씌워진 비닐봉지를 벗기려 할 때, 그를 제지했다.

“왜?”

“....”

세르게이는 말없이 이동용 환자 침대에 죽은 채 누워 있는 신석기에게 다가갔고, 그의 목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때였다.

쿠쾅쾅쾅쾅!

신석기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날뛰었고 이내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걸 보고 세르게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숨 막히는 이 극한 상황에서도 녀석은 죽은 척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철수가 비닐봉지에다가 수갑까지 풀었다면....

“진짜 괴물 같은 놈이네.”

세르게이 마저도 신석기의 영악한 생존 본능에 질려서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고, 철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와아. 완전 속을 뻔했네. 그것도 모르고 검은 봉지 벗겼으면....”

아마도 난리가 났겠지. 보나마나 신석기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을 테니까.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이쪽으로 달려 왔을 테고....

철수는 아찔해 하며 세르게이를 쳐다봤다. 세르게이는 신석기가 확실히 죽은 걸 확인하고 나서, 철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철수가 그제야 신석기 머리에 씌웠던 검은 비닐봉지를 벗겨냈다.

그러자 악귀 같은 얼굴로, 두 눈 부릅뜨고 죽어 있는 신석기가 보였다.

이제 뒤처리는 김훈 대표가 알아서 할 것이라, 둘은 곧장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갔고, 거기 대 놓은 그들이 타고 온 차를 타고, 그곳 병원을 유유히 빠져 나왔다.

* * *

세르게이가 운전을 하고, 그 옆 조수석에 타고 있던 철수. 그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그러자 곧 철수의 핸드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르게이가 그러라고 한 건 아닌데, 철수가 세르게이도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김훈 대표와 통화를 한 거다.

“두 건 다 처리 했습니다. 뒤처리는....”

-그건 걱정 할 거 없어. 중랑경찰서와 경남경찰서에 다 손 써 뒀으니까. 형사들 다치거나 죽이지 않았지?

아무래도 킬러에서 처리자로 전직한 세르게이의 손속이 걱정이 됐던지 김훈이 묻자, 철수 대신 세르게이가 대답을 했다.

“조심하고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친구.”

-다행이네. 내친 김에 일하나 더 할래?

“아니. 오늘은 여기서 영업 끝이야.”

-아쉽군. 할 일 많은데....

김훈 대표는 진짜 세르게이가 일을 더 하겠다고 하면, 그들에게 더 일을 시킬 기세였다.

그 만큼 요즘 김훈 에이전시가 바쁘다는 얘기였다.

처리자로 전직한 세르게이와 철수 입장에서는, 그들이 속한 회사가 일이 많다니 반길만한 상황이지만, 둘 다 좀 전 괴물 하나를 처리하고 난 뒤 진이 다 빠진 상태라, 진짜 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철수도 같은 생각인가?

“네. 아직 저녁도 못 먹었습니다.”

-그래. 그럼. 저녁들 맛있게 먹고 쉬어.

철수는 김훈 대표에게 맡았던 일을 다 처리했음을 알리고 통화를 끝낸 뒤, 운전석의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저녁 뭐 먹을까? 냉면에 불고기? 삼겹살? 돼지갈비? 아니면 감자탕 먹으러 갈까?”

철수는 세르게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쭉 나열했다. 하지만 세르게이의 입에서 나온 음식은....

“순대 전골 먹으러 가자.”

“....”

그 말에 순간 할 말은 잊은 철수가 먹먹한 얼굴로 세르게이를 쳐다봤다.

순대 전골은 철수가 좋아하는 최애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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