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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세르게이는 외국인이고, 외국인은 돈에 관한한 철저하다. 만약 세르게이가 철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얘기를 전해 듣는다면 충분히 오해 할 수 있었다.
“대, 대표님. 그, 그 건....”
-지금 그쪽 변명 들어 줄 시간 없어. 그 돈보다 2배 더 줄 테니까 일 좀 해.
“일이요?”
-어. 두 타임으로 나눠서 첫 번째는 두 명, 두 번째는 한 명이니까. 오늘 중으로 셋 만 처리해 주면 돼. 어때? 할 수 있겠지?
말이 할 수 있냐고 묻는 거지, 이건 하라는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네. 뭐....해야죠.”
-좋아. 그러면 정보팀에서 처리해야 할 자들에 대한, 신상정보와 기본적인 소스를 보내 줄 거야. 그거 보고 움직여. 착수금으로 천만 원 바로 보내 줄게.
아예 처리비까지 보내 줘 버리면서 철수로 하여금, 이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김훈 대표가, 전화를 끊고 나서 철수는 마저 하던 아이 닦는 일을 했는데, 그때 휠체어를 타고 전처가 나타났다.
“철수씨. 이제 그만 해.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전처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오늘 하루만 휠체어 타고, 내일부터는 걸어 다녀도 된단다.
“잘 됐다.”
철수는 그래서 아이를 제 어미에게 넘기고 병원을 나섰다.
그러면서 세르게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와 통화를 하면서 택시를 잡아탔다.
“중랑경찰서로 가주세요.”
그리곤 세르게이보다 먼저 중랑경찰서로 가서 그곳 분위기부터 파악했다.
그러는 사이 세르게이가 장비를 갖춘 채 중랑경찰서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세르게이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킨 뒤, 바로 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세르게이. 어디야?
“중랑경찰서 주차장. 너는?”
-나는 경찰서 건물 안. 여기로 오지 말고 거기 있어. 어디쯤인지만 말해주면,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여기는....
철수는 아무래도 외국인인 세르게이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오면 눈에 띌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급적 세르게이를 노출시키지 않을 생각에, 그가 주차장으로 가서 차안에서 세르게이를 만날 생각이었다.
세르게이가 어디 있는지 말하자, 그걸 듣고 철수는 경찰서 건물 밖으로 나와서, 세르게이가 타고 있는 차로 향했다.
철수는 세르게이가 켠 비상 깜빡이를 보고, 그 차 쪽으로 움직였고 운전석의 세르게이를 발견하고는, 그 옆 조수석에 탔다.
“어디서 뭘 하고 있었기에 얼굴이 그 모양이야?”
세르게이가 초췌해 보이는 얼굴의 철수를 보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세르게이와 싸우고 오피스텔을 나온 뒤, 이틀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씻지도 못한 철수.
“그 덕분에 의심받지 않고 경찰서 안을 둘러 볼 수 있었어. 네가 제거해야 할 둘은....”
철수는 바지 뒷주머니 속에 잘 접어 넣어 둔 A4지를 꺼냈다.
그 종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철수가 세르게이에게 넘기며 말했다.
“건물 3층으로 가면 거기 X표시 된 조사실에 그 둘이 있어. 지금 정신감정 중인데, 그거 끝나면 검찰로 이첩할 모양이더라고.”
세르게이는 철수가 건넨 중랑 경찰서의 3층 위치도를 보고 몇 가지 의문점을 철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철수가 그 물음에 다 대답을 하자, 세르게이가 챙겨 온 장비 중 만년필 케이스에 들어 있는, 독침이 들어 있는 펜을 챙겼다. 그걸 보고 철수가 물었다.
“그게 뭔데?”
그러자 세르게이가 펜의 중간을 돌렸고, 그 안에 독침 발사 장치가 나왔다. 그걸 세르게이가 철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모두 8개의 독침이 이 안에 들어가 있고, 이 누름단추를 누르면 촉이 발사가 돼. 그 촉이 독침이고. 이 독침에 독은 심장 마비와 호흡곤란을 유발시키는 데, 응급처치가 제시간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
“뭐? 그럼 독침에 당해도 ,응급처지만 잘하면 살 수도 있다는 거잖아?”
철수가 세르게이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어 하며 말하자, 세르게이가 시큰둥하니 대꾸했다.
“그러니까 독침을 쏘고, 응급처치 못하게 시간 끌어서 타깃이 죽는 걸, 정확하게 확인까지 해야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세르게이를 보고, 그 일을 할 세르게이 본인이니 그렇게 확인하겠다니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갔다. 올게.”
그 말 후, 세르게이가 독침 펜을 바지 호주머니 속에 넣고는, 모자에 안경을 쓰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철수가 온 방향으로 걸어갔고, 곧 경찰서 건물이 나오자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중랑경찰서 조사 3실.
오전 조사에 이어서 오후 조사가 시작 되고, 배우 유혜라에게 위해를 가하려 한 ‘스윙걸스’의 강성 덕후 두 사람을 상담한, 정신과 의사가 형사들과 따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조사실 안에 가해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둘이 나누는 얘기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의사 새끼. 우리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생각하겠지?”
“크크크크. 당연하지. 그런 미친 소릴 늘어놨는데....그걸 제 정신이라고 하면 의사도 아니지.”
“근데 거기 은혜정신병원 확실해?”
“확실해. 저번 달에 정신이상자도 거기 간 거 확인했어.”
“거기 얼마나 있으면 되는데?”
“길어야 1년이야. 빠르면 올해에 나올 수도 있고.”
“C발년.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정신병원에서 나가면....그때는....”
“그때는 경호원부터 처리하고 그년 조지자고.”
정민지가 우려 한 대로 유혜라를 해치려 한 두 남자들은, 정신병원에서 나오는 대로 또 유혜라를 해치려 하고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유혜라보다 그녀의 경호원이 먼저 그들의 타깃이 될 모양이었다.
철컥!
그때 조사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 소리에 가해자 두 사람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고.
“앗! 따가워!”
“어! 뭐야?”
두 가해자 중 한 명은 목을,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왼 팔뚝에 손을 가져갔다. 그 사이 열렸던 조사실 문이 다시 닫혔다. 그때였다.
“....컥!”
“으윽!”
두 명 중 왼 팔뚝에 손을 가져 간 가해자가 갑자기 자기 목을 붙잡았다.
그리곤 입에서 게거품을 내놓으며 쓰러졌고, 그 옆에 목에 손을 가져갔던 가해자는,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져서 가슴에 손을 갖다 댔다.
“사, 사람 살려!”
그 가해자는 있는 힘껏 조사실 문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가 세 차례소리를 지르는 동안 조사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내 의식을 잃어버리고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10여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철컥!
조사실 문이 다시 열리고 모자 쓴 누군가 안으로 들어와서는, 쓰러진 두 가해자의 목 경동맥을 손가락으로 짚어보고는, 바로 몸을 돌려서 조사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가 나간 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아서, 조사실 안으로 두 가해자를 조사한 형사와 그들을 상담한 정신과 전문의가 들어왔다.
“어?”
“저, 저 사람들....”
두 사람은 황급히 조사실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두 가해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두 사람 다....죽었어요.”
정신과 전문의가 확실히 둘이 사망했음을 확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사실 입구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 됐다.
어째든 사람이 둘이나 죽어 나간 곳이니, 현장 보존은 해 둬야 했으니까.
* * *
세르게이는 티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저기 군.”
세르게이가 막 3층, 그의 타깃이 있는 조사 3실 근처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한 사람은 조사서류를, 다른 한 사람은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철수의 말대로라면 서류를 들고 있는 사람은 형사일 것이고,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은 정신 감정을 위해 경찰서로 불려 온 정신과 전문의 일 터.
그때 형사가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조사실 문을 밖에서 잠갔다.
그 뒤로, 둘은 할 말이 많은 듯 주위 의식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며 3층 끝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걸 확인한 세르게이가 주위를 살피다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조사 3실로 움직였다.
그리고 형사가 잠근 문을 세르게이가 평소 가지고 다니던 만능열쇠로, 간단히 문을 따고 살짝 조사실 안을 엿봤다.
그랬더니 타깃 둘이 각기 왼손과 오른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문 여는 소리를 들은 듯 둘이 문 쪽을 쳐다봤다. 그때 세르게이가 호주머니 속에서 독침 펜을 꺼내서, 열린 문틈 사이에 펜을 넣고 독침을 쐈다.
10미터 안에서 세르게이가 쏘는 독침이 타깃을 맞출 확률은 100%였다.
그러니 조사실 안에 두 사람에게 독침을 맞추는 건, 세르게이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역시나 한 명은 목에, 다른 한 명은 왼팔뚝에 독침을 맞춘 세르게이. 그는 바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사실 앞에 서서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틀었다. 딱 복도 끝 휴게실로 들어간 형사와 정신과 의사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볼룸 크기로 말이다.
그러자 안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그 노래 소리 때문에 조사실 밖으로 더 새어 나가지를 못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조사실 앞에 서 있었던 세르게이. 그가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사실 안에 쓰러져 있는 타깃이 죽었는지 직접 확인 하고 나서, 거기를 나오기 전 자신을 향하고 있는 CCTV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부렸다.
그렇게 제거하기로 한 타깃 둘을 해치우는 데 성공한 세르게이.
그가 경찰서 건물을 나오자, 그 앞으로 차가 한 대 다가와서 섰다.
자기가 몰고 온 차였기에, 그 차를 한 눈에 알아본 세르게이는 곧장 조수석에 탔다.
그러자 운전석의 철수가 차를 출발시키면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둘 다 죽은 거 확인했다.”
“잘했어. 그럼 바로 다음 장소로 가도록 할게.”
“강남 XX병원이라고 했나?”
“어. 좀 전에 확인해 봤는데, 타깃이 아직 거기 응급실에 있다네.”
“빨리 처리하고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그, 그래.”
세르게이는 수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수철은 알았다.
세르게이가 침묵하는 건, 그가 프로페셔널 해서라고. 그러니까 지금 하고 있는, 김훈 대표에게서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나면, 세르게이는 수철과 그들이 사는 오피스텔에 가서, 수철이 아까 얘기 하겠다고 한 말을 그때 들어 줄 거였다.
“병원에서는 뭘 쓸 거야? 좀 전에 쓴 독침 펜?”
철수는 순전히 궁금해서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세르게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다음 타깃이 덩치가 크다며? 몸무게도 150Kg이 넘고?”
“어. 김훈 대표에게 듣기로 그 놈 잡는 데, 경호원 여럿이 다쳤다고 했어. 아. 맞다. 유도 유단자고 들은 거 같아.”
“그렇다면 독침으로 제거하는 건 어려워. 독침이 피부를 뚫기 쉽지 않고, 또 독침에 독으로 그 덩치를 중독 시킬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어쩔 거야?”
“아까부터 쭉 생각해 봤는데....타깃이 병원에 있다니까....”
세르게이의 설명을 쭉 들으며 운전 중 철수가 수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하면 별 수 없지. 막말로 타깃도 사람인데, 숨 안 쉬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
수철의 긍정적인 말에 세르게이가 싱긋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시도해 봤다. 병원에 있는 타깃을, 그가 의도한 대로 제거할 수 있는 지를....
그랬더니 확실히 성공할 거 같았다. 또 느낌도 좋았고. 보통 이런 느낌이 들 때면 손쉽게 타깃을 제거해 왔던 세르게이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 * *
중랑경찰서장이 직접 조사 3실을 찾아왔다. 조사실에서 조사 잘 받던 가해자들이 왜 갑자기 죽는단 말인가? 그것도 조사 중도 아니고, 조사 끝내고 잠깐 조사실에서 대기 중에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서장의 날선 질문에, 유혜라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던 두 가해자의 조사를 맡았던 형사가 즉시 대답했다.
“정확한 건 당시 조사실 안의 CCTV 영상을 봐야 하겠지만, 제 생각에는 독극물을 먹고 자살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독극물?”
“네. 피해자를 해치기 위해서 독극물을 준비해서, 몰래 소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들이 독극물을 숨기고 있다가, 형사와 정신과 의사가 조사실을 잠깐 비운 그 틈에 독극물을 먹고 죽었다?”
“네.”
“하아. 새끼 무슨 추리물 찍나. 빨리 CCTV 영상이나 틀어 봐.”
서장은 형사의 유추를 일축하며, 직접 CCTV 확인에 나섰다. 그런데....
“뭐? 담당 형사와 정신과 의사가 조사실을 나가고 나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다시 조사실에 나타나기까지, 그 20분 동안만 CCTV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네.”
“장난 해?”
“저희도 많이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사실 인데 어쩝니까.”
“혹시 누가 그 시간에 일부러 CCTV 작동을 멈춘 건 아니고?”
“아닙니다. 조사실의 CCTV 카메라의 작동을 멈추려면 통제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 통제실에 설치 된 CCTV카메라에 그 시간에, 통제실로 들어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통제실에 귀신이라도 나타나서, CCTV 작동시켰다가 껐다 했단 거야 뭐야?”
“혹시 이건 제 생각인데, EMP를 이용한 최첨단 특수 장치를 사용해서....”
아까부터 가해자들이 독극물을 소지하고 있었다느니,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던 형사의 황당한 말에, 중랑 경찰서장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질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서장의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안 그래도 열 받고 있던 서장은 신경질 적으로 핸드폰을 꺼내며, 누구 전화인지 확인을 했다.
“누구야? 헉!”
하지만 전화 건 상대가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서장이 긴장한 얼굴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