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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346화 (34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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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문득 '다 잡은 물고기에 밥 안 준다'는 표현이 생각나는 정민지.

결혼 했거나 그 정도로 가까워진 남녀 사이에서, 남자가 여자를 대충 대하면, 여자 쪽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었는데, 어째 지금 백준열이 자신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거 같았다.

물론 정민지와 백준열의 사이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까지는 아직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아직’이라는 표현이었다.

여태까지 정민지는 백준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그를 처음보고 그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남자로 받아드리지는 않았다.

그저 동경의 상대? 김훈 대표가 이용하려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백준열이 그녀를 구해주고, 그 괴물 신석기를 때려잡는 걸 보고서, 그녀에게 백준열이 이성적, 즉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걸 살짝 넘어서, 반했다는 말이 맞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가 약속이 있다며, 지금 바로 약속 장소에 바로 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정민지는 바로 눈앞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혜라 언니 만나러 간다고?’

그녀는 백준열이 말한 그 약속이 뭔지 알았다. 바로 유혜라와의 저녁 식사 자리.

불과 한 시간여 전까지만 해도, 정민지는 유혜라와 백준열이 같이 식사를 하던 말든 상관없었다.

그때 그녀의 관심은 온통 유혜라의 스토커인 신석기를 때려잡는 거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혜라 언니....진짜 너무 예쁘고....섹시한데....’

백준열이 유혜라에게 빠질까 봐 그게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들 만남에 끼어드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끼어들 건더기도 없었고.

그래서 정민지는 문대식과 같이, 백준열이 그들에게 말해 준 병원에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 검사 결과를 불과 3시간 만에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2주나, 그 이상 걸리는 검사 결과를 말이다.

“잘 가.”

“팀장님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자정이 넘은 시간 병원 입구에서 문대식과 헤어진 정민지. 그녀는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유혜라의 집으로 향하면서, 유혜라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어디에요?]

그랬더니 즉각 대답이 날아왔다.

[집. 너는?]

“휴우....”

그 답장을 보고 정민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적어도 지금 백준열이 유혜라와 같이 있지는 않다는 게 증명 됐으니까.

유혜라가 불면증이 있어서 늦게 잔다는 걸, 어제 밤에 알게 된 정민지. 그래서 이 시간에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봤는데, 역시나 유혜라는 지금까지 자고 있지 않았다.

[언니 집으로 가는 중이에요]

[빨리 와]

정민지가 유혜라의 집에 도착해서 집 안에 들어갔을 때, 안방의 유혜라가 조용했다. 오늘은 일찍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정민지는 그녀를 깨우지 않게 조심해서, 어제부터 그녀 방이 된, 유혜라 집의 손님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 * *

정민지에게 전화를 받고 난 김훈.

그는 치밀하고 철저한 성격답게, 정민지가 자신에게 왜 그 같은 요구를 해 왔는지, 그 이유부터 정보팀에 시켜서 캐게 했다. 그랬더니....

“요 녀석 보게?”

정민지가 붙어 있으라는 백준열의 곁에는 없고, 유혜라라는 여배우의 근접 경호를 맡고 있었다.

백준열이 그렇게 시켜서 임시로 유혜라 곁에 있는 정민지. 그런 그녀가 어제 유혜라를 해치려 한 자들을 잡아서 경찰로 보냈단다.

“그러니까 이게 다 유혜라를 스토킹 한, 신석기라는 놈 때문에 생긴 일이란 거로군?”

“그렇습니다. 녀석이 죽은 쥐와 협박 편지를 유혜라에게 보내면서, 백준열 대표가 자기 여배우의 안전을 걱정해서, 정민지를 그 여배우 곁에 붙였고....”

이건 그 여배우가 운이 좋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만약 정민지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CF촬영하다가 ‘스윙걸스’의 강성 덕후들에게 위해를 겪거나, 신석기라는 미성년자 스토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을 테니까.

“그런데 말이야. 정민지가 왜 내게, 자신이 유혜라의 근접 경호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까?”

김훈의 물음에 그에게 보고를 하던 정보팀장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거야....저도 모르죠. 정히 궁금하시면 정민지 요원에게 직접 물어 보시던 지요.”

“아니야. 그 녀석이 그랬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뭐. 알았으니까. 그만 가 봐.”

자신이 알고 싶은 정보를 다 들은 김훈은, 정보팀장을 내보내고 곧장 처리자들을 총괄 관리하는 관리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인원 혹시 있어?”

여기서 인원이란 처리자를 말했다. 하지만 요즘 삼명그룹과 일하게 된 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김훈 에이전시였다.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죠.

“진짜지?”

-네. 먹고 죽으려도 없습니다.

관리팀장의 입에서 지금 같은 말이 나오면, 진짜 당장 쓸 처리자는 없단 소리였다.

“알았어.”

김훈은 관리팀장이 또 처리자 보충 얘기를 꺼내기 전에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어쩐다?”

김훈이 생각했을 때, 정민지의 요구는 가급적 빨리 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검찰에 넘어가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은데 말이야.”

원래 정민지는 신석기를 제거해 달라고 김훈에게 요구했다.

그런데 김훈은 신석기 뿐 아니라, 유혜라에게 위해를 가했던 그 ‘스윙걸스’의 강성 덕후들까지 제거 해 버릴 생각이었다.

김훈 역시 정민지처럼 차후 문제가 될 소지를 남길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정신병원 들어갔다가 나온 그들이, 유혜라를 노릴 거야 불을 보듯 자명했으니까.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훈의 몇 명밖에 알지 못한다는 그의 개인 폰이 울렸다.

김훈은 누구 전화인지 바로 확인을 했고, 갑자기 얼굴빛이 밝아졌다.

“어어. 세르게이.”

김훈은 일단 걸려온 전화를 아주 반갑게 받았다.

* * *

세르게이의 통역이었다가, 이제는 그의 파트너가 된 철수. 그가 단단히 삐졌다.

엄연히 동업자인 그를 세르게이가 무시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같이 살던 오피스텔을 나가버린 철수. 그가 하루가 지나도 도통 소식하나 없자, 세르게이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철수. 전화 좀 받아.”

벌써 100통도 넘게 철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철수의 핸드폰에서는 같은 소리의 안내만 주구장창 해댈 뿐이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철수가 없으니, 이것저것 불편한 일투성이였다. 결국 백기를 든 세르게이. 그가 철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잘못했다. 돌아와라]

그랬는데....그로부터 반나절 동안 철수는 돌아오지도 않았고, 세르게이에게 답장을 보내지도,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자 세르게이도 진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정말 급한 일 아니면 가급적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던, 김훈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김훈이 그랬다.

-철수 찾아 줄 테니까, 그와 같이 일 하나 해라.

“무슨 일?

-그건 철수 찾은 다음에 철수한테 묻고.

그렇게 김훈과 통화를 끝내고 나서 30분쯤 지났을까? 철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철수! 어디야? 괜찮아?”

-어! 난 괜찮아. 근데 우리 지금 중랑경찰서로 가야 해.

“경찰서?”

-대표님이 너한테 말했다던데? 일 하나 맡기로....

“그러니까 그 일을 지금 바로 하란 거야?”

-어. 빨리 처리해야 한다네. 그래서 말인데 세르게이 네가, 장비 좀 챙겨서 중랑경찰서로 좀 와.

그 말 후, 철수가 그 빨리 처리해야 할 일이 뭔지, 세르게이에게 러시아말로 정확히 설명을 했다. 근데 처리할 일이 하나가 아니었다. 뭐 세르게이가 들어보니 두 가지 일이 하나처럼 처리할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었다.

-....데 병원에 있는 녀석은 덩치가 장난 아닌가봐. 몸무게가 150Kg이 넘는다니까 참고하고....

쭉 설명을 하고 난 뒤 철수가 마지막으로 세르게이에게 사과를 했다.

-세르게이. 걱정 끼쳐 미안 해. 그럴 만한 사정이 좀 있었어. 자세한 건 이 일 끝내고 맥주 한 잔 하면서 내가 설명할게.

“그래. 그 사정이 뭔지 이따 듣도록 하고. 지금 장비 챙겨 중랑경찰서로 갈 테니까 거기서 보자.”

세르게이는 철수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2건의 의뢰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면서, 필요한 장비를 챙기러 김훈 에이전트의 아지트로 향했다.

* * *

세르게이와 대판 싸우고 오피스텔을 나온 철수.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해. 그렇게 제 멋대로 할 거 같으면 처리자는 왜 하겠다고 해서....”

철수는 지금처럼 중구난방이 아닌, 좀 더 체계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너무나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려는 그와 ,철수는 일할 때 빼고 맞는 게 없었다. 그러니 매일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어디 가지?”

싸우고 나왔지만 막상 갈 때가 없는 철수. 그런 그의 뇌리에 전처가 생각났다.

철수도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 때 가정을 꾸렸다. 물론 도박과 마약에 미쳐 살면서 그 가정은 풍비박산 났지만.

이렇게 얘기하니까 철수가 가정 파탄 범처럼 여겨질 테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러니까 철수가 도박과 마약을 시작한, 그 원인을 제공한 게 바로 그의 전처였으니까.

정확히 가정 파탄 범은 그의 전처라고 보면 됐다. 전처의 과거도 모르고 그녀의 미모만 보고 덥석 결혼한 철수.

그런데 알고 보니 전처가 호스티스 출신에 도박과 마약을 상습적으로 해 왔었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철수.

그때 철수는 이미 도박과 마약에 빠진 상태였고, 그 늪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고 질퍽했다. 그가 겨우 그 늪을 빠져 나왔을 때, 전처는 그가 아닌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 도박과 마약을 할 수 있게 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남자와 말이다.

철수는 그런 전처와 헤어졌고,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철수는 전처의 핸드폰 번호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철수는 별 생각 없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전처와 연결 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랬는데....

-여보세요?

차분한 여자 목소리. 철수는 딱 듣는 순간 전처란 걸 알았다. 놀람 반, 반가운 반으로 철수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했다.

“진짜로 받네.”

-철수씨?

전처도 철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게 그녀와 통화가 시작 되었고, 10여분 뒤 통화를 끝낸 철수가 상기 된 얼굴로 근처 은행으로 갔다. 그리곤 현금을 찾아서 그 돈을 가지고, 택시를 잡아타고 XX병원으로 향했다.

XX병원에 도착한 철수는 곧장 수납처로 향했고....

“여기 윤미주라고 4살 된 아이가 입원해 있을 텐데....”

“네. 그런데요?”

“그 아이 병원비가 미납 되어 있다던데 맞습니까?”

“네. 3달치가 미납 되어 있어요. 근데 누구신지?”

“아아. 저는 윤미주 친척 되는 사람입니다. 혹시 미납 된 병원비가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정확히는 봐야하는데 대략 천 2백만 원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수납처 직원의 대답에 철수가 한도의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휴우. 다행이네요. 그 병원비 제가 내겠습니다.”

철수는 가방에서 은행에서 찾은 돈을 꺼냈고, 잠시 후 윤미주란 아이의 병원비를 자신이 대신 냈다. 그리고 막 병원을 나서는데, 그에게 전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무심결에 그 전화를 받은 철수. 근데....

“네? 교통사고요?”

전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게 아닌가?

“거, 거기가 어딘데요? 네? XX병원이요?”

철수의 눈에 마침 여기 병원 응급실이 보였다.

* * *

그러니까 철수와 이혼하고 나서 몇 달 뒤에, 전처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그 아이는 철수의 아이가 아닌 그때 당시, 그녀와 같이 살고 있던 남자의 아이였다.

그런데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전처가 무슨 계기인지 몰라도, 도박과 마약을 단번에 끊었단다.

그 뒤 뱃속 아기를 지켜 온 그녀가 순산을 했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윤미주였던 것.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 아빠가 마약조직원이었고, 어느 날 사라지더니 도통 소식이 없었다.

가장이 사라지면서 전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된 전처는, 아무래도 아이에게 신경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아이가 갑자기 아팠고,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전처는 지금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얘기를 전처에게서 전화로 듣고 나서 철수는 생각이 났다.

자신이 아내와 이혼하면서 위자료 한 푼 주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그 위자료를 주려고 은행에 들러서 통장에 돈을 다 찾았다. 그래봐야 천 5백만 원 밖에 안 되는 돈이었지만, 그 돈을 챙겨서 전처의 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한 철수.

다행히 병원비가 그가 챙겨간 돈보다 적었다. 그래서 바로 밀린 병원비를 내 버린 철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하필 전처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 병원에 발이 묶이게 되어버린 철수.

그가 전처 대신 간병인이 되어서, 그녀의 아이 얼굴을 물수건으로 세수 시키고 있을 때였다.

“미주 아버님. 전화 좀 받아보세요.”

“네?”

갑자기 자신에게 핸드폰을 건네는 병동 간호사. 아무래도 미주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 철수는 자기가 미주 아빠라고 거짓말을 좀 했다.

어째든 얼떨결에 병동 간호사가 건넨 핸드폰 전화를 받은 철수는 움찔하며 놀랐다.

왜냐하면 간호사가 건넨 핸드폰에서 들려 온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김훈 대표였기 때문에.

-철수. 당신 거기서 뭐하고 있어?

“네? 그, 그게....”

김훈 대표의 물음에 철수가 어리바리하게 굴었고, 그런 그에게 김훈 대표가 말했다.

-세르게이와의 공금을 천 2백만 원이나 썼던데? 그 사실을 세르게이가 알면 좋아하겠네?

김훈 대표의 그 말에 철수의 등골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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