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42화 (34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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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막 택시를 잡아 탄 정민지가, 유혜라의 스토커가 유력한, 신석기란 미성년자 사고뭉치 남자애를 만나러, 삼성동 하늘채 아파트로 가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이잉!

그녀 핸드폰이 울렸고, 그 전화를 받으려던 정민지.

“뭐야?”

핸드폰 화면 위쪽 배터리 빈칸이 점멸되고 있는 게 눈에 띠었다.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은 것.

어째든 걸려 온 전화를 정민지는 받았다. 왜냐하면 전화를 건 상대가 유혜라라서 안 받을 수 없었다.

“네. 언니.”

-어디야?

지금 그녀가 유혜라의 스토커가 유력한 녀석을 잡으러 가고 있다고, 유혜라에게 말 할 순 없었다.

“지금 언니 집으로 가고 있어요.”

-잘됐다. 올 때 우리 집 근처에 XX피자라고 있어. 거기 피자하고 스파게티 주문해 놓을 테니까 찾아 와.

그 말에 택시 앞쪽 시계를 유심히 살핀 정민지. 그랬더니 시간이 벌써 12시가 넘어 있었다.

“알았어요.”

-그리고, XX피자 옆에 보면 XXX세탁소라고 있어. 거기서 내 옷 좀 찾고 또....

유혜라는 무려 다섯 가지 심부름을 한꺼번에 정민지에게 시켰다. 근데 그게 또 헷갈리지 않는 게, 피자 가게부터 시작해서 심부름 할 곳의 동선이 딱 정해져 있었다.

피자 가게 옆에 세탁소, 그 세탁소 옆에 문구점, 그 문구점 옆에 부동산 중개소 등으로 말이다.

단지 그걸 설명하는 유혜라의 말이 길어지는 바람에....그녀와 통화를 끝냈을 때, 정민지의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소진 되어 버렸다.

디로리리리!

그 결과 종료 음과 함께 정민지 눈앞에서 그녀 핸드폰 화면이 꺼져 버렸다.

“쯧쯧....”

혀를 차던 정민지. 그녀는 곧장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죄송한데 목적지를 삼성동 C펠리스 시티로 바꿀게요.”

어차피 가는 방향을 같았기에 택시기사가 바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15분 쯤 뒤 정민지를 태운 택시가 유혜라의 집이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앞에서 도착했고, 택시에서 내린 정민지는 XX피자로 향했다.

어젯밤에 정육점을 찾아가는 와중에, 이곳 지리를 더 잘 알게 된 정민지. 그녀는 쉽사리 XX피자를 찾았다.

“피자 찾으러 왔는데요.”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XXXX이요.”

정민지는 유혜라의 번호 뒷자리를 말했다. 그랬더니 이미 포장 된 피자와 스파게티를 건네는 피자가게 직원.

계산은 이미 된 터라 정민지는 그걸 챙겨서 피자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그 옆 세탁소에 들러서 유혜라가 맡긴 옷들을 챙기고, 나머지 3곳도 차례차례 들러서 유혜라가 말한 심부름을 다 완수한 뒤, 정민지는 유혜라의 집으로 향했다.

* * *

우동식은 형사 생활 25년이 넘은 베테랑 형사다. 그런 그가 소년범죄를 주로 담당하게 된 것은 5년 전부터.

원래는 강력계 형사였는데, 현장에서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맨 후, 그는 더 이상 강력계에서 몸담을 수 없게 됐다. 신체적이기보다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형사계로 넘어와서 그가 맡게 된 게 바로 소년범죄였고,

워낙 현장 경험 많고 노련한 그는, 빠르게 그쪽 업무에 적응했고, 어느 새 소년범죄 쪽으로 최고란 소리를 듣게 됐다.

“우 형사님!”

“어어. 도훈아. 어서 와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우동식. 최근 소년범죄가 급격히 늘고 있었다.

그 중 촉법소년(만 10~13세)이 저지른 범죄가 확 늘면서, 우동식을 더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범죄 유형별로 봤을 때 아무래도 절도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폭력이고, 강간, 추행, 방화 등이 그 뒤를 이었는데, 문제는 살인과 강도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이 생겨나고 있단 점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대응이 너무 안일하고 또 미흡했다.

당장 우동식이 요청한 인력 보강도 묵살되고 있었고 말이다.

하긴 촉법소년 범죄가 실적 쌓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으니까.

우동식은 유도훈 같은 빠릿빠릿한 형사 하나가m 자기 밑으로 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해서 유도훈에게는 특별히 친절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어어. 일이 좀 많아서. 커피 한잔 타 줄까?”

“아뇨. 제가 타 먹겠습니다.”

유도훈은 알아서 커피를 두 잔 타 와서 한 잔을 우동식에게 건넸다.

“여기....”

“생큐. 잘 마실게.”

우동식은 이런 몸도 눈치도 빠른 후배가 필요했다.

그는 최대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과부하 걸린 자신의 머리를 식혔다.

그때 유도훈이 우동식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그를 찾아 온 용건을 밝혔다.

“우형사님. 여기 소년원 들락거린 소년 범들 대부분 아시죠?”

“그렇지. 5년도 넘었으니까. 왜?”

“혹시 신석기라는 녀석 아세요?”

유도훈의 입에서 신석기란 말이 나오자, 편안하게 등을 의자에 기대고 있던 우동식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신석기가 왜?”

갑자기 예민하게 날선 우동식의 반응에, 유도훈도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 그게 배우 유혜라라고 아시죠?”

“알지. 요즘 인기 있는 엄청 예쁜 여배우잖아.”

“그 유혜라를 스토킹 하는 녀석이 있는데, 유혜라의 경호원이 신석기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 말에 우동식이 바로 유도훈에게 말했다.

“그 경호원에게 설마 신석기 집 주소 알려 준 건 아니지?”

“그 녀석 신상정보를 알려줬으니, 주소도 알려 준 셈인데. 왜요?”

“허어. 그 경호원에게 빨리 연락해서, 행여나 그 녀석 집에 혼자 갈 생각 말라고 해.”

“네?”

“신석기. 고등부 유도 무제한급 선수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까지 땄고.”

“네에?”

“작년에 녀석 잡느라고 형사 5명이 투입 됐는데....제압 못하고 결국 총까지 쏴서 잡았다고. 그런 녀석이 1년이 지났으니, 더 괴물이 됐을 거 아냐?”

“허얼....알겠습니다.”

“연락 안 해?”

“아아. 그 경호원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유도훈은 우동식과 신석기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하다가 조사실로 갔다. 그런데....

“어디 갔지?”

그곳에 정민지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더니, 몇 분 전에 조사실 앞에서 그녀가 유도훈을 기다렸단다. 그러다 그가 오지 않자 경찰서를 나갔고.

근데 조사실에 있던 복사된 신석기의 신상명세서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말은....

“젠장....”

유도훈을 정민지를 쫓아 경찰서 밖으로 뛰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띠띠띠띠....

근데 통화 중이 걸렸다. 그대로 1층 로비로 뛰어 내려간 유도훈. 마침 그가 아는 동료가 보여서 그에게 물었다.

“강 형사님. 저하고 같이 있던 여자 못 봤어요?”

“그 미인? 좀 전에 경찰서 밖으로 나가던데.”

“고맙습니다.”

유도훈은 그대로 뛰어서 경찰서 밖까지 나갔지만, 결국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고, 별수 없이 동기인 정민호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 * *

현장감식(現場鑑識)이란 범죄와 범인을 결부시킬 수 있는 자료를 수집, 채취하여 수사 자료화함으로써 범죄를 증명함에 충분한 증거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현장에서의 수사 활동을 말한다.

최근 자백의 신빙성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철저한 증거주의가 중시되고 있기 때문에, 현장감식을 통해 더 많은 수사 자료를 수집, 분석, 감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정민호는 굳은 얼굴로 살인 사건 현장에서 현장감식 중에 있었다.

사건 현장은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대로 보존되지 않거나 오염되면, 사건 수사에 나쁜 영향을 미쳐 심지어 사건 해결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때문에 사건 현장에 대한 감식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했는데, 다행히 이곳은 현장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빠른 현장감식이 이뤄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좀체 나오지 않았다. 그로인해서 경찰 쪽 감식반이 답답해하며 한데 모였다.

“국과수에서 뭐래?”

“거기서 하는 소리야 똑같죠. 정밀 감식이 이뤄져야 알 수 있다고요.”

“그래도 초동수사에 도움이 될 말한 힌트 같은 건 줬을 거 아냐?”

“요즘은 어림도 없어요. 저희가 먼저 물어봐야 대답해 주는데, 그것도 내키지 않으면 안해 줍니다.”

“그 참....”

그때 정민호가 국과수 감식반 중 한 명에게 달라붙어서, 뭘 한참 물었고 웃으며 동료 형사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정 형사. 뭐 좀 나왔어?”

그러자 형사 팀장이 정민호에게 바로 물었다. 정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국과수 감식반에게 알아 낸 정보를 털어놨다.

“네. 사체가 저항한 흔적이 전혀 없고, 사망 시간이 10시간 전으로 추정이 된다니까, 그 시간 때 여기 오피스텔 입구 CCTV를 살펴보면 용의자 추정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오케이. 유 형사와 박 형사가 어젯밤 12시에서 1시까지 CCTV 살펴. 그때 출입한 사람들 중 피해자와 연관 있는 사람을 찾아내. 정 형사는 나랑 같이 밑에 관리사무소에 가자고.”

그렇게 정민호는 형사팀장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커피한잔하고 가자.”

그때 형사 팀장이 관리사무소에 가기 전에, 편의점 들러서 정민호에게 커피를 사주며 말했다.

“잘했어. 지금처럼만 해. 그럼 팀장 자리 너한테 넘길 테니까.”

형사 팀장의 이런 설레발이 이제는 익숙해진 정민호. 형사 팀장은 정민호 뿐 아니라 그의 팀원들이 능력을 발휘하면, 항상 자기 자리를 그 팀원에게 넘길 거라고 말했다.

정민호도 처음에는 그 말에 혹한 게 사실이었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형사 팀장이 나쁜 인간은 아니니까. 그래서 이제는 그가 뭐라고 해도 그러려니 하고, 지금처럼 능청스럽게 알아서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아아. 배야. 나 화장실 좀....”

그렇게 형사팀장이 잠깐 화장실 간 사이 유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강남 경찰서의 동기 유도훈이었다.

“이 녀석이 왜....아아. 맞다.”

현장감식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깜빡하고 있었다. 유도훈에게 정민지를 보낸 게 자신이란 걸 말이다.

“어. 도훈아.”

-야. 정민지씨 말이야. 연락이 안 된다.

“뭐?”

자신에게 전화해서 대뜸 하는 말이, 정민지와 연락이 안 된다는 유도훈의 말을 듣고, 정민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 *

정민호는 유도훈으로부터 정민지가 그에게 뭘 부탁했는지 듣고, 또 그녀가 유혜라 스토커 용의자를 단박에 특정해 낸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호원 할 게 아니라 경찰이 됐어야 했어.”

-그렇지? 나도 그 생각했다.

정민호의 혼잣말을 듣고 유도훈이 동의하자, 뻘쭘해진 정민호가 유도훈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 전화 한 이유가 정확히 뭔데?‘

-그게....

정민호는 유도훈이 소년범죄를 전담하는 고참 형사로부터, 정민지가 추정해 낸 용의자에 대해 전해 듣고는 크게 우려가 됐다.

“무제한급 유도 선수면 거의 인간 흉긴데....”

정민호도 제법 체구가 좋은 편이지만 100Kg까지 몸무게가 나가진 않았다. 아무래도 형사가 100Kg이 넘으면, 몸이 너무 둔해져서 범인 잡는 데 지장이 있으니까. 하지만 무제한급의 유도 선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그런 유단자 범인을 잡으려면 형사 수를 배로 늘리고, 유사시 총기까지 사용해야 했다.

흔히들 제압용으로 전기 충격기 같은 걸 얘기하는 데, 무제한급 유도 유단자인 범인에게는 전기 충격기가 먹힐지, 안 먹힐지는 써 봐야 만 알 수 있었다.

근데 만약 안 먹히면? 큰일 나는 거다. 그래서 유사시 총기가 필요한 거고.

“그러니까 정민지씨 핸드폰이, 지금 배터리가 다 돼서 연락이 안 된다는 거네?”

-어. 네 사촌이니까 핸드폰 말고, 다른 식으로 민지씨와 연락이 가능할 거 아냐?

“사촌?”

-정민지씨 네 사촌 아냐?

“아니거든. 아는 지인분이 부탁해서, 사실 나도 오늘 처음 봤다.”

-그, 그래. 나는 너랑 같은 정씨기에 네 사촌인줄 알았지.

“새끼. 또 헛물 켰네. 내가 미쳤다고, 내 사촌 여동생을 너한테 보내냐?”

-내가 뭐 어때서?

“됐어. 정민지씨는 내가 지인한테 연락해서 경고해 줄 테니까, 넌 니 일이나 해.”

-와아. 씨. 아까 부탁할 때랑 완전히 다르네. 너 인간이 그러면 못 쓴다.

“시끄럽고. 끊어.”

정민호가 막 유도훈과 통화를 끝냈을 때, 화장실 간 형사 팀장이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미안. 변비가 좀 심해서....”

“아닙니다. 관리사무소는....”

“갈 필요 없어. 어차피 CCTV 살피면 범인 나올 텐데 뭐.”

“그럼 저도 화장실 좀....”

“어, 그래 갔다 와.”

정민호는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편의점을 나섰고, 바로 문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민호야.

“형. 형이 보낸 그 정민지라는 여자 경호원 말이야.”

-어. 민지가 왜?

“강남경찰서에 가서.....”

정민호의 설명을 쭉 들은 문대식. 그가 정민지가 뭘 하려는지 대충 눈치 채고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정민지 팀원, 그리 무모한 성격 아니야. 그러니 걱정 하지 마.

“하지만....”

-움직여도 나한테 보고하고 움직여. 그러니까 네 우려는 우려로 그칠 거야.

“알았어요. 형의 팀원이라니 형이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신경 써 줘서 고맙다.

“뭘요. 우리 사이에.”

-언제 시간 내서 술 한 잔 하자.

“네. 좋죠.”

그렇게 문대식과 통화 후 정민호는 곧장 몸을 틀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때 전화를 받으며 편의점을 나오는 형사 팀장.

“어. 어. 찾았어? 누군데? 피해자 전 애인? 이름은 조용수고 집은 용인이라고. 알았어. 빨리 내려 와.”

통화를 끝낸 형사 팀장이 유도훈을 발견하고 말했다.

“유 형사. 빨리 차 빼 와.”

“네.”

유도훈이 생각해 낸 대로 피해자 사망추정 시간 때, 이곳 오피스텔을 찾은 사람들 중에 다행히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을 찾아 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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