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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정재욱은 최철호가 이렇게 저열한 방법을 쓸지 몰랐다. 아무래도 최철호가 경찰차장의 최측근 심복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아. 진짜 재수 없는 하루군.”
오전에 음주운전 동영상부터 시작해서, 오늘 따라 되는 일이 없었다.
그나마 경찰차장이 자기편이 되어 줄 거 같아서, 여기서 생활이 나름 할 만하겠다 싶었는데, 점심 때 최철호를 건드려서 그마저 날려 먹은 꼴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자멸할 수는 없는 노릇. 정재욱은 심기일전했고, 형사계장을 불렀다.
“네? 지금 당장 실적 올릴 대책을 수립해서 올리라고요?”
딱 봐도 노련해 보이는 형사계장이 정재욱을 미친 놈 쳐다보듯 쳐다봤다.
“왜요?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죠.”
“뭐, 뭐라고요?”
“그게 가능했으면, 저희가 뭐 하러 경찰차장님께 매일 깨지고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형사과의 실적 부진은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란 소리였다. 그걸 알면서도 경찰차장은 정재욱에게 그걸 해결 할 방안을, 그것도 오늘 그가 퇴근하기 전에 가져 오라고 한 것이고.
한마디로 경찰차장이 정재욱을 갈구려고 제대로 작심을 했단 소리였다.
“C발, 이거 완전 좆 된 거 같은데?”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 거린 정재욱. 하지만 그 갈구는 걸 대놓고 무시해 버린다면, 경찰차장은 내일 더 미쳐 날 뛸 것이다.
“대충 형식 갖춰서 실적 올릴 대책 수립안 하나 가져 와요.”
“언제까지 말입니까?”
“5시까지요.”
“네? 설마 오늘 5시를 말씀하시는 건 아니시죠?”
“당연히 오늘이죠.”
“말도 안 돼. 제가 노는 사람입니까?”
그 말을 하는 형사계장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자, 정재욱이 발끈해서 외쳤다.
“무슨 말이 많아요. 가져 오라면 가져 오지. 지금 항명하는 겁니까?”
정재욱의 항명이란 말에 형사계장도 움찔하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실적 올릴 대책 수립안을 5시까지 올리도록 하죠. 하지만 정말 형식적으로 올릴 겁니다.”
“그래요. 딱 형식적인 보고서. 그거면 됩니다.”
그렇게 형사계장을 보내놓고, 정재욱은 당장 제주도에서 그가 살 집을 부동산중개소에 연락해서 알아봤다.
“오피스텔도 괜찮습니다. 네. 퇴근하고 거기로 바로 가보도록 하죠.”
그가 지낼만한 거처를 알아보는 데만 두 시간 넘게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요즘 제주도에서 집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 뒤 급하게 처리해야 할 형사과 서류를 결재하고 나자, 시간이 금세 5시가 다 됐다.
똑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형사과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형사 하나가 형사과장실을 찾아왔다.
“여기....”
그리고 형사계장이 가져다주라고 한 보고서를, 그 젊은 형사가 쭈뼛거리며 정재욱 앞에 내 밀었다.
“형사계장님은요?”
왜 형사계장이 안오고 네가 왔냐는 정재욱의 물음에, 그 젊은 형사가 잘도 넙죽 대답했다.
“사건 현장에 나가셨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정재욱은,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는 형사과의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대책 수립 안을 살폈다. 그랬더니....
“이, 이건....”
맨 앞장 표지와 그 뒤 갑지만 그럴싸하게 보고서처럼 꾸며져 있을 뿐, 그 뒤에는 쓰잘때기 없는 내용만 잔뜩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진짜 누가 봐도 형식만 딱 갖춘, 실적 올릴 대책 수립 안이었다.
“하아....”
이걸 들고 경찰차장실에 가면 경찰차장 입에서 나올 말이야 뻔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에이....”
결국 정재욱이 나서서 30분 동안 몇 가지 실적 올린 대책을 더 보강한 다음, 경찰차장실을 찾아갔다.
“이, 이걸 보고서라고 올린 거야? 잡범들 잡아서 실적을 올리자는 게 무슨 대책이냐고!”
예상했지만 경찰차장의 반응은 역시나 살벌했다.
“....니까 내일 아침까지 다시 만들어서 올려. 알았어?”
“네.”
오늘 퇴근은 물 건너갔다. 그건 형사계장도 마찬가지고. 정재욱은 형사과 자기 밑으로 누구도 오늘 퇴근 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내가 JYB엔터 대표실에 들어서자, 먼저 와서 거기 소파에 앉아 있던 유혜라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먼저 웃으며 얘기했다.
“오랜만에 보네?”
“그러게요.”
“오래 기다렸어?”
“아뇨. 기다린지 한 10분 정도 됐어요.”
그래도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건 어디 가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유혜라와 대화가 자연스럽게 술술 이어졌다.
“앉아. 뭐 마실래? 커피?”
“아뇨. 커피는 여기 오는 길에 마셨어요.”
“그럼 생과일 쥬스 마셔.”
나는 김 비서를 불렀고 내가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유혜라가 마실 생과일 쥬스를 주문했다. 그 뒤 김 비서가 대표실을 나가자마자, 유혜라가 내게 물었다.
“왜 부른 거예요?”
유혜라가 성격이 급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그런 직설적인 물음에 나는 여유 있게 대답을 했다.
“요즘 드라마와 영화 출연이 너무 뜸한 거 아닌 가해서.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일적으로 그녀를 불렀다는 걸 알게 된 유혜라. 그제야 그녀 얼굴에 서려 있던 긴장감이 싹 풀리면서, 내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했다.
“아뇨.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서 그래요. 뭐 어째든 CF는 열심히 찍고 있잖아요?”
유혜라의 말에서 살짝 짜증 묻어나왔다. 한마디로 회사에 돈을 열심히 벌어주고 있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거다.
“CF로도 좋지만 그건 너무 짧아. 나는 네가 좀 더 길고, 오래 TV나 스크린 화면에 나오는 게 보고 싶어.”
“네?”
내 말에 유혜라가 적잖아 당황해 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이다.
“말 그대로야. 나는 네 아름다운 모습이 단발성 CF가 아닌,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는, 그런 대작 드라마나 영화로 남기고 싶어. 그러니까....같이 골라보자. 네가 출연할 작품.”
“지, 지금 나랑 같이 내가 출연할 작품을 고르자고 했어요?”
유혜라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것만 봐도 그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 지 알 거 같았다. 굳이 「개눈깔」아이템 같은 걸 사용해서 확인하고 자실 필요도 없이 말이다.
“어. 너와 같이. 그래서 말인데 오늘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좋아요!”
내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성질 급한 유혜라가 먼저 대답부터 했다.
그래놓고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얼굴을 붉히는 유혜라.
‘백준열. 너란 놈은 당최 이해가 안 돼.’
저런 매력적인 여자를 두고, 왜 자기를 이용해 쳐 먹으려는 여자와, 그를 벌레 보듯 하는 여자와 굳이 동거를 하는 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퇴근하고 내가 가야 할 동거녀 집은, 아나운서 출신 MC 임연수의 집이다. 연락 해봐야겠지만 여태 아무 소식이 없는 걸로 봐서, 오늘 밤 그 집에 가서 자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저녁은 유혜라와 먹을 예정이니까,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전화 정도는 해 줘야겠지.
그때 유혜라가 손목에 차고 있던 자신의 시계를 봤다.
“왜? 스케줄 남은 거 있어?”
“네. 광고사에서 컨택 회의를 좀 하자고 해서요.”
“그럼 가 봐. 저녁 약속 장소와 시간은 매니저에게 일러 놓을 테니까.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육고기만 아니면 돼요.”
“씨푸트 레스토랑 어때?”
“좋아요.”
“알았어. 그럼 그쪽으로 예약하지.”
할 얘기가 다 끝나자, 유혜라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런 유혜라를 대표실 밖까지 일부러 따라 나가서 배웅했다.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든 듯, 유혜라가 입 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이따 봐.”
“네.”
그렇게 유혜라를 보내고 나서 대표실로 돌아 온 나에게, 바로 김 비서의 인터폰이 울렸다.
-대표님. 대서양 로펌의 강태욱 변호사님께서, 대표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찾아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강태욱 변호사?”
-네.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병진 전무 고문 변호사라고 하시면 아실 거라고....
“아아. 지금 거기 있어?”
-네.
“들어오라고 해.
잠시 뒤, 어제 추병진 옆에서 큰소리 꽤나 쳐대던, 그 탐욕과 야심에 가득 찬 눈빛의 중년 변호사가, 능글맞게 웃으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 * *
백준열과의 만남을 위해서 어젯밤 늦게까지 일한 강태욱. 그런 그가 오늘 법원에서 무사히 재판을 끝내고 곧장 JYB엔터로 향했다.
원래는 바로 퇴근해서 골프를 치러 가거나, 새로 뚫은 룸빵 호스티스와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테지만, 오늘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때문에 어제 안하던 야근까지 한 거고.
“들어가세요.”
여기가 국내 탑 티어 연예기획사가 아니랄까? 대표실 비서의 외모가 여배우 뺨을 10대 정도는 칠 정도다.
‘진짜 예쁘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여배우들 빼고 반반한 여자들은 룸살롱에서 찾으면 된다고.
그만큼 룸빵 호스티스들의 미모는 출중했다. 근데 그런 호스티스들과 지금 강태욱의 눈앞에 있는 JYB엔터 대표실의 비서는 그 급이 달랐다.
‘이따가 연락처 좀 물어 봐야지.’
어차피 여자들은 다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명품 가방 선물하고 값비싼 레스토랑 데리고 가서, 한껏 기분 좀 내 주면 알아서들 다 다리를 벌리게 되어 있었다.
강태욱은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면서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서 오세요.”
어제 서초경찰서에서 만났던 백준열이, 일단 그를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다.
“바쁘신데 이렇게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강 변호사님이 저한테 꼭 할 말이란 게 뭘까요?”
백준열이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강태욱을 쳐다보며, 어서 네가 가져 온 그 보따리를 풀어보라고 재촉하자, 강태욱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그말 후 강태욱은 대표실에 들고 들어 온 서류 가방 속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서 백준열에게 건넸다. 그 서류를 받아 든 백준열은 이게 뭐냐며 빤히 강태욱을 쳐다봤다.
그러자 강태욱이 여전히 웃으며 그 서류를 보라고 손짓을 했다. 해서 그 서류를 펼쳐 본 백준열.
“....으음....이, 이건....”
백준열이 놀란 얼굴로 서류에서 눈을 떼서는 강태욱을 쳐다봤다. 그러자 강태욱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자못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이번에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거기 내부 자료는 쓸모없어졌지 뭡니까.”
그 말을 하면서 눈빛을 빛내는 강태욱. 그런 그를 보고 백준열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보다야, 저희 JYB엔터가 좋지요.”
백준열의 그 말에 원하는 대답을 들은 듯 강태욱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백준열 대표님.”
“그 말은 제가 드리고 싶네요. 강 변호사님.”
백준열은 강태욱이 건넨 서류를 잘 챙긴 뒤 그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강태욱은 대표실에서 나와서, 김 비서에게 자기 명함을 건네고 곧장 JYB엔터 법무 팀으로 향했다.
JYB엔터의 고문 변호사로써, 앞으로 법무 팀과 조율하고 조절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까.
* * *
대서양 로펌의 강태욱 변호사가 내게 가져 다 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의 내부 정보는, 인수합병에 있어서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고급 정보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걸 스캔해서 바로 블랙머니의 박 비서에게 메일로 보냈다. 그 뒤 김 비서를 불러서 물었다.
“유혜라 올 때 정민지 경호팀원도 같이 오지 않았나?”
“네. 유혜라씨 매니저와 같이 대표실 오셨는데요. 정민지 요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타쌍피를 노렸던 내 계획은 무산 됐다. 나야 유혜라를 근접경호하고 있는 정민지가 당연히 유혜라를 따라서 대표실에 올 거라고 여겼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건, 뭔가 그럴만한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신경이 좀 쓰이네.”
하지만 나는 이내 그쪽에 관한 걱정은 털어냈다. 왜냐하면 정민지의 능력을 아니까. 그녀라면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를 유혜라에게 보내기 전에, 그녀에게 「개방울」아이템을 사용해 뒀었다.
따라서 그녀가 어디 쯤 있는지만 알아도, 나는 거기로 가서 정확히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정민지는 현재 위치가 바뀔 때마다, 경호팀장인 문대식에게 자신의 위치를 보고하고 있었기에, 필요시 나는 언제든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똑똑똑!
내가 오늘 가서 자야 할 동거녀 임연수에게 막 전화를 걸려는 데, 노크 후 김 비서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왜?”
내가 묻자 그녀가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대표님. 조금 전 알아낸 사실인데....차덕기 감독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진호 대표와 웨이크 호스 호텔에서 만나고 있다는....”
김 비서는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여전히 차덕기 감독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
하긴 이전에 백준열이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했었던 차덕기 감독이 아니었던가?
그걸 내가 단칼에 잘라 냈다는 말이, 그녀에게는 충분히 신빙성 없는 얘기로 들렸을 수 있었다. 백준열의 죽 끓듯 하는 그 변덕을, 한 두 번 겪어 본 김 비서도 아닐 테고 말이다.
“잘 됐네.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 잘 해 보라고 해.”
“....진심이세요?”
“어. 그러니까 앞으로 차덕기 감독에 대해서 내게 더 이상 얘기 하지 마. 그쪽으로 신경도 끊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나가 봐.”
나는 김 비서가 대표실을 나가자 바로 내 여자 중 한 명인 임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 음이 세 번을 막 넘길 때, 임연수가 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