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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333화 (33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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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어제 만큼이나 오늘도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은 많았다. 그 중에 어제 하려다 못한 일이, 아무래도 신경 쓰이기 마련. 그걸 또 김 비서가 잘 캐치해서, 출근하자마자 내게 보고를 했다.

“어제 대표님께서 추진호 대표와 합의를 보신 탓에, 한혜영씨 30분 만에 진술 끝내고 집으로 갔고, 오늘 오전에 이쪽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오전 몇 시?”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오기로 했습니다. 대표님과 구두계약을 하신 걸로, 아시고 계시더라고요. 해서 차은석 부문장님이 계시는, 특수 1부문으로 바로 가셔서 계약하면 된다고 했습니다만.”

“잘했어.”

한혜영과 계약하는 데 굳이 내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나보다 실무진으로 한혜영도 맡을 차은석 부문장이, 그녀와 계약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었다.

한혜영은 모델이지만 예능감이 좋고, 또 다양한 끼와 재능을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다.

그런 그녀의 매력을 차은석 부문장이 몰라 볼 리 없었다.

“전화 할까요?”

김 비서가 이제 내가 한숨 돌린 거 같으니, 삼명그룹 회장실에 전화 걸지를 물어왔다.

그래서 그러라고 막 그녀에게 말하려는 데....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박지수다.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저....표 감독 문상 가는데....좀 따라가 주실 수 있어요?

“언제 갈 건데?”

-지금 갈까 해요. 그리고 당신에게 할 말도 있고....

박지수의 딱 말하는 뉘앙스가, 내가 그녀와 같이 표 감독 장례식장에 가 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걸 느꼈는데 어떻게 안 따라 갈 수 있겠나?

“좋아. 그럼 한 시간 뒤에 장례식장에서 보도록 하지.”-한 시간은 너무 빨라요. 두 시간 뒤에 거기서 봐요. 문상하는 데 시간 오래 걸릴 것도 아니고.

“알았어. 그럼 두 시간 뒤에 거기서 봐.”

나는 박지수와 통화 후 김 비서에게 말했다.

“두 시간 뒤에 XX병원 장례식장에 갈 거니까 스케줄 조정해.”

“네. 그럼 이제 진짜 삼명그룹 회장실로 전화 걸까요?”

“그래. 걸어.”

잠시 뒤, 김 비서가 먼저 삼명그룹 회장실에 전화를 건 다음 내게 전화를 돌렸다.

“여보세요?”

-이동훈 실장입니다.

“회장님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랍니까?”

새로운 비서실장이 선임되자, 또 다시 백승렬 회장과 통화하기 전에, 비서실장을 거치는 절차가 되살아났다.

-대표님께 그리 유쾌한 소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언제 좋은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어야죠.”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잠시 이동훈 실장과 얘기하는 사이, 백승렬 회장이 내 전화를 받았다.

-내일 아침에 얘기 하려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전화했다.

대뜸 본론에 들어가는 백승렬 회장. 과연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쁘신 양반답다.

“뭔데요?”

-너도 알거다. 서지현 삼명 재단 이사장이, 경기 도지사와 사이에 해 놓은 약속 말이다.

확실히 이혼 했다더니, 백승렬 회장이 안 사람에서 서지현이란 이름으로, 삼명재단 이사장을 부르고 있었다.

“경기 도지사 딸과 선보는 거 말입니까?”

-그래. 그 일. 아무래도 네가 선을 한 번 봐야 할 거 같다.

“네?”

-경기 도지사 그 양반 이번에 청와대에 잘 보인 모양이야. 굵직한 국책사업을 경기도에서 세 개나 따냈더구나.

그러니까 그 국책사업을 우리 삼명그룹에서 가져 오려면, 내가 희생을 좀 해야 한다는 소리다.

“선만 보면 됩니까?”

-왜? 결혼하려고? 나야 그래 주면 좋고.

“그럴 리가요. 딱 선 보는 거 까집니다.”

-그래. 더 이상은 나도 원하지 않는다.

보아하니 필요한 국책사업만 따 내면, 경기 도지사 양반에게 싹 입 닦으려는 모양이었다.

아직 삼명그룹에 반기를 들 처지가 아니기에, 나는 일단 순순히 말 잘 듣는 막내아들 연기를, 한 동안 이어 나가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경기 도지사의 딸과 선도 보기로 했고.

-만날 시간과 장소는 당사자끼리 정하는 걸로 했다.

그러면서 이 통화가 끝나면 이동훈 실장이, 그 경기 도지사 딸의 연락처를 알려 줄 거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볼 거라 백승렬 회장과 더 길게 얘기하지 않고 그대로 통화를 끝냈다.

그러자 이동훈 실장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어디 보자. 이름은 류지혜고, 올해 27살....동인여대 무용과 출신이라....”

그래도 이동훈 실장이 내가 선 볼 여자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문자 메시지에 덧붙여 주었다.

“주말에 시간 없으니까, 역시 주중에 만나야겠지?”

그런데 주중이라고 해야 내일과 모레 뿐이다. 오늘 전화해서 오늘 만나자는 건 예의가 아니고. 해서 나는 바로 류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류지혜씨?”

-그런데요?

“저는 백준열이라고 합니다.

-아아. 안녕하세요?

“저희 선 봐야 하는데. 언제 어디서 뵐까 전화 드렸습니다.”

-저는 주말이면 언제든 좋아요.

역시나 류지혜는 나와 주말에 선 보는 줄 알고 있었다.

“죄송한데 저는 주말이 더 바빠서요. 해서 말인데 주중에 뵐 수 있을까요?”

-주중이요?

“네. 이왕이면 내일이나 모레 저녁이 좋겠는데?”

-으음....그렇다면....내일 저녁에 봐요.

“저녁 7시에 그랜드 호텔 레스토랑에서 보도록 하죠.”

-좋아요.

상대가 경기 도지사 딸인 만큼, 저녁 식사 한 끼는 이쪽에서 대접하는 게 예의 같아 그렇게 했는데, 상대도 흔쾌히 수락하면서 그렇게 선보는 약속이 정해졌다.

* * *

류지혜와 통화 후 김 비서가 가져다 준, 긴급을 요하는 중요 결재서류를 검토하고, 거기 사인을 한 후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준수 감독의 장례식장에 시간 맞춰 가려면 지금 나서야 했다. 그때 대표실을 나서는 내게 김 비서가 말했다.

“대표님. 좀 전 문성 스포츠 신문에....”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연예인들인, 자이언트X의 랩퍼 동준이와 씨엔스타의 메인댄스 하영의 스캔들이 문성 스포츠 신문 일면을 장식한 모양이었다.

“혹시 대표님께서 관여하신 일인가요?”

내가 자신의 말에 별 반응이 없자, 눈치 빠른 김 비서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김 비서에게 말했다.

“좀 이따가 한혜영씨 오면 핸드폰 번호 알아놓도록. 그리고 류상현 경기 도지사의 딸 류지혜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 놓고.”

그 말 후 나는 경호팀원들과 같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고, 지하로 내려가서 거기서 차를 타고, 곧장 XX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나는 박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출발했어?”

-아뇨. 이제 출발하려고요.

“혹시 먼저 도착하더라도 먼저 들어가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알았어요.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 갈 게요.

그녀 혼자 장례식장 안에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불안했다. 표 감독 집안사람들이 그녀를 좋게 볼 리 없으니까.

내 생각에는 근조화환이나 보내고 조문 가는 건 피했으면 하는데, 박지수가 전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꼭 해야겠다니 어쩌겠나?

이쪽도 안 막히면 박지수보다 더 빨리 XX병원에 도착할지 몰랐다.

물론 서울도로 사정상 안 막힐 리 없겠지만.

그렇게 박지수와 막 통화를 끝냈을 때, 김 비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왜?”

-어제 차덕기 감독과 얘기 잘 안 된 거예요?

“어. 막상 만나서 얘기 해 보니까, 서로 입장 차가 너무 크더라고. 그래서 차 감독과 함께 하는 건 접기로 했어.”

-....괜찮으세요?

김 비서는 아직도 내가 차덕기 감독 빠돌이 인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그리고 나 요즘 영화 취향 바뀌었거든. 컬트에서 로맨스로.”

-네?

“그러니까 차 감독 투자 계획은 완전히 접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류지혜씨에 대한 정보 말인데요.

“벌써 나왔어?”

-네. 근데 보고 드리기가 좀....

“왜? 영 아니야?”

-네. 그냥 한 마디로....개잡년입니다.

“....”

김 비서가 웬만하면 욕 쓰지 않는데, 그런 그녀가 개잡년이라고 할 정도면, 대체 경기 도지사 딸의 행실이 도대체 어떻기에....

아까 통화 할 때 류지혜는 참해 보였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고 말이다. 하지만 목소리로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는 없는 법.

-최상류층의 선 시장에서 이미 유명하던데요. 별명이, 낮엔 ‘요조숙녀’고 밤에는 ‘문란녀’라고 말이죠. 그냥 클럽 가면 집에 안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김 비서의 신랄한 그 말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남자가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지 뭐.”

하지만 김 비서는 어지간히도 류지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 같았다.

-대체 이딴 여자,를 왜 저보고 알아보라고 하신 건가요?

따지듯 묻는 김 비서에게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내일 저녁에 나하고 선 볼 여자라서.”

-네?

내 말에 꽤 놀란 듯 보이는 김 비서. 하지만 그녀는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삼명그룹 회장실에서 연락이 온 게 그럼?“

“어. 맞아. 백 회장님이 나보고, 경기 도지사 딸과 선보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진짜 하실 거예요?

“해야지 그럼. 약속시간, 장소까지 다 잡았는데.”

-그래요. 선 잘 보시고 결혼하실 짝 꼭 만나세요. 파이팅!

뚜뚜뚜뚜뚜뚜뚜....

분명히 덕담인데 김 비서의 살짝 비아냥거림이 들어가서 그런지, 듣다보니 기분이 살짝 나빠졌다. 거기다가 파이팅은 무슨, 그게 파이팅할 일인가?

그리고 이게 건방지게 어디서 나보다 먼저 전화를 끊고 말이다. 아무래도 김 비서 자기 주제 파악 좀 시켜야 할 거 같았다.

“으음....”

막 그 생각을 하고 나서 나는 순간 침울해졌다. 왜냐하면 이상하게 김 비서에 관한한 백준열의 본성이 내 이성을 앞섰다.

이게 지금은 김 비서에 국한 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만약 다른 쪽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렇게 되면 진짜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든 지금 백준열의 몸에 빙의한 건 나지, 백준열은 아니니까. 백준열이 자기 몸에 자기 정체성을 되찾아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럴 때 견신 시스템이나 견신이, 무슨 언질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꼭 이럴 때는 그 둘은 다 침묵했다.

* * *

표준수 감독의 부고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 영화계가 슬픔에 잠겼다.

당일 촬영이 잡힌 곳 말고, 현재 촬영 중인 곳의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표준수 감독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그로 인해 장례식장은 조문 인파를 북적거렸다. 그런 가운데 어제 대판 싸웠던 표준수 감독의 외동딸 표지수와 여동생 표혜란이, 그래도 나란히 상주가 되어 문상객을 맞았다.

하지만 둘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상주로 같이 서 있을 뿐.

웅성웅성!

그때 갑자기 장례식장이 시끄러워졌다. 그럴 것이 표준수 감독의 전처이자,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며 현역 활동 중인 여배우. 박지수가 장례식장에 나타났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그녀 옆에, 훤칠하니 키 크고 잘 생긴 젊은 남자가 그녀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곧장 같이 빈소로 들어섰고, 영정 앞에도 나란히 섰다. 그리고 같이 절을 했는데, 그때 그 장면을 상주석의 표지수가 빤히 지켜보다가 버럭 소리를 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그것도 남자를 데리고 오다니. 네년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그리곤 처음 절하고 몸을 일으킨 박지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표지수의 두 손에 박지수가 머리끄덩이 잡힐 상황.

턱!

하지만 박지수 옆의 젊은 남자가 먼저 박지수 앞을 가로 막았고, 그로 인해 표지수의 두 손이 박지수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는 데 실패했다.

“비켜! 비키라고!”

악을 쓰며 자신을 막아선 젊은 남자를 밀어내고, 기어코 박지수를 잡으려 허우적거리는 표지수.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박지수가 말했다.

“지수야.”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마.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엄마가 죽고, 너 때문에 아빠도 죽었어. 니가 나한테서 엄마, 아빠를 다 뺏어갔다고. 어떻게 할 거야?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박지수가 뭘 어쨌다고 자기 부모를 죽였다는 말인가?

엄숙해야 할 영정 앞에서, 조카가 조문객에게 행패를 부리니, 그 고모인 표혜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표지수. 그만 두지 못해. 아버지 영정 앞에서 이 무슨 추태야.”

“추태? 지금 추태라고 했어? 내 말이 뭐가 틀렸는데? 저 년 때문이잖아. 고모?”

“하아. 지수야. 어제도 말했지만,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니 그만하고 저 사람들마저 고인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게 하자.”

“싫어. 누구 마음대로 아빠한테 인사를 해. 꺼져. 나가라고.”

표지수의 거듭 된 행패와 막말에 결국 박지수와 젊은 남자는, 표준수 감독 영정에서 두 번 반의 절을 올리지 못하고, 당연히 상주들과는 맞절도 못한 채 빈소를 나와야 만했다.

“미, 미안해요.”

박지수는 장례식장 안에서 자기 때문에 빈소에서 못 볼꼴 다 보고, 표 감독 딸의 행패를 막느라 식겁한 젊은 남자, 백준열에게 사과부터 했다.

“아니. 이건 너한테 사과 받을 일은 아니지.”

그러면서 백준열의 시선이 다시 빈소 쪽으로 향했다. 거기서 표준수 감독의 딸과 그 여동생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게 그의 눈에 보였다.

상대가 친족인 고모였는데도, 표준수 감독의 딸은 위아래 따윈 어디다 엿 바꿔 먹은 모양이었다.

“쯧쯧. 표 감독이 자식을 영 잘못 키웠네.”

그 말 후 몸을 돌린 백준열이 앞장서서 장례식장을 나섰고 그 뒤를 박지수가 따르며, 두 사람이 장례식장을 나오자 바로 그들 앞으로 차가 왔다.

빈소 안과 달리, 백준열을 경호하던 경호팀원 중 하나가 잽싸게 차문을 열자, 백준열이 먼저 박지수를 태우고, 뒤에 그가 탔다.

그러자 문을 열었던 경호팀원이 그대로 대기하고 있다가 차문을 닫았고, 그 차는 바로 출발해서 신속하게 XX병원 장례식장을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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