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32화 (33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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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런 허세 만땅인 동준에게 하영이 조심스럽게, 자신이 진짜 그에게 전화를 건 용건을 밝혔다.

“오빠. 나 실은....”

-뭐? 그, 그러니까....너 지금 임신을 했단 말이야?

“어. 좀 전에 임신테스트기 써 봤는데 두 줄이 선명하게 나왔어.”

-그, 그....하영아. 혹시....너 나 말고 딴 놈이랑 한 적 없지?

“뭐, 뭐라고?”

하영은 기가 찼다. 동준이 머릿속에 온통 섹스밖에 없는 단순한 수컷인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무책임하고 비겁한 인간인 줄은 몰랐다.

“나 남자 오빠가 처음이란 거 알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내게 할 수 있어?”

당연히 기분 상한 하영이 목청을 좀 높였다. 그랬더니....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래? 그리고 네가 남자가 내가 처음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지 한 거지.

“뭐, 뭐?”

-일단 알았어. 나도 생각 좀 해 볼게.

하지만 하영이 느끼기에, 동준은 그녀가 임신한 것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냥 임신 했으면 한 거지, 뭘 이렇게까지 부산을 떠나? 뭐 그런 느낌이랄까?

여자가 임신을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동준은 전혀 몰랐다.

그보다는 동준에게는 당장 하영과 섹스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거 같았다.

짐승도 아니고 말이다. 그걸 그녀가 어떻게 알았냐고?

-에이 씨. 한 빠구리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 딴 년 찾아 볼 밖에.

전화를 끊는다고 끊은 동준. 하지만 실수로 핸드폰이 계속 통화 상태로 있었고, 하영이 그가 전화 끊긴 줄 알고 한 넋두리를, 고스란히 엿듣고 만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어찌나 기가 찼던지,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하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이, 개새끼야. 니가 사람이야! 딴 년?”

뚜뚜뚜뚜뚜뚜뚜.....

그 소리를 동준이 들은 모양이었다. 다급히 전화를 끊어 버리는 동준.

그 뒤로, 일주일 가까이 하영은 동준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전화를 걸고 또, 그가 사는 숙소까지 찾아갔지만 동준과 통화하거나 만날 수 없었다.

해서 오늘은 아침 일찍 자이언트X의 숙소를 찾았다. 그랬더니 만나려는 동준 대신, 같은 소속사의 자이언트X 매니저가, 숙소에서 나와서 그녀에게 어쭙잖은 충고의 말을 건넸다.

“하영아. 너 동준이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이러는 건 아니지.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동준이가 착해서 참는 거야. 아니면 회사에 얘기해서 너 징계 받게 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다신 여기 오지 말고, 전화도 걸지 마. 같은 회사 매니저로 충고하는데....너 앞으로 행실 조심해라.”

그러니까 지금 동준이 자신의 연인을 졸지에 스토커로 만든 것이다. 하영은 당장 눈앞의 매니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JYB엔터 백준열 대표님이....그러지 말라고 하셨지.’

오늘 새벽에 동준 때문에 속에 천불이 나서 잠을 못 이루고 있던 하영. 그런 그녀에게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근데 그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대박이었다. 왜냐하면 하영이 속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와 가수 쪽, 특히 아이돌 그룹을 두고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JYB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으니 말이다.

* * *

하영이 비록 인기 걸그룹의 멤버라고는 하지만, 국내 빅 4 중 한 곳인 연예기획사 대표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위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JYB엔터의 대표인 백준열이 그녀에게, 그것도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는 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어떻게 안 거지?”

백준열 대표는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걱정 해주고 있었다.

특히 소속사 관계자에게는 절대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하며, 날 밝는 대로 자기와 만나자고 했다. 그녀를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내 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근데 아침부터 찾은 자이언트X의 숙소에서, 그녀는 자이언트X 매니저에게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고 나니, 아무래도 백준열 대표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동준 오빠한테 앞으로 귀찮게 하는 일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전해 주세요.”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네 미래를 위해서도 이쯤에서 네 마음을 정리하는 게 맞아.”

하영은 같잖게 자기 미래까지 걱정해 주는 자이언트X의 매니저와 헤어지자마자, 근처 조용한 카페로 가서 오늘 새벽에 백준열 대표로부터 받은 장문의 문자메시지의, 그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그러자 젊은 남자가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저어....백 대표님 되시나요?”

-네. 하영양. 반가워요. 그리고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아아. 몸은 괜찮아요?

“....”

백준열 대표의 전화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몸은 괜찮냐는 말에 하영은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 입에서는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 두 눈에서 주르르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흑흑흑흑....”

하영이 오열하며 울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백준열도 처음에는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따뜻한 말로 그녀를 위로했다.

-하영양. 울지 말아요. 누구나 고난은 있어요. 그게 하영양에게 조금 더 일찍 찾아 온 거뿐입니다. 고난은 맞서서 이기고, 죄는 피해서 이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백준열은 하영에게 사람은 전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만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실패하고, 병들고, 배신당하고, 사업이 망하기도 한다고 말하며, 겸손히 내게 닥친 고난을 받아들이고, 그 고난에 당당히 맞서서 싸워 이기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싸움에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건 뭐든 다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말이 하영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와 힘이 되었다.

“....고마워요.”

-일단 XX병원으로 가세요. 거기 산부인과 예약 접수 해 뒀으니....

백준열은 말뿐 아니라 그녀가 당장 필요한 것부터 확실히 챙기고 있었다.

그러니 하영으로서는 그에 대한 믿음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지금 바로 XX병원에 갈게요.”

하영은 백준열이 시킨 대로 카페를 나와서,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XX병원으로 향했다.

그곳 병원 산부인과로 가자, 과연 백준열이 말한 대로 그녀를 위한 의료진이 준비 되어 있었다.

“임신 4주째네요. 초음파를 보시면....”

하영은 산부인과 의사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녀 손에 쥐어진 아기 초음파 사진을 보고, 생전 처음 느끼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때 그녀 핸드폰이 울렸다. 하지만 그 핸드폰이 하루 종일 계속해서 울릴 거란 걸, 이때의 그녀는 몰랐다.

* * *

전화가 끊긴 줄 알고, 무심코 내 뱉은 자기 말을 하영이 듣고 소리치자, 동준은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가 하영이 진짜 좋아서 만난 게 아니란 게, 이로서 완전히 들통 난 것이다.

“좆 됐네. 에이 씨발....”

그래서 동준은 그날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하지만 술이 그가 이미 저지른 짓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영이 계속해서 그에게 전화를 해 왔고, 숙소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동준은 하영을 만나는 거 자체가 두려웠다. 그래서 찌질 한 짓을 저질렀다.

“형. 씨엔스타에 하영이 말이야. 걔가 날 좋아하는 거 같은데....”

매니저에게 하영과의 관계를 왜곡해서 얘기했고, 자기 대신 그로 하여금 하영과의 관계를 정리 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자이언트X의 매니저가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 이 형이 싹 정리해 줄게.”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그를 찾아 온 하영에게, 동준 대신 자이언트X 매니저가 나갔다.

그리곤 10여분 뒤, 마치 개선장군처럼 숙소로 돌아와서 말했다.

“동준아. 이 형이 싹 정리했다. 그러니 넌 아무 걱정 말고 스케줄이나 열심히 뛰어.”

“고마워 형. 역시 형뿐이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동준과 자이언트X 매니저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네? 그, 그게 무슨....”

오전 10시쯤이었다. 자이언트X가 라디오 출연을 위해서 SVS방송국으로 이동하는 중, 그들의 소속사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자이언트X 매니저에게로 전화를 걸어왔고, 그 전화를 받은 자이언트X 매니저의 얼굴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네, 네. 일단 물어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자이언트X 매니저. 그가 타고 있던 승합차 조수석에서, 몸을 돌려 뒤쪽의 자이언트X 멤버들 중 동준을 향해 말했다.

“김동준. 너 사실대로 말해. 씨엔스타 하영 임신 시킨 거 맞아? 아니야?”

“....”

그 말에 승합차 안은 경악에 휩싸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좀 전 자이언트X의 매니저가 한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였다. 자이언트X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준에게로 향했다.

“그, 그게....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일단 오리발부터 내미는 동준. 그런 그에게 자이언트X 매니저가 차갑게 말했다.

“너 거짓말 하면 안 돼. 지금 네가 하영이 임신 시킨 거 스포츠 신문 일면에 났단 말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회사에서는 그 스포츠 신문에 소송을 불사할 거야. 하지만 맞는데 네 거짓말로 우리 회사가 소송에서 지게 된다면, 회사에서는 부득불 너를 상대로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라.”

동준은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 날 경우, 자기 소속사가 자기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그 말에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그리고는....

“죄, 죄송해요. 하영이랑은....그 애가 먼저 꼬리를 쳐서....”

“됐어. 더 말 하지 마.”

“네?”

“그 주둥이 닥치고 있으라고. 한 마디만 더 해 봐. 차 밖으로 집어 던져 버릴 테니까.”

제대로 화난 자이언트X의 매니저. 그가 씩씩거리며 소속사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좀 전에 동준이한테 확인했는데 사실입니다. 네. 네. 그럼 라디오 프로는....네. 네. 바로 본사로 들어가겠습니다.”

소속사와 통화를 끝낸 자이언트X 매니저. 그는 SVS라디오 제작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자이언트X가 라디오 프로에 출연할 수 없게 되었다고 사과를 했다.

“....데 정말 죄송합니다. 네. 김PD님께는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네.”

매니저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잡혀 있는 스케줄을 취소하는 거였다.

자이언트X의 매니저는 거의 20분 넘게,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통화를 하고 나서 뒤돌아 동준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침에 숙소 찾아 온 하영이에게 훈계를 한 내가....뭐가 되냐? 이 개 자식아!”

그때 일을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자이언트X의 매니저였다.

* * *

아들 추병진을 두들겨 패서 구급차 실어, 근처 병원 응급실에 보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대표 추진호. 그가 보호자인 자기 대신, 구급차에 태워 보낸 비서로부터, 세 시간쯤 뒤에 전화를 받았다.

“그래? 알았으니까 병진이 입원 시키고, 한 일주일 푹 쉬라고 해.”

다행히 CT찍었는데 뇌에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제법 큰 거 같았다.

응급실에서부터 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추병진이 아버지의 비서에게 한 마디 말도 하고 있지 않단다.

마치 무슨 실어증이라도 걸린 듯 말이다. 하지만 실어증은 아닌 게, 의사가 물을 때 대답은 잘했단다. 보아하니 자신을 골프채로 때린 부친에 대해, 불만을 그런 식으로 토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아. 진짜....힘드네.”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오늘 하루가 추진호 대표에게는 최악이었다.

그럴 게 오전에 터진 자이언트X의 랩퍼 동준이와, 씨엔스타의 메인댄스 하영이의 스캔들부터 시작해서 아들 폭행, 그리고 좀 전에 전해들은 말도 안 되는 찌라시까지.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추진호는 바로 인터폰을 눌렀다. 그러자 그의 또 다른 비서가 바로 말했다. 업무량인 많은 추진호는 비서도 두 명을 썼다.

-네. 대표님.

“라이언과 아직 연락 안 됐어?”

-네. 계속 전화 하고 있는데....

만약 찌라시가 사실이라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는 정말 최대 위기를 맞을 상황이었다.

“한지민은?”

-그쪽 매니저와는 연락이 됐는데, 지금 같이 있지 않다고....

“뭐? 매니저가 왜 같이 안 있어?”

일단 외부로 나가면 매니저와 배우는 한 몸처럼 움직여야했다.

-그게....한지민이 뷰티샵에 들어가서 여태 나오지 않고 있다고....

“그 뷰티샵에 확인해. 한지민 거기 있냐고.”

-네.

잠시 뒤, 비서가 직접 한지민이 이용하는 단골 뷰티샵에 전화를 걸었고 알아본 결과....

“뭐라고? 나간 지 한 시간도 넘어?”

한 시간이면 그녀가 JYB엔터 관계자를 만나서 전속계약을 체결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C발....”

그렇다면 라이언이 JYB엔터와 계약 했다는 찌라시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추진호는 라이언이 자신을 배신하고, JYB엔터로 갔을 거라는 생각은 여전히 하지 않고 있었다.

추진호와 라이언이 함께 한 세월이 벌써 10년째였다.

지금의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가 있기까지, 라이언의 역할이 컸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

그래서 추진호도 그에게 주식 10%를 넘긴 것이고. 그도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 좀 더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지라고 말이다.

한데 그런 라이언이 다른 연예기획사로 가 버린다? 이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 있어서 정말 최악의 악재였다.

거기다가 만약 라이언이 나쁜 마음을 먹고서, 그의 주식을 JYB엔터에 넘기기라도 한다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공고했던 추진호 대표의 경영권이 자칫 흔들릴 수 있었다.

“설마....”

JYB엔터는 이미 외형적으로 클 만큼 컸다. 굳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를 인수합병해서, 안 그래도 큰 덩치를 더 키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하지?”

사업가로써 추진호의 촉이, 계속 불길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그에게 계속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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