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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329화 (32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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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아들이 경호원 노릇으로 먹고 산다는 건, 문천식도 익히 아는 바였다. 그런데 좀 전에 아들이 1대 8로 싸우는 걸 보고나서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저렇게 잘 싸우기까지 ,그 과정이 어땠을지 어림짐작이 됐기 때문에.

‘특수 부대에 간 것도 그럼....’

아들은 혼자 식당일 하며 힘들게 자기를 키우시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기 위해서, 직업 군인의 길로 가는 데 편한, 특수 부대에 자원입대한 것이다.

하지만 문천식도 군대를 다녀왔기에 잘 알았다. 거기가 얼마나 힘든 곳, 아니 위험한 곳인지 말이다.

그런 곳에서 살아 온 아들이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나들었으면, 8명을 상대로 싸워서 간단히 이긴단 말인가?

문천석은 다 늙고 병들어서 자기 힘드니, 아들에게 연락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운전하는 아들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

그렇게 승용차 안에 긴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은 문천식이 새로 들어갈 XX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깨졌다.

“일단 접수하고 올게요.”

문천식과 같이 병원에 들어간 문대식이 문천식을 대기실 의자에 앉혀 놓고, 막 그 말을 했을 때였다.

“고맙다. 그리고....미안하다.”

문대식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과에 움찔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늘 자신과 엄마 앞에서 당당했었던 아버지였다. 자기가 뭘 잘못 했는지 도통 모르는 지 말이다. 그래서 애초에 그도 엄마도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그 철없던 아버지가 변했다.

한 동안 멍하니 서 있던 문대식. 그가 자신이 뽑은 대기표 번호를 부르는 소리에 반응해서 손을 들어 보이고는 접수대로 향했다.

백준열을 통해서 미리 얘기를 해 둔 터라 문천식의 XX병원의 기본 검진을 바로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곤 바로 XX병원에 딸린 요양병동으로 옮겨졌다.

“여기는 좋은 곳이니 불편한 거 없이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또 올게요.”

“그, 그래라. 그리고....그 여자 말인데....”

문대식은 아버지가 그 여자 운운하자 눈매를 좁혔다. 그렇게 당해 놓고, 그 여자에 대해 또 무슨 미련이 남았단 말인가? 하지만 문천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문대식의 예상 밖이었다.

“네가 나서지 말고, 그냥 경찰에 신고해라. 괜히 네 손 더러워진다.”

“....네.”

문대식이 자기 말에 대답을 하자 ,그제야 문천식이 만족스러운지 웃었고, 그 웃음을 보자 문대식은 가슴이 철렁했다.

왜냐하면 웃을 때 문천식의 얼굴이, 문대식의 웃었을 때 얼굴과 닮아도 너무 닮아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문대식이 웃을 때 제일 기분 좋아하셨다. 왜 그러셨는지 문대식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계셨던 것이다.

문대식이 웃는 얼굴에서 아버지를 보시고 행복해 하신 것이고.

* * *

발인 후 묘지에서 입관을 하면서 서지현은 서럽게 울었다.

지금껏 그녀의 든든한 울타리, 혹은 튼튼한 방벽 역할을 해 주었던 너무도 소중한 존재가, 이제 완전히 사라졌음을 그녀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흑흑흑흑....아빠....”

할머니 소리 들을 그녀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그녀 입 밖으로 나왔다.

서럽게 울던 서지현의 눈물도 묘지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싹 말라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닷새 만에 들어선 그녀의 집, 삼명가 본가의 저택은 어째 그 사이 많이 변한 거 같았다.

당장 최 집사가 사라지고, 새로 온 집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녀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 지금 채 한 시간 전에 아버지 묻고 온 그녀가 들을 소리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래서 예전 버릇이 바로 나왔다. 바로 버릇없는 사용인에 대한 처벌. 그녀의 팔이 휘둘러졌다.

휙!

하지만 새로 온 집사는 서지현이 휘두른 팔을 슬쩍 피했다.

“뭐, 뭐야? 감히 피해?”

당황한 서지현, 그녀의 눈이 홱 돌았다. 그러나 새로 온 집사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진정 하시죠.”

마치 네가 왜 나를 때리려느냐고, 뒤에 붙여야 할 사모님 소리도 쏘옥 빼고, 마치 그녀에게 묻고 있는 거 같았다. 네가 그럴 자격이 되냐고 말이다. 하긴 그녀는 백승렬 회장과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즉 법적으로 그녀는 더 이상 삼명가의 안주인이 아니다. 그렇지만 서지현은 아직 그 사실이 공표 된 건 아니니, 자신이 여기 안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 죽었어.”

제대로 꼭지가 돈 서지현. 그녀가 아예 두 팔을 걷어 붙였다. 눈앞에 건방진 집사만큼은 꼭 손봐주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사모님!”

그녀는 집사에 앞서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었다. 바로 오늘 새롭게 삼명그룹 비서실장 자리에 오른 이동훈.

이동훈이 미전실에서 밀려나면서, 삼명가 본가 저택에 더 이상 올 수 없게 된 것을 가장 기뻐한 사람이 바로 서지현이었다.

그 만큼 이동훈과 서지현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랬던 이동훈이 다시 삼명가 본가 저택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뭘 의미하겠는가?

“너, 너는....”

“오랜 만입니다.”

이동훈이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서지현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런 그를 보고 서지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동훈이라면 지금도 치를 떠는 서지현이었다. 이동훈이 삼명가 본가 저택을 드나들 때, 그때가 서지현에게 있어서 최악의 암흑기였다. 그의 눈치를 보느라 웅크리고 지내야만 했으니까. 왜냐하면 이동훈은 그녀가 어떤 여자인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본 작자였다. 그런 그가 여기 나타났다는 것은....

“짐 싸라는 건가? 진짜 너무하는군.”

서지현의 그 말에 이동훈이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진짜 얄짤 없네.”

이동훈과 얘기를 나눌수록 서지현만 손해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숨겨 진 그녀의 본성이 까 발라지게 될 테니까. 그래서 서지현은 두 말 없이 자기 방으로 가서 짐을 쌌다.

“지연이 짐도 싸.”

싸는 김에 자기 딸 짐도 챙기는 서지현. 그렇게 한 시간 만에 두 모녀의 짐을 다 챙긴 서지현이 저택을 나왔고, 떠나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사용인은 한 명도 없었다.

* * *

사용인들과 같이 떠나는 서지현을 배웅한 이동훈. 그런 그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지금 그리로 가지.”

통화를 끝낸 이동훈은 대기 중인 차를 타고 곧장 삼명호텔로 향했다.

그곳 삼명호텔의 대표실은 비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곳 대표였던 백지연이 닷새 전에 거기서 자기 짐을 다 뺐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 백지연이 앉아 있었다. 서재국 전 대통령을 묻고 백지연이 곧장 여기로 온 것이다. 그녀가 처리하다 만 일들이 생각이 나서 말이다.

“대, 대표님....”

“제가 처리하다가 만 세 가지 안건 만 제 손으로 매듭짓고 나갈게요. 그러니 대성동 부지 매매건과 제주 호텔 카지노 유치 건, 호텔 연계 서비스 센터 구축 건에 관한 기획 서류 가져 오시고....”

백지연의 지시에 대표실 비서가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연락을 받고 나타난 호텔 총지배인과 임원들이 대표실 앞에 나타났다.

“허어....”

“이거 참....”

그들은 서재국 전 대통령을 묻고 바로 호텔에 나타난 백지연을 보고, 기가 차 할 뿐 누구도 먼저 나서서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때 곤욕스런 얼굴로 대표실을 나온 비서를 향해 총지배인이 말했다.

“양 비서. 이리 와 봐.”

총지배인의 부름에 일단 그에게로 다가 온 삼명호텔 대표의 비서에게, 총지배인이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말했다.

“일단 시간 끌어.”

“네?”

“본사 쪽에 연락 했으니까, 그쪽에서 대표님 모시러 올 거야.”

총지배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은 대표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10여분 뒤, 이동훈 삼명그룹 비서실장이 삼명호텔 대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아아....”

이동훈을 본 순간 백지연의 입에서 나지막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 * *

백지연도 외조부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삼명호텔로 쪼르르 달려 온 자신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굳이 이럴 필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바로 자기 합리화에 들어갔다.

“그래. 내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던 일들이잖아? 그 정도는 내 손으로 처리하고 떠나는 게 옳지.”

떠날 때 떠나더라도 뒷마무리는 잘 하고 떠나자는 게 그녀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녀 심중에는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이라는 생각이 은연중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만나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지면 만남이 있는 법이다. 백지연은 지금은 비록 떠나지만, 반드시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리라 은연 중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백승렬 회장의 핏줄이 아닌 걸 알고 난 뒤부터, 그녀가 하려는 일에 시시콜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처리하고 떠나겠다는 그 세 가지 안건을 가져 오라고 말 한지가 벌서 30분이 넘었다. 하지만 그녀 눈앞에 꽉 닫혀 있는 대표실 문은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똑똑똑!

“들어와요.”

그녀가 반가워 외쳤는데 정작 들어와야 할 비서가 아니라, 그녀가 가장 껄끄러워 하는 존재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순간 백지연은 바로 직감했다. 그녀가 처리하고 가려는 그 일들이 완전히 그녀 손을 떠난 걸 말이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걸어서, 삼명호텔을 나가야 한다는 것도.

“아저씨도 많이 늙으셨네?”

“그렇습니까?”

“아빠, 아니 회장님께서 시켰어요?”

“....”

이동훈의 침묵에 백지연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이동훈에게 물었다.

“엄마는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이동훈을 보자마자 백지연은 모친인 서지현이 생각났다. 그래서 물었는데....

“나가셨습니다.”

이동훈이 나갔다는 말이 무슨 소린지 백지연은 바로 알아들었다.

왜냐하면 서지현은 장례식이 끝나자 집으로 갔으니까.

“그랬군요. 이제 뭐하면 되죠?”

자포자기 한 듯 백지연이 이동훈에게 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나선 이상 서지현, 백지연 모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걸 말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뭘 해도 결국, 모든 건 저 남자의 의도대로 진행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삼청동에서 내일까지 머무시면, 모레에는 미국으로 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 땅에서 자신과 모친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고작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러자 백지연도 더는 호텔 일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또 다른, 그 이틀 동안 그녀가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그녀 머릿속에 우후죽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갈 테니 차 좀 준비해 줘요. 그 정도는 가능하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그녀는 여기 있어서 안 됐다.

“물론입니다.”

이동훈은 기꺼이 자기 차를 백지연에게 내주었다. 그렇게 백지연을 서지현이 머물고 있는 삼청동 저택으로 보낸 뒤, 이동훈이 백승렬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네. 두 분 삼청동에 모셨습니다. 네. 24시간 감시 체제를 유지토록 하겠습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컨트롤 하겠습니다. 네. 네. 막내 도련님과는....좀 더 시간을 두고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번 달 안에 막내 도련님과 담판을 짓겠습니다. 네. 아닙니다. 절이 싫다면 중이 떠나야죠. 네.”

백승렬 회장과 통화를 끝낸 이동훈의 얼굴에, 어째 고뇌의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바로 얼굴색을 고치며, 삼명호텔 대표실을 나선 이동훈은, 호텔 측에서 준비한 차를 타고 곧장 삼명그룹 본사로 향했다.

* * *

백준열 대표에게 블랙아이와 계약을 했다고 알린 뒤, 김효석 실장은 블랙아이 멤버 두 사람과 같이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그것도 쓰리뿔 한우로다가 말이다.

‘살살 녹네. 녹아....집 사람과 아이들과 같이 먹었으면....’

한데 고기를 먹으면서 김효석은 계속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났다.

괜히 이 맛있는 소고기를 자신만 먹는 게 미안해진 것이다. 그래서 가게 주인에게 따로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등심과 채끝살 섞어서 10인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손님. 여기....”

그랬더니 그게 식사 도중 나왔고, 그때 마침 불러 놓은 퀵 서비스 기사가 왔다.

김효석은 그 퀵 서비스 기사에게 자기 집 주소를 알려주고, 포장 된 고기를 자기 집에 잘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퀵 서비스 기사도 바로 상황 파악을 한 듯, 웃으며 자기도 한 가정의 가장이라며, 기꺼이 김효석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퀵 서비스로 소고기를 집으로 보내고 나서야, 김효석은 마음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그런 가정적인 김효석을 보고 블랙아이 두 멤버는 생각했다.

자신들도 김효석처럼 가정적인 가장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둘 다 결혼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 블랙아이 두 멤버는 10년 뒤에도 결혼하지 못하고 솔로로 살았다.

하지만 가정적인 김효석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두 사람. 마침 두 사람에게는 지금 짝들이 있었다.

나왕이 3년 째 스튜어디스와 연애 중이었고, 윤관도 작년에 만난 플로리스트(Florist)와 목하 열애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소고기를 먹는 동안 자기 여자들 생각이 계속 났다. 그래서일까?

“화장실 좀....”

식사 중 나왕이 먼저 핸드폰 들고 화장실에 갔고, 그 뒤를 윤관이 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퀵 서비스 기사 두 명이 고기 집에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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