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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확실히 아버지는 아들을 잘 알았다.
“어, 어쩌지. 아버지가 날 가만 두지 않을 거 같은데....”
추병진은 서초경찰서 조사실에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는 초조하거나 불안하면 추병진이 보이는 버릇이었는데, 이미 양손 손톱을 거의 다 물어뜯은 상태.
그 만큼 추병진은 지금 불안해 죽을 맛이었다.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추병진의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서초경찰서에 오자 반전이 되면서, 피해자였던 그가 가해자가 됐다.
그것도 한군데도 아니고, 무려 세 군데에서 그를 고발하면서, 당장 검찰로 송치 될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그때 아버지가 나타나셔서 망정이지....
그리고 아버지가 백준열과 담판을 벌였다. 근데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의 아버지가 바쁜 일이 있다면서, 먼저 서초경찰서를 떠났는데 그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오늘은 무조건 아버지 피해야 해. 걸리면 맞아 죽을지 몰라.”
추병진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한테 맞고 컸다. 물론 그가 쉴 새 없이 사고를 쳐 대니 부친도 그렇게 변한 걸 테지만, 세상의 아버지가 다 추진호처럼 아들을 때리지는 않았다.
“이 나이 먹고 쳐맞는 아들은 나 밖에 없을 거야.”
툴툴거리며 오늘 무슨 수를 쓰던, 무조건 아버지와는 만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추병진. 그런 그 앞에 그의 고문 변호사 강태욱이 나타났다.
“추 전무. 갑시다.”
“끝났습니까?”
“네. 다 합의했고 경찰 쪽에서도, 이 사건 여기서 종결하기로 했습니다.”
“휴우. 다행이다.”
일단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던 추병진. 그가 힐끗 강태욱을 쳐다보고 물었다.
“아버지한테 무슨 얘기 없었어요?”
추병진의 그 말에 강태욱은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바로 시치미를 떼는 강태욱.
“무슨 얘기요?”
“나를 어디로 데리고 오라던 지. 아니면 붙잡아두고 있으라던 지.”
“글쎄요. 저한테 그런 말씀은 아직 없었습니다만.”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강태욱은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추병진은 어째 그런 그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태욱도 검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
“자아. 그럼 나 먼저 갑니다. 오늘 술 한 잔 할 생각이라서.”
강태욱은 추병진에게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듯, 뒤돌아서 조사실로 나갔다.
하지만 실제 강태욱은 걸어가면서 계속 뒤로 곁눈질 중이었다. 그때 추병진이 말했다.
“어디서 누구랑 술 마시는 데요?”
그 물음에 강태욱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뒤돌아 추병진을 볼 때, 그 웃음은 깨끗이 지워진 채였다.
“제가 가는 단골 룸빵에서 저 혼자 마실 겁니다만.”
“에에? 혼자서 룸빵가서 술을 마셔요?”
추병진이 어이없어 하며 강태욱을 빤히 쳐다봤다. 마치 농담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요즘 혼술이 대세 아닙니까? 그래서 혼자 룸빵서 술 마셔 봤는데, 이게 또 나쁘지 않더라고요. 추 전무도 한 번 해 봐요. 그럼 난 이만....”
강태욱은 그 말 후, 정말 미련 없이 뒤돌아서 다시 조사실을 나가려 했다.
“잠깐....”
“왜요?”
“그러지 마시고 오늘 저랑 마셔요. 그 단골 룸빵서.”
추병진의 그 제안에 강태욱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나는 혼자가 좋은데....”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저랑 같이 가요. 룸빵서 누가 혼자 술 마셔요. 그런 걸 두고 청승맞다고 하는 겁니다.”
“청승맞아요?”
가난하고 비참한 기색을 남들 앞에서 보이는 태도나 행동을 ‘청승’이라고 하고, ‘청승맞다’고 하면 보기 싫게 측은하거나 지나치게 불쌍해 보인다는 뜻이다.
추병진이 그걸 알고 쓴 건지 모르지만, 강태욱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황당했다.
‘내가 이런 소리나 들으려고, 변호사가 된 건 아닌데....’
그러면서 갑자기 자기가 진짜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맛보게 해 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진호 대표에게 짜증이 치밀었다.
‘C발.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
막말로 그에게 고객이 추진호 대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추진호 대표와 같은 악성 고객은 여기서 그만 손절해야 할 거 같았다.
‘그래도 오늘까지만 하고....’
어차피 손에 더러운 걸 묻힌 상태가 아닌가?
강태욱은 추병진만 추진호에게 넘기고, 수임료 정산이 완료되는 시점에,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 관계를 완전히 끊기로 작정했다.
* * *
강남의 한 유명 룸살롱. 모든 게 예약제인 이곳에, 강태욱은 예약도 하지 않고 추병진을 데리고 왔다.
“오 마담. 방 있지?”
“당연히 없죠. 강 변호사님. 이러지 말라고 전에도 말했잖아요?”
“에이. 너무 그러지 마. 우리 사이에....”
“흥. 누가 알면 내가 강 변호사님 여자인 줄 알겠네.”
“뭐? 그럼 아니었어?”
“허어. 꿈도 꾸지 마세요. 누구 신세 망칠 일 있나.”
티격태격 거렸지만 사실 이곳 룸살롱의 오 마담은, 강태욱의 여자가 맞았다.
그러니 예약도 하지 않고, 덜컥 여기로 온 것이고.
“마침 예약이 취소 된 방이 하나 있으니까, 일단 거기로 들어가요.”
“고마워. 오 마담.”
강태욱이 능글맞게 윙크를 날리자, 오 마담이 질색하며 가버리고 남은 직원이, 그들을 비어 있는 룸으로 안내했다.
“일단 양주 한 병에 안주 쫘악 깔아 봐.”
“네. 사장님.”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지만, 룸빵의 직원들은 대개 손님들에게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저쪽으로 앉으세요.”
강태욱은 상석을 추병진에게 양보했다. 뭐 달랑 두 사람 뿐이지만, 그래도 룸에 한가운데 자리가 상석이 아니겠나?
추병진을 그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그 왼쪽에 자리 잡고 앉은 강태욱. 그런 그를 보고 추병진은 생각했다.
‘역시 주제 파악하나는 잘한다니까.’
아무래도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 줄 아는 개가, 주인에게 뭐라도 더 하나 얻어먹는 법.
그렇게 봤을 때 강태욱이, 추병진에게는 쓸 만한 개로 보였다. 물론 30분 뒤에는 그 생각이 싹 바뀌지만.
“하하하하. 마셔요. 마셔.”
술판 분위기라는 게 술이 들어가고, 또 예쁜 계집이 옆에서 살랑 거리면 싹 변하기 마련.
불과 30분 만에 간단히 양주 한 병을 비워 내고, 양주 2병을 더 시킨 추병진.
그가 강태욱과 룸빵 호스티스 둘에게 양주를 가득 따라주고, 자신도 한잔 가득 채운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오늘 따라 술이 술술 들어가네. 하하하하.”
그때였다. 추병진의 귀에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뚫린 입이니 술이 술술 들어가겠지. 근데 내 속은 바삭바삭 타들어 간다. 바로 너 때문에.”
“어어? 이 목소리는....”
룸빵 상석, 한가운데에 앉아 있던 추병진이 그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 쌍심지를 켜고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그의 아버지 추진호가 보였다.
“아, 아버지!”
그때 추진호가 비어 있던 추병진의 오른쪽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사정없이 추병진의 뺨을 때렸다.
짝!
그걸 보고 눈이 동그래진 두 호스티스들. 그때 추병진 왼쪽에 앉아 있던 강태욱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화장실 좀....”
그리곤 휑하니 룸 밖으로 나가 버렸고, 싸늘한 추진호의 눈길에 두 호스티스들도 알아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룸 안에 추병진과 추진호, 그 부자 단 둘 만 남았고, 방금 맞은 뺨에 한 손을 대고 열심히 눈알을 굴리던 추병진. 그가 다급히 추진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곤 늘 그래 왔듯이 아버지 앞에 두 손을 모아 열심히 빌기 시작했다.
쫘악! 쫙! 쫙! 쫙!
하지만 돌아 온 아버지의 대답은 연거푸 이어진 따귀 세례였다.
* * *
강태욱은 잠깐 룸 밖, 문틈 사이로 추진호 대표가 아들을 때리는 걸 구경했다.
“C발. 진짜 개 패듯 패네.”
따귀로 시작한 추진호 대표는 추병진을 일으켜 세워서 주먹질을 시작했다.
그러다 추병진이 쓰러지자 가차 없이 발로 찼다. 그걸 보며 강태욱은 추병진이 진짜 추진호 대표의 아들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에이. 내가 지금 남의 가정 사에 신경 쓸데가 아니지.”
안 그래도 새로운 고객들을 더 유치해야 하는 마당이었다. 그런데 기존 단골 고객을 쳐 낼 생각인 그로서는, 앞 일이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백준열 같은 VVIP고객 하나 안 나타나나?”
별 생각 없이 내 뱉은 말이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 강태욱은 백준열에게 한번 접촉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어차피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진호 대표와 손절할 생각이니까, 이쪽 정보를 미끼로 백준열이라는 대어를 낚을 수도 있지 않겠나?
아까 보니 백준열이 추진호 대표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해. 그렇다면....시도해 봐야지.”
강태욱은 아무래도 로펌으로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았다. 내일 백준열 대표를 만나서 딜을 성사시키려면 챙겨야 할 자료와 함께, 백 대표에게 내 밀 제안서는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할 거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강태욱이 단골 룸빵을 나가고, 멈출 줄 모르던 추진호의 구타도 결국 끝이 났다.
“헉헉헉헉....”
가쁜 숨을 고르며 추진호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킬 때, 산발한 머리에 얼굴이 퉁퉁 부은 추병진이, 아버지 추진호의 눈치를 보며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추병진은 나이 30살을 넘기고 이렇게 아버지에게 많이 맞은 건 처음이었다.
그 말은 그만큼 지금 추진호가 화가 많이 나 있다는 얘기였다.
“너 때문에 오늘 본 손해가 얼만 줄 알아? 무려 200억이 넘어.”
늘 그렇듯 추진호는 수치로 아들 추병진을 뼈 때렸다.
“그뿐이야? 회사 이미지가 실추 된 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또 화가 치미는지 몸을 일으킨 추진호가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추병진이 다시 무릎 꿇고 아버지 앞에서 빌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그놈에 한 번....그 한 번이 벌써 100번이 넘었다. 너 대체 언제 사람 될래? 어?”
결국 추진호의 입에서 추병진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바로 ‘언제 사람 될래?’
말이다.
그 말에 추병진은 열 번도 더 말하고 싶었다.
‘그런 아버지는 사람입니까? 이렇게 아들을 개 패듯 패는 사람이?“
하지만 그 말을 차마 아버지 앞에 내 뱉을 수 없었다.
“넌 사람 되려면 맞아야 돼.”
“아, 아버지....크아악!”
추진호의 구타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추진호도 이제 늙었는지, 그 2라운드가 채 5분을 가지 못했다.
* * *
추진호라고 30살을 훌쩍 넘긴 아들을 때리고 싶겠나? 실제 추병진이 30살이 됐을 때, 그는 다짐을 했다. 앞으로 절대 아들에게 손대지 않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 맹세는 한 달을 못 갔다.
추병진이 다 성사 된 거나 마찬가진 계약을 날려 먹자, 꼭지가 돌아버린 추진호가 결국 손찌검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추진호의 아들에 대한 구타가 다시 시작 된 것이. 그리고 그 구타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앉아!”
자신한테 얻어맞아 엉망진창이 된 아들을 향해 추진호가 버럭 소리치자, 룸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추병진이 벌떡 몸을 일으켜서는, 추진호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마셔!”
그런 아들에게 글라스에 한 가득 양주를 따라서 건네는 추진호. 그거라도 마시면 아무래도 고통이 덜 할 거란 생각에서 준 건데, 추병진은 그 술을 홧김에 벌컥벌컥 마셨다.
아들이 한 번에 글라스에 따른 양주를 다 마시자, 그게 또 불만인 추진호.
“하아. 술을 진짜 물처럼 마시는구나. 술꾼이 다 됐어. 이러니....하아....아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냐?”
“네?”
“이대로 당하고 가만있을 거야? 너는 남자로 배알도 없어?”
“그, 그게 무슨....”
추진호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감도 못 잡는 멍청한 아들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답답한 마음에 양주병 째 입으로 가져가서, 병나발을 불었다.
“아, 아버지....”
맨 정신에도 자신을 개 패듯 팬 추진호였다. 그런데 술까지 마시면....추병진은 아들로 저렇게 양주를 마시면 아버지가 잘못 될까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더 맞을까 그걸 더 신경 쓰고 있었다.
“크윽....이 쓴 게 뭐 좋다고....”
추진호는 그렇게 양주를 마시고도 끄덕도 하지 않고, 아들 추병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병진아. 너만 엿 먹은 거 아니다. 나도 백준열 그 새끼한테 제대로 엿 먹었어. 근데 말이다. 이걸 참으면 우린 그날로 병신 부자父子가 되는 거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추진호의 말을 다 듣고 난 추병진. 그가 좀 전까지 겁먹은 얼굴이 싹 사라지고, 눈빛에 갑자기 살기가 감돌았다.
“그, 그러니까 백준열 그 개새끼한테 복수를 하잔 거네요?”
“그렇지. 복수. 그 복수를....”
털썩!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추진호. 하지만 거의 한 병 가까운 양주를 입 안으로 다 들어부었는데, 나이도 많은 추진호가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어떡하든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확 치밀어 오른 술기운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 추진호. 그런 그를 보고 추병진이 길게 한 숨을 내 쉬었다.
“하아아....아버지가 늙긴 많이 늙었네. 때리는 것도 영 시원찮더니....”
그 말과 함께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편 추병진. 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몸을 일으켜서는, 쓰러진 추진호 옆에 앉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추진호의 핸드폰을 챙겨 들고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