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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아까부터 안은지는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김 비서만 보면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 옆에 강지영은 아닌 것 같아도, 계속 김 비서를 신경 쓰고 있는 게, 내게는 역력하게 엿 보였고.
내 충견들인 두 여자가 김 비서를 경계하는 건, 역시나 그녀의 미모가 워낙 출중하니까. 또 비서로 내 옆에 계속 붙어 있다는 게 신경이 쓰는 거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녀들의 그런 마음까지 세심하게 일일이 다 챙겨 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내게 주어진 하루란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나는 김 비서가 내가 마실 물을 가져 오자 바로 그녀에게 말했다.
“전속 배우 계약서 좀 가져 와.”
강지영과 오늘 중으로 하기로 했던, 우리 회사 배우 계약을 지금 바로 해치우려고 한 말이었다.
원래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차은석 부문장도 불러서, 강지영에게 소개시켜주면서 해야 할 퍼포먼스였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제까지는 없었던 스케줄이 생겨 버려서 말이다. 바로 추병진, 그 새끼 때문에 서초경찰서에 가야 했으니까.
당연히 짜증은 난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내가 얻을 게 더 많았기에, 나는 가급적 늦지 않게 서초경찰서로 조사 받으러 갈 생각이었다.
“여기 사인 해.”
나는 강지영에게 일방적으로 계약서 사인을 지시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 충견이니까.
그리고 강지영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그녀에게 말했다.
“좀 있으면 이리로 차은석 부문장이 올 거야. 내가 가장 신임하는 실무 책임자니까 그녀가 시키는 대로만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그리고 안 비서는 당분간 내 수행비서 일 좀 맡아 줘.”
내가 강지영 옆에 삼명그룹 비서실에 사표 던지고 온 안지은에게 그렇게 말하자, 안지은이 기뻐하며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하는 반면, 김 비서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내일부터 직무 교육 받고, 정식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하는 걸로 해. 직무 교육은 김 비서가 해 주고.”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김 비서가 웃고, 반대로 안지은의 얼굴이 굳으면서. 들고 있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 내 말에 따라서 세 여자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변화와 반응이 재미있었지만, 지금 나는 그녀들과 놀 시간이 없었다.
“김 비서. 나 서초경찰서에 가야 해서, 지금 일어나 봐야겠어. 두 사람도 볼 일 보고 가고.”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켰고, 대표실 안에 세 여자를 두고 밖으로 나섰고, 송명철 부 팀장과 경호팀원들과 같이, 지하로 내려가서 거기 대기 중인 차를 타고 곧장 서초경찰서로 향했다.
그때 중앙 지검 서 검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대표님. 서 검삽니다.
“압니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를....”
나는 서 검사가 내게 왜 전화 했는지 알면서 의례적으로 말했다.
-QH엔터 홍대복 대표....좀 전에 풀어줬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뒤처리는 걱정 마시고, 서 검사님은 하시던 대로 일 하시면 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서 검사는 알 것이다.
-네. 아아. 그리고 삼명 호텔 백지연 대표에 대한 기소는....없었던 일로 종결 처리 됐습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아아. 맞다. 곧 검찰 인사죠?”
-네.
“전에도 말했지만 신경 써 놓을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돈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또 서 검사처럼 자리로 컨트롤해야 할 사람이 있는 법이다.
이미 검찰 인사와 예산, 수사, 정보를 모두 틀어쥐고 있는, 검찰국장에게 서 검사 얘기는 해 놨다.
아마도 이번 인사 때 서 검사는 무난히 승진해서, 중앙지검에 부부장 검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 검사가 내게 필요한 사람이니, 쭉 끌어 올려 줄 생각이었다.
* * *
서초경찰서에 도착해서 본관 안으로 들어가니, 내 고문 변호사 이주혁이 벌써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시오패스 새끼....’
저놈도 빨리 손 봐야 하는데 말이다. 당장은 내게 위험하지 않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녀석이었다. 그때였다.
“대표님!”
내가 또 부른 우리 회사 법무팀 소속 변호사가, 내게 뛰어와서 인사를 했다. 바로 어제 차은석과 함께 큰일을 해 낸 그 변호사였다.
일개 무명 예능인, 그것도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김준오.
한데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김준오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인지도가 크게 상승한 김준오는, 이제 소속사에게 하기에 따라서 톱스타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을 달릴 수 있게 됐다. 그런 김준오가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 바로 내 눈앞에, 우리 회사 법무팀 소속의 젊은 변호사였다.
“이름이?”
“최태욱입니다.”
“그래요. 최 변호사. 잘 부탁합니다.”
“네.”
“아아. 이쪽은 내 고문 변호사....”
“로펌 ‘월드’의 이주혁. 반갑다. 최태욱.”
내가 이주혁을 최태욱에게 소개하려 했는데, 싸가지 없는 이주혁이 그런 내 말을 끊고, 제가 직접 나서서 최태욱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어째 말하는 뉘앙스가 서로 아는 사이 같았다.
“그래. 일단 반가운 척 하자. 이주혁.”
먼저 손을 내민 이주혁의 손을 마주 잡으며, 최태욱이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예민한 내 귀는 최태욱이 이주혁에게 한 말을 정확히 들었다.
‘뭔가 있군.’
하지만 가볍게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전혀 이상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들의 연극에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자아. 그럼 조사실로 갑시다.”
나는 곧장 내가 조사 받을 곳으로 갔고, 거기서 나를 상대로 조서를 꾸밀 담당형사를 만났다. 나야 어제 있은 던 일을 있는 그대로 진술만 하면 됐다. 그래서 나는 술술 얘기를 했고, 담당형사는 빠르게 자기 할 일을 해 나갔다.
내 좌우에 있던 두 변호사는 딱히 할 일 없이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 소시오 패스 이주혁에 비해서 최태욱이 이주혁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최태욱이 이주혁에게 뭔가 맺힌 게 있는 눈치였다.
물론 두 사람의 연극에, 나는 제 3자로 지켜보기만 할 거다.
물론 개입할 때가 되면 끼어들긴 하겠지만. 어째든 나도 저들의 연극판에 한 다리 걸치고 있으니까.
* * *
박대순 경찰청장의 입김 때문일까? 경찰 조사는 순조롭게 이뤄졌고, 곧 추병진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고만장해 있어야 할 추병진과, 그 변호사가 어째 내 눈치 보기 급급하다.
“하하하하. 백 대표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합의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딱 봐도 돈 좋아하게 생긴 추병진의 변호사가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고, 이에 내 고문 변호사인 이주혁이 바로 내 의견을 말했다.
“저희 대표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으실 생각이십니다. 그러니 그쪽도 법대로 처벌 받으시면 됩니다.”
변호사들이 제일 좋아하는 그 법대로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피해자가 욕을 했기에, 실수로 뺨 한 대 때린 거 밖에 없다. 그걸 과연 판사가 어떻게 판단할까?
그에 비해서 추병진은 죄 질이 나빴고, 죄목도 많았다. 게다가 전과도 있는 추병진. 만약 여기서 검찰이 기소라도 한다면....
‘중형이 확실하지.’
거기다가 내가 손을 쓰면 1년 살다 나올 거 2년, 혹은 3년으로 늘릴 수도 있었고.
그때 추병진의 변호사가 추병진의 옆구리를 쑤셨다. 그러자 못 이기는 척 추병진이 내게 말했다.
“미, 미안해.”
저걸 사과라고 하는 추병진. 차라리 안하니 만 못한, 그의 사과에 추병진의 변호사가 재차 그의 옆구리를 쑤셨다.
“아파. 그만 좀 해. C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보고 저 새끼한테 자꾸 빌라는 건데?”
결국 그 못난 성질머리가 또 사고를 쳤다. 나는 그런 추병진이 재미있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사이 대책 없이 발끈한 추병진을 보고, 그의 변호사가 질끈 두 눈을 감아 버렸을 때였다.
“크음. 여기들 있었군.”
내 앞에 드디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진호 대표가 나타났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추병진 말고, 나한테 퍼줄 게 많은 추 대표의 등장에, 나도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자식을 잘못 키운 죄가 큽니다.”
확실히 추병진과 달리 추진호는 굽힐 때 확실히 굽힐 줄 알았다.
내 앞에 정중히 직각으로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는 추진호 대표. 그런 그에게 내가 입 발린 말을 바로 내뱉었다.
“아뇨. 자식이 잘못한 거지. 부모가 잘못한 건 아니잖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자식이 잘못했으면 응당 그 부모가 책임을 져야지. 안 그런가?
“하하하하.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잘 키웠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좀 조용히 얘기를 나눴으면 하는데....백 대표님과 저만 둘이서....”
나와 단 둘이서 얘기하고 싶다는 추진호 대표의 말을 나는 기꺼이 받아드렸다.
그래서 우리 둘 만 따로, 비어 있는 조사실에 들어가서 얘기를 나눴다.
“원하는 게 뭔지 말해.”
둘만 있자 추진호 대표는 내게 바로 말을 놨다. 하긴 자기 아들보다 몇 살 더 어린 내게, 그가 존댓말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가 먼저 가식의 가면을 벗자, 나도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이번 SVS 주말 드라마에 배역 문제로 잡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서 손 털고 나가세요.”
“뭐, 뭐?”
내 제안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 추진호 대표. 보아하니 나와 그 문제로 딜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거 같은 데, 내가 아예 그 드라마에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쪽 배우를, 다 빼라고 할 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싫으세요? 그럼 관두세요.”
그렇게 말하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추진호가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주연 자리 달라고 하지 않을 게. 그냥 처음 그대로 가자고. 그게 SVS 방송국에도 좋고....그렇게 하자. 어?”
“싫은데요. SVS 방송국은 제가 잘 얘기 할 테니까, 그냥 빠지세요. 저 두말 안합니다.”
“그러지 말고....”
추진호가 나를 설득하려 하자, 나는 바로 조사실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내가 조사실 문손잡이를 잡자 추진호가 다급히 외쳤다.
“그래. 손 털고 나갈게. 그러니까 내 아들과 합의 해줘.”
추진호의 그 말에 나는 잡고 있던 문손잡이를 도로 놓고 몸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추진호에게 말했다.
“저와 합의는 해드리죠. 하지만 아드님은 저 말고, 다른 쪽과도 합의를 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뭐, 뭐라고?”
당연히 추진호는 좀 전 나와 한 얘기로, 자기 아들과 관련된 모든 고발에 대한 합의가 된 줄 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나는 아니다. 고작 드라마 배역 몇 개 가지고, 이런 절호의 기회를 털고 간다고? 개가 웃을 일이지.
* * *
내가 알기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추진호 대표는 상대의 약점을 발견하면, 그가 만족할 때까지 그 약점을 물고 절대 놓지 않는 걸로 악명이 자자한 작자였다.
‘너도 한 번 당해 봐라.’
해서 나도 추병진이라는 추진호 대표의 약점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이....”
SVS주말 드라마 배역 문제에서 시작해서, 최근 우리 JYB엔터와 시시콜콜 부딪치고 있었던 가수들 문제까지, 나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우리 쪽에 유리하게 교통정리를 했다.
그로 인해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가 입게 될 피해는, 내 알바 아니고.
어느 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며 부들부들 몸까지 떨어대는 추진호 대표.
내가 봤을 때 한계치에 다다른 그에게, 나는 마지막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곧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주식이 폭락할 겁니다.’
왜냐하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의 두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보이그룹 자이언트X, 걸그룹 씨엔스타의 두 멤버가 대형 사고를 칠 예정이거든.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자이언트X의 랩퍼 동준이와 씨엔스타의 메인댄스 하영이 연예 끝에, 하영이 덜컥 임신을 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이 일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에서 먼저 알아내서 은밀하게 조치를 취한다.
하영을 불법 낙태 시킨 것. 하지만 내년에 하영이 그 일을 폭로하면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가 휘청 거리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때 동준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가 받은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고, 세월이 약이라고 2년 뒤, 동준은 제대 후 자이언트X로 버젓이 다시 활동을 한다.
그에 비해 사고 쳐서 소속사에 단단히 밉보인 하영은, 씨엔스타에서 쫓겨나게 되고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 계속 된 소송에 지쳐서,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나는 바로 그 일을 내일 대대적으로 세상에 알려 버릴 생각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하영의 폭로로 휘청거렸던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런데 동준과 하영이 같이 연루 된 이번 일로 인해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는 휘청거리는 걸로는 부족하고 아마 뿌리가 살짝 뽑힐 정도의 타격은 불가피 할 거다. 그 중 가장 큰 피해는 주식 폭락일 것이고.
‘그게 바로 내가 노리는 거지만.’
나는 그렇게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주식의 주가가 떨어지면, 그 주식을 빠르게 사 모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추진호, 추병진 부자를 몰락시킬 수 있으니까.’
가진 게 많은 자는 무너트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먼저 그들을 빈털터리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다음은....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지.’
그 두 부자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할지는, 그때 가서 느긋하게 결정해도 됐다.
블랙 머니 박 비서에게 이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주식이 이번 주 중에 폭락할 테니, 다음 주에 느긋하게 그 주식을 사 모으라는 지시를 내려 뒀다.
더불어 제주도에서 가져 온 금괴 처분도 박 비서에게 맡겼고.
알고 보니 박 비서의 처가가 금은방을 크게 하고 있었다. 그곳을 통해서 자금을 잘 세탁해서, 그 돈을 차명 계좌에 분산 예치 시켜 놓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