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18화 (31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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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어?”

내 차가 삼명 호텔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린 내 앞에, 이례적으로 삼명 호텔 총지배인이 미리 나와서 나를 맞았다.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평소 삼명 호텔 측에서 이런 의전을 받아 본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 넘치는 환대가 그리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고 또 기분까지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서재국 대통령의 발인 날이었다.

그래서 원래 오늘 아침에 본가에 가서 아침을 먹어야 했는데, 그것도 전격적으로 취소 된 거고. 아무래도 백승렬 회장이 묘소까지는 안 가도 발인 식에는 참석할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거기 가지 않았다. 백 회장이 같이 가자고 나를 부르지 않았으니까.

오전에 일찍 발인 했으면, 호텔 일에 푹 빠져 살고 있었던 상주인 삼명 호텔 CEO 백지연이, 벌써 출근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삼명 호텔 총지배인에게 물었다.

“누님 출근했어요?”

“네?”

내 그 물음에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총지배인. 그 총지배인의 눈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왜 자기에게 그런 질문을 하냐고. 설마 모르고 있냐고.

“이런....내가 말을 잘못했네. 새로운 대표 출근했어요?”

“그, 그게 아직....”

그러면서 또 다시 나를 쳐다보는 총지배인의 눈에서, 이번에는 탐욕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양반 욕심이 과하네.’

딱 봐도 총지배인은 삼명호텔 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이 그 자리에 자신의 혈육이나 심복이 아닌 자를 앉힐 리 없었다.

어째든 내가 떠 본 총지배인의 반응으로 봐서, 내 생각이 맞는 거 같았다.

‘백지연이 결국 호텔에서 잘렸군. 그 말은....’

서재국 대통령이 죽고 나자, 백승렬 회장이 결국 칼을 꺼내 든 것이다.

이제 아무 쓸모없는 서지현을 삼명家의 안주인 자리에서 내 쫓기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핏줄도 아닌, 백지연을 삼명 호텔 대표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든 것이고.

아마도 그 일은....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이동훈 실장이....’

서지현과 백지연 모녀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이동훈이 비서실장이 된 이상 그녀들의 앞날이, 상당히 험난해 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만 가 봐요. 식사 하셔야지.”

나는 귀찮게 나를 졸졸 따라오는 총지배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쫓았다.

그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곳 일식당 ‘만석’이 있는 25층으로 올라갔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차덕기 감독과 그쪽 관계자들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

김 비서와 나는 먼저 예약한 자리에 가서 앉아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 * *

차덕기 감독은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래 놓고도 아무런 사과의 말도 없이, 태연하게 날 보고 차덕기 감독이 말했다.

“전에 우리 프로덕션에서 보고 한 달 만이던가?”

그 말에 한 달 전에 내가, 아니 백준열이, 차덕기 감독의 프로덕션을 찾아간 게 생각났다.

당시만 해도 백준열은 완전 차덕기 감독의 영화에 빠져 있었던 터라, 차 감독에게 너무 굽히고 들어갔다.

그래놨으니 차덕기 감독이 앉자마자 다리를 꼬고는, 삐뚜름하니 고개를 옆으로 젖힌 채, 나를 아랫사람 쳐다보듯 눈을 깔아보고 있는 거겠지. 말도 편하게 놓고 말이다.

“네. 뭐 그 정도 됐네요.”

근데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나를 깔아보던 차덕기 감독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그럴 게 그 동안 백준열은, 차덕기 감독 앞에서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그를 추켜세웠었다.

하지만 좀 전에 내가 보인 시큰둥한 대답은, 예전에 내가 그에게 보여 준 차덕기 감독을 무조건 추종하던, 그 백준열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게다가 지금 내가 그를 보는 눈빛은, 그를 좋아하는 팬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짝 경멸하는, 평소 영화계 관계자들이 차덕기 감독과 만나면 보이는, 그런 류의 눈빛과 비슷했다.

그걸 캐치 하지 못할 차덕기 감독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가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지 못했겠지.

내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바로 직감한 차덕기 감독. 그가 슬그머니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크음. 늦어서 미안 합니다.”

그리곤 내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개가 뻣뻣했다.

그걸 보고 딱히 화가 치민다던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상황이 백준열이 자초한 결과니까. 어차피 진심도 아닌 차덕기 감독의 사과를 나는 받지 않았다.

“뭐 드실래요?”

“네?”

“식사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빨리 먹고 할 말 하고 찢어집시다.”

“....”

한 달 전과 180도 달라진 나로 인해 차덕기 감독은 많이 당황한 듯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데 그때 차덕기 감독의 관계자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화장실에 들렀다가 오는 모양인데, 그들 표정이 다들 밝았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김 비서님도 오셨네. 역시나 아름다우십니다.”

그들은 마치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갑게 굴었다.

그러면서 한 명은 아주 대 놓고, 김 비서 옆 자리에 가서 앉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 반응에 차덕기 감독이 헛기침을 했다.

“큼큼큼....”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차덕기 감독가 보내는 신호 따윈 개 무시하고, 나와 김 비서에게 대 놓고 결례되는 말을 내 뱉었다.

“저희 감독님 오늘 계약하면. 바로 10억 선 입금 시켜 주시는 거죠?”

“김 비서님. 생각 해 보셨습니까? 저희 영화사에서 특별히 김 비서님께 어울리는 배역을 찾았는데 ‘차털레 부인의 사랑’이라고....”

나는 내게 대 놓고 돈 달라는 차덕기 감독 쪽 사람의 말은, 그대로 생 까고 차덕기 감독을 쳐다봤다. 그건 김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치근덕거릴 때는 농담으로 받아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대 놓고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성인 영화 여주인공을 하라고 졸라대니, 그녀로서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 그만! 다들 나가!”

“네?”

“차, 차 감독. 그거 지금 나한테 한 소리야?”

“둘 다 나가라고. 내 말 못 알아들어?”

차덕기 감독이 화가 나자 얼굴이 제법 무서웠다. 차 감독의 관계자들은 그제야 차 감독이 진짜 화가 나 있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약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차 감독이 나와 김 비서에게 처음으로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대신....

“서로 마주보고 식사할 분위기는 아니죠?”

“그러네요.”

“바로 얘기 들어가죠. 아시겠지만 저는 사업가고 투자한 것의 배 이상 수익이 나길 원합니다. 하지만 차 감독님의 이번 작품은 흥행보다는, 예술에 더 치중한 걸로 압니다. 맞습니까?”

“네. 그렇지만 흥행도 자신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시겠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만약 차 감독님이 이번에 찍는 그 영화로 100만 관객을 동원하시면, 저는 아예 투자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대신 100만을 넘지 못할 시....투자금의 2배를 감독님에게서 회수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차 감독이 이번 영화로 100만 관객을 동원하지 못한다면, 그는 파산하게 된다는 얘기다. 반대로 성공하면 투자금은 물론, 100만 관객에 대한 수익도 그가 다 먹고 말이다. 하지만....

“그, 그건 좀....”

좀 전까지 확신에 차 있던 차 감독. 그가 갑자기 꼬리를 말았다.

그럴 게 여태 영화를 찍어 오면서, 그가 100만 관객을 동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실제 이번에 찍는 영화 ‘라비타’ 역시, 베네치아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받았지만, 국내 관객 동원은 50만에 그쳤다.

그러니까 차덕기 감독이 아무리 영화를 잘 찍어 봐야, 100만 관객을 넘기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자신 있게 제안을 한 것이고. 그런데 졸보인 차 감독은 내 그 제안에 겁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하긴 나 말고도 투자자들이야 많으니까. 그들에게 투자 받아서 영화 찍어도, 어차피 투자금은 갚지 않아도 되는 데, 뭐 하러 2배 위약금을 물겠다고 나와 계약을 하겠나?’

나는 차덕기의 얍삽한 속내를 바로 간파했다. 뭐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차덕기 감독을 JYB엔터로 영입할 생각이 없었고, 보아하니 차덕기 감독도 우리 회사에, 딱히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는 거 같으니 말이다.

“으음.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오늘 우리가 만나기로 한 건, 없었던 일로 할 수밖에요.”

“그래야겠군요.”

내 말에 차덕기 감독이 바로 동의하면서, 우리가 더 이상 할 얘기는 없어졌다.

“그럼 서로 바쁜데 이쯤에서 헤어지도록 하지요.”

“괜한 시간 뺏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차 감독님과 이렇게 단 둘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김 비서가 끼어 있었지만, 그녀는 한마디로 하지 않았으니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뵙지요.”

그래도 차덕기 감독은 나와 인연의 끈을 한 가닥은 남겼다.

하긴 사람 일이란 건 또 모르는 법이니까.

“네. 부디 좋은 기회가 왔으면 좋겠네요.”

나는 차덕기 감독과 악수를 나누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김 비서도 따라 일어났고. 그런 김 비서를 차덕기 감독이 한참 쳐다봤다. 딱 봐도 차덕기 감독이 김 비서를 노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 새끼가....’

음흉한 차덕기 감독의 두 눈을 후벼 파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는 그걸 참아냈다.

그러니까 좀 전에도 차 감독쪽 관계자가 괜히 김 비서에게 찝쩍거린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김 비서는 내 여자고, 나는 그녀를 밖으로 내 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괜히 저들이 헛물 켠 거지.

* * *

김 비서와 내가 예약실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덕기 감독의 관계자 둘이, 후다닥 예약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큰소리가 제법 일었다.

물론 그 사이 일식당을 나온 김 비서의 귀에는, 당연히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인 *소리가 잘 들립니다.*로 인해, 나는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전부 다 들을 수 있었다.

“....데 그냥 보내면 어쩌자는 건데?”

“그럼 흥행 못하면 위약금 물라는 데 ,그 계약을 지금 나보고 하라고?”

“자신 있다며? 이번에는 흥행과 예술 둘 다 잡을 작품이 될 거라면서?”

“그, 그렇긴 하지만....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만약 해외에서 상을 받았는데, 막상 국내 흥행에 실패하면....그때 우리는 완전 파산하는 거라고. 그래도 좋아?”

“해외에서 상을 받았는데 왜 흥행에 실패해?”

“저기....박 실장님. 실제 해외에서 상 받아도,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 제법 됩니다.”

“뭐? 하아....나 참....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어차피 투자 받을 곳은 많아. 그들에게 투자받아서 일단 영화 찍고, 해외에서 상 받고 나서 흥행에 성공하면 좋고, 아니어도 뭐 돈이 없어서 투자 금 못 돌려준다는데, 투자자들이 어쩔 거야.”

완전 배 째라 식의 차덕기 감독의 말에, 초록은 동색이라고 두 관계자들도 같은 소릴 내뱉었다.

“하긴 상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한 걸 두고 투자자들도 감독님보고, 투자 금 내 놔라고는 못 할 거 같네요.”

“그야 당연하지. 그게 감독 잘못은 아니잖아. 영화사와 배급사가 일을 제대로 못한 탓이지.”

책임을 교묘히 딴 쪽으로 떠넘기는 게, 그들이 괜히 차덕기 감독과 같이 일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얘기다. 그때였다.

“대표님. 저희 뭐 먹어요?”

“어?”

“점심요. 굶으실 건 아니죠?”

그때 내 눈에 일식당 건너편에 한식당이 보였다. 내 시선이 한식당을 향하자 김 비서가 말했다.

“저기서 드시려고요?”

“그러지 뭐. 여기 나가서 딱히 먹을 때도 없고.”

나는 곧장 한식당으로 향했고 김 비서가 내 뒤를 따라왔다. 한 식당에서 나는 전주비빔밥을 시켰고, 김 비서는 불고기 덮밥을 시켰다. 한식당 직원에게 물으니 그 두 메뉴가 가장 빨리 나온다고 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삼명 호텔 한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그곳을 나와서 곧장 JYB엔터 본사로 향했다.

* * *

김 비서와 내가 JYB엔터의 대표실로 막 복귀했을 때, 손님 두 명이 막 와 있었다.

“대표님! 저희 왔어요.”

“저도요. 여기....”

바로 내 충견들인 안지은과 강지영이, 내게 주려고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그때 김 비서가 안 비서를 알아봤다.

“본가의 안 비서님이시죠? 안녕하세요.”

김 비서가 먼저 인사를 했는데, 정작 안 비서가 그런 김 비서를 흘기며 내게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그럴까?”

나는 두 여자와 함께 대표실로 들어갔고, 그런 나를 대표실 밖에서 김 비서가 다소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마실 거들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으니, 김 비서가 따로 대표실 안으로 들어와서, 손님들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똑똑똑!

하지만 김 비서는 노크 후 내 방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나와 얘기 중이었던 두 여자가 그런 김 비서를 쏘아 봤는데, 김 비서는 그런 그녀들의 눈총을 무시하고 곧장 내 쪽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대표님. 차는 뭐로 내 올까요?”

나도 그렇고 두 여자들 손에도 테이크아웃 한 커피와 음료가 들려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뻔뻔한 김 비서를 보고 안은지가 바로 한 소리 했다.

“김 비서님은 눈이 없나 봐요? 이거 안 보여요?”

안은지가 자기 손에 들린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어 보였다. 하지만 김 비서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나만 빤히 쳐다봤다. 그러니까 안은지야 뭐라고 떠들든 말든, 그녀는 내 말만 듣겠다는 거다.

아마 좀 전에 김 비서가 먼저 인사를 했는데, 그걸 생 깐 안은지에 대한 보복인 모양이었다.

“아니. 사람 말이 말 같지....”

“물 한잔 가져다 줘.”

나는 이대로 뒀다가는 안은지와 김 비서가 대판 싸울 거 같아서, 욱한 안은지가 말 할 때 그녀의 말을 자르고, 김 비서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김 비서가 바로 뒤돌아서 대표실을 나갔다.

그런 그녀를 보고 안은지가 눈썹을 모으고 질끈 입술을 깨물 때, 그녀 옆의 강지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비서 분, 정말 재미있으신 분 같아요.”

그러자 안은지가 발끈하며 말했다.

“언니. 저건 재미있는 게 아니라, 진짜 재수 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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