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17화 (31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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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차은석은 퇴근해서 샤워하고, 퇴근할 때 사온 초밥 세트를 먹기 전, 먼저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오늘도 8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한 그녀는, 비록 늦은 저녁을 먹고 있지만 오늘 하루도 행복했다. 왜냐하면 오늘도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고, 그 가능성과 성과가 보였기 때문에.

“내일은 더 잘 하자.”

차은석은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맥주까지 다 마시고 나서, 뒷정리를 하고서 TV를 켰다.

일도 일이지만 그래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하니, 퇴근하면 꼭 뉴스 한 편은 보는 편인 차은석.

그녀가 한참 뉴스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 핸드폰이 울렸고 바로 옆에 두고 있었던 터라, 바로 확인한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혜은이네. 얘가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저녁을 먹거나 한잔 하자면 미리 전화했을 박혜은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에 그녀가 전화를 해 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다.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면서, 차은석은 박혜은이 걸어 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차은석. 나야 혜은.

“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내말 잘 들어. 지금 나한테 정재욱 그 새끼 제대로 엿 먹일 동영상이 있어.

“뭐?”

뜬금없는 박혜은의 말에, 처음에 차은석은 당황했지만 이어지는 박혜은의 설명에, 그녀의 얼굴이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아갔다. 더불어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며 입매가 점점 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넌 나서지마. 아니. 그쪽 조직문화는 바뀌지 않아. 내가 어떤 식으로든 그 일에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면, 너한테 무조건 불이익이 돌아 갈 거야. 그러니까 그 일은 내가 맡아서 처리하는 게 맞아. 어. 넌 그 동영상 나한테 보내고 핸드폰에 그 동영상 싹 지워. 아냐. 내 손으로 그 자와 악연을 매듭지을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 괜찮아. 넌 나한테 그 동영상 보내는 걸로 내 몫은 충분히 다했어. 그러니 그 뒷일은 나한테 맡기고, 넌 그냥 한 다리 건너서 지켜만 봐.”

차은석은 아주 노련하게, 이 일로 흥분해 보이는 박혜은은 진정 시키면서, 그녀가 그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게끔, 자신이 무겁다면 무거울 수 있는 짐을 떠안았다.

하지만 그 짐이란 게 지금 차은석에게는 하나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재욱. 드디어 내 손으로 너를 혼쭐 낼 수 있게 됐구나.”

안 그래도 백준열 대표에게 정재욱에 대한 응징을 모두 맡긴 게 죄송스러웠던 차은석.

그녀는 박혜은이 보내 온 동영상을 확인하면서, 얼굴이 점점 더 희열에 물들었다.

그만큼 박혜은이 보내 온 동영상에 나오는 정재욱은, 누가 봐도 정재욱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제대로 나왔다.

“이걸 어디에 보내지?”

정재욱이 지방으로 좌천 될 거란 소식은 백준열 대표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경찰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차은석으로서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동영상을 보낸 방송국에 정재욱과 아는 자라도 있다면 뉴스는 나가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녀만 위험해 질 수 있었으니까. 그때 그녀 머릿속에 떠오른 슈퍼 히어로가 있었으니....

“역시 대표님께 부탁을 드려야 하나?”

차은석은 잠시 고민 후, 최선의 결론을 내렸다. 그건 바로 백준열 대표에게 전화하는 거 말이다.

* * *

김 비서가 삼명그룹 비서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을 때, 나는 백승렬 회장이 또 무슨 일로 나를 귀찮게 하려고 전화를 했는지 짜증부터 났다.

“바꿔.”

그래서 퉁명스럽게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막내 도련님. 저 이동훈입니다.

근데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상황이 전개 됐다.

‘이동훈?’

어디서 많이 들어 본....백준열의 기억이 바로 내게 경고를 보내왔다.

‘이동훈 부장?’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이동훈은 상당히 유능한 미전실 직원이었다.

근데 어릴 적 백준열에게 그는 상당히 차갑고, 냉철한 인물로 기억 되고 있었다.

그 말은 회장 아들이라고 해서 사정 봐주고 그런 거 없는, 명백한 백승렬의 사람이란 소리다.

하지만 10년 뒤에 그는 삼명그룹 어디에도 없었다.

왜냐하면 장남 백준경이 회장이 되자마자, 쳐 낸 백승렬 회장 쪽 사람들 중에 이동훈도 끼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동훈은 백준열 만큼이나 백준경에게도 밉보인 인사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동훈은 백승렬 회장의 개였다.

-저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죠. 특별한 분이셨잖습니까?”

좋게 말해서 특별하다는 거지, 어릴 때 백준열에게 그다지 좋은 인식을 심어 준 사람은 아니었다.

백승렬 회장이 얼마나 비정한 인간인지를 당시 백준열은, 이동훈을 통해 알게 됐으니까.

-좋게 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일로 바쁘신 분이 저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누가 백승렬 회장의 개가 아니랄까, 말끼도 잘 알아들어 처먹었다. 백준열의 기억에 그다지 좋지 않은 인간으로 기억 되고 있어선지, 나도 이동훈이 꺼려졌다.

그러니 더 길게 통화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동훈도 바로 내게 전화건 진짜 용건을 얘기했다.

-이번에 제가 비서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그래서 도련님께 인사차 전화 드리는 거고요.

“축하해요. 아버지 잘 모시고 삼명그룹 잘 이끌어 나가세요. 됐죠? 바빠서 이만 끊습니다.”

나는 이동훈 삼명그룹 신임 비서실장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왜냐하면 통화 중에 이동훈이 백준열에게 한 짓, 하나가 떠올라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 앞에서....”

놀랍게 이동훈은 백준열이 보고 있는 데도, 삼명가 본가에 누군가 심어 둔 첩자를 색출해 내서, 그 자를 직접 심문했다.

그자가 이동훈 손에 죽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피투성이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 자를, 이동훈은 잔인하게 들고 있던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려쳤다.

그때 쇠파이프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은, 지금도 백준열의 뇌리에 남아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백준열이 있는 쪽을 돌아보고, 비릿하게 웃는 이동훈. 이동훈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백준열이 숨어서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는 걸. 하지만 그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백준열이, 그 모습을 보게 내버려뒀다.

마치 삼명가의 일원으로서, 이런 건 미리 봐두는 게 좋을 거란 듯 말이다.

“여러모로 기분 나쁜 자야.”

이동훈과 통화 후 나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이어 걸려 온 전화가, 그런 찜찜한 내 기분을 한 방에 바로 날려버렸다.

* * *

“뭐? 요트가 오늘 들어온다고? 리조트 쪽에 얘기해서 잘 받아 놓으라고 해.”

이번 주 중에 오기로 되어 있었던 신상 요트였다. 근데 내 생각보다 하루 이틀 정도 더 빨리, 남해의 베네치아 리조트 앞 선착장에 도착 한 것이다.

도착과 동시에 요트 제작사에서 내게 연락을 해 온 것이고. 그걸 김 비서가 전화 받아서 내게 인터폰으로 알려 주었다.

“이번 주말에도 남해로 가서, 요트를 타고 제주도로 가야겠군.”

완전 신상인 요트를 타고 남해 바다의 파도를 가르며, 제주도로 갈 생각을 하니 벌써 흥분이 됐다. 그때 김 비서의 인터폰이 다시 울렸다.

-대표님. 점심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 나가셔야 합니다.

참고로 점심 약속에 김 비서도 동석한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만나기로 한 그 사람이, 그래 줄 것을 특별히 요구했기 때문에.

“알았어. 지금 나갈 테니까 김 비서도 준비 해.”

-네. 대표님.

아무래도 나보다 여자인 김 비서가 챙길 게 더 많을 테니, 나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움직였다.

그렇게 한 5분 쯤 뒤 내가 대표실을 나서자, 김 비서도 외출 준비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화장을 고친 티가 났다. 아까 봤을 때에 비해서 얼굴이 더 화사해 진 걸 보면 말이다. 그것 말고 오피스룩의 김 비서는 누가 봐도 비서처럼 보였다.

특히 굵은 안경을 써, 너무 예쁜 그녀의 얼굴을 가린 건, 내가 봐도 잘한 일 같았다. 뭐 그런다고 그녀의 아름다움이 가려지는 건 아니었지만.

“가지.”

“네.”

내가 앞장서서 움직이자, 대표실 밖에 대기 중이던 경호팀원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같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근데 문대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부 팀장인 송명철이 경호팀원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직접적으로 대 놓고 송명철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차에 타자 그에게 물었다.

“문 팀장 어디 갔어?”

“네.”

“어디 갔는데?”

“그게....오늘 월차 쓰시겠다고만 말씀 하셔서....”

경호팀장인 문대식이 말하지 않으면, 사실 경호팀원들도 그가 왜 월차를 썼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더 묻는다고, 송 부 팀장이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지라, 나도 더는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조수석에 탑승 중인 김 비서에게 물었다.

“오늘 약속 장소가 어디라고?”

“삼명 호텔 일식당인 ‘만석’입니다.”

김 비서의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럴 게 장소가 삼명 호텔이란 것도 내키지 않는데, 그곳 일식당은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를 보자고 한 게 내 쪽이다 보니, 당연히 식사 대접도 내가 해야 했다.

그런데 상대는 그런 나에 대해 아무런 배려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려는 지, 백준열이 가장 꺼려하는 곳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하여튼....그 인간은 여전하네.”

“네?”

내 혼잣말을 들은 듯 조수석의 김 비서가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냐. 그러니 신경 쓸 거 없어.”

“네.”

나는 김 비서가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리자, 얼굴에 웃음을 싹 지웠다.

* * *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초가집을 세 번 방문한다는 뜻인데, 중국 촉한의 왕 유비가 제갈량의 초옥을 세 번 찾아가, 간청 끝에 드디어 제갈량을 군사로 맞은 유래 때문에 생겨 난 말이다.

그러니까 그 삼고초려를 백준열이 했단 거다. 그래서 겨우 오늘 점심 약속을 잡을 수 있었고.

그 모든 과정을 쭉 옆에서 지켜 봐온 김 비서 입장에서야, 내가 꼭 그 인간을 JYB엔터에 영입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

‘하지만....아닌데.’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지금 만나러 가는 그 인간은, 확실히 백준열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기는 했다.

한국인 감독으로서,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의 본상을 모두 받은 영화계의 거장, 바로 차덕기 감독!

충무로 르네상스를 일으켜 한국 영화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일명 5대 감독 중 한명으로 꼽히는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감독이었다.

그러니 백준열이 그를 JYB엔터에 영입하려고, 혈안이 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백준열은 차덕기 감독의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무시무시한 영상과 이를, 끝까지 거칠게 끌고 가는 연출을 좋아했다.

그로인해서 걸핏하면 검열삭제 당할만한 장면이 난무하기는 했지만, 어째든 백준열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 자존심 강한 백준열이 삼고초려까지 한 거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차덕기 감독은 ‘폭력’이라는 주제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는데, 극단적인 상황과 비도덕적인 캐릭터들의 행동, 비상식적인 폭력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여성 캐릭터 등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감정이입이 어려운 요소들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인간의 '모순적인 양가감정(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에서 오는 혼란스러운 감정이나 태도가, 함께 존재하고 상반된 목표를 향해 동시에 충동이 일어나는 상태) '을 '생략된 대사'에 '투박한 행동'으로 표현했다는데, 나로서는 거북하고 난해할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몇 년 뒤, 드러나게 된 얘기지만 차덕기 감독은 여배우를 성폭행했다.

그걸 미화하며 소송전까지 불사 했지만, 결국 패소하고 도망치듯 해외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만다.

‘그러고 보니 올해 그 영화를 찍는 군.’

차덕기 감독은 올해 ‘라비타’라는 영화를 크랭크인(Crank in, 촬영개시)한다. 그리고 내년 말에 그 영화를 크랭크업(Crank up, 촬영종료)하고, 그 후 내년에 그 작품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대한민국 영화 중 처음으로 베네치아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는다.

하지만 차덕기 감독의 여타 영화들처럼 흥행은 실패 했다.

그 때문에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해외 영화제 수상만 노린다’고 비판을 했는데, 그게 또 지금 대한민국의 주류 문화계에서, 그가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차덕기 감독은 확실히 해외 영화제에서 거둔 화려한 성적에 비해, 대한민국 영화제에선 상을 받은 것이 별로 없었다.

‘차 감독 유독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했던가?'

10년 뒤에도 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다. 특히 그의 죽음을 두고서도, 여러 말들이 많았는데 내게 중요한 건, 그가 뛰어난 감독이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먼 감독이란 거다.

‘돈도 안 되는 영화를 내가 왜 찍어?’

그러니까 백준열과 달리, 나는 차덕기 감독을 딱히 영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배우나 강간하는 그런 감독을 내가 뭐 하러, 천만 감독이라도 된다면 또 모를까.’

그러고 보니 나는 향후 10년간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와, 그 영화를 찍은 감독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영화 감독을 JYB엔터에 영입 하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그를 만나러 가는 건, 어째든 그가 한국 영화계에 큰 획을 그은 거장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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