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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316화 (31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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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정재욱은 게시판에 붙은 공고가 새로운 서울경찰청장의 인사 발령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거기에는 신임 경찰청장의 1호 인사 명령으로, 떡하니 잘 하고 있는 서울경찰청의 형사과장을, 제주경찰청의 형사과장으로 발령 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좌천성(左遷性) 인사였다.

하지만 누구하나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 한다던가, 인사의 부당성을 성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있다면 한 사람, 그 당사자인 정재욱 뿐.

그만큼 정재욱이 실제 서울경찰청에서, 그 동안 얼마나 인심을 잃고 살아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랄까?

“으아아악!”

와장창창! 쿵! 쿠웅!

제대로 화가 난 정재욱이 자기 방 테이블을 뒤집었다. 그걸 로도 화가 풀리지 않은 정재욱은, 눈에 띠는 건 다 집어던지고 때려 부쉈다.

“헉헉헉....”

그러다 지친 정재욱이 자빠져 있는 자기 방 소파를 발로 차서, 도로 원상태로 만든 뒤 거기 앉으며 숨을 고를 때였다.

어제 그에게 전화를 준 본청의 경찰대 동기가, 정재욱의 핸드폰으로 또 전화를 걸어왔다.

“하아....”

잠시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던 정재욱이 결국 그 전화를 받았다.

“왜?”

-목소리가 까칠 한 걸 보니 인사명령 본 모양이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잘 가라고 전화했지. 다시 볼 일 없을 거 같아서.

동기의 그 말에 정재욱은 전화 받지 말 걸 하고 후회를 했다.

하지만 이런 주위 반응이, 오히려 정재욱으로 하여금 투지를 불사 오르게 만들었다.

“내가 꼭 다시 돌아와서 보여 준다. 이 정재욱이 아직 안 죽었다고.”

-하하하하. 그래. 이래야 정재욱이지. 기대 하마. 아아. 그리고 제주도 가면, 거기 전복하고 옥돔 꼭 좀 보내라. 내가 해산물 좋아하는 거 알지?

“그래. 꼭 보내 주마.”

어차피 서울 쪽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주도에서도 파악은 하고 있어야 했다.

정재욱은 그 연결고리로, 본청에 있는 이 싸가지 없는 동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녀석이 원하는 건 웬만하면 다 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동기와 통화를 막 끝낸 정재욱이, 엉망진창으로 변한 자기 방을 보고 한 번 더 한숨을 내 쉴 때였다.

똑똑똑!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어질러진 자기 방을 보여주기 그래서, 정재욱이 밖을 향해 말했다.

“누구야?”

그러자 밖에서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새로 이 방주인이 될 유주열 경무관입니다.”

그 말이 정재욱을 벌떡 앉았던 소파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런 C발....”

정재욱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자기 인사 발령 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후임인사가 발표 됐단 말인가? 그 욕설을 밖에서 들은 듯 유주열 경무관이 말했다.

“오늘 중으로 방 비워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환대는 잊지 않겠습니다. 정재욱 경무관님.”

졸지에 신임 서울경찰청 형사과장과 제대로 척을 지게 된, 제주경찰청 형사과장 정재욱이었다.

* * *

방을 정리하면서 정재욱은 새로 올, 이 방주인인 유주열 경무관에 대해 알아봤다.

그랬더니 정재욱보다 경찰대 두 기수 위의 선배였고, 이번에 새로 국회의장이 된, 황성태 의원의 처조카였다.

원래 유주열은 강원도 속초경찰서장이었다. 그런 그가 단숨에 서울경찰청의 형사과장으로 승진해서 발령 받았다는 건....

“극회의장이 경찰 쪽에 자기 사람을 심은 거로군.”

이런 식의 낙하산 인사는 정권 초에는 흔한 일이었다.

현 대통령도 작년부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사람들에 대한 보은성 인사를 남발하고 있었고.

국회의장이 이 정도 청탁을 하는 건, 경찰청 내에서도 소소한 일이었다.

근데 그런 끗발 좋은 사람의 신경을 제대로 긁어 놓은 정재욱.

“C발. 진짜 되는 일이 하나 없네.”

유주열 경무관이 노크 했을 때, 그냥 들어오라고 했어야 했다.

비록 방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그와 척을 지진 않았을 테니까.

“하아....”

어차피 엎질러 진 물. 그걸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 방은 새로운 주인의 취향에 맞게 인테리어가 될 거라, 정재욱도 자기 챙겨 갈 것만 박스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챙길 거 다 챙긴 뒤, 정재욱은 그 박스를 들고 서울경찰서 형사과장실을 나섰다.

원래는 자신과 같이 일했던 상사나 부하들과도, 인사를 하고 떠나야 했지만 지금 정재욱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좌천을 두고, 그걸 당연시 하는 이곳 서울경찰청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챙긴 박스를 들고 곧장 후문을 통해서, 서울경찰청 본관 건물을 나선 정재욱은, 자기 차로 이동해서 박스를 차 트렁크에 싣고, 운전석에 오르기 전 서울경찰청을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담았다.

“다시 보자.”

그 말 후 정재욱은 질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운전석에 오른 뒤, 바로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서 서울경찰청을 빠져나왔다.

뭐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지만, 정재욱은 내일 바로 제주경찰청으로 출근해야 했다.

그러니까 내일 제주경찰청장에게 신고를 하고, 내일부터 그곳 형사과장으로 일해야 한다는 소리다.

대개 이런 경우 제주경찰청에서 연락이 와서, 하루 정도 더 시간을 주었다.

물론 그 하루를 월차로 처리되지만. 근데 제주경찰청에서 여태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 말은 제주경찰청장이 내일 기어코 정재욱으로부터 보직신고를 받겠다는 소리.

즉 이러면 정재욱은 내일 오전까지, 무조건 제주도로 가야했다.

디로링!

그때 그의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확인하니 제주경찰청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그걸 보고 일단 정재욱의 표정이 좀 풀렸다.

보나마나 하루 시간을 주겠다는 문자 메시지일 테니까. 하지만 확인한 결과....

“이런 C발 좆같은....”

내일 아침 9시에 제주경찰청장이 정재욱의 보직신고를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정재욱은 내일 아침 9시 이전에 무조건 제주경찰청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따라서 그는 오늘 밤 비행기나 새벽 비행기 타고 기필코 제주도로 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정재욱은 곧장 비행기 편을 알아봤는데, 새벽 비행기는 이미 매진이고 어쩔 수 없이, 밤 비행기로 제주도에 가기로 하고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당연히 가족들 비행기 표는 예매하지 않았다. 그보다 일단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게 먼저였으니까.

* * *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의 굳은 얼굴에서 고미나는 직감했다. 남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걸 말이다.

“뭔데요?”

“그, 그게....나 제주도로 발령 났어.”

“네에? 거기 당신이 왜 가요?”

이해가 안 간다는 아내의 얼굴에서 정재욱은 한숨부터 나왔다. 하긴 여태 승승장구하며, 경찰에서 노른자위 직위만 쭉 거쳐, 이제 경찰청의 꽃보직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은 정재욱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제주도로 간다니 정재욱의 아내, 고미나가 황당해하는 건 당연했다.

“혹시 아버님 때문에 그런 거예요?”

고미나도 시아버지가 지금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 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별개가 아닌가?

“미안. 내가 무능해서 그래.”

아내 앞에서 정재욱이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이게 다 그가 무능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게 정말 최선이에요? 꼭 제주도로 가야 해요?”

“어. 일단은 그래. 하지만 제주도에서 오래 있진 않을 거야.”

“잘 됐네요. 그럼 우리는 서울에 있을게요. 민수. 이제 막 괜찮은 소속사에 들어갔는데, 제대로 지원해줘야죠.”

“그, 그래. 뭐 그래야지.”

아내에게 있어서 항상 남편 정재욱은 뒷전이었다.

아들 민수만 중요했지.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긴 요즘 어떤 여자가, 남편이 제주도 발령 받아 간다는 데 따라가겠나?

“아아. 오늘 오빠 생일이라서, 민수 데리고 친정 가서 저녁 먹을 건데. 당신은 안 갈 거죠?”

“어어. 뭐....”

아버지는 불명예스럽게 경질 당했고, 자신은 좌천당한 마당에 처갓집에 어떻게 가나?

결국 아내와 아들 민수만 처갓집으로 가고, 정재욱은 혼자 짐 가방을 챙기다 라면 하나 끓여서 처량하게 저녁을 때웠다.

그리곤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게 김포 공항으로 향했는데 음주운전에 딱 걸렸다.

라면 먹을 때 반주로 소주 반 병 먹은 게 화근.

“하아. 진짜 좆같네.”

다행히 단속 나온 경찰서의 교통계장과 아는 사이라서, 일단 연행 돼서 경찰서까지 가진 않았다. 요즘은 음주단속 할 때 운전자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따라서 예전처럼 경찰이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못했다.

만약 나중에 이게 문제가 돼서 그가 진급하거나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생겨선 절대 안 되니, 따로 조치는 취해야 할 성 싶었다.

“그건 일단 제주경찰청에 가서 해결하기로 하고....”

지금은 비행시간에 늦지 않게 공항에 가는 게 급선무였다. 다행히 제주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그는, 자정 가까워서 제주공항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제주경찰청 근처 모텔에 방을 잡고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

“으윽?”

다음 날 깨어보니 벌써 8시였다. 정재욱은 자신이 제주경찰청 근처 모텔을 잡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우선 씻었다. 그리고 정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까지 든든히 먹고, 제주경찰청 본관 건물에 들어갔다.

그래도 시간이 10분이나 남아서, 거기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서 마시며, 인사과로 가는 중이었다.

“응?”

그때 그가 복도에서 수사과에 설치 된 TV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황당한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어제 김포공항 방면 우회도로변에서 실시 된 음주운전 단속에서, 경찰 고위 간부가 음주운전으로 적발 되었는데, 경찰이 그 간부를 몰래 빼돌려 보내 주는 장면이 포착 되었습니다. 일단 그 장면 보시고 더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온 영상에....

“저, 저....”

누가 봐도 자신이 경찰과 사바사바해서 단속 상황에서, 몰래 그곳을 빠져 나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영상에 찍혀 있었다.

“좆 됐다.”

이건 무조건 견책 이상의 징계 감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제주경찰청에 보직 신고도 안 했는데, 이런 불미스런 일이 터졌다는 건....제주경찰청에 제대로 찍혔다는 소리기도 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그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차은석의 경찰대 동기 중, 여자로 유일하게 현직 경찰에 몸담고 있는 친구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박혜은 경위였다.

원래는 두 명 더 있었는데 둘 다 결혼 하면서, 한 명은 경찰을 그만두고 다른 한 명은 육아휴직 상태였다.

박혜은은 차은석처럼 미혼으로, 그녀는 현재 강서경찰서 교통계에 재직 중이었다.

한데 다른 남자 동기들이 다들 경감으로 진급한 상태에서, 그녀는 여전히 경위 계급에 머물러 있었다.

그게 늘 불만이었던 박혜은은, 자신의 진급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은밀히 알아 본 결과 알게 되었다.

그녀가 경찰대 다닐 때 차은석과 친하게 지냈다는 게 빌미가 돼서, 서울경찰청의 형사과장인 정재욱이, 그동안 그녀의 진급에 물을 뿌려왔다는 걸 말이다.

“C발 새끼....”

이미 올해 인사 때 그녀보다 경찰대 후배가, 경감으로 먼저 승진한 상황.

여기서 진급을 못한다면 진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경찰 때려치워야 하나 싶었는데, 그런 그녀에게 차은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 왜?”

차은석과는 간간히 안부 정도는 묻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자신의 앞길이 막힌 걸 알게 된 뒤, 박혜은은 의도적으로 차은석을 피하고, 또 대하는 것도 예전보다 부자연스러웠다. 그걸 눈치 못 챌 차은석이 아니었고.

-박혜은. 이제 됐어.

“뭐가 돼?”

-정재욱 말이야. 그 인간 이제 서울에서 볼 일 없을 거야.

뜬금없는 차은석의 말에 황당해 하던 박혜은. 그런 그녀에게 차은석은 정확한 자초지종을 밝히지 않고, 정재욱이 곧 지방으로 좌천 될 거란 소릴 하더니, 그 동안 미안했다고 사과를 해왔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박혜은은 대충 알았다고 말하고, 차은석과 통화를 끝냈다.

그랬는데 진짜 그 전화 후 며칠 되지 않아서, 정재욱이 제주경찰청으로 좌천 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박혜은.

“이야호!”

그녀로서는 그동안 갑갑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오늘 밤 음주단속에도 참가한 박혜은.

“어?”

그런 그녀 눈에 정재욱이 보였다. 그런데 음주단속에 걸린 그가, 교통계장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게 아닌가?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이 든 그녀는, 그때부터 자기 핸드폰으로 정재욱을 찍기 시작했다. 그

리고 분명 음주단속에 걸린 정재욱이 풀려나서, 유유히 자기 차에 올라타서는 그대로 가버리는 게 아닌가?

박혜은은 거기까지 동영상을 찍고는 곧장 교통계장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에게 따졌다.

“계장님. 좀 전에 그 사람 누군데 음주단속 걸린 사람을 막 풀어주시는 거죠?”

“무슨 소리야? 누가 음주단속 걸린 사람을 풀어 줘? 박 경위. 눈이 삔 거 아냐?”

“크크크크....”

교통계장은 그 일을 두고 모르쇠로 일관할 뿐 아니라, 박혜은에게 서슴없이 인신공격까지 가했다.

그런 교통계장의 말에 주위 남자 경찰들은 그런 그녀를 비웃었고. 졸지에 우스운 사람이 되어 버린 박혜은 경위. 그녀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그녀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 오른 사람이 바로 차은석이었다.

그녀는 핑계거리도 있겠다 교통계장에게 가서 말했다.

“계장님. 머리가 좀 아파서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아프면 들어가야지. 가 봐.”

무슨 선심쓰듯 말하는 교통계장에 박혜은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걸 참고,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면서 차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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