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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태석규는 백준열의 제안을 받고나서, 정재욱의 차를 그의 집 앞에 주차시키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비록 단칸방이었지만 이 방을 구하기까지, 태석규가 해야 했던 일들은 재벌 3세로 살아 온, 그가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들이었다.
비록 월세지만 복덕방을 끼고 주인과 계약을 했고, 수수료라는 걸 줘 봤다.
그러면서 태석규가 깨달은 건, 세상에 진짜 공짜가 없다는 거였다.
보글보글!
집에 가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김치와 돼지고기를 산 태석규. 그는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였고 사흘 전인가? 그가 마시다 남겨 둔 소주 반병을 꺼내서 반주로 마셨다.
“크으....죽이네.”
얼큰한 김치찌개에 크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가, 씹을 때 터지는 육즙의 향연에, 태석규는 바로 이런 게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또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런 그에게 일자리를 척하니 내 준, 백준열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진짜 죽어라고 열심히 다닐거다.”
태석규는 각오를 다졌고, 비록 백준열 만큼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그도 끝에 가서는 연예 기획사의 대표가 되고자 하는 야망을 품었다.
저녁 식사 후 태석규는 ‘지직’ 거리며 잘 나오지 않는 TV를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으음....”
그러다 깨어보니 TV가 켜진 채, 뭐라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린 그가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였다.
잠은 충분히 잔 터라, 태석규는 몸을 일으켰고 먼저 시끄러운 TV를 끈 뒤, 싱크대에 그대로 남은 설거지를 먼저 해치웠다.
그 다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지만, 아침 운동을 나간 태석규는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돌아와서 그 물로 밥을 지었다.
“와아. 밥이 다네, 달아.”
아침을 배부르게 먹은 뒤, 태석규는 어제 백준열이 한 말을 곱씹었다.
“준열이가 나보고 분명,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우라고 했어.”
백준열이 JYB엔터에서 일해 보라고 했을 때, 태석규는 내심 기대를 했었다.
그래도 대표 친군데 한 자리 주겠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JYB엔터에서 적성 검사를 받고나서, 그 결과를 그 자리에서 바로 통보 받을 때 태석규는 알게 됐다.
JYB엔터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며, 그 일은 다 밑바닥에서부터 배워 오지 않고서는, 해 낼 수 없는 일들이란 걸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JYB엔터에서 그가 일을 하려면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걸 깨닫고 JYB엔터를 나온 태석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JYB엔터에 다닐 생각이었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가 백준열과 아는 사이라서 취직을 했지, 아니면 지금 그의 스펙과 능력으로는, JYB엔터에 취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태석규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 JYB엔터에 갈 때가 되어가자, 오만 생각이 다 드는 태석규.
그 중에서도 태석규는 오늘 출근 시간을 두고 갈등이 일었다.
원래 그는 오늘 오후에 JYB엔터에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식으로 첫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할 생각이었고. 하지만 백준열이 그에게 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니, 그래선 안 될 거 같았다.
“일찍 가자. 가서 내가 근성 있는 놈이란 걸, 백준열에게 보여 주는 거야.”
오늘부터 당장 일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러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 태석규.
그는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바로 출근 준비를 했고, JYB엔터 직원들의 정상 출근 시간에 맞춰서, JYB엔터 사옥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실이 있는 층에서 내렸는데, 그런 그를 보고 엘리베이터 안에 남은 JYB엔터 직원들이 다들 그를 쳐다보자, 묘한 기분이 드는 태석규였다.
“어떻게 오셨나요?”
태석규는 대표실에 들어가기 전, 먼저 백준열의 비서와 상면해야 했다.
근데 어째 그 여자 비서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하지만 바로 기억이 나지 않은 태석규는, 자신이 백준열 대표의 친구며 그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여비서가 그걸 확인하려는 듯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그때 어수룩해 보이는 더벅머리 젊은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딱 봐도 아버지 정장 같아 보이는 통 큰 바지에, 촌스러운 핏의 정장 상의에 삐져나온 밤색 넥타이가, 태석규로 하여금 욱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태석규는 재벌 3세 때, 옷 잘 입기로 유명했었다.
그 패션 센스는 지금도 그로 하여금, 비록 이태리 원단은 아닐지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옷 잡 입는 다는 소리를 매번 듣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더벅머리 젊은 남자는,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 * *
백준열의 호의로 어젯밤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의 비싼 호텔에서 자 본 김영섭.
하지만 매일 딱딱한 바닥에서 자던 그가, 푹신한 침대에서 자려니 이게 또 문제가 됐다.
백준열이 준 카드로 근사하게 저녁을 먹고 잠이 든 거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일찍 자서 그런지 또 일찍 깼다.
새벽 3시에 말이다. 그리곤 그때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푹신한 침대에 가만 누워 있자니 그때부터 허리도 아파오고.
“하아....”
결국 아침까지 더 잠을 자지 못한 김영섭. 그는 오늘 백준열의 회사인 JYB엔터로 가서 그곳 전속 작곡가 계약을 맺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러고 갈 수는 없어. 정장이라도 한 벌 사야하나?”
그러면서 자기 손에 쥐어져 있는 백준열의 카드를 보던 김영섭. 하지만 그는 간 크게 그 카드로 정장을 사 입을 수가 없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몇 천원 가지고 벌벌 떨든 DJ닥터 정하늘이, 그에게 심어 준 그 강박적 사고의 벽을, 김영섭은 그리 쉽게 깨지 못했다.
결국 정장을 한 벌 백준열의 카드로 사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하고 김영섭은 그가 아는 세탁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인에게 잘 얘기해서,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옷들 중, 정장 하나를 빌렸다.
“그렇게 입고 가려고?”
근데 그가 그 정장을 입은 걸 보고, 세탁소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가 봐도 너무 정장이 너무 후지고, 거기다 촌 발까지 날렸던 것이다.
하지만 김영섭 한데는, 그가 걸치고 있는 옷이 정장이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그 정장 차림으로 JYB엔터를 찾아 간 김영섭. 그는 1층 안내 데스크에서 백준열 대표와 만나기로 했다고 말하자, 그 안에 있던 여직원이 곧장 대표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백 대표가 미리 얘기를 해 둔 모양이었다.
“개그맨이신가봐요? 확인됐으니 바로 대표실로 올라가세요.”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실에 와 보니 먼저 와 있는 손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을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봐서 기분이 살짝 나빠진 김영섭. 좀 전에 안내 데스크의 여자도 그렇고.
‘내가 그리 우스워 보이나?“
그때 대표실 비서는 어딘가 전화를 걸고 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네. 저는 김영섭입니다. 좀 전 안내 데스크에서 연락을 했었는데....”
“아아. 그 작곡가분이요? 네. 대표님. 네. 네....”
그러다 그 여비서와 백준열 대표 간에 전화가 연결 된 거 같았다. 그 뒤 쭉 백 대표와 통화를 하던 그 여비서가 전화를 끊고 나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대표님 지금 엘리베이터 타고 오신다니까, 곧 여기 나타나실 거예요.”
그녀가 그 말을 하고 나서 채 1분도 되지 않아, 어제 김영섭이 만났었던 그 백준열 대표가 그 앞에 나타났다.
“김영섭씨!”
다행히 백준열 대표가 두 사람 중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김영섭은 황송해 하며, 두 손으로 백 대표가 내민 손을 정중히 잡았다.
* * *
대표실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나는 그 중 김영섭에게 다가가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왜냐하면 태석규는 내 충견이니까. 굳이 내가 그를 챙기지 않아도 그가 내 지시 없이, 내 곁을 떠날 일은 없었으니까.
“석규야. 넌 좀 기다려. 영섭씨는 저 따라 들어오세요.”
나는 태석규는 대표실 밖에 두고, 김영섭만 데리고 먼저 대표실로 들어갔다.
“앉으세요.”
“네.”
내가 권하는 자리에 김영섭이 앉고, 잠시 뒤 김 비서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뭐 마실래요?”
“저, 저는 아무거나....”
“시원한 콜라 어때요?”
어제 보니까 중국집에서 김영섭이 콜라를 세병이나 시켜 먹은 게 기억나서 말했더니, 긴장한게 역력했던 그의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다.
“네. 좋습니다.”
“여기 얼음 넣은 콜라 한잔하고 물 한잔 갖다 줘.”
“네.”
“호텔은 어땠습니까?”
“아참. 여기....”
내가 어제 그가 묵은 호텔이 어땠는지 묻자, 그제야 생각이 난 듯 김영섭이 가지고 있던 내 카드를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그 카드를 받으면서 김영섭에게 물었다.
“설마 지금 입고 있는 정장을 돈 주고 구입한 건 아니죠?”
아무리 봐도 너무 구려서 내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인데, 그 말에 김영섭이 기겁하며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뇨. 이 정장은 세탁소에서 빌린 겁니다. 절대 그 카드로 산 거 아닙니다.”
“네?”
나는 그제야 김영섭이 왜 내 앞에서 오버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그래서 회수해서 내 지갑에 도로 넣으려던 카드를, 다시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저희 회사 전속 작곡가 계약을 하고 나면, 이것 가지고 쇼핑 좀 하세요.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하면 되니까, 그 동안 필요한 거 있으면, 그걸로 싹 구입하도록 해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날 쳐다보는 김영섭에게, 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했다.
“영섭씨 살 집을 계약하고 나면 지정해 줄 겁니다. 오피스텔로 기본적인 전자제품과 가구들이 구비 되어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영섭씨가 본인 취향에 맞게 다 사셔야 할 겁니다. 그때 그 카드로 필요한 거 다 사면된다는 얘깁니다. 거기에는 영섭씨 입을 옷들도 포함 되고요.”
“제, 제가 살 집을 진짜 구해 준다고요?”
“네. 회사 근처로 여기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인데, 20평정도 되니까 김영섭씨 혼자 살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내 그 말에 완전 감동한 김영섭. 그가 눈시울을 붉힌 채 내게 말했다.
“대, 대표님. 이 은혜 진짜 잊지 않겠습니다. 꼭 좋은 곡 많이 만들어서....대표님 실망 시켜드리지 않을 겁니다.”
“네. 그런 각오 좋네요.”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내가 부른 차은석 부문장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차 부문장님. 이쪽은 작곡가 김영섭씨로....”
나는 직접 차은석 부문장에게 김영섭을 소개 시키고, 그녀에게 그를 떠넘겼다.
차 부문장이라면 곧 눈치 챌 것이다. 김영섭의 가진 능력을, 그가 히트곡 제조기란 걸 말이다. 그럼 알아서 그를 어디서 써야 할지 정할 것이고, 그것이 곧 JYB엔터의 새로운 빅 히트 보이, 걸그룹의 탄생을 가져 올 것이었다.
* * *
내가 보는 앞에서 김영섭의 전속 작곡가 계약이 이뤄졌다.
계약 기간은 10년으로, 앞으로 그의 전성기인 5년을 고려했을 때, 확실히 넘치는 계약이긴 했다.
하지만 진정한 김영섭의 가치는, 그의 작곡 노하우를 차세대 JYB엔터의 작곡가들에게 전수하는 것. 그걸 고려하면 10년 계약은 상당히 합리적인 기간이었다.
“저 같은 놈에게 10년 계약이라니....고맙습니다. 대표님.”
김영섭은 내가 그와 10년짜리 장기 계약을 체결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감격해서 말했다. 그렇게 계약 체결이 끝나고, 그 계약서를 챙기던 김 비서에게 내가 말했다.
“밖에 태석규씨 들어오라고 해.”
“네.”
김 비서가 계약서 원본 들고 대표실을 나가고 나서, 잠시 뒤 태석규를 데리고 다시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를 나는 김영섭처럼 차은석 부문장에게 소개 했다.
“저기는 나와 아는 사이인, 태석규라고 이쪽 일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내가 특채 고용하기로 했는데....차 부문장이 일단 데리고 써 봐요.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지 만, 그래도 한 번 써 보고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내게 얘기해요.”
그러다 시선을 홱 태석류에게로 돌린 뒤 태석규를 향해 말했다.
“태석규. 이번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배려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걱정 마. 여기 다니는 동안 내가 널 실망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꼴에 큰 소리는....
태석규는 김영섭과 달리 별 쓸모도 없는 인간인지라, 차 부문장에게 보내기 좀 그렇긴 했다. 하지만 우주그룹 비자금을 찾을 때 까지, 녀석을 잘 데리고 있어 줄만한 인성의 실무자는, 내가 아는 한 JYB엔터에서 차은석 부문장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바쁜, 차 부문장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우주그룹 비자금을 찾을 때까지, 그녀가 태석규를 맡아서 적절히 끼고 있어 주기만 하면 됐다.
“부탁 좀 합시다.”
“네.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사람 모자랐는데 잘 됐네요. 운전은 하실 줄 아시죠?”
“물론입니다. 이래봬도 10년 무사곱니다.”
나는 태석규까지 차 부문장에게 떠넘긴 뒤, 그들을 대표실에서 내 보냈다.
그리곤 박인호 부대표와 함께 김효석 총괄기획실장을 같이 불렀다.
내가 부르자 10분 만에 내 앞에 나타난 두 사람. 사실상 우리 JYB엔터를 이끌어 가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나는 그 중 하나를 뽑아서 딴 곳으로 옮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그 곧 뽑힐 기둥은 그걸 눈치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 기둥을 대체 할 기둥은 그걸 눈치 채고 있었다.
“김 실장님. 일 해보니 어떻습니까?”
내 물음에 김효석 총괄기획실장이 바로 대답했다.
“원래 해 오던 일이라 할 만합니다.”
그래야지. 김 실장은 앞으로 차은석 부문장과 함께 JYB엔터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갈 주축이 될 사람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