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09화 (30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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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JYB엔터 측에 큰 소리 탕탕 쳐 놓고, 통화상 이상한 소리까지 내 뱉은 추진호 대표.

그는 회의장 밖에서 아들과 통화를 이어나가면서, 점차 표정이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일단 서초경찰서의 형사가, 왜 갑자기 자기 아들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몰아가는 지에 대해서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추진호는 자기 아들의 법적 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강태욱 변호사에게 먼저 전화부터 걸었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인 추병진이 거짓 진술을 하는 데 있어, 혹여 말실수 하지 않게 잘 챙겨 줄 것을 부탁했다.

어차피 추병진이 거짓말을 해도 그걸 증명할 길은 없었다.

해서 추진호도 이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 서초경찰서의 형사가 왜 자기 아들을 가해자로 몰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해서 서초경찰서는 아니지만, 서울경찰청에 아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어. 유 과장. 잘 살지? 나야 뭐....그래. 날 잡아서 필드 한 번 나가자. 어. 그게 실은 서초경찰서에 지금 병진이 녀석이....갑자기 왜 가해자로 조사를 받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어. 그래줄래? 고마워. 어. 그럼 기다릴게.”

서울경찰청에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지인은, 자신이 서초경찰서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왜 일이 그렇게 됐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추진호는 그렇게 지인에게 부탁을 한 뒤, 곧장 회의장으로 돌아가서 두 소속사 간의 회의를 끝냈다.

이미 그가 뱉은 얘기가 있는데 여기서 무슨 얘기를 더 하겠나?

이제는 이번 SVS 주말 드라마 배역에 대한 모든 공은, JYB엔터 대표 백준열과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대표인 자신과의 담판으로 결정지어지게 됐다.

무엇보다도 상대측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다 보니,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뭐라 더 할 말도 없었다.

“좀 전에 대표님께 그 말씀을 전해 드렸더니, 흔쾌히 그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하하하. 역시 백 대표님은 통이 크시군요. 좋습니다. 내 핸드폰은 언제든 통화가 가능하니 연락 하시라고 전해 주세요.”

추진호도 질 수 없어서 대범하게 그런 말을 내 뱉긴 했는데, 아무래도 서초경찰서에 가 있는 아들 녀석의 일이, 꼬이는 양상을 보이자 속으로는 애가 탔다.

물론 그런 걸 겉으로 티낼 추진호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두 대형 기획사 간의 일종에 협의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 순탄하게 끝이 났다.

그때 SVS방송국의 편성국장이 추진호 대표를 보고 말했다.

“역시 대표가 참석하니 일이 술술 잘 풀리네요. 추 대표님 시간 있으시면 제 방에서 차나 한잔 하실까요?”

평소의 추진호라면 당연히 편성국장의 그 제안에 흔쾌히 따라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제가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추진호의 거절에 편성국장 얼굴이 살짝 굳었다.

“뭐 바쁘시다니 어쩔 수 없군요. 저는 이번 일이 잘 해결 됐다고 사장님께 보고할 때, 추 대표와 같이 사장님 뵐 생각이었는데....”

편성국장이 사장 운운하자 추진호도 정말 아쉽다는 듯 말했다.

“저런....저도 윤 사장님 뵙고 싶은데, 정말 중요한 약속이라 그럴 수가 없네요. 다음에 제가 더 좋은 곳에서 두 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편성국장의 말은 사장을 핑계로 추진호에게 접대를 받겠다는 소리였다.

그걸 추진호가 능구렁이처럼 잘 받아 넘긴 거고.

추진호의 입장에서 SVS방송국 측에서, 이번에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를 위해서 해 준 건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배역에 대한 이의 재기도,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다 알아서 한 거고.

그래 놓고 맛있는 결실만 편성국장이 사장과 같이 챙기려니, 그게 추진호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걸 또 겉으로 티 낼 추진호는 아니었지만.

“크음. 뭐 알겠소. 사장님께 그렇게 전해 드리지.”

늙은 여우인 편성국장이 추진호의 그런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불쾌해질 수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추진호는 편성국장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편성국장 같은 작자야, 나중에 돈 좀 찔러 넣어주고 여자 하나 붙여 주면 다 풀리게 되어 있었다.

그 보다 지금 추진호에게 중요한 건, 서초경찰서에 가 있는 아들일이 더 문제였다.

* * *

SVS방송국을 나와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로 돌아가는 길에, 추진호는 서울경찰청의 지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어. 유 과장. 어. 뭐? 피해자가 아니라 애초부터 가해자였다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뭐, 뭐라고? 하아....알았어. 고마워.”

서울경찰청의 고위직에 있는 지인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서초경찰서의 형사과에 있는 형사팀장이 직접 살펴 본 결과, 추진호의 아들 추병진은 처음부터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

그에게 재기된 죄목만 다섯 개나 됐고, 그에 대한 확실한 증인과 증거가 있기에 빨리 합의하지 않으면, 추병진은 바로 검찰 송치가 불가피 하단다. 특히 경찰에게 거짓 진술을 한 게 컸다나?

아무래도 괘씸죄가 적용 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 추진호는 더는 서울경찰청 지인과 통화를 지속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그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자기 쪽에서 먼저 통화를 끝냈다.

“추병진. 이 병신 같은 새끼.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다니는 거야?”

애초 사고뭉치 아들 녀석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다 챙겼어야 했는데, 아들 녀석의 달콤한 말에 그만 앞뒤 재지도 않고 홀라당 넘어가서, 일은 일 대로 벌여 놓고 또 아들 녀석은 검찰로 넘어가서, 잘못하면 콩밥 먹게 생기지 않았나?

추진호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 나왔다.

“C발....”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대책이란 게 정해져 있었으니까.

바로 추진호가 백준열에게 하려던 비열한 짓을, 되레 추진호가 백준열에게 당하게 생겼다.

그러니까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추진호가 먼저 백준열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상황에 직면 했다는 소리였다.

즉 백준열과 어떡하든 원활한 합의를 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백준열과는 쌍방이라 서로 합의를 보면 되는데, 문제는 아들 녀석이 때리고 피해를 입힌 피해자들과 쉐링턴 호텔이었다.

그들이 과연 원만하게 합의를 해 줄 것인가? 당연히 추진호는 아니라고 봤다.

왜냐하면 개새끼 백준열이 그들 뒤에 있을 테니까.

한마디로 백준열이 좆 된 게 아니라, 추진호가 좆 된 상황이었다.

“이거 혹시 백준열이 의도적으로....”

하지만 추진호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백준열이 얼마나 바쁜 놈인지 추진호도 잘 알았다. 그만큼 그가 벌어들이는 수입도 어마어마했고. 당장 그가 보유한 부동산과 주식만 해도 대기업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워서 개망나니 자기 아들을 상대로 수작질을 부린단 말인가?

오히려 자기 아들이 재수가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하필 그곳에 백준열이 나타났고, 그런 백준열을 못 알아 본 자기 아들의 잘못이었다.

“하아....진짜 제대로 된 똥을 밟았군.”

엮여도 백준열과 엮일 건 또 뭐란 말인가? 안 그래도 올해 추병진이 삼재가 끼었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한 추진호였다.

“어쩔 수 없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아들을 감방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추진호는 결심을 한 듯 앞쪽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차 돌려.”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로 향하던, 추진호 대표를 태운 차가 U턴 한 후, 서초경찰서가 있는 서초역 방면으로 곧장 내달렸다.

* * *

아쉽게도 오늘 나는 점심 약속이 잡혀 있었다.

혹시 취소가 가능하냐고 김 비서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그녀가 칼 같이 말했다.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오늘 점심 약속은, 그쪽이 아니라 내가 꽤나 오랜 시간 읍소해서, 겨우겨우 성사된 약속인 만큼, 그 약속을 뒤로 미룬다던지 취소하게 되면, 그쪽과는 완전 끝이란 게 김 비서의 생각이었다.

“알았어.”

나는 김 비서와 통화를 끝내고, 내 눈앞에 두 여자에게 말했다.

“오늘 점심은 어렵겠어. 대신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고 와. 올 때 내가 마실 커피도 좀 사오고.”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그걸 안지은에게 건넸다. 그러자 어째 나와 점심 같이 못 먹는 데 대한 아쉬움 보다, 두 여자의 얼굴이 더 신나 보이는 건 순전히 내 착각인 걸까?

“이따 회사서 봐.”

“네.”

나는 내 충견인 두 여자와 작별을 하고, 쉐링턴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호텔 밖에 대기 중인 문대식과 경호팀원들 조우한 뒤, 대기 중인 차에 올랐다.

“출발!”

문대식의 말이 있고 차가 움직이자, 그가 나를 돌아보고 바로 물었다.

“임페리얼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호텔 방을 옮긴 겁니까?”

아마도 내가 쉐링턴 호텔로 옮겨 온 진짜 이유가 문대식으로서는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어젯밤 임페리얼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나는 전화상으로 대충 뭉텅 거려서 문대식에게 얘기했었다.

그래서 문대식도 정확히는 내가 왜 임페리얼 호텔을 두고, 쉐링턴 호텔로 옮겼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데이비드에게 연락이 없었다. 지금쯤 서울 임페리얼 호텔은 난리도 아닐텐데....

하긴 어젯밤에 대표와 총지배인이 잘렸으니까. 그리고 그들을 따랐던 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곧 불 것이고. 그 일을 진두지휘해야 할 임페리얼 호텔의 부회장 데이비드.

“데이비드가 좆 빠지게 바쁘겠네.”

아마 데이비드의 전화는 오늘 밤에나 올 거 같았다. 그 같은 일을 다 하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까. 그리고 지금 나도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JYB엔터로 출근하는 길에 그 일들에 대해 생각을 좀 해야 했다.

그러니 문대식에게 임페리얼 호텔에서 내가 겪은 일을 일일이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그건....내일 알게 될 거야.”

나는 대답을 그런 식으로 하고, 한 손으로 턱을 괜 체 생각에 빠졌다.

내가 말한 대로 내일 신문이나 뉴스에서, 일제히 서울 임페리얼 호텔의 대량 해고 사태에 대해서 다룰 테니 말이다.

원래 외국계 기업에서, 자국민을 자르면 언론이 가만있지 않는 법이니까.

* * *

문대식은 내가 자기 물음에 성실히 대답해 주지 않아선지, 그 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입이 열린 건, JYB엔터 사옥이 육안으로 보일 무렵이었다. 내가 툭하니 던진 한 마디에 그가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던 것.

“강원도 XX요양원에는 왜 간 거야?”

“지금 제 뒤를 캐신 겁니까?”

얼굴이 일그러진 문대식이 내 질문에 눈매를 좁히며 도로 나를 추궁했다. 하지만 나는 더 본질적인 문제를 얘기했다.

“XX요양원이 서진그룹과 엮여 있는 건 알아?”

“....”

문대식이 대답 대신 얼굴 표정이 더 심각하게 변하는 걸 보고, 나는 그가 꽤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 그대로 뒀다간 얼마 못 살아. 일단 서울 병원으로 옮겨.”

“제 일입니다.”

“후회 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럼 네 뜻대로 하고.”

“....”

사람이 어떻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나? 당장 문대식은 모친의 죽음 앞에, 많은 후회를 했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 보고 얘기 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내 그 말에 문대식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마 내가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할 거라고, 문대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었다.

“정, 정말 이십니까?”

그래서 문대식이 물어왔다. 그만큼 이전의 백준열이 문대식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지 못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길 가다가 마주치면 서진그룹이 피해가야지, 이 백준열이 피해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푸훗!”

내 말이 뭐가 웃긴지 몰라도, 적어도 문대식의 얼굴에 서려 있던 불신의 그늘은 사라진 상태. 그런 그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머리가 아니라, 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

그 말에 문대식이 감동 받은 듯 살짝 눈시울을 붉히면서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우리를 태운 차는 JYB엔터 사옥에 다다랐고,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잠시 후 차에서 내린 나는, 경호팀원들에 둘러싸인 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는데,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김 비서였고, 나는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

“어. 왜?”

-어디쯤이세요?

“회사 지하 주차장. 지금 엘리베이터 타기 전이야.”

-그러시면 바로 올라오셔서 만나시면 되시겠네요.

김 비서가 말하는 뉘앙스가 누가 대표실을 찾아 온 모양이었다. 그게 누군지 궁금했던 내가 물었다.

“누군데?”

오늘 나를 찾아 올 사람이 좀 됐다. 그 중에....

-친구 분이시라고. 성함이 태석규?

내게 우주그룹의 비자금을 내게 선사해 줄 태석규가, 아침부터 나를 찾아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김 비서의 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또....김영섭씨라고 자신을 작곡가라고 하시는데....

히트 곡 제조기 김영섭도 온 거 같았다.

“빨리도 왔네.”

-네?

“지금 올라가니까....차은석 부문장 호출 해.”

-네. 대표님.

아무래도 그 둘의 영입은 내가 하더라도 이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가려면, 차 부문장이 필요했다.

JYB엔터의 실무진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인재가, 차은석 부문장뿐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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