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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서초경찰서의 형사과장 박대동 경감. 그는 출근하자마자 서장인 박순철의 호출을 받고, 서장실을 찾았다. 그리고....
“네?”
“추병진과 관련 된 일체의 일에, 박 과장은 관여 하지 말라고.”
“그, 그게 무슨?”
“자네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 뒤 봐주고 있는 거 알아. 나도 그게 문제만 되지 않는다면, 관여하고 싶지 않고. 하지만 추병진과 관련 된 건 모른 척 해. 다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그게 누가 됐건 말이지.”
박순철 서장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박대동 형사과장.
그가 아는 박 서장은, 이런 일에 결코 농담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침 출근하자마자, 서장에게 경고부터 들은 박 과장. 그런 그는 과장실로 돌아가자마자 추병진에 관해 알아봤다.
그랬더니 어젯밤에 초동수사가 완료 된 사건으로, 쌍방이 서로 신고를 했고 거기에 한쪽은 호텔 측으로부터 신고까지 받은 상황.
근데 양쪽에서 신고를 받은 당사자가 바로 추병진이었다.
“이상하네. 별거 없는데?”
조서를 보니 추병진이란 자가 나쁜 놈이었다. 그의 뺨을 때려 쌍코피 터트린 백준열이란 남자는, 오히려 좀 억울한 케이스 같았고.
그런데 이런 사건 가지고 박순철 서장이, 그에게 왈가왈부 한 게 박 과장은 좀 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평소 박 과장과 친하게 지내던, 강태욱 변호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박 과장은 그 전화를 받았고.
한데 강태욱 변호사가 자기 수하 형사인, 김대석에 대해 무례하다며 타박을 했다.
문제는 그 김대석 형사가 추병진의 조사를 맡았다는 점이었다. 그걸 알기에 박 과장은 강태욱 변호사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강 변호사님.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으세요. 일단 저 한데 말 놓지 마세요. 말 놓지 말라니까! 하아! 사람 말 못 알아들어요? 그리고 공적으로 저와 통화를 하고 싶으면,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서 제 방으로 전화를 하도록 하세요. 이상입니다.”
자기 할 말 다 하고 난 박 과장은 강태욱 변호사가 걸어 온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곤 그의 핸드폰에 강태욱 변호사 번호를 착신제한 걸었다.
박순철 서장의 경고를 듣고서, 박 과장이 확실하게 강태욱 변호사와 손절 해 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쪼르르 형사과장실을 찾아 온 강태욱 변호사.
“박대동.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형사과장실에 둘만 있자, 또 말을 놓는 강태욱 변호사. 그런 그에게 박대동 형사과장이 말했다.
“강 변호사님. 추병진씨 변호하는 한, 저와 아는 척 하지 말아 주십시오.”
“뭐?”
“더 하실 말 없으시면 나가 주십시오. 저 바쁩니다.”
“....”
박 과장은 진심이었고, 강태욱 변호사는 아무것도 알아 낸 것 없이, 형사과장실을 나와야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김대석 형사가 말한 2차 조사가 시작 됐다.
1차 때와 달리 변호사가 옆에 있어선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추병진.
그런 그의 눈에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조사실로 들어오는 그의 담당, 김대석 형사가 보였다.
그 박스를 일단 조사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김대석 형사가 추병진과 강태욱 변호사에게 말했다.
“앞서 말한 대로 2차 조사 지금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추병진씨. 이제 변호사도 옆에 계시니, 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뒤, 김대석 형사는 커다란 박스 안에서 아까 추병진에게 심문할 때 사용했던 조서를 꺼내서는, 추병진과 강태욱 변호사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2차 조서 작성을 위한 질문에 들어갔다.
“이름, 나이,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
“추병진. 올해 33세이고....”
김대석 형사의 질문에 강태욱 변호사가 즉시 대답을 했다.
그걸 시작으로 김태석 형사는 계속 물었고, 강태욱 변호사가 추병진 대신에 대답을 하는 식으로, 비어 있는 조서에 글이 계속 늘어나갔다.
* * *
그때 김대석 형사가 불쑥 물었다.
“추병진씨. 어제 저한테도 반말 쓰신 거 기억나세요?”
“아, 아뇨. 제가 그랬습니까?”
“네. 반말 하셨고 욕설까지 하셨는데....물론 기억 안 나시겠죠?”
“네, 뭐....”
추병진을 힐긋 옆에 강태욱 변호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강 변호사가 김대석 형사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제 의뢰인이 한 잔 하셨나 보네요. 왜 사람이 술에 취하다 보면, 말도 놓고 그러지 않습니까?”
“아뇨. 전 안 그런데요.”
추병진의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를 조사하고 있는 담당 형사는 시종일관 차가웠다. 그게 강 변호사는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어제 저한테 그러셨죠? 백준열씨를 욕한 적 없다고요?”
그 물음에 즉각 강 변호사가 나섰다.
“네. 저희 의뢰인은 백준열씨에게 욕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욕죄 자체도 성립 되지 않는 거고요.”
“그러시군요. 잠시 만요.”
강 변호사는 그에 대해 더 할 말이 있었는데, 담당 형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져 온 큰 박스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바로 녹음기였고, 그걸 대뜸 추병진과 강 변호사가 앉아 있는 조사실 테이블 위에 올리더니 그걸 켰다.
그러자 거기서 흘러나온 말에 추병진은 두 눈이 동그래졌고, 강 변호사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JYB엔터 백준열? 아아! 그 개새끼!]
김대석 형사는 추병진이 자기 입으로 백준열을 욕한, 그 부분을 녹음기로 두 차례 더 틀어주고 난 뒤, 추병진에게 물었다.
“백준열씨에게 욕한 적 없다면서요?”
“그, 그게....”
자신은 물론 변호사까지 같이 백준열에게 욕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상황.
비록 법정에서 뱉은 말은 아니니까 위증은 아니지만, 경찰에게 거짓 진술을 한 사실은, 향후 소송 전 때 분명 추병진에게 불리하게 작용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 고발장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CCTV영상과 폭행당하신 분들의 진단서가 첨부 되어 있습니다.”
그때 김대석 형사가 추병진이 어제 폭행한 사람들의 진단서와 함께, 조서를 쓰고 있던 노트북에 저장 되어 있던, 어젯밤 추병진이 쉐링턴 호텔 로비에서 지랄 발광한 CCTV영상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그걸 보고난 추병진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했고, 강 변호사는 질끈 두 눈을 감아 버렸다.
* * *
새벽에 잠드는 바람에 조금 늦잠을 자긴 했지만,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추진호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게 출근을 했다. 그런 그를 보고 대표실 여비서가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어어. 그럴 일이 좀 있어. 참 오늘 SVS방송국에서 새로 들어 갈, 주말 드라마 출연진 문제로 JYB엔터와 미팅 있지?”
“네. 오후 1시에 SVS방송국 드라마제작국 회의실에서 JYB엔터 측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JYB엔터에서 2시로 한 시간 약속을 미루자고, 연락이 와 있는 상탭니다.”
“그래? 그럼 2시에 보자고 해. 아아.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나갈 거니까, 그렇게 스케줄 변경 해 줘.”
“대표님께서 그 자리에요? 하지만 거긴 그럴 자리가 아닌데....”
그러니까 대표의 격이 있지, 그 자리는 추진호가 갈 정도의 자리가 아니란 게 여비서의 생각이었다.
“괜찮아. 내가 가면 혹시 알아? 우리 쪽으로 더 중요한, 더 많은 배역을 챙겨 오게 될지.”
그렇게 말하면서 음흉하게 웃는 추진호를 보고, 그의 여비서는 생각했다.
‘보아하니 또 무슨 건수를 잡았나 보네. 그걸 약점 잡고, JYB엔터 측의 주연과 조연 자리를 뺏으려는 심산인 모양인데....’
추진호를 7년째 모시고 있는 여비서는, 그가 저렇게 웃을 때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뭐 어째든 그런 식으로라도 해서, 배역을 하나라도 더 따 낸다면 다행스런 일이었다.
안 그래도 배우 기획사를 인수합병하고 나서, 이렇다 할 밥벌이를 못하고 있는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소속 배우들.
그 배우들이 이번 드라마에 최대한 많이 배역을 따서, 회사 내에서 기 좀 펴고 다녔으면 하는 게, 여비서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비서의 그 착한 마음은, 곧 시작 된 추진호의 히스테리에 곧 매몰 되어 버렸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해? 넌 대체 언제 월급 값 할래? 이 돌대가리야.”
추진호 대표의 막말에, 오늘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여비서.
그녀는 속으로 추진호를 욕하면서, 더러워도 먹고 살아야하는 직장인의 비애와 애환을, 오늘도 점심 때 폭식으로 풀었다.
그렇게 점심 먹고 돌아 온 여비서는, 추진호 대표가 점심 약속 장소에서 바로 SVS방송국으로 간다고 하자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네. 잘 다녀오세요. 급한 일 생기면 바로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그렇게 추진호 대표와 통화를 끝내고 난 여비서.
“이야호!”
오후에 2-3시간은 더 추진호 대표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폴짝폴짝 뛰기까지 하는 여비서.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발 나간 김에 그냥 거기서 바로 퇴근해라. 나도 오늘은 좀 편하게 있어 보자.”
근데 그녀 소원을 하늘이 들어 주시기라도 한 걸까? 2시간 쯤 뒤 추진호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 여기서 서초경찰서 들렀다가 바로 퇴근 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네.”
-혹시 회사에 무슨 문제는 없지?
“그럼요. 있었으면 제가 바로 전화 드렸죠.”
-알았어.
그렇게 먼저 추진호 대표가 전화를 끊었고, 여비서는 성호를 그리며 두 손 모아서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제 부탁 들어 주셔서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 * *
SVS방송국 드라마제작실의 회의장 안에는, 이미 JYB엔터 쪽 관계자들이 와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그들과 이번에 SVS방송국에서, 30주년 기념 특별 대작으로 준비 한, 주말 드라마에 출연할 배역을 두고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었던,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측에서 관계자들 외에 대표까지 찾아왔다.
해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관계자들이 그들 대표를 맞으러 나가면서, 회의장 한쪽이 텅 비어 있었다.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는 대표가 할 일도 참 없나 봐?”
“그러게요. 배역 정하는 문제로 대표가 다 찾아오고....”
JYB엔터 관계자들은 뭐 이런 일에 대표씩이나 되는 분이 오냐 생각하면서, 기존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번 주말 드라마의 배역들과 JYB엔터 배우들을 매칭 시키면서, 한 명이라도 더 배역을 가져오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10여분 쯤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대표 추진호와 함께, 그곳 관계자들이 회의장에 들어와서 비어 있는 자리를 메웠다.
그때 SVS방송국의 편성국장이 회의장에 들어왔고, 본격적인 두 회사 간의 드라마 배역을 둔 치열한 경쟁이 시작 됐는데, 바로 주연 배우를 두고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이의를 재기해 왔다.
“배역을 보면 주연 급 배우는 모두 7명으로 보입니다. 근데 그 중 JYB엔터에서 3명을 가져가 버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러자 JYB엔터 측에서 바로 그 이의에 대한 반론을 얘기했다.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말씀하신 저희 쪽 3명의 주연 배우들은, 드라마 제작 여부가 확정되기 전에, 감독님과 작가님이 연락 주셔서 그 배역을 꼭 맡아 달라고 하셨고, 그때 이미 구두합의가 된 상태로, 저희 배우 3명의 인기를 등에 업고 주말드라마 제작 결정을 이끌어 낸 거, 혹시 여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그런 그들에게 이제 와서 배역을 내 놓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고, 또 감독님과 작가님께 그걸 여쭤보고 이러는 건지도 여쭤보고 싶네요.”
JYB엔터 측의 반론에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즉시 그 대답을 내놓았다.
“구두합의를 무시하겠다는 게 아니라, 한 소속사에서 너무 많은 배역을 가져가는 것에 대한 불공평함을 얘기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감독님과 작가님께 얘기를 해 봤고, 그분들은 저희끼리 조율이 된다면, 주연급 배우 교체에 대해서도 충분히 재 검토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불공평이라니요? 언제부터 소속사에서 배역을 두고 1/N을 했다고 이러실까요? 더 좋은 배우를 많이 가진 소속사가, 더 많은 배역을 가져가는 건 당연한 얘깁니다.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측 같은 생각이라면 무명배우 100명쯤 데리고 있는 소속사가 여기 있으면, 그 소속사 배우가 주, 조연 배역을 다 싹쓰리 하겠네요.”
“그런 무명 소속사가 여기 어떻게 있습니까? 말 같지도 않는 소릴....”
“그러니까요. 왜 그런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하는지 도통 이해가....”
두 소속사간의 대립은 대화를 나눌수록, 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첨예하게 대립이 됐다. 그때였다.
“내가 말 좀 해도 될까요?”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추진호 대표가 나섰다. JYB엔터 쪽에서도 상대 소속사의 대표가 말 좀 하겠다는 데, 그걸 만류 할 수는 없었다.
“크음. 다들 자기 소속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열심히들 해도 결국 그 결정을 내리는 건, SVS방송국과 두 소속사의 대표가 아닐까 싶군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배역에 대한 최종 결정은, JYB엔터의 백준열 대표와 내가 얘기 해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너희들끼리 이런 식으로 백날 천날 얘기해 봐야 답도 안 나올 거 같으니, 소속사의 수장들 끼리 얘기해서, 그냥 결정하겠다는 소리였다.
“....”
그런 추진호 대표의 생각에 대해서, JYB엔터 측에서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내 긍정적인 대답을 내 놨다.
“저희야 그래주시면 더 이상 소모적인 논란이 필요 없어지니 좋기는 한데....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측에서,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JYB엔터 측의 쓸데없는 남 걱정에, 추진호가 피식 웃으며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를 대표해서 말했다.
“되니까 그쪽은 지금 내 말을 백준열 대표에게 잘 전해 주기나 하세요.”
그때 추진호 대표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추진호 대표가 회의장 안에서 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일부러 큰소리로 통화를 했는데 그 대화 내용에 ‘서초경찰서’와 ‘백준열 대표’가 언급 되면서 회의장 안의 JYB엔터 관계자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하지만....
“뭐?”
하지만 뭔가 일이 꼬이기라도 한 듯 갑자기 몸을 일으킨 추진호가 통화를 하면서 휑하니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