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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307화 (30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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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런 맛있는 낙지볶음에 소주가 빠져서야 되겠나?

추병진은 어젯밤에 마시지 못한 술을 시켰고, 그 자리에서 두 병을 비웠다.

그러자 배도 부르고 기분도 딱 알딸딸하니 좋았다.

당연히 음주 운전은 안 되니, 대리기사 불러서 서초경찰서로 향한 추병진.

이때까지만 해도 추병진에게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있었다.

“뭐? 박 국장이 오케이 했다고? 하하하하. 역시. 될 줄 알았어. 다들 고생했고. 오늘 밤 회식이니까 다들 집에 갈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알았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에서 추병진이 주도해서 추진한 프로그램까지, MVC에서 이번 추석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으로 확정되었다니, 추병진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나?

다들 알다시피 파일럿 프로그램은 시험 제작, 방송을 통해 시청자와 광고주의 반응을 바탕으로 정규 편성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정규편성에 앞서 1~2편을 미리 내보내 향후, 고정적으로 방송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만든 샘플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 파일럿 프로그램을 내보낸 결과,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하게 되는 것이다.

추병진은 자신이 추진한 프로그램을 MVC의 정규프로 그램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했으니까.

“하하하하. 역시 백준열, 그 개새끼가 귀인이었어. 그 새끼하고 엮이고 나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거 같단 말이지.”

차 안에 대리기사가 있었지만 추병진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10여분 쯤 뒤, 차가 서초경찰서에 들어서고 주차까지 완벽하게 마친 뒤, 차에서 내린 추병진이 대리비를 지불 하고, 곧장 서초경찰서로 들어섰다.

원래 경찰서 올 때마다 추병진은 초조하고 불안했었다. 또 항상 변호사와 같이 왔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가 가해자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는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왔다.

그렇다보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 없었다.

“와아. 이래서 아버지가 나보고 패지 말고 얻어맞으라고 한 거로군.”

피해자로 오니 이렇게 홀가분하고 속편한 것을 말이다. 추병진은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서초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추병진은 자신이 오늘 겪게 될 악몽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긴 자신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환 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추병진씨?”

“네.”

“어젯밤 쉐링턴 호텔 로비에서 행패 부리고, 또 피해자 박혜영 양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패대기친 거 맞습니까?”

“네?”

“더불어 그곳 직원 김혁민씨 뺨을 때린 것도 인정하시고요?”

“뭐, 뭐라고요?”

추병진은 조사실에서 조사가 시작 되자마자,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 * *

“킁킁....혹시 술 드셨어요?”

추병진의 조사를 맡은 건 서초경찰서 김대석 형사였다.

안 그래도 어제 거짓 진술을 한 추병진에게 심기가 불편했던 김 형사.

근데 조사 받으러 올 때 술까지 쳐 마시고 왔으니, 추병진에 대한 김 형사의 심기는 불편을 떠나서 불쾌했다.

“네. 뭐 밥 먹다 반주로 한 잔....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가요?”

“어제 맞은 건 난데, 내가 왜 가해자가 되어 있냐 이 말입니다.”

“추병진씨가 피해자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백준열씨에게 해당 되는 얘기이고, 또 백준열씨도 추병진씨를 모욕죄로 신고한 터라, 쌍방 조사가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이점 오전에 문자 메시지로 알려 드렸는데요. 혹시 못 보셨습니까?”

“네? 아아. 뭐....”

추병진은 황급히 자기 핸드폰을 살폈다. 그랬더니 김대석 형사의 말처럼 아침에 서초경찰서에서 그런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건 사실이었다. 그가 귀찮아서 확인하지 않았을 뿐.

‘젠장....’

추병진은 일이 묘하게 꼬여 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그제야 안돌아가는 머리를 굴렸다. 그러자 평소 부친이 그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만약 무슨 일이 터져서 검경에서 취조를 받게 되면, 묵비권을 행사하고 바로 나나 강 변호사에게 연락 해. 알았지?]

“....해서 피해자 한혜영씨는 폭행죄로, 김혁민씨는 폭행과 영업방해, 재물 손괴로 추병진씨를 고발했는데 이를 인정하십니까?”

추병진은 평소 경찰서에 왔을 때 주로 받았던 형사의 추궁에 대해, 확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묵비권 행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변호사 부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아. 뭐 마음대로 하세요.”

김대석 형사도 추병진이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변호사에게 전화 할 수 있게 시간을 줬다. 그러자 추병진은 자신의 변호사를 부르고 나서. 곧장 부친인 추진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병진아. 지금 경찰서지?

그의 전화를 받는 부친의 목소리가 어째 하이 톤이었다. 즉 지금 핸드폰 쥐고 가증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단 거다.

“네. 아버지.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크하하하. 뭐 문제야 늘 생기지. 그래. 백준열 대표도 거기 왔고?

“몰라요. 그 새끼야 오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제가 가해자로 전환 돼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잠시 만요.

부친의 연기가 끝났다. 그리고 하이 톤이었던 목소리도 이젠 평소 추병진에게 해 왔던 그 불만 많은 투박한 어조로 바뀌었다.

-가해자라니? 네가 백준열이 한데 처 맞았다며?

“그랬죠. 그랬는데 놈이 저를 모욕죄로 신고했다며, 그 건은 쌍방 조사가 불가피 하다네요.”

-모, 모욕죄? 너 그 새끼한테 뭐라고 했어? 욕 같은 거 말이야.

“아뇨. 저 그런 적 없어요. 그 새끼한테 백준열 그 개새끼 맞냐고 했더니. 대뜸 내 뺨을 때렸다니까요?”

-....

* * *

추병진의 말에 한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추진호 대표. 그가 길게 한 숨을 내 쉬고는 아들에게 물었다.

-너 경찰에 진술 할 때 백준열이라고 한 거다. 백준열 개새끼가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아. 맞다. 백준열 그 개새끼....하도 입에 베어서....이 바닥에서 백준열하면 개새끼로 통하는 거 맞잖아요.”

-맞지. 맞는데 본인 앞에다 대고 개새끼라고 하면. 그 새끼가 기분이 어떻겠니?

“그, 그거야 좆같겠죠.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하아.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네가 그 새끼한데 원인을 제공한 거지. 하지만 넌 그런 적이 없다. 왜냐하면 네가 우기면 녀석이 그걸 증명할 길이 없으니까. 맞지?

“그렇죠. 그때 그 상황에서 그 새끼가 내 말을 녹음했을 리 없으니까요.”

-그럼 됐어. 너는 그런 말 한적 없고, 그냥 백준열 한데 별 이유 없이 맞은 거다. 알았지?“

“네.”

-강 변호사에게는 내가 얘기하마. 그러니 너는....

“입 꾹 다물고, 강 변호사 올 때까지 묵비권 행사하고 있을 게요.”

-그래.

부친과의 통화를 끝낸 뒤 추병진은 다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떠드는 건 김 형사뿐, 추병진은 그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부친에게 얘기한 대로 묵비권으로 행사 한 것.

“....에 대한 모욕죄에 대해서도 그럼 할 말 없으신 거죠? 네. 뭐 알겠습니다. 그럼 1차 조사는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하고....백준열씨 조사를 하고 나서 필요시 서로 대질 조사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줄 아시고....”

그렇게 20여분의 조사를 막 끝내고 김 형사가 조사실을 나서려 할 때였다.

“아이고. 여기 계셨네.”

추병진의 변호사인 강태욱이 조사실에 나타났다. 그는 부장검사 출신으로 일선 경찰들과 관계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신 경찰 고위 간부들과는 친해서 일선 형사들 사이에서는, 그를 검찰꼰대라 부르며 특히 기피하는 편이었다.

“이거 가해자를 피해자조사하다니. 서초경찰서 안 되겠네?”

마치 자신이 불법으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 시켜 강압 수사라도 한 거 같은 뉘앙스로 얘기하는 강 변호사에, 김 형사가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거기다가 제 아무리 고위 경찰과 친분이 돈독한 강 변호사라고 해도, 이번 건은 얘기가 달랐다. 무려 경찰청장이 김 형사 편인데다가, 서초경찰서장 역시 그의 편이었다.

“추병진씨가 가해잔지 피해잔지는 이 조서와 증인, 증거가 말해 줄 겁니다. 그러니 강 변호사님은 추병진씨 한데 엄한 소리 마시고, 사실 그대로 진술하라고만 하세요.”

“뭐, 뭐라고? 지금 내가 내 고객에게 허위 진술이라도 시킨다는 거야 뭐야?”

“또 오버 하시네. 말 좀 지어내지 마시고, 변호사로서 그쪽 할 일이나 잘 하세요.”

“너, 너 이 새끼. 관등성명 대.”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관등성명은 무슨. 여기....”

김 형사가 자신의 신분증을 강 변호사 눈앞에 내밀며 말을 이어서 했다.

“잘 보시고 위에 꼰지르던지. 그리고 2차 조사는 30분 뒤에 여기서 할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좀 전에 내가 말한 대로, 그 때는 증인과 증거가 제시 될 테니까.”

그렇게 자기 할 말을 다 한 김 형사가 휑하니 조사실 밖으로 나가자, 그걸 보고 강 변호사가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김대석 경사. 너 이 새끼 내가 가만 안 둔다.”

강태욱 변호사는 말뿐만 아니라 바로 행동으로 들어갔다. 서초경찰서에 형사과장에게 바로 전화를 건 것.

“박 경감. 나야. 너 애들 교육 어떻게 시키는 거야? 김대석 경사라고 알아 몰라? 아니 그 형사가 글쎄....뭐? 아, 아니. 박 경감. 왜, 왜 이래? 우리 사이에? 네? 아, 아닙니다. 박 경감님. 대체 왜 이러시는지....박 경감님! 박 경감님!”

기세 좋게 전화했던 강태욱 변호사. 하지만 저쪽에서 그에 대한 태도가 갑자기 돌변한 듯 쩔쩔 매다가, 일방적으로 통화까지 끊기는 수모를 당한 뒤, 반쯤 넋이 나간 그를 향해 조사실에 있던 추병진이 물었다.

“강 변호사님. 뭐가 잘못 됐습니까?”

“네? 아, 아닙니다. 박 경감, 이 새끼가 뭘 잘못 먹은 모양입니다. 잠깐만 여기 계십시오. 제가 가서 녀석 혼쭐을 내고 오겠습니다.”

강태욱 변호사의 그런 여유만만 한 모습에 추병진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강태욱은 굳은 얼굴로 조사실을 나섰다.

* * *

대서양이라는 국내 최대 로펌에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강태욱은, 전직 중앙지검 형사부장이라는 타이틀을 십분 활용해서 고객을 만족 시켰고, 그 결과 파트너 변호사의 자리까지 꿰찼다.

그런 그에게 단골 고객인 추병진의 전화가 걸려 온 건, 그가 오후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던 강태욱은, 추병진이 서초경찰서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근데 서초경찰서로 가는 도중, 추병진의 부친이자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대표인 추진호의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네. 네. 아아. 그러니까 아드님이 욕설을 했고, 그걸 듣고 상대가 때렸는데....욕설한 건 없었던 일로 만들고. 상대를 폭행죄로 고소하란 얘기시군요? 네. 네. 물론 가능합니다. 제가 경찰 쪽을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없는 죄도 만들어 내면 됩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강태욱은 추진호 대표를 안심 시키고 통화를 끝낸 뒤,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이번 건은 돈이 되겠어. JYB엔터 백준열이라....”

추병진 만한 개차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법조계에서는 VVIP고객이었다.

그가 벌이는 소송은 보통 수백, 많으면 수천억 원대였으니까. 그만큼 변호사가 챙겨가는 수임료도 엄청났다. 그래서 국내 대형 로펌들은 다들 백준열을 모시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번과 같은 형사 사건은 돈이 안 됐다. 하지만 자신이 백준열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서, 그를 대서양의 고객으로 만든다면....

“김 대표가 아주 좋아하겠지.”

안 그래도 요즘 실적문제로 쪼아대던 대서양 로펌의 김대경 대표.

그런 그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 강태욱.

그는 서초경찰서 본관 건물 앞에 차가 멈춰 서자, 가방과 핸드폰을 챙겼다. 그 사이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가 뒷문을 열었고, 그제야 차에서 내리는 강태욱. 그가 파트너 변호사인 그에게 딸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시간 좀 걸릴 테니까 그 사이 세차 좀 하고 와.”

“네. 변호사님.”

자기 말에 대답과 동시에 머리를 숙이는 운전기사를 보고서, 거만한 얼굴의 강태욱이 몸을 돌려서 서초경찰서 본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어. 김 경감. 잘 있었어?”

“네. 뭐....”

“아이고. 이게 누구야. 서초경찰서의 실세, 장동욱 경무과장님 아니십니까?”

“강 부장님도 참....사람들 보는데 부끄럽게 왜 이러세요?”

“승진 축하 해. 이따 자기 방에서 커피 한잔, 괜찮지?”

“네. 뭐 언제든 오세요.”

강태욱에게 있어서 서초경찰서는 사실상 그의 안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 있는 고위 경찰들 중 그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 서초경찰서장만 해도 그가 부장검사로 있을 때, 그와 같이 일을 했던 적이 있었고.

그러니 그 밑에 경찰 간부들이야, 그에게 있어서는 부하직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는 얘기지, 실제로 그런 건 아니고.

변호사로서 현직 경찰에 대한 예우는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경찰 고위 간부들의 경우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지면, 자신만 곤란해지기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강태욱이었다.

하지만 경위 밑에 하급 경찰들은 신경 쓸 거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나대 봐야 고위 간부 하나만 동원하면, 주둥이 닥치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저기군.”

강태욱은 자신의 단골고객인 추병진이 조사 받고 있다는 조사실에 도착했고, 노크도 없이 조사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조사실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된 강태욱.

그가 고객은 추병진은 그대로 조사실에 두고, 그곳을 나와서 곧장 형사과장실로 향했다.

서초경찰서에서 그와 가장 친한 고위 경찰 간부를 꼽으라면, 강태욱은 서슴없이 이곳 형사과장인 박대동 경감을 선택했을 거다.

그만큼 박대동과 그는 형님 동생하며, 남들이 들으면 오해 할 수 있는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였으니까.

그런 박대동이 갑자기 그를 생 깠다. 그러니까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한 것이다.

이러면 그 동안 그가 공들여 온 경찰 쪽 인맥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강태욱은 부득불 박대동이 있는 형사과장실을 찾아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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