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04화 (30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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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정신을 차린 유혜라는 정민지가 칼에 찔리지 않은 걸 알고는, 그녀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 사이 신고를 받은 119구급대가 왔고, 정민지는 별거 아닌 상처라며, 다친 곳에 약 좀 바르고 밴드 하나 달랑 붙였다.

그걸 확인하고 119구급대는 바로 현장을 떠났고, 뒤이어 나타난 경찰들이 유혜라를 해치려 한 자들을 체포했다.

이미 넘쳐 나는 게 증인이었고, 결정적으로 촬영 감독이 그들이 유혜라를 해하려 한 그 장면을 찍었기에, 그놈들에게는 그게 곧 빼박 증거였다.

경찰에서 그 촬영 분을 카피해서 달라고 하자, 촬영 감독이 그 자리에서 백업한 영상 파일을 카피해서 경찰에게 넘겼다.

그 동안 기절했던 두 놈이 정신을 차렸고, 그들은 악을 쓰며 유혜라를 욕했다.

저들이 왜 저러는지에 대해서는 유혜라도, 그녀의 매니저인 차 팀장도 침묵했기에, 정민지도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들이 두 놈을 데리고 경찰서로 가고 나자, 정민지가 눈치껏 유혜라도, 차 팀장도 아닌 제 3자인 김 코디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김 코디가 휘익 주위를 살핀 뒤, 목소리 톤을 낮춘 채 정민지에게 말했다.

“원래 유혜라는 걸그룹 출신이었어요. 근데 멤버들 사이에 트러블로 인해, 더는 견디지 못한 유혜라가, 거기를 탈퇴하고 나오면서 배우의 길에 뛰어들었고, 성공을 해버렸죠. 반면 그녀가 빠진 그 걸그룹은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서, 제 도약을 시도했지만 대차게 망해버렸고요. 오늘 유혜라를 테러한 사람들은, 아마 그 걸그룹 덕후들일 거예요. 그들에게 있어 유혜라는 자기 잘 먹고 잘살려고 멤버들을 버린 더러운 배신자 일 뿐이거든요.”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유혜라가 자기들 부모를 죽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치기까지 하려 들어요?”

정민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하자, 김 코디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덕후들에게는 부모님 보다, 자기들 스타가 더 중요하거든요. 물론 덕후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강성 덕후들은....일종의 정신병자들이에요. 그래서 내 생각에는....아마도 그들은 처벌 대신, 정신병원에 보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요.”

정민지는 그런 위험한 자들이,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에 보내 질 거라는, 김 코디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그들이 정신병원에서 나온다면 그때는 어쩌자는 건데?

물론 그것까지 정민지가 관여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충동적으로 연예인을 해치려는 자들이, 정신병원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과연 그들을 누가 통제할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 * *

테러 직후 유혜라가 CF감독 임호식을 찾았다. 임호식은 유혜라가 한 바탕 난리법석을 떨 거라고 생각했다.

어째든 오늘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 보조 출연자들을 섭외한 것은, 어째든 촬영 팀이었으니까. 촬영 팀으로서도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막말로 놈들이 작정하고 보조 출연자로 촬영에 참여 했는데, 그걸 그들이 어떻게 알고 막는단 말인가?

하지만 모든 일은 그 원인보다 결과가 중요한 법. 결과적으로 유혜라는 테러를 당했고, 현장 촬영 팀, 특히 그 촬영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에게 그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가장 큰 책임이 감독인 임호식에게 있었다.

아마도 이일을 유혜라가 문제 삼는다면, 임호식이 속한 광고회사에서 그를 자를 지도 몰랐다.

‘하아. 아직 주택담보대출도 다 못 갚았는데....’

아이들이야 아직 어리니 큰돈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문제는 집 사느라 은행에서 빌린 3억 빚이었다.

요즘 같은 광고계의 불황기에 재취업하기도 쉽지 않는데, 매달 갚아야 할 고정 빛이 있으니, 한 가정의 가장인 임호식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세 번 더 촬영 할게요.”

“네?”

임호식은 지금 자신의 귀가 잘못 된 줄 알았다. 지랄, 아주 개지랄을 떨 줄 알았던 유혜라가, 촬영에 더 협조해 주겠다고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째든 일은 끝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 그래 주시면 저희야 고맙죠.”

임호식은 유혜라의 이런 프로페셔널한 반응에 크게 감동 먹었다.

그래서 세 번 할 촬영을 두 번에 끝냈다. 드디어 만족할 만한 씬을 찍는데 성공한 것이다.

“유혜라씨. 수고하셨어요.”

“감독님도요.”

그렇게 촬영장에서 엄청난 사고가 터졌지만 촬영은 무사히, 그리고 잘 끝나면서 스태프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세트를 철수하며 파장에 들어갔다.

그때 바로 촬영현장을 떠나지 않고, 대기실에 남아 있던 유혜라와 그녀의 매니저 차 팀장, 그리고 갑자기 친해진 김 코디와 정민지 요원도, 이제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정리했는데, 차 팀장이 불쑥 정민지에게 물었다.

“놈들을 잡았으니 정 요원도 이제 백 대표님한테로 돌아가는 건가?”

그 물음에 정민지가 바로 대답했다.

“놈들이 유혜라 배우님에게 쥐와 협박 편지를 보낸 게 맞다면 그렇겠죠.”

그 대답에 유혜라가 반짝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게 아니면? 그럼 정 요원 우리와 더 같이 있는 거야?”

“그렇겠죠. 백 대표님의 지시는 그 협박범이 잡힐 때까지, 저보고 유 배우님을 근접 경호하라는 거였으니까요.”

그때 김 코디가 끼어들며 말했다.

“저는 그들이 협박범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정 요원과 더 같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이 빨게 지는 김 코디. 누가 보면 김 코디가 정민지를 좋아하는 줄 알겠다. 그런 김 코디를 보고 가볍게 코웃음을 친 유혜라가 말했다.

“흥....협박범이 빨리 잡혀야지. 나는 그들이 협박범이면 좋겠어.”

그렇게 속에도 없는 말을 심술궂게 내 뱉은 유혜라는, 차 팀장을 앞세우고 대기실을 나갔다. 그 뒤를 김 코디와, 그 김 코디의 짐을 대신 챙겨 든 정민지가 뒤따라 움직였다.

* * *

양태석은 저녁도 건너뛰고 4시간 정도 푹 잤다. 더 자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으으윽....”

잠을 자고나면 몸이 개운해야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자기 전보다야 상태는 더 좋았지만.

찌뿌듯한 몸을 기지개 켜며 다시 일깨운 양태석은, 그가 자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둔 메모지를 살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자신의 오른팔인 정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준호는 양태석의 오른팔에서, 지금은 태석파의 2인자로 급부상해 있었다.

-네. 형님.

“좀 쉬었어?”

-네. 뭐 두어 시간 눈 좀 붙였습니다. 형님은요?

“난 4시간 푹 잤다. 지금 깼고.”

-잘하셨습니다.

“근데 영 개운하지가 않아. 나이 탓인가?”

-누가 들으면 60살은 되신 줄 알겠습니다. 4시간 쭉 주무셨으면 저녁은 못 드셨겠네요?

“어. 안 그래도 배가 고프네. 뭐라도 시켜 먹어야지 뭐. 그보다 내가 시킨 일 중에, 강원도 XX요양원 문천식에 대해 알아보라고 한 거 어떻게 됐어?”

-아아. 그거요. 애들 보냈는데, 아마 지금쯤 알아보고 서울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그 자료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해서 나한테 보내. 보낼 때 보낸다고 문자 보내고.”

-네.

“그리고....”

양태석은 메모지에 적힌 그가 해야 할 일들 중 절반 가까이를, 정준호와 통화로 해결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그렇다보니 시간이 벌써 40분이나 지나 버렸고.

꼬르르르! 꼬르르륵!

배에서 아주 난리가 난 상황. 양태석은 늦은 시간이라 야식 파는 곳에, 먹을 것을 주문하고는 남은 일도 처리해 나갔다. 그러다 주문한 음식이 오자 그걸 먹고 배를 채운 뒤, 마저 일을 할 때 백준열에게 또 전화가 걸려왔다.

“쉐링턴 호텔이요? 네. 네. 알겠습니다.”

양태석은 백준열과 통화 후, 자신을 경호하는 조직원 중 한 명을, 쉐링턴 호텔로 보내서 백준열의 핸드폰을 받아오게 했다. 그리고 받아 온 백준열의 핸드폰은 굳이 포렌식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그 핸드폰에 저장 된 전화번호만으로도 누가 백준열을 노린 배후인지, 바로 특정해 낼 수 있었으니까.

“만수파?”

-네. 청량리 쪽에서 일수놀이를 하던 자인데, 장인 잘 만나서 건물주가 된 인간입니다. 요즘은 저희 쪽보다, 부동산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쪽 부류들과 노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직을 정리했단 거냐?”

-아뇨. 조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들 나와바리 안에서 꿈쩍도 않고 있어서 그렇지. 주위에서 시비를 걸어도 별 반응이 없어서, 안 그래도 주변 조직에서 거길 치려고, 애들 모으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쪽에 지원 좀 해.”

-네?“만수판가 하는 데 없애버리라고. 그리고 거기 두목 말이야.”

-네.

“우리 쪽에서 처리해 버려. 물론 그 두목을 없앤 건 주변 조직이 한 짓으로 꾸미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백준열이 자신에게 전화해서 핸드폰까지 넘겼을 때는, 고작 그 배후나 알고자 한 건 아니었다.

그 뒤처리까지 하란 뜻임을 양태석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게 백준열이 그에게 한 지시를 최우선적으로 처리한 후, 양태석은 아직 끝나지 않은 조직 정비를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어느 듯 새벽이 밝아왔다.

* * *

김훈은 혼자서 축배를 들었다.

삼명그룹과 연을 맺은 오늘 같이 기쁜 날, 어떻게 축배를 들지 않을 수 있겠나?

물론 그걸 대대적으로 공표하며, 그의 에이전시 처리자들과 같이 기쁨을 함께 나누진 못했다. 원래 처리자들의 일이란 게, 음지에서 해야 할 일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말이다.

거기다 삼명그룹과 일하게 되면서 갑자기 일도 많아져, 그와 같이 축배를 들 처리자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전화를 걸어왔다.

당연히 이 시간에 백준열이 그가 삼명그룹과 일하게 된 것 때문에, 그에게 전화를 했을리 없었다. 보나마나 처리해야 할 자가 생겨서 전화한 거겠지.

김훈의 예상대로 백준열은 QH엔터 홍대복의 처리 해 달라는 말을 전해 왔다.

그것도 깔끔하게 그냥 제거하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홍대복의 입에서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 다음 제거하라고 말이다.

보아하니 그 QH엔터 홍대복이란 자가 백준열을 제대로 빡 치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검찰청에 있다면....”

물론 백준열이 그 홍대복이란 자를, 내일 당장 검찰청 밖으로 내 보내 주겠다고 했으니까, 김훈의 입장에서는 그 검찰청에서 기다리다가, 나오는 홍대복을 잡아다가 제거해 버리면 됐다.

하지만....

“그 일을 할 처리자가 없네.”

그때 김훈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 바로 세르게이였다.

세르게이는 킬러지 처리자는 아니었다. 킬러나 처리자나 뭐가 다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킬러와 처리자는 확실히 달랐다.

킬러는 돈을 받고 타깃을 죽이는 것으로 그 의뢰가 완료 되지만, 처리자는 타깃을 제거하되, 자신의 정체,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누가 타깃을 제거했다는 정황이 일체 드러나지 않아야 했다.

즉 제거한 자가 죽은 것을 주변에서 전혀 알지 못하게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세르게이는 처리자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세르게이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자가 있었다. 바로 세르게이의 통역인 철수.

김훈은 그 철수에게 처리자의 수칙을 이미 숙지 시켜 놓았다. 더불어 모의로 처리자들의 일을 시켜 본 결과, 이론 상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뭐 이 정도 일은 그 둘에게 맡겨도 되겠지.”

김훈은 철수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철수가 전화를 받자 김훈이 바로 그에게 임무를 맡겼다.

“....데 할 수 있겠나?”

-네. 세르게이와 함께라면 그 정도는 껌이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철수. 그런 그에게 김훈이 말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아지트로 연락하고. 아지트에 비상 대응 팀이 있으니까,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철수에게 백준열이 그에게 부탁한, QH엔터 홍대복 제거 일을 맡긴 김훈.

그는 마저 남은 축배를 들고 나서, 내일부터 더 바빠질 에이전시의 처리자들의 스케줄을 직접 하나하나 짜기 시작했다.

* * *

동대문구 제기동 일대를 나와바리로 삼고 있던 만수파.

그런 만수파의 조직원들이, 그들 두목인 이만수가 매달 주는 돈에 만족해하며, 점점 조폭으로서의 폭력성을 잃어가는 걸, 쭉 지켜봐 왔던 인근 회기동 일대의 기러기파와 동구파의 조폭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또한 시기하고 질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목숨 내 놓고 칼과 연장 들고 설쳐도, 그들 두목은 겨우 용돈으로 몇 푼 쥐어 주는 게 단데, 그에 비해 만수파 두목은 자기 조직원들이 그냥 놀고먹어도, 매달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돈을 쥐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 수하들의 불만이 팽배하면서, 기러기파 두목과 동구파 두목의 심기도, 점점 더 불편해졌다. 그러다 동구파 두목이 먼저 제안을 했다.

“우리 만수파 칩시다.”

“만수파를?”

“네. 거기 쳐서 거기 나와바리 반씩 나누고, 이만수 그 새끼 잡아서 놈의 건물도 반띵 합시다.”

이만수의 나와바리와 그의 건물을 반반씩 나눠 갖자는, 동구파 두목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진 기러기파 두목.

그 후로 둘은 수시로 만나서 그 시점을 정하려 했는데, 그때마다 일이 조금씩 꼬였다.

그래서 만수파를 치는 걸 차일피일 미뤘는데....

저번 주말에 이만수가 동대문 경찰서장과 같이 골프를 쳤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러자 동구파 두목이 먼저 꼬리를 말았다.

“강 서장이 만수파 뒤를 봐 주고 있다면 틀렸소. 괜히 만수파 건드렸다가 우리만 좆 될 수 있으니 말이요.”

“그래서 만수파 치는 거 접자고?”

“뭐 어쩔 수 없지 않소.”

기러기파 두목은 고작 경찰서장 하나 때문에, 만수파 치는 걸 포기하겠다는 동구파 두목에게 크게 실망을 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라도 만수파를 치기로 하고, 조직원들을 끌어 모았는데 그런 그에게, 서울 최대 조폭 조직 태천파의 뒤를 이어, 새롭게 등장한 신흥 강자 조폭 조직인 태석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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