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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유혜라가 사는 성수도 대명 빌라 1층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정민지.
그녀는 경비 아저씨에게 자신은 유혜라의 소속사 직원인데 그녀를 만나러 왔다며 얘기를 잘하고, 만약을 위해 자기 연락처를 남겼다.
혹시 그녀가 세워둔 오토바이로 인해 민원이 생기는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 뒤 유혜라가 사는 5층으로 올라간 그녀가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
안에서 중년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JYB엔터 경호팀 정민지 요원입니다.”
자신의 소속을 밝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빌라 현관문이 열렸다.
띠로록! 철컥!
“들어오세요.”
뚱뚱한 중년 남자가 안 그래도 볼 살도 많은데 불퉁한 얼굴로 정민지를 맞으니 꼭 무슨 불독 같았다. 그러던 말든 그녀는 일단 유혜라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100평이 넘는 빌라다 보니 거실이 널찍했다. 그때 정민지의 눈에 그 거실 긴 소파 한가운데, 유혜라가 한 다리를 꼬고 허리를 곧게 편 채, 그림처럼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예쁘다.’
그녀를 본 정민지의 첫 인상은, 유혜라가 자신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면, 무슨 한 폭의 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유혜라의 미모는 확실히 현실의 범주를 넘어 선 수준이었다.
“누구?”“안녕하세요? 저는 경호팀 정민지 요원이라고 해요. 대표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정민지는 유혜라도 그렇고 그녀의 매니저로 보이는 뚱땡이 아저씨가, 자기 보고 무슨 소리를 하기 전에, 자신이 알아서 누가 보내서 왔는지를 밝혔다.
“대, 대표님께서?”
그러자 당장 뚱땡이 아저씨부터 그녀를 보는 눈빛이 싹 바뀌었다. 그건 유혜라도 마찬가지고.
“백 대표....님이 언니를 나한테 보냈다고?”
유혜라는 정민지와 동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또래로 보이는 여자들에게는 지금처럼 말을 놨다. 문제는 그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 그래서 그녀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버릇을 고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고칠 생각이 없다는 말이 맞을 거라고, 정민지가 여기 오기 전 김 비서가 말했다.
그래서 정민지는 유혜라의 반말 짓거리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네. 백준열 대표님께서 특별히 저보고, 유혜라 배우님 전담해서 근접 경호하라고 하셨습니다.”
“근접 경호?”
“주무실 때랑 연기하실 때 빼고, 저와 1미터 이상 떨어지실 일이 없을 거란 소립니다.”
“호오? 그러니까. 언니가 나랑 붙어 다닌다는 얘기네?”
“그런 셈이죠.”
“오빠도 들었지? 애인하고도 못 붙어 다녔는데, 경호원이랑 그걸 하게 생겼네?”
유혜라의 애인이란 말에 뚱땡이 매니저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혜라야. 제발 말조심 좀 해라. 아무리 회사 경호원이라고도, 회사 나가면 남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알았어. 언니. 좀 전 내가 한 말, 어디서 떠들고 다니면 안 돼. 알았지?”
그 말을 하며 유혜라가 윙크를 날리며 말하는 데 저런 건 남자에게나 먹히지, 같은 여자인 정민지에게는 오히려 혐오감만 들게 만들었다.
“네. 뭐....”
그래서 정민지가 시큰둥하게 대답 할 때, 뚱땡이 매니저가 말했다.
“나는 유혜라 담당 매니저 차석현 팀장입니다. 혜라와는 5년째 같이 일하고 있고요. 오늘 혜라의 일정은, 다행히 오후에 하나 있습니다.”
차 팀장의 그 말에 유혜라가 바로 끼어들며 말했다.
“오후에 필라테스도 가야 한다니까?”
“오늘은 쉬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필라테스는 개뿔....”
“안가면 몸매 망가진다고!”
“하루 안 가는 거 가지고 망가질 몸이 아냐. 네 몸은.”
차 팀장은 유혜라와 얘기를 하며, 소파 한쪽에 올려 둔 자기 가방에서 스케줄 표를 꺼내서 정민지에게 건넸다.
그 주간 스케줄 표를 보니 차 팀장의 말처럼, 오늘 유혜라의 공식 스케줄은 CF촬영 하나 뿐이었다.
* * *
정민지는 통성명이후, 유혜라가 오늘 아침에 배달 받은 샐러드 박스 안의 쥐와 편지를 살폈다.
“언니는 쥐가 안 무서운가 봐?”
유혜라가 그런 정민지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물론 쥐가 무서운 유혜라는, 정민지에게서 다섯 걸음은 족히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민지가 꺼내서 자기 눈앞에서 살피고 있는 쥐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로. 그때 정민지가 무심히 말했다.
“이건 실험쥐가 아니라 전형적인 시궁쥐네요.”
“그,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데?”
정민지의 말에 눈빛을 빛내며 관심을 엿보이는 유혜라. 그런 그녀에게 정민지가 친절하세 설명을 해주었다.
“그야 실험쥐는 살 수 있는 깨끗한 쥔데, 이건 우리 주위에 흔한 잡아 죽여야 할 쥐니까요.”
“뭐?”
“쉽게 말해서 여기 실험쥐를 넣어 놨다면, 협박범은 여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흔한 시궁쥐라면 남자가 유력하다는 얘기죠.”
“여자는 다들 쥐를 무서워 하니까? 맞지?”
“네.”
정민지는 왠지 신나 보이는 유혜라를 힐끗 쳐다 본 뒤, 협박 편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곤 이번에도 자기 생각을 말했다.
“글씨체를 숨기려고 왼손으로 쓴 편지네요.”
“그건 또 어떻게 아는데?”
“여기 보면 손 쓸린 자국이 보이죠? 그 자국이 쭉 왼쪽에 있잖아요.”
“그러네. 우와. 언니 대단한데? 혹시 경찰 출신이야?”
“아뇨. 특수부대 출신이요.”
“특, 특수부대? UDT 같은 거?”
유혜라가 언제 다가왔는지, 정민지 옆에 거의 달라붙어서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UDT는 Underwater Demolition Team, 즉 수중폭파대를 말해요. 우리는 그들을 해군특수전전단이라고 부르고요.”
“어머머. 언니 진짜구나?”
“네?”
“진짜 특수부대 출신이었어.”
유혜라의 그 말에 정민지는 그럼 가짜 특수부대 출신도 있냐고 되물으려다가 김 비서의 말이 생각나서 참았다.
김 비서가 말하길, 유혜라는 말꼬리 잡기 천재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꼬리 잡히지 않으려면, 가급적 그녀와 말 상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정민지는 김 비서가 해 준 충고가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는 걸, 이미 유혜라의 반말 짓거리를 통해 확인 했기에, 그 충고를 따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이미 깊게 하고 있었다.
“그럼 언니 싸움 잘하겠네?”
“네. 뭐....”
“몇 대 몇으로 싸워 봤어?”
“....”
“왜 대답을 안 해?”
그때였다. 그녀의 뚱땡이 매니저 차 팀장이 나타나서 유혜라에게 말했다.
“경호원 그만 귀찮게 하고 점심 뭐 먹을 거야?”
“오빠가 알아서 시켜.”
“그랬다가 또 무슨 소릴 하려고. 뭐 먹을지 니 입으로 확실히 말해.”
“이씨....”
투덜거리며 유혜라는 차 팀장에게로 갔고, 둘은 안방으로 같이 들어갔다.
그리고 10여분 쯤 뒤 유혜라는 안방에 두고, 차 팀장만 나와서 정민지에게 물었다.
“정 요원. 점심 뭐 먹을래요?”
“저는....”
정민지는 ‘아무거나....’ 라고 말하려다가 유혜라를 보고 확실히 말하라고 정색하던, 차 팀장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 말 대신 다른 말을 내 뱉었다.
“차 팀장님 먹는 거로 같이 먹을게요.”
“알았어요. 아아. 그리고 혜라가 말 걸어도 대충 넘겨요. 좀 전에 보니까 잘하던데. 대답하기 싫으면 그렇게 씹어 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고. 혜라 말 상대해 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그 말 후 차 팀장이 다시 유혜라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사를 맞춰 보는지 안방에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거실까지 싹 다 들려왔다. 그렇게 30분 쯤 지났을까?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그러자 안방에서 차 팀장이 튀어 나와서는 곧장 현관문으로 달려갔고, 계산하고 배달 온 음식을 받아서 거실로 들어오며 정민지에게 말했다.
“이거 받아요.”
정민지는 MC도날드 햄버거 세트를 차 팀장에게 받았다.
그런데 그 봉지 안에 음료로 콜라는 하나뿐인데, 햄버거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그래서 차 팀장이 안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황급히 그에게 말했다.
“차 팀장님. 여기 햄버거 세 개나 있는데요?”
그랬더니 차 팀장이 멀뚱히 정민지를 보고 말했다.
“그게 뭐요? 보통 한 번 먹을 때 햄버거 세 개는 먹지 않나?”
그러면서 차 팀장이 들어 보이는 햄버거 세트 봉지는 두 개. 그러니까 차 팀장은 지금 햄버거 6개를 점심으로 먹을 거란 소리였다.
“네? 아니 햄버거 세 개를 어떻게 한 사람이 다 먹어요?”
“못 먹나? 나는 그쪽이 나랑 같은 거 먹는다기에....뭐 못 먹겠으면 남겨요. 내가 먹지 뭐.”
별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하고서, 차 팀장은 자기 먹을 햄버거 세트랑 유혜라가 먹을 도시락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 * *
정민지는 차 팀장이 그녀가 남긴 햄버거 두 개를 진짜 먹을지 몰랐다.
그랬는데 차 팀장은 그 햄버거 두 개를, 정민지가 보는 앞에서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워 버렸다.
“와아....”
정민지는 햄버거 하나가 한 입에 통째로 입으로 사라지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작 좀 쳐 먹어라!”
그때 유혜라가 그걸 보고 화를 냈고, 그런 유혜라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차 팀장은 슬그머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차 팀장에게 더 화를 내지 못한 유혜라가 시선을 정민지 쪽으로 돌렸다.
“언니. 아까 내가 한 질문에 대답 안했는지?”
유혜라의 그 말에....
“여보세요?”
정민지는 걸려 오지도 않은 전화가 걸려 온 것처럼 굴며, 핸드폰을 귀에 대고 거실 밖 베란다로 나가 버렸다.
하지만 무슨 낌새를 챘는지, 유혜라가 베란다 쪽으로 다가 오는 걸 보고, 정민지가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네. 대표님. 여기는 제가 잘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네? 유혜라씨 근처에 있냐고요?”
그 말에 유혜라가 질겁하며 정민지를 향해 두 손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근처에 없다고, 백준열 대표에게 말하란 거다.
“아뇨. 지금 차 팀장님과 대사 맞춰보고 계셔서....”
정민지가 하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쉰 유혜라가 휑하니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휴우우....”
그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쉰 정민지.
“김 비서님 말이 맞았네. 유혜라가 제일 껄끄러워 하는 사람이 백준열 대표님이라더니....”
김 비서는 만약 유혜라가 깐족거리고 정민지를 구박하면 ,백준열 대표를 소환하라고 했었다. 그럼 다 해결 될 거라고 말이다.
그랬는데 진짜 백준열 대표란 말만 나와도, 유혜라가 질겁하는 걸 보고서 유혜라 잡는 데는 백준열 대표가 최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유혜라는 왜 백준열 대표라면 저렇게 싫어하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민지가 겪어 본 백준열 대표는 젠틀하면서 다정한 분이었다. 물론 소문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한테 개새끼가 뭐야?”
정민지는 지금도 왜 연예계 사람들이, 백준열 대표를 개새끼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 일 끝나면....김 비서님 한데 물어 봐야지.”
정민지는 왠지 김 비서라면, 자기에게 백준열 대표의 별명이 왜 개새끼인지 얘기해 줄 거 같았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고 차 팀장이 나오며 말했다.
“정 요원. 10분 뒤에 CF촬영하러 갈 테니까 준비할 거 있으면 하도록 해요.”
준비 할 거라? 유혜라 하나 곁에서 지키는데 따로 챙길 건 없었다.
경호의 목적이 뭐겠는가? 경호 대상의 신변 안전 확보가 아니겠나?
정민지는 자신이 근접 경호 하는 한, 누구도 유혜라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 * *
오늘 유혜라 찍게 될 CF는 샴푸 광고. 근데 촬영 현장이 야외다.
그래서 점심 먹고 한 시간 뒤에 출발한 유혜라 전용 스타크래프트벤 차량에, 정민지도 꼽사리 끼었다.
“자아. 혜라는 탔고. 김 코디?”
“네.”
유혜라 바로 뒷자리에 동그란 안경테를 쓴 젊은 여자가, 차 팀장의 부름에 대답과 함께 손을 들었다.
그걸 보고 차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름 농담이랍시고 말했다.
“유혜라 매니저인 이 몸, 차 팀장도 탔고. 아아. 박군아. 옆에 그 여자분 경호원이니까 조심해.”
“네에?”
차 팀장의 그 말에 운전석 옆 조수석에 탄 정민지를, 유혜라의 스타크래프트벤을 모는 로드매니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쳐다봤다.
아마도 정민지의 미모를 보고 JYB엔터 소속의 여배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든 말든 정민지는 그 자리에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그때 뒤쪽에서 유혜라가 불쑥 물었다.
“언니. 백준열 대표랑 친해?”
“네. 백 대표님 근접 경호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만.”
“그, 그래?”
“네. 오늘도 백 대표님 근접 경호하다가 이리로 왔습니다.”
“....”
정민지의 그 대답 후 유혜라는 더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건 차 팀장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CF 촬영 현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유혜라가 탄 스타크래프트벤 안이 조용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다와 갈 무렵, 유혜라가 김 코디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스타크래프트벤 안의 분위기가 이내 살벌해졌다.
하지만 그 여파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정민지에게까지 미치진 않았다.
그렇게 CF 촬영 현장에 도착했고, 정민지의 눈에 먼저 촬영 장비들이 즐비하게 늘어 선 채, 벌써 한 쪽으로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정민지는 여기 오는 동안 오늘 촬영의 콘티를 슬쩍 봤다.
긴 복도, 아니 회랑이라고 해야 하나?
그곳을 드레스 차림에 긴 머리를 출렁 거리며 뛰는 유혜라. 그때 그녀 머릿결에서 나는 샴푸 냄새에, 넋이 나간 남자들이 그녀 뒤를 쫓아오는....
그러니까 오늘 유혜라는 제법 뛰어야 했다. 즉 고된 촬영이 예상 됐고, 누구라도 유혜라의 성질 머리를 건드린다면, 아마 더 힘든 촬영이 되겠지.
그래선지 스태프들이 벌써 유혜라의 눈치를 살피며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네. 유 배우. 오랜 만입니다.”
유혜라가 밝게 CF감독에게 인사를 했지만, 어째 그 인사를 받는 감독의 얼굴은 영 불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