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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오늘 왜 이러나 모르겠다. 임페리얼 호텔을 뒤집어 헤쳐 놓고 나왔더니, 이제 쉐링턴 호텔에서 또 내 심기를 건드린다. 무슨 호텔 특집 사람 빡 치게 만들기 경연대회라도 열린 모양이다.
‘부지배인이라....’
새파랗게 젊은 놈이 부지배인이라는 건 뻔했다. 오너가의 아들이겠지.
호텔 물려주기 전에 경험 쌓으라고, 부지배인 자리에 앉힌 걸 테고.
‘쉐링턴 호텔이 어디 그룹 꺼 더라?’
임페리얼 호텔과 달리 쉐링턴 호텔은 국내 자본의 호텔이다.
즉 호텔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얘기고, 이 정도 특급 호텔을 유지, 운영하려면 독자적인 자본으로는 힘들다. 즉 대기업이 끼어있단 소리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쉐링턴 호텔은 대만 프본 그룹이 지분 25%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대주주는 금도그룹이었다.
‘뭐야? 그럼 저 새끼가 금도家의....’
어째 처음 시작부터 싸가지가 없더라니. 하지만 녀석에 대한 정보는 백준열의 기억에도 없었다.
그 말인즉 저 새끼는 금도家의 직계는 아니란 소리다.
금도그룹 직계라면 백준열이 보고 바로 기억해 냈을 테니 말이다.
폭언자 녀석은 나한테 손가락 욕설 Fuck You를 날리고는, 유유히 추명진이 있는 쪽으로 가서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폭언자 녀석이, 자신이 누군지 밝혀서 그런지, 추명진도 더는 행패를 부리며 추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나를 곧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근데 지혈한답시고 양쪽 콧구멍을 솜으로 다 막은, 녀석의 모습이 왜 그리 웃긴지....
“푸하하하하....”
나는 대 놓고 배를 잡고 웃었다. 웃기니까 웃어야지 어쩌겠나? 그런 나를 보고 추명진이 발끈해서 외쳤다.
“저, 저 새끼가....내가 가만 안 둬. 너 내 손을 죽을 줄 알아.”
추명진은 아까도 그러더니, 애가 좀 모자른 면이 있어보였다. 아니면 분노조절 장애가 있던지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분명 그에게 말했다. 내가 누군지 말이다. 그런데도 저런다.
내 급이, 자기 아버지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추진호 대표보다 위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죽이겠다니? 뭘 어떻게? 무슨 수로?
그때 구급차와 함께, 사이렌 경보기를 붙인 형사차가 같이 호텔 앞에 도착했다.
“여기!”
그리고 쌍코피 터진 추명진에게로 구급요원들이 먼저 달려왔다.
“네?”
근데 구급요원들은 다들 나한테 뺨 맞아서 쌍코피 터졌다고, 119에 신고한 추명진과 주위 호텔 측 사람들을 허탈한 얼굴로 쳐다봤다. 뭐 이딴 걸로 구급차를 불렀냐며 말이다.
그리고 호텔 측 사람 중 하나와 열심히 얘기를 나누던 형사들 중 하나가 곧장 내게로 와서 말했다.
“서초경찰서 김대석 경삽니다. 혹시 저분 쌍코피 터트리신 분이십니까?”
“네.”
나는 짧게 대답했고 내 대답에 그 형사가 겁도 없이 수갑을 꺼냈다. 그걸 보고 내가 웃으며 물었다.
“설마 그거 내 손에 채우겠다는 건 아니죠?”
“왜 아니겠습니까? 당신을 폭행죄로 현장 체포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그거 채우기 전에 전화 한통 해도 될까요?”
“뭐 마음대로.”
형사는 내가 이미 때렸다고 시인한대다가, 증인도 많다보니 나를 이 자리에서 체포하는 걸,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나는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곧장 박대순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 대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재깍 내 전화를 받는 박 청장. 하긴 청문회가 낼모레니, 내 전화를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겠지.
“청장님. 여기 경찰이 제 손에 수갑을 채우려는 데 어쩔까요?”
-뭐? 어떤 미친 새끼가!
박대순 경찰청장이 제대로 팍 친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 시간이 밤 10시도 넘었는데, 나한테서 이런 전화나 받고 있으니 열 받을 만도 했다.
나는 대략적인 내용을 박 청장에게 얘기했다. 그러니까 상대가 먼저 욕을 해서, 열 받은 내가 뺨 한 대 때렸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박 청장이 좀 참지 그랬냐며, 그래도 서로 합의를 보는 쪽으로 원만하게 해결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욕한 추명진을 모욕죄로, 녀석은 나를 폭행죄로 신고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원만하게 해결 하게끔 ,자신이 경찰서 쪽에 잘 얘기해 주겠다며, 내게 수갑을 채우겠다고 한 형사를 바꾸라고 했다.
* * *
금도그룹 구도철 회장은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사생활, 즉 여자관계도 조용한 건 아니었다.
그는 여자를 밝혔고 많은 스캔들을 양산했다.
그 중에 연예인과 루머가 많았는데, 여자 탑 스타, 가수, 배우 가리지 않고, 그 절반은 구도철 회장이 건드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스캔들 제조기는 여전히 ING 중이었다. 그래도 자식이 많으면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있었던지, 피임에 각별히 신경을 쓴 구도철 회장.
그래서 실제 그와 연관된 여자들 중, 그의 자식을 낳은 여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많지 않다는 게 아예 없다는 소리는 아닌 게, 그가 건드린 여자들 중 연예인이 아닌, 실수로 건드린 일반인이 낳은 자식은 좀 있었다.
그 자식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금도철 회장이 맞는지 철저히 확인한 후, 구도철 회장의 성인 구씨가 아닌 모친의 성을 따라 이름을 짓게 만들었다.
대신 구도철 회장은 그 자식들과, 그 자식을 낳은 여자들에게, 충분히 먹고 살 길은 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특히 영명한 녀석의 경우는, 금도그룹의 계열사나 협력사에 자리를 내주면서, 금도家의 일원으로서 일할 기회를 제공했다.
남성열은 그런 운 좋은 케이스 중 한 명이었다. 남성열의 모친은 간호사였는데, 구도철 회장이 맹장으로 입원했을 때 그녀와 눈이 맞았다.
그 후 임신한 모친이 남성열을 낳았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구도철 회장은, 남성열의 모친에게 강남에 건물 하나를 사주며 그녀 입을 막았다.
그렇게 장성한 남성열은 잘 자랐고, 공부도 잘해서 서울 일류대에 들어갔다.
그런 그가 군대를 다녀왔을 때, 모친은 그의 출생 비밀을 밝혔다.
“내, 내 아버지가 금도그룹 구도철 회장님이라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성열은 그때부터 머리를 굴렸다. 그리곤 자신의 출셋길을 스스로 열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대로 대학을 졸업하자 금도그룹 구도철 회장을 찾아갔다.
“이놈 봐라? 아주 되바라진 녀석일세. 허허허허.”
운이 좋았던지 그런 남성열을 구도철 회장이 잘 봐줬고,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쉐링턴 호텔에 가서 일 해 봐.”
“네. 회장님을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분골쇄신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능력을.”
“그래. 네 능력 좀 보자. 잘만하면 그만한 자리가 주어 질것이야.”
구도철 회장의 그 말에 남성열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됐다. 잘만하면 쉐링턴 호텔은 내가 먹을 수도 있겠어.’
남성열은 구도철 회장이 말한 자리가, 쉐링턴 호텔 대표 자리라고 생각했다.
남성열이 구도철 회장의 자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남성열은 몰랐다. 구도철 회장에게 있어서 구씨 성을 쓰지 않는 자식은, 그의 자식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렇다면 구도철 회장은 왜 그가 외도로 낳은 자식을 거둬서 쓰는 걸까?
그건 그들이 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 그들은 핏줄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잘만 타이르면 이용해 먹기 쉬운 자식들.
구도철 회장에게 구씨가 아닌 자식들은 딱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또 하나 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쉐링턴 호텔이 마치 자기 것이 된 냥, 기고만장해서 돌아간 남성열.
그는 일주일 뒤 쉐링턴 호텔에 들어가서 직무교육을 받고, 그로부터 1년 뒤 벼락 승진해서 부지배인이 됐다.
* * *
남성열이 쉐링턴 호텔에 1년 동안 다니고, 갑자기 부지배인의 자리에 오른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희가 다음 달에 귀국하면, 그 즉시 호텔을 맡길 거야. 그 전에 세팅 잘 해 놔.”
“네. 회장님.”
금도그룹 구도철 회장의 말에 함평도 비서실장이 즉시 대답했다.
그러니까 다음 날에 미국에서 MBA과정을 끝낸 금도家의 장녀 금정희가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구도철 회장은 그녀에게 바로 쉐링턴 호텔을 맡겨서, 그녀의 경영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회장 딸이라도, 덜컥 한 회사의 대표를 맡아서 바로 실적을 내긴 어렵다.
해서 구도철 회장은 금정희가 쉐링턴 호텔의 대표를 맡더라도, 얼마든지 호텔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게 그 수족들을 미리 다 포진 시켜 놓게, 함평도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특히 금정희의 가까이에서 그녀를 모실 집사 같은 존재로, 구도철 회장이 선택한 게 바로 남성열이었고.
그라면 구도철 회장이 잘 말하면, 금정희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남성열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구도철 회장이 자신을 잘 봤기에, 입사 1년 만에 부지배인이 된 줄 알고 있었다.
이제 부지배인으로서 능력만 확실히 발휘한다면, 그가 곧 여기 주인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남성열 눈에 봬는 게 없어졌다.
왜냐하면 자신이 곧 쉐링턴 호텔의 대표가 될 텐데, 이 호텔에서 그가 두려워 할 게 뭐가 있겠나?
총지배인도 들이 받아 버리고, 안하무인 날 뛰었다. 특히 호텔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가 다 개입했다.
그렇게 남성열이 쉐링턴 호텔에 자기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있을 바로 그때, 백준열이 쉐링턴 호텔을 찾아왔다.
최근 1년 사이 백준열은 딱 한 번 쉐링턴 호텔을 찾았다.
그때 남성열은 휴가 중이었고. 그래서 남성열은 백준열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쉐링턴 호텔의 경우 VVIP고객은 총지배인이 직접 챙겼다.
그래서 부지배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남성열은, 아직 VVIP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럴 때 백준열이 체크인을 했고, 남성열과 좋지 않게 엮여 버렸다.
남성열에게는 그야말로 ‘지지리도 운이 없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 할 길이 없었다.
이때 남성열은 VVIP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수 고객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의 전무인 추명진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가 호텔 로비에서 추태를 부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어떤 놈이 그런 추명진을 때려서 쌍코피를 터트렸단다.
남성열은 그 멍청한 놈이 누군지 보러 갔고, 멀쩡하게 잘 생긴 그놈에게 물었다.
추 전무를 때렸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놈이 자기 주제도 모르고 까불었다.
그래서 남성열은 호텔 운영부장인 강 부장을 불러서, 그 놈 경찰에 넘기라고 했다.
더불어 최근 알음알음 인맥으로 알게 된, 서초경찰서장에게 전화한통 걸기로 했다.
그 놈 좀 식겁하게 만들라고 말이다.
그러자 놈도 그제야 겁이 났던지 더는 주둥이를 놀리지 못했는데, 그걸 보고 남성열이 손가락 욕으로 녀석을 비웃어 주었다. 그리고 경찰이 와서 녀석을 현장 체포해 가려 할 때였다.
“뭐?”
녀석이 청장 운운했고, 잠시 뒤 그가 건넨 전화를 받은 형사.
“여보세요? 네? 네. 헉! 충성! 네. 네. 아, 아닙니다. 불법체포라니. 그런 일 없습니다. 네. 네. 서장님께요? 네. 알겠습니다. 저기....여기.....”
좀 전 까지 현행범이라면서 녀석의 손에 수갑을 채울 거처럼 굴었던 형사.
그런 형사가 갑자기 녀석에게 쩔쩔매기 시작하더니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태도가 싹 돌변하더니 피해자를 찾았다.
그때 피해자인 추명진은 구급 대원들과 같이, 그냥 걸어서 구급차에 타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형사가 가서 물었다.
“저분 말씀이 먼저 자신을 욕해서 때렸다는 데 사실입니까?”
“뭐? 내가 무슨 욕을 해? 저 새끼가 그냥 날 때렸다고. 이유도 없이 그냥 퍽!”
추명진은 경찰의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자기는 절대로 백준열에게 욕설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추명진은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향했고, 형사는 바로 현장 조사에 들어가더니 호텔 CCTV영상을 수거하고, 백준열에게도 뭔가 협조를 구하더니, 그의 핸드폰에 무슨 파일을 복사하는 게 남성열의 눈에도 보였다.
그때 백준열과 남성열의 눈이 딱 마주쳤는데, 백준열이 일부러 씨익 웃으며 남성열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 * *
서초경찰서 김대석 경사는 황당한 얼굴로, 곧 두 손에 수갑을 채울 눈앞에 남자를 쳐다봤다.
“자아. 받아 봐요.”
“아니. 내가 댁의 전화를 왜 받아요?”
“그야 나도 모르죠. 청장님이 바꾸라니까 나도 바꿔 주는 것 뿐.”
김대석은 무슨 청장 운운하면서, 자꾸 자기보고 자기 핸드폰의 전화를 받아보라는, 폭행죄로 곧 현장 체포할 남자를 보고 짜증 가득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말든 눈앞의 남자는 계속 김대석에게 핸드폰을 건넸고, 김대석도 결국 그 핸드폰을 받아서 귀로 가져갔다.
“네. 여보세요?”
그랬더니 핸드폰 스피커로 걸걸한 중장년의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신임 경찰청장 박대순이야.
“네?”
처음엔 김대석도 황당해 했다. 상대가 경찰청장이라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김대석은 긴가민가했고, 결정타로 상대가 서초경찰서장의 이름을 뉘 집 똥개 이름 부르듯 말하자, 김대석의 입에서 경찰의 경례구호가 터져 나왔다.
그런 그에게 박대순 청장이 조목조목 그가 지금부터 뭘 해야 할지 지시가 내려졌고, 마지막으로 서초경찰서장에게 지금 바로 연락할 테니까, 자신의 지시를 최우선적으로 수행하라고 했다.
그리곤 백 대표에게 전화를 바꾸라고 해서, 김대석은 핸드폰을 백준열에게 돌려주었다.
그 뒤 서초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서장이 그랬다.
청장님 시킨 대로 무조건 하라고. 그러니까 김대석이 받은 전화가 진짜 신임경찰청장의 전화가 맞았던 것이다. 일개 경사 직급으로 경찰청장과의 통화를 한 경찰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김대석에게 있어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