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95화 (29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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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리고 강지영이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게, 오히려 신의 한수가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만약 겅지영이 자신을 잡으러 뛰어오는 고대기에게서, 달아나기 위해서 몸을 돌려 뛰었다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던 그녀는 얼마 뛰지도 못하고, 뒤에서 쫓아 온 고대기에게 잡혔을 게 확실했다.

그것도 우악스런 그의 손길에, 아마도 거칠게 호텔 복도에 나자빠졌을 테지. 강지영에게 안 그래도 감정이 있는 고대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니, 달려 온 고대기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건, 그런 그녀 앞에 멈춰 서는 것뿐이었다.

주저앉은 상태로 웅크린 그녀를, 아무리 감정 있는 고대기라도 대놓고 발로 찰 수는 없는 노릇.

그냥 강지영 앞에서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녀를 잡은 것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야! 일어나!”

고대기가 바로 강지영을 내려다보고 윽박을 질렀다. 이제 잡았으니 강지영을 이용해서 호텔 방문을 열게 만들어야....

디리릭! 철컥!

그때였다. 호텔 방문이 열리며 안에서 누가 나왔다. 고개를 돌려 그걸 확인한 고대기.

그가 멀뚱히 그쪽을 쳐다 볼 때, 방안에서 나온 백준열이 곧바로 고대기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고대기가 흥분한 상태로 백준열을 맞으며 말했다.

“백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실지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시키시는 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고대기는 고모부인 김영일 총지배인이 알려 준 대로 백준열에게 씨불였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사실 고대기는 지금도 몰랐다.

하지만 고모부가 이대로라면 고대기 자신뿐만 아니라, 호텔 쪽에 일하는 그의 인맥들이 다 좆 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영혼 없는 그 씨불임에 대해 백준열은 똑같이 대응했다.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그의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이다.

“백 대표님!”

그때 고대기가 그런 백준열이 기분 나쁘다는 듯, 돌아서며 팔을 뻗어서 백준열의 팔을 잡아챘다.

순간 그의 팔이 비틀리면서, 동시에 고대기의 몸이 앞으로 홱 돌았다.

철퍼덕!

그리곤 보기 흉하게 복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백준열이 자신의 팔을 잡은 고대기의 팔을 꺾으면서, 동시에 자기 몸 쪽으로 끌어 당겨 메쳐 버린 것이다.

유도의 메치기 손 기술 중 하나인 빗당겨치기를 활용한 건데, 정작 당한 고대기는 호텔 복도 바닥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쳐다봤다.

그 사이 여전히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강지영에게 다가가 백준열.

그가 고대기와는 달리, 강지영 앞에서 위화감 느껴지게 그녀를 내려다보는 게 아닌,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채 말했다.

“괜찮아요?”

백준열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웅크리고 있던 강지영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백준열을 발견하자 ‘우앙’하고 울면서 백준열을 덮쳤다.

그런 그녀를 백준열은 같이 안아주면서 그녀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만 울어요. 내가 왔잖아.”

그의 그 말에 또 거짓말처럼 울던 강지영이 울음을 뚝 그쳤다.

* * *

표석훈 부지배인이 김영일 총지배인의 전화를 받고 보안팀을 설득하기 위해서 움직였을 때, 혼자 표 부지배인의 방에 앉아 있었던 주명석 차장.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런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고,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관계로 주명석 차장은 별 꺼리김없이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주 차장님. 나 백준열입니다.

“네. 대표님!”

앉아 있던 주명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전화 건 사람이 백준열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주 차장님. 혹시 임페리얼 호텔에 총지배인 자리 관심 있으십니까?

“네?”

-제 부탁 좀 들어 주시면 그 자리....바로 올라가실 수 있을 거 같은데?

백준열의 제안에 당연히 주명석은 귀가 솔깃해졌다. 무엇보다 명분은 백준열 쪽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뜻이 곧 본사 데이비드 부회장의 뜻이었으니까.

원래 모든 일의 명분은, 최고 권력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법이다.

임페리얼 호텔에서 그 최고 권력자는 본사 데이비드 부회장이었고.

“뭐, 뭐든 시켜 주십시오.”

-보아하니 누군가 보안팀에 장난을 친 거 같네요. 지금 제 방 앞에 고대기 과장이 와 있습니다.

“네에?”

순간 주명석은 표석훈 부지배인이 왜 이 방을 나갔는지 이해가 됐다.

김영일 총지배인이 없는 이 호텔에서, 최고 권력자는 표 부지배인이었다.

그런 그가 보안 팀을 통제하고 조절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사실 좀 전 백준열은 주명석에게 전가의 보도를 쥐어주었다.

그걸 어떻게 휘두를지는 전적으로 주명석의 결정.

주명석은 곧장 표 부지배인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제일 먼저 전화를 건 건 보안팀장이었다.

-어. 명석아.

보안팀장인 김재열은 다행히 주명석과 친분이 있었다.

“형. 지금 어디야?”

-나? 지금 호텔 밖인데. 왜?

“뭐?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 보안팀장이란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어떡해?”

-왜? 무슨 일인데?

“그게....”

표 부지배인이 보안 팀을 사사로이 움직여서 VVIP고객인 백준열을, 지금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주명석으로부터 쭉 들은 김재열이 말했다.

-잠깐만. 전화 한통만 하고 내가 전화 할게.

그렇게 김재열과 통화를 끝내고, 그의 전화를 기다리던 주명석. 5분 쯤 뒤 주명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주명석은 김재열에게서 걸려 온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

“네.”

-네 말대로더라. 문제는 오늘 보안팀원들이 내 통제를 따르지 않고 있단 거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말 그대로야. 영악한 부지배인이 박 부 팀장을 포섭한 거 같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어떻게 되긴. 내가 호텔로 가기 전에는 어쩔 수 없다는 거지.

“안돼요. 그 동안 백 대표님이 봉변이라도 당한다면....”

백준열이 그에게 약속한 것들도 전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명석은 백준열에게 장담했다. 자기가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앞으로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이대로라면 사태만 더 커질 판이었다.

“형. 제 말 잘 들어요. 박 부 팀장에게 당장 연락해서....아니면 나도 형도, 그리고 보안팀원들 다, 내일부터 새로운 직장 알아봐야 할 겁니다.”

-설, 설마 그렇게나....

“김재열 보안팀장. 내말대로 하라면 좀 해. 윤일상 대표와 김영일 총지배인은 벌써 잘렸다고!”

김재열 보안팀장이 자기 말에 의구심을 드러내자, 참지 못한 주명석이 버럭 소리쳤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김재열이 말했다.

-그, 그래.

김재열은 주명석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박 부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호텔 내의 모든 CCTV는 통제 상황실에서 살피고 문제가 있으면 보안팀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한 곳, VVIP룸의 경우에는 보안팀에서 직접 챙겼다.

즉 지금 VVIP룸에서 고대기가 횡포를 부리는 걸, 보안팀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부 팀장님. 진짜 이래도 되는 겁니까?”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너희는 그냥 모른 척 해.”

부 팀장인 박수찬이 확고하게 그렇게 말하니, 다른 보안팀원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박수찬은 부지배인 표석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박 팀장이라....’

그는 며칠 뒤에 자신이 보안팀장이 될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입 꼬리를 실룩거리고 있었는데,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급한 일로 잠깐 호텔 밖으로 나간 김재열 보안팀장이었다.

‘받지 마?’

어차피 박수찬이 보안팀장이 되려면 튕겨나야 할 사람이었다. 근데 한 달 전 자신의 막내아들 돌잔치에, 바쁜 와중에도 참석해 준 김재열이 생각나서 박수찬은 그 전화를 받았다.

물론 김재열이 무슨 소리를 해도, 박수찬은 지금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밀어 붙일 생각이었다.

“네.”

-박 부 팀장. 지금 뭐하자는 거야?

“뭘 말입니까?”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박 부 팀장이 더 잘 알 텐데? VVIP룸 말이다.

역시 김재열이 다 알고 전화했고, 박수찬은 그가 뭐라고 하든 말든 부지배인의 지시를 따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부지배인이 너한테 무슨 소릴 했는지 모르지만 그건 본사의 뜻이 아니야.

“네?”

본사라니? 여기서 왜 본사 얘기가 나온단 말인가? 박수찬으로서는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김재열이 충격적인 사실을 얘기했다.

-본사 데이비드 부회장이 윤일상 대표와 김영일 총지배인을 잘랐어. 데이비드 부회장이 왜 그랬을까?

“그, 그걸 제가 어떻게....”

-이 병신아. 백준열 대표 때문이잖아? 니가 지금 보고 있는 VVIP룸을 쓰고 있는....

김재열의 그 말에 박수찬이 휘청거렸다. 백준열이 서울 임페리얼 호텔의 대표와 총지배인을 자른 이유는 사실 별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박수찬과 그의 보안팀원들이, 백준열에게 하고 있는 짓은 별게 아닌 게 아니었다.

“C발, 좆 됐다.”

김재열과 통화 중임에도 정신이 없었던 박수찬은, 그 말을 자기 입으로 내뱉었다.

다행히 그런 박수찬을 이해한 듯 김재열이 다급히 외쳤다.

-이제 알았으면 빨리 보안팀원들 보내서 고대기, 그 새끼 치워.

“알았습니다.”

박수찬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근처에 있던 보안팀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빨리 VVIP룸으로 가서....”

그때였다. VVIP룸의 방문과 복도를 비추고 있던 CCTV카메라를 보고 있던 보안팀원이 소리쳤다.

“백준열 대표가 나왔습니다.”

“뭐?”

그리고 백준열이 고대기를 스쳐 지나서 주저앉아 있는 여자 쪽으로 향할 때, 고대기가 백준열의 팔을 잡아채는 걸 봤다.

“어어?”

“저저....”

“허억!”

“맙소사!”

그리고 박수찬 부 팀장을 비롯한 보안팀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백준열이 그들도 하기 어려운 유도 기술로, 고대기를 복도 바닥에 메치는 걸 보고서 말이다.

* * *

내가 겨우, 놀라 우는 강지영을 다독여서, 주저앉아 있던 그녀를 일으켜 세울 때였다.

“대표님 뒤....”

위치상 내 뒤쪽을 정면에서 보고 있었던 강지영이 말했다. 물론 나는 강지영이 말하기 전에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으로 쓰러져 있던 고대기가 몸을 일으킨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한 번 당하고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꼭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놈이 있다니까.’

바로 그런 놈이 고대기 과장 같은 인간이었다. 더 쳐 맞고 싶다는 데 그래줘야지 어쩌겠나?

나는 강지영을 일으켜 세운 뒤, 그녀에게서 손을 뗌과 동시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몸을 틀었다.

휙! 퍼억!

그리고 그대로 옆차기를 시도했다. 그 움직임이 하도 빠르다보니, 그 사이 나와 두어 걸음까지 거리를 좁힌 채 나를 덮치려고, 두 팔을 들었던 고대기는 내 얼굴보다 내 발을 먼저 봤다.

내 옆차기의 발이 정확히 고대기의 안면을 찼고, 고대기는 맞는 순간 기절해서 흰자위를 드러낸 채, 그대로 녀석의 등 뒤로 수직으로 꼬꾸라졌다.

문제는 저 대로 자빠지면 고대기 뒤통수가 복도 바닥에 그대로 부딪치게 되고, 자칫 머리가 깨지고 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보나마나 지금 이 장면을 CCTV카메라가 다 찍고 있을 텐데, 문제의 동영상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해서....

옆차기 후 바로 몸을 앞으로 숙이며, 쓰러지는 고대기의 허리춤을 잡으려 했다.

척!

다행히 나는 고대기의 바지 허리띠를 잡았을 수 있었다. 고대기의 뒤통수가 막 복도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닿기 전에 말이다.

“휴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가 잡고 있던 고대기의 허리띠에서 손을 놓자, 녀석이 그대로 복도 바닥에 널브러졌다.

“대표님!”

그때 고대기를 처리한 후 그 놈 옆에 서 있는 내게로, 감격한 얼굴의 강지영이 뛰어와서 안겼다.

나는 강지영을 안으면서, 누가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다면 내가 악당을 물리치고 미녀를 구한, 무슨 정의의 용사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딩동댕! 28층입니다.

촤르르!

엘리베이터가 28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4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내렸다.

나는 뒤늦게라도 주명석이 보안팀을 설득시켜서 보안팀원들을 이쪽으로 보낸 줄 알았다.

하지만 저들은 여기 호텔 보안팀원들이 아니었다.

일단 보안팀의 정복을 착용하지 않은 자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저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저 새끼다. 잡아!”

나는 처음 보는 자들인데, 저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잡겠다고 우르르 달려오는 걸 보고, 나는 품안의 강지영을 내 등 뒤로 보내며 말했다.

“호텔 방에 먼저 들어가 있어.”

“네? 하지만....”

“어서!”

단호한 내 말에 강지영은 바로 몸을 돌려서 VVIP룸으로 움직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지시였다. 내 충견인 강지영은 나를 수시로 쳐다봤지만, 내가 시킨 대로 VVIP룸으로 향했고, 가지고 있던 방 키로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나는 나를 잡겠다고 달려 온 4명에 둘러싸였다.

강지영이 안전하게 VVIP룸 안으로 들어가게끔, 나는 일부러 움직이지 않고 놈들에게 잡혀 준 거다. 물론 아직 잡힌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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