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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사실 강지영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거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 일족, 그러니까 내가 충견으로 삼은 여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내게는 여자 충견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견신 시스템이 개잡년 취급했던, 서지현 사모님의 비서 안지은이고, 또 한 명이 바로 내 눈앞에 강지영이었다.
그러니까 그 두 여자는 내가 충견 스킬을 사용하면, 그냥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들인 셈이다. 충견이란 의미가 바로 내 충복이란 뜻이니까.
근데 그 충견 스킬을 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강지영은 내 말을 따르는 거 같았다.
원래는 이동 중에 그들의 훈련 장소 겸 아지트이기도 한, 체육관에 들릴 생각이었던 문대식과 경호팀원들.
하지만 내가 임페리얼 호텔로 간다니, 그곳에 날 내려주고 체육관으로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차는 규정 속도를 지켰지만, 이리저리 차선을 옮겨가며 빠르게 목적지로 향했고, 20분도 되지 않아 우리를 임페리얼 호텔 입구 앞에 내려줬다.
“됐어. 그만들 가 봐. 갑시다.”
나는 호텔 안까지 나를 경호하려는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퇴근 시키고, 강지영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갔다.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임페리얼 호텔의 화려한 내부 정경이 속속 기억났다.
그러니까 백준열이 여기 하루 이틀 온 게 아닌 거다.
그때마다 옆에 여자 하나씩 달고. 백준열이 호색한 거야 익히 아는 바였지만, 녀석은 한 번 데리고 잔 여자와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프런트의 호텔 직원은 그런 백준열을 기억하고 있는 듯, 내 옆에 강지영을 그렇고 그런 여자로 보는 듯 했다. 기분 나쁘게 말이다.
예전의 백준열이었다면, 그런 호텔 직원 눈치 따윈 신경도 안 썼을 테지만, 나는 아니다.
“이봐요. 지금 내 일행을 쳐다보는 그 눈빛 뭐지?”
“네?”
설마 내가 자기 눈빛가지고 시비를 걸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프런트 호텔 직원이 당황해 했다.
“여기 CCTV 있지?”
내가 주위를 살피니, 과연 프런트 안팎으로 CCTV카메라가 잘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 총지배인 연결 해.”
당연히 호텔 측에서 아무 고객에게나 총지배인을 연결 시켜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곳 임페리얼 호텔에서도 VVIP고객이다. 총지배인이 아니라 호텔 대표도 내가 통화하고 싶다면 연결 시켜 줘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여기와 모든 거래는 끊어야겠지. 그걸 감수 할 자신이 있다면 그래도 된다. 막말로 서울 시내에 특급 호텔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는 임페리얼 호텔 지분 14.8%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고....그런데 여긴 지분을 왜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거야?’
이쯤 되면 총 지배인 쯤은 언제든 연락이 가능한 존재였다. 그런데....
“죄송한데 고객님. 저희 총 지배인님께서는 지금 출장 중이시라....”
프런트 호텔 직원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말이다.
* * *
임페리얼 경주 호텔 고대기 과장. 그는 임페리얼 호텔 입사 5년 차로, 다른 동기들은 다들 대리 직급에 머물러 있는데, 그 혼자 올해 덜컥 과장을 달았다.
그렇다면 다들 그가 유능해서 진급도 빠를 거라 생각할 텐데. 그건 또 아니었다.
고대기 과장은 오히려 무능한 쪽으로 분류 되던 직원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어떻게 다른 동기들 보다 빨리 진급을 한 걸까?
그건 서울 임페리얼 호텔의 총 지배인인 김영일이 그의 고모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김영일 총지배인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그는 고대기를 유능한 인재로 알았다. 왜냐하면 고대기가 그런 거처럼 연기를 잘 했기 때문에. 거기다가 고대기 주위에 사람들도 다들 고대기에 대해 좋게 말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 고대기의 작품이었다. 고대기가 자기 고모부가 누군지 떠들고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을 겁박한 것.
그러니 주위 사람들도 더럽지만, 어쩔 수 없이 고대기에 대해 좋게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아무튼 그런 고대기를 승진 시키면서, 김영일 서울 임페리얼 호텔 총 지배인은, 덜컥 그를 서울로 발령 내 버렸다.
“만세!”
“고대기가 갔다.”
“이제 호텔 다닐 맛 좀 나겠네.”
“그러게. 그 동안 고대기, 그 새끼 일까지 우리가 다 맡아 하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고대기가 경주 임페리얼 호텔을 떠나는 날, 그곳 직원들은 파티를 열었다.
그 만큼 고대기는 경주 임페리얼 호텔에 암적인 존재였던 것.
그런 암 덩어리가 서울 임페리얼 호텔로 옮겨갔고, 이내 그의 암적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서울 임페리얼 호텔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암울해졌다.
당연히 그런 사실을 서울 임페리얼 호텔 총 지배인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영악한 고대기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 다 손을 써 놨으니 말이다.
결국 죽어나는 건 호텔 현장의 직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대기에게 위기가 닥쳤다. 능력도 안 되면서 기어코 호텔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런트로 들어간 고대기.
그는 딱 봐도 있어 보이는 젊은 남자와, 그 남자 옆에 늘씬한 미인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새끼. 부모 잘 만나서 뭔 복이냐?’
그러면서 음흉한 눈길로 그 남자 옆의 미인을 흘겨봤다. 그랬는데 갑자기 그 젊은 남자가 그에게 따지고 들었다.
‘뭐야? 이 새끼?’
고대기는 짜증이 났다. 자기가 손님이면 손님이지. 옆에 여자 좀 봤다고 자기 눈빛 가지고 시비를 걸다니.
‘C발. 그것 좀 본다고 다는 것도 아니고....’
저런 놈은 호텔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다시는 호텔 출입을 못하게 만들어 놔야 했다. 그랬는데 설상가상 저 놈이 CCTV를 거론했다.
‘빌어먹을 CCTV....’
안 그래도 CCTV 때문에 자신의 비리를 몇 번이나 들킬 뻔 했던 고대기.
숨길 게 많은 그에게 있어서, CCTV는 진짜 거추장스런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하긴 그 영상자료하나면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이 빼박 증거가 되니까.
근데 젊은 남자가 CCTV거론 이후 총 지배인을 찾았다.
‘미친 새끼. 총 지배인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나?’
고대기는 이럴 때 써 먹는 멘트를 날렸다. 총 지배인님 출장 중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젊은 남자의 얼굴이 싹 돌변했다.
“지금 나한테 총 지배인이 출장 중이어서 연락 할 수 없다고 한 거야?”
‘근데 이 새끼는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젊은 남자의 계속 된 반말에 고대기도 화가 났다. 그래서 그도 그냥 말을 놨다.
“그래. 연락 할 수 없다. 뭐?”
“....”
그런 고대기의 반말에, 젊은 남자가 잠깐 뻥 찐 얼굴로 그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근데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뭐 그러던지 말든지 고대기는 젊은 남자를 그대로 내버려 뒀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서 웃고 난 젊은 남자가 갑자기 뚝 웃음을 그쳤다.
‘이제 보니 진짜 미친 새끼였네.’
그런 젊은 남자를 팔짱 끼고 한심하게 쳐다보던 고대기. 그를 향해 젊은 남자가 그의 가슴에 차고 있던 명찰을 보고 말했다.
“고대기 씨?”
“고대기 과장이다.”
“그래. 고대기 과장님. 나하고 내기 하나 할까?”
“헛소리 작작하고 꺼져라. 그리고 너 이름 블랙리스트에 올릴 테니까, 앞으로 호텔 주위에 기웃거리지 말고.”
“호오! 블랙리스트? 그게 진짜 있었군.”
“당연히 있지. 호텔에서 너 같은 진상들 걸러 내야 하니까.”
“그래서 나하고 내기는 못하겠단 거네?”
“네 눈에는 내가 한가해 보이니? 저 여자 데리고 빨리 모텔이나 가. 새끼야.”
“고, 고 과장.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그때 프런트에 서울 임페리얼 호텔에서, VVIP를 담당하는 주명석 차장이 나타났다.
* * *
갑자기 한 달 사이 임페리얼 호텔의 서비스 지수가 확 떨어졌다.
서비스 지수가 떨어졌다는 건, 고객 만족도가 그만큼 내려갔다는 거고, 호텔을 이용한 고객들이 호텔 서비스에 불만이 많아졌단 소리였다.
그걸 보고 총 지배인인 김영일이 호텔 각 파트 장들에게 한 소리씩 했다.
“다들 해이해 진거 같은데 정신들 차리라고 해요. 파트 장들도 알다시피 본사에서 인력감축 카드를 언제 꺼내들지 모르니까.”
또 저 소리다. 툭하면 꺼내드는 총 지배인의 정리해고 쇼에, 각 파트 장들도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앞에서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그들 처지였다.
당장 그들의 인사권자인 총 지배인의 눈 밖에 나면, 이 살기 좋은 서울에서 쫓겨나, 경주나 제주도 체인점으로 가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런 가운데 VVIP담당으로 총 지배인도 눈치를 봐야 한다는 주명석 차장.
그가 총 지배인에게 손을 들었다. 그걸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린 총 지배인 김영일.
그는 딱히 주명석 차장의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각 파트 장들도 다 보고 있는 자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명석 차장에게 발언할 기회를 줄 수밖에 없었다.
“주 차장. 할 말이 뭔데?”
“총 지배인님. 호텔 서비스 지수가 한 달 사이에 이렇게 떨어지는 건, 저로써 처음 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슨 조사? 주 차장. 당신 지금 내부 감사라도 하겠다는 거야?”
내부 감사란 총 지배인의 말,에 각 파트장들이 난색을 표했다. 말 그대로 내부 감사란 호텔 직원들을 털겠다는 소리였다. 그걸 좋아 할 호텔 직원들은 없었다.
“아뇨. 내부 감사까지 갈 필요는 없고. 제가 전체적으로 한 번 훑겠습니다.”
자기 고생 자기가 사서 하겠다는데, 그걸 두고 뭐라고 할 김영일 총 지배인이 아니었다.
“뭐 그러던가. 하지만 이번 주까지야.”
김영일 총 지배인이 주명석 차장에게 그 뻘짓의 기간을 한정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다음 주부터 호텔에 큰 행사가 있었고, 그 행사의 주인공들인 VVIP고객들 관리를 주명석 차장이 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월요일의 주간 회의가 끝나고, 주명석 차장은 자기 일을 하면서, 틈틈이 호텔을 둘러 봤다.
그러면서 왜 서비스 지수가 급격히 떨어졌는지 찾아 나섰고, 점심시간 때 그 이유를 기어코 알아냈다.
“고대기 과장!”
바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서울 임페리얼 호텔의 물을 흐려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파로 능률이 급격히 떨어진 호텔 직원들의 서비스 질이 확 떨어졌고.
주명석 차장은 그 사실을 바로 총 지배인에게 직보 했다. 그랬더니....
“주 차장. 당신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참 옹졸하군.”
“네?”
“고 과장이 경주에서 왔다고 이러는 모양인데. 이건 아니지. 그 한 사람 때문에 호텔 서비스 지수가 그렇게 떨어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총 지배인님. 그거야....”
“됐고. 나가 봐.”
주명석 차장은 총 지배인 김영일과 말하는 게, 마치 벽보고 얘기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그의 입사 동기인 인사부 김석훈 차장을 통해서 말이다.
“뭐? 그러니까 고 과장의 고모부가 총지배인님이었다고?”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명백한 증거와 증인이 있는 사안인데, 총지배인은 그걸 무시하고 되레 주명석 차장을 옹졸한 사람으로 몰았다.
“안 되겠어. 대표님께 보고해야지.”
주명석은 총 지배인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그 위인 호텔 대표에게 이 사실을 알릴 생각을 했다. 그러자 그의 동기 인사부 김석훈 차장이 그를 바로 만류했다.
“하지 마.”
“왜?”
“김영일 총 지배인 누나가 대표님 사모야.”
“뭐? 하아....이놈에 지긋지긋한 인맥....”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으로 프런트로 향했던 김영일. 그런 그의 귀에 호텔 로비가 떠나가라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김영일은 곧장 그 소리가 나는 진원지인 프런트로 뛰어갔고, 거기서 눈에 익은 젊은 남자를 봤다. 그리고 그 젊은 남자가 시끄럽게 웃은 당사자란 것도 알 수 있었고.
그때 그 젊은 남자가 프런트 안의 여기 호텔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 주명석 차장 눈에 보였다.
“저, 저....”
호텔 직원, 그것도 프런트 직원이 손님과 저렇게 대거리를 한다? 그건 호텔 직원의 서비스 정신에 위배 되는 짓이었다.
주명석 차장은 곧장 프런트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기가 찬 장면을 목격했다.
프런트 안의 호텔 직원이 손님에게 찍찍 반말을 내 뱉고 있었다.
그 어떤 진상 고객이라도, 호텔 직원이 손님에게 말을 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혹 그 손님에게 인격 모독을 당하고, 두들겨 맞는다고 해도 반말이나 욕설은 절대 해선 안됐다.
주명석 차장은 곧장 프런트 안으로 들어갔고, 그제야 손님을 향해 반말을 지껄여 대고 있는, 그 제정신 아닌 직원이, 고대기 과장임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빽 소리쳤다.
* * *
“차, 차장님?”
“고 과장. 당신 미쳤어? 손님께 어디 반말을....”
“그, 그게....”
“여기 재미있는 곳이네.”
그때 고 과장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손님이, 주명석 차장과 고대기 과장 사이에 끼어들었다.
주명석 차장은 그런 고객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고대기 과장을 프런트 밖으로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헉! 백, 백 대표님?”
젊은 남자를 가까이서 본 주명석 차장이 기함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날 알아보는 직원이 있어서.”
주명석 차장을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저 젊은 남자.
그는 임페리얼 호텔 VVIP고객 중에서도, 서열로 따지면 3위에 해당하는 초특급 손님이었다.
참고로 임페리얼 호텔 VVIP고객 1위는 임페리얼 호텔 회장이고, 2위는 부회장이다.
서울 임페리얼 호텔 대표는 서열 10위권 밖이고. 그런데 저 젊은 남자가 임페리얼 회장의 일족도 아닌데, 서열 3위라는 건....
‘그만큼 임페리얼 호텔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