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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서울경찰청장 박대순. 그는 오늘 오전에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으음....”
경찰대 동기로 같이 승승장구하며, 서울경찰청장과 경찰청장 자리에 오른 두 사람.
박대순 입장에서 현 경찰청장 정세현은 번번이 그에게 좌절을 선사한 라이벌이었지만, 또한 그가 있었기에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지금의 그가 있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해서 박대순은 정세현이 청장 자리에서 명예롭게 물러나길 바랐다.
하지만 정권 교체기에서 정세현은 아무래도 좋게 퇴진하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스스로 물러 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거 해도 너무 하는군.”
대검 중수부의 기습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청와대에서 동시에 정세현 청장의 경질을 발표했다.
그리고 박대순을 더 짜증나게 만든 것은, 그 발표 때 그의 인선까지 같이 청와대에서 공표한 것이다.
마치 박대순이 청장이 되려고, 정세현 청장을 쳐 낸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근데 또 그 말이 틀린 게 아닌 것이, 오전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을 때, 이미 그 점에 대해 언급을 했었다.
즉 박대순이 청장이 되면, 그가 전 경찰청장에 대한 수사를 직접 지휘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경찰청장의 힘을 오롯이 전 청장인 정세현을 처벌하는 데 쓰라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요즘은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었다.
근데 대검 중수부가 대뜸 경찰 수장의 방을 압수수색한다?
한마디로 경찰의 권위가 땅에 처박힌 꼴이었다. 그래 놓고 뭐 전 경찰청장 수사에 최선을 다해?
이미 경찰청 게시판에는, 최고위 경찰간부들 중에서 자기 할 말 하는 자들이, 강력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해서 서임 받고 경찰청에 오자마자, 박대순 신임청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경찰 게시판 폐쇄였다.
그 다음으로 그가 가장 먼저 간 곳은, 경찰청장의 방이 아닌 정세현 전 청장이, 사실상 감금 되어 있는 외사국 조사실이었다.
“다들 나가.”
신임 경찰청장의 지시에 정세현 전 청장을 조사 중이던, 외사국 담당관들이 조사실 밖으로 다 나가자, 박대순이 초췌한 얼굴의 정세현을 보고 말했다.
“내가 작작 좀 해 쳐 먹으라고 했지?”
그러자 정세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누가 들으면 넌 깨끗한 줄 알겠다.”
“그래도 너처럼 티 나게 쳐 먹진 않았다. 그러니 청와대에서도 내 비위는 캐내지 못한 걸 테고.”
“과연 그럴까?”
정세현은 박대순에게 뭔가 해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그걸 말해 주는 게, 박대순에게 별 도움이 될 거 같이 않아서 말이다.
“이제 어쩔 거야?”
“어쩌긴....이미 다 끝 낸 얘기 아닌가?”
정세현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청와대에서 작정하고 그를 감옥에 처넣으려 한다는 걸 말이다.
“미안하다.”
“괜찮아.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도 너처럼 했을 테니까.”
“경찰 쪽에서는....약하게 갈 거야.”
“청와대에서 별로 안 좋아 할 텐데?”
“총선이 코앞이야. 거기서 여당이 참패하면....대통령도 함부로 날 뛰지 못해.”
“누가 들으면 네가 경찰청장이 아니라 점쟁이라고 하겠다.”
“애들한테 얘기 해 놓을 게. 살살하라고.”
“고맙다. 그리고....아니다.”
정세현은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자기 아들 정재욱을 박대순에게 부탁하려다 말았다.
하지만 그건 정세현이 잘한 결정이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박대순에게 정세현은 그래도 존중해 줄 말한 라이벌이었지만, 그 아들 정재욱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골프장에서 박대순에게 제대로 찍힌 정재욱이었다.
그나마 그의 눈에 안 띠어서, 그대로 두고 있지 띠었다면 그가 공언한대로, 절대 가만 두지 않았을 박대순이었다.
* * *
정세현을 보고 나서 박대순 청장은 점심을 먹었다. 경찰청의 주요 부서장들과 같이 말이다.
그 식사 자리에서 박대순은 정세현 전 청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피력했다.
그러니까 정세현 전 청장에 대한 수사 가이드를 그가 제시한 것이다.
“경찰은 경찰이 잘 알지. 청와대와 검찰이 우릴 어떻게 알아?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청장님.”
박대순은 정세현 전 청장에 대한 수사를 최소화 하고, 예우도 잘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연히 이는 청와대와 검찰에 대척하는 짓이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경찰끼리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조치였기에, 그걸 두고 뭐라는 경찰청의 부서장은 없었다.
“휴우....”
그 뒤 드디어 경찰청장 방에 들어 선 박대순.
그는 청장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부터 내 쉬었다. 여기 오기까지 그가 그 동안 겪어야 했던, 온갖 궂은일들이 그의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의 입 꼬리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진짜 힘들었지만 그걸 다 해결하고 나니, 이렇게 경찰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가급적 이 자리에 오래 있도록 하자.”
경찰청장이 되고 보니 정말 좋았다. 이 자리에서 영영 내려가고 싶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러려면 이곳에서도 줄을 잘 서야 했다. 따라서....
청와대도 중요하지만 그 청와대를 움직이는 힘. 그건 바로 돈의 힘이었다.
대한민국의 돈줄을 쥐고 있는 곳은, 바로 삼명그룹이었고.
“삼명그룹과는 반드시 같이 가야 해.”
바로 그때 박대순의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백준열이다.
바로 그와 삼명그룹을 이어 주는 고리 역할을 맡고 있는 중요한 존재.
“크음. 여보세요?”
=축하드립니다. 청장님.
“허허허허. 뭘 또. 그 얘기는 이미 저번 주 골프장에서 하지 않았나?”
=그래도 청장에 내정 되신 거랑, 청장이 된 거랑 같을 수 있습니까?
“아직 청문회도 남았어.”
=그야 형식적인 거구요. 제가 그룹 쪽에 얘기해 뒀습니다.
“그, 그랬나? 허허허허. 고맙네. 이거 자네 덕분에 청문회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겠어.”
=안 그래도 바쁘신 청장님을, 청문회 장에 오래 묶어 둘 수 있나요?
“허허허허. 역시 젊은 사람이라 합리적인 면이 있어. 내가 이래서 백 대표를 좋아한다니까.”
=저도 청장님 좋아하는데. 이거 피장파장이네요.
“그러게. 허허허허. 그나저나 자네도 사업하는 데 있어서, 혹여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하게. 내가 손 써 줄 테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방금 생각이 났습니다.
“뭔가?”
=토요일에 골프 칠 때 같이 있었던 경찰 분들 중에, 정재욱 수사과장 말입니다.
“정재욱이 왜?”
=알고 보니 저희 직원을 불법 내사하고 괴롭혔더라고요.
“뭐?”
=청장님 선에서 적절한 조치가 있었으면 하고요. 또 이건 지금 바로 처리해 주셨으면 하는 일인데, 서울경찰청에 감찰부를 좀 움직여서 송파경찰서로 좀....
박대순은 백준열의 얘기를 쭉 경청하고 나서 그에게 말했다.
“정재욱 과장은 내가 알아서 서울에서 먼 곳으로 인사 조치하겠네. 그리고 송파경찰서로는 바로 감찰부장을 붙여서 감찰관들을 보내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청장님.
“뭘. 자네가 날 위해 특별히 신경 써 준 것에 비하면 별 거 아니네.”
그렇게 백준열과 통화를 끝낸 박대순.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가 삼명家 핏줄 아니랄까....챙겨 준만큼 받아 챙길 줄 아는 군.”
그 말 후 박대순은 곧장 서울경찰청 감찰부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박대순을 경찰청장이지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는 서울경찰청장이었다.
그리고 아직 서울경찰청장 내정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청장이 박대순이 자기 후임을 아직 정하지 않았으니까.
=네! 청장님!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감찰부장의 그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즉시 감찰부 수사관들 대동하고 송파경찰서로 가. 가서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감찰해.”
=법과 원칙에 따라요?
“그래. 아마 송파경찰서장, 그 자리에서 긴급 체포해야 할지 몰라.”
=지, 지금 일선 서장을 현장 체포하라고요?
“뭐가 문제야? 불법 저질렀으면 현장 체포지. 거기다 서장 위치에서 얼마든지 증거인멸 할 수 있잖아? 그걸 막기 위해서 긴급 체포하란 얘기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빨리 움직여.”
=네.
그렇게 백준열이 요구한 대로 서울경찰청의 감찰부를 송파경찰서로 보낸 뒤, 박대순은 경찰청장으로 제일 먼저 인사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서울경찰청의 수사과장 정재욱을....어디로 보낸다?”
그때 박대순의 머릿속에 생각 난 게 제주도였다.
거기 있던 후배 녀석, 제주경찰청 경찰차장 때문에, 어제 백준열로부터 애먼 소리를 들어야 했던 박대순.
“그 녀석 밑으로 보내서 좀 갈구라고 하면....”
아마도 제주경찰청장이 되려고 악착 같이 정재욱을 괴롭힐 터.
그렇게 정재욱이 경찰을 때려치운다면 그야 말로 최상의 결과였다.
“좋았어.”
박대순 청장은 정재욱을 제주경찰청 형사과장으로 발령 냈다.
그것이 그가 경찰청장이 되고 낸, 1호 인사명령이었다.
* * *
내가 박대순 청장과 통화하는 사이, 김 비서가 뒷정리를 시작했다.
물수건을 챙겨 와서 내 자지에 묻은 애액을 깨끗이 닦아 내고, 새 팬티를 챙겨 온 것.
나는 통화를 끝낸 뒤, 새 팬티로 갈아입고 바지를 입었다.
생각 같아서는 김 비서와 더 빠구리를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내게는 그럴 시간이 부족했다. 오후에 정해 진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지금 외출 준비를 해야 했던 것.
“잘 다녀오세요.”
김 비서가 대표실 앞에서 날 배웅했다. 하지만 오늘 중 내가 다시 회사에 올 일은 없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미팅 후 나는 바로 퇴근하고 ,김 비서도 시간 되면 칼 퇴근 할 테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월요일이고, 월요일에 내가 가서 잘 내 여자의 집은....남소라의 집인데 이제 보니까,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확인하니 오늘부터 남소라가 생리 시작 됐단다. 피보고 싶지 않으면 오지 말라는 그녀의 살벌한 메시지를, 나는 바로 접수하고 그 메시지는 즉시 지웠다.
“오늘도 호텔에 가야 하나?”
그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간 나는, 대기 중인 차에 올랐다.
지금 내가 스케줄 상 만나러 가는 사람은, 힙합 레이블 ‘사람과 바다’의 대표인 장하늘이었다.
‘사람과 바다’는 한국 언더 힙합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그곳의 시초는 음악평론 동호회로, 홍대 앞 xx클럽을 인수해서 초창기 클럽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이때 클럽과 함께 소속 뮤지션들의 음반을 발매해주며, 레이블의 성격을 갖추다가, 이후 클럽 운영의 중단과 함께 완전한 레이블로 거듭나게 됐다.
레이블화 이후에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미디어 쪽 진출을 꾀하고 있었는데, 수장인 장하늘의 수완이 워낙 좋지 않아 큰 재미는 못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장하늘이 자기네 힙합 레이블을 살려 보겠다고, 지금 나와 만나려 한다는 거네?”
그런데 왜 내가 장하늘을 보러 가야 하는 걸까? 아쉬운 쪽은 그쪽인데?
그 생각이 들자 백준열의 장하늘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으음....”
그러니까 백준열은 장하늘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를 JYB엔터에 영입하기 위해서, 지금 삼고초려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나는 장하늘 별론데....”
왜냐하면 바로 내년에 장하늘이 속했던 DJ클럽의 노래 중 몇 곡이, 실제 장하늘이 아닌 무명 작곡가의 노래로 밝혀지면서, 장하늘과 그의 힙합 레이블은 세인들의 지탄 속에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런 장하늘을 내가 뭐 하러 영입 한단 말인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 무명 작곡가를 영입하지.
“그 작곡가 이름이 김영섭이었나?”
김영섭은 후일 ‘블랙독’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저작권등록만 300곡을 넘겨, 히트곡 제조기로 불린다.
내 생각에는 장하늘과의 만남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이미 잡힌 약속이다 보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문대식의 경호팀원들과 같이, 나는 장하늘의 힙합 레이블이 있는 장충동 동대 입구 역 근처, 평화 빌딩이란 건물 앞에서 일단 내렸다.
장하늘의 힙합 레이블은 그 평화 빌딩이란 건물 5층에 있었는데, 우리의 만남은 힙합 레이블의 사무실이 아닌, 그 건물 1층 커피 전문점에서 이뤄지기로 약속 되어 있었다.
나는 약속 시간 보다 5분 정도 빨리 그곳에 도착해서 미리 커피를 주문했다.
물론 입이 고급이신, 내 경호팀원들도 내가 주문하자마자 뒤따라 주문을 해 댔고.
* * *
근데 약속 시간이 10분이 지나도 장하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실 때까지 장하늘이 오지 않으면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별 쓸데도 없는 새끼와 곧 망할 레이블 때문에, 이렇게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경질 나는 데 말이다.
“헉헉헉....”
그때 어리바리하게 생긴 젊은 남자 한 명이 커피 전문점에 등장했다.
녀석은 커피 전문점 안을 훑어보더니, 곧 경호팀원에 에워싸여 있는 날 보고는, 내 쪽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그런 그의 앞을 문대식이 막아서자, 그가 바로 나를 향해 외쳤다.
“혹시 JYB엔터 대표님 되십니까?”
“그런데요?”
“저는 힙합 레이블 ‘사람과 바다’의 프로듀서 영섭이라고 합니다.”
“누구라고요?”
“저...김영섭입니다. 저희 장하늘 대표님께서 지금 급하신 일 때문에, 여기 내려오기 어려우니....대표님께서 올라오시라고....”
보아하니 장하늘이 나를 띄엄띄엄, 그러니까 얕잡아보고 있었다.
아마도 백준열이 자신의 팬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인 거 같았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장하늘을 하나도 안 좋아하는데.
오히려 남의 곡이나 훔쳐서, 자기가 만든 곡처럼 발표하는, 장하늘의 그 뻔뻔함을 경멸하는 데 말이다.
“앉아 봐요.”
“네?”
내가 자리를 권하자, 어리둥절해 하는 장하늘이 보낸 어리바리한 젊은 남자, 김영섭.
그런 그가 내 앞에 앉자 내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뭐 마실래요?”
장하늘은 만날 필요 없었다. 내 눈앞에 앞으로 5년은 족히 우려먹을 수 있는, 히트곡 제조기가 있는데 뭐 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