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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금도그룹 함평도 실장은 오늘도 바쁘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바쁘다는 표현을 가끔 쓰는데, 함평도에게는 매일이 정신없이 바빴다.
꼬르르륵!
금도그룹 회장 일가에서 생긴 일을 막 해결하고, 금도그룹 본사로 복귀하던 함 실장의 배에서 크게 소리가 일었다.
그 소리에 운전 중인 그의 수행비서가 눈매를 좁히더니 백미러를 통해 함 실장을 보며 물었다.
“실장님. 설마 또 점심을 건너뛰신 겁니까?”
“어어. 또 그렇게 됐네.”
“이러다 큰일 나십니다.”
“저기 분식집 있네. 저기 잠깐 차 대 봐.”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수행비서가 뭐라고 하면, 그나마 김밥이라도 챙겨 먹으니 다행이긴 했는데....
오늘도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김밥 한 줄로 점심을 해결하는 함 실장. 그러면서도 노트북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그를 보고, 수행비서를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일벌레가 있다면 딱 저러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아니. 저건 일중독이야. 중독.’
오늘 역시 수행비서를 질리게 만드는데 성공한 함 실장.
그는 금도그룹 본사에 들어가자, 미친 듯이 밀린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3시에 몸을 일으켰는데, 그때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혼자서 금도그룹을 빠져 나와서, 그림자 1호와 접선 장소인 한성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은행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 시간을 확인하니 정확히 3시 30분이었다.
함평도는 곧장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은행 안에는 당연히 그림자 1호, 그러니까 삼명그룹 최 집사가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는 항상 약속 시간 보다 일찍 와 있었으니까.
“응?”
그런데 오늘은 그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한 후, 함평도는 주위에 수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은행 대출 쪽 대기표를 뽑은 뒤 대기석에 앉았다.
그렇게 5분, 10분을 기다려도 최 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더 굳어 가는 함평도의 얼굴.
그렇게 30분을 기다리던 함평도. 그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가 든 대기표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321번 고객님!”
하지만 함평도는 그 대기표를 구긴 뒤, 휴지통에 넣어 버리고 은행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대 놓은 차에 탄 함평도는, 즉시 금도그룹에서 그림자들을 관리하는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그림자 1호에게 문제가 생긴 거 같다. 오늘 약속 시간에 나오지 않았어.”
=그, 그럼....
“알아보고....꼬리 자르기에 들어간다.”
=네.
자신의 촉을 믿는 편인 함평도. 그는 그림자 1호, 삼명그룹에 심어 뒀던 첩자 최 집사가 결국 그 정체가 탄로가 났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쉽군. 아쉬워.”
20년 넘게 잘 이용해 먹은 고정 첩자였다. 그런 자를 이렇게 잃다니.
본사로 가는 동안 그림자들 관리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최 집사와 연락이 완전히 끊겼으며, 삼명그룹 본가 저택에서도 이미 최 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아아....”
긴 한숨을 내 쉰 함평도. 그가 결국 본사에 도착도 하기 전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회장님 바꿔.”
잠시 후 금도그룹 구도철 회장이 전화를 받았다.
=왜?
“회장님. 그림자 1호가....제거 됐습니다.”
=으음....아쉽군.
금도그룹 구 회장의 입에서도 함평도 실장과 같은 말이 나왔다.
그 만큼 그 동안 그림자 1호가 가져 온 정보들이, 금도그룹 발전에 있어 요긴하게 쓰였던 것이다.
=뒷정리 잘해. 그쪽과 트러블 생겨 봐야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네.”
=그리고....거기 고정 첩자하나 더 심는 거 어렵겠지?
“네. 사실상 불가능 한 일입니다.”
그림자 1호의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사람에게 총애를 받는 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20년 넘게 믿었던 자가 첩자로 밝혀진 마당에, 삼명그룹 백 회장이 누굴 믿겠나?
그것도 삼명그룹 쪽 인재도 아닌 사용인 따위 중에서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백 회장 아들들에게나 첩자들 잘 심어 둬.
“안 그래도 차기 회장이 유력한 장남과 둘째에게 그림자를 심어 뒀습니다.”
=잘했네. 그 능구렁이 백 회장. 더 살아 봐야 10년 안이야. 10년 만 견디면 돼.
구도철 회장의 그 말에 함평도는 피식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과 구도철 회장의 나이차이는 고작 2살 차.
백 회장이 10년 안에 죽는다고 말하고 있는, 구도철 회장의 건강 역시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함평도 실장은 그런 불상사가 일어 날 경우도, 이미 철저히 대비해 두고 있었지만.
삼명그룹과 달리 금도그룹은 후계 구도가 거의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장남인 금정우에게 구 회장이 꽤 많은 지분을 넘긴 상황. 그리고 함평도는 그 후계자가 확실한 금도철 회장의 첫째 아들 금정우와 이미 손을 잡고 있었다.
“네. 네. 확실하게 꼬리 잘라 놓겠습니다. 네. 지금 본사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네.”
금도철 회장과 통화를 끝낸 함평도 실장. 그는 구 회장과 통화 하느라 잠깐 갓길에 대어 둔 차를 다시 몰고 금도그룹 본사로 향했다.
* * *
사무실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난 차은석. 그런 그녀에게 잘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지?”
의아해 하며 그녀는 일단 그 전화를 받았다.
=차 부문장님. 저 김준오입니다.
김준오라면....TVM의 대표 백준기의 수행비서였다가 백 대표의 눈에 띠어서 JYB엔터와 예능인 전속 계약을 체결한 사람이었다.
“아. 네. 김준오씨.”
계약할 때 차은석은 그 자리에 있었고, 그에게 자신의 명함을 줬었다.
=저....죄송한데 소속사의 도움이 좀 필요한 거 같습니다.
“네?”
=여기 경찰서거든요.
“네에?”
김준오의 뜬금없는 소리에 차은석이 놀라 할 때, 김준오가 빠르게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준오씨는 호의로 도움을 줬는데, 상대가 그걸 빌미로 준오씨를 경찰에 고발했단 말이군요?”
=네. 뭐 결론적으로 그런 셈이죠.
“어디 경찰서라고요?”
=송파 경찰서요.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그리고 제가 갈 때까지 어떤 진술도, 사인도 하지 마세요.”
=네. 입 꾹 다물고 두 손 깍지 끼고 있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위트 잘 받아주는 김준오. 예능인의 자질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그다.
그런 그를 발굴해 낸 백준열 대표의 안목에 탄복하면서, 통화를 끝낸 차은석은 곧장 JYB엔터 법무팀에 전화를 걸었다.
“저 차은석 부문장인데요.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네. 네. 저희 쪽 연예인이 지금 경찰서에 있다고 하네요. 네. 자세한 건 그쪽으로 가는 중에 설명하면 안 될까요? 네. 지금이요? 저야 좋죠. 네. 그럼 회사 1층 주차장에서 봐요. 네.”
차은석은 JYB엔터 소속 법무팀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김준오가 잡혀 있다는 송파 경찰서로 향했다.
차은석은 그쪽으로 가는 중 법무팀 변호사에게 김준오가 왜 경찰서에 잡혀 있는지, 그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변호사가 개탄하며 말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또 이런 일이 벌어졌네요. 선량한 사람 뒤통수나 치는....이러니 요즘 사람들이 주변에 무슨 일이 생겨도 꼼짝을 안하는 거라니까요.”
법무팀 변호사는 이럴 경우 대처는 한 가지 뿐이라고 했다. 그건 바로....
* * *
TVM에서는 잘렸지만 JYB엔터라는, 연예 기획사 중에서는 대기업인 곳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 김준오.
그는 오늘도 8시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 운동까지 하고, 든든히 아침밥까지 챙겨 먹고 출근길에 올랐다.
불과 며칠 전까지 8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던 그가, 이제는 10시까지 회사에 가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하루 6시간, 예능인이 되기 위한 각종 트레이닝 후 퇴근. 근데 그 6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출근길이 이렇게 즐거울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룰루루...랄라라....”
그렇게 기분 좋게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지하철을 타고 출근 중이던, 김준오의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포착 됐다.
“저 새끼가....”
웬 대머리 중년 남자가 젊은 여자 뒤에 붙어서 희롱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걸 보고 정의감 넘치는 우리 지방 촌놈 김준오가 나섰고....
“너 뭐야?”
“네?”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지? 너 무고죄로 콩밥 먹을 줄 알아.”
오히려 그 대머리 아저씨가 김준오에게 화를 냈다. 그런데 더 기가 찰 노릇은 기껏 성추행에서 구해 준 젊은 여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돌변해서, 자기는 대머리 아저씨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이 없다고 우긴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 세 사람은 경찰서까지 갔고, 그 경찰서에서 김준오는 바로 범죄인 대우를 받았다.
“아이고. 양 부장 판사님!”
왜냐하면 젊은 여자를 성추행한 대머리 아저씨의 정체가 판사였던 것.
그것도 송파 경찰서의 관할 서울동부지방법원의 부장 판사.
그 분이 잡혀 오자 송파 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졌고, 경찰서장이 즉시 튀어나오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정 서장. 수고 많아요. 이런 일로 민폐를 끼치네.”
“아닙니다. 부장님의 무고를 저희가 밝혀 드리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아직 밝혀진 게 하나도 없는데, 경찰들은 대머리 부장 판사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다.
“부장님. 제 방으로 가시죠?”
“그럴까요?”
대머리 부장 판사는 경찰서장실로 들어가는 데 김준오는 바로 조사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이봐. 김준오씨.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조사실에서 불친절한 형사의 첫 질문은 김준오의 신상 정보였다.
“저요? 저는....JYB엔터 직원인데요.”
“JYB엔터?”
“그래서 말인데. 저 전화 좀 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대신 짧게. 알죠?”
“네네.”
그렇게 김준오는 실질적으로 자신을 맡아 관리하고 있던, 차은석 부문장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 뒤 김준오는 차은석 부문장에게 말 한 대로, 두 손에 깍지 끼고 형사의 그 어떤 질문에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뒤, 차은석과 JYB엔터 법무팀의 변호사, 그리고 기자들이 개떼같이 송파 경찰서를 급습했다.
* * *
송파경찰서장은 오전부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자 짜증이 많이 났다.
안 그래도 관할 서울지방법원과 사이가 좋지 않은데, 거기 왕 고참이라 할 수 있는 정대철 부장 판사가 ,말도 안 되는 사건에 연루 되어 경찰서까지 잡혀 왔지 뭔가.
해서 빨리 이 사건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특별히 취조에 능한 베테랑 형사를 투입 시켜서, 정 부장 판사를 모함한 그 젊은 놈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게 조치를 취했다.
그 놈이 자백하는 순간 송파경찰서장은, 놈을 유치장에 처넣고 정 부장 판사를 풀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놈에게서 자백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지 않았다.
그 덕에 서장실에서 정 부장 판사와 쓰잘때기 없는 소리나 지껄이던 송파경찰서장.
“뭐? 기자들이?”
그런 그에게 기다리던 자백 받았다는 얘기가 아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왔다.
얘기인즉슨, 정 부장 판사를 성추행 범으로 몬, 그 젊은 놈의 회사에서 변호사와 함께, 글쎄 기자들을 개떼처럼 데리고 경찰서를 찾아 온 것이다.
“채 서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잘 무마 시키겠다더니?”
대머리 정 부장 판사의 이마에서 스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지만 지금 송파경찰서장은 정 부장 판사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다 자기 목도 뎅강 잘릴지 모를 지경이었으니까.
이때 송파경찰서에서 가장 당혹스런 사람은 김준오를 취조하던 베테랑 이 형사였다.
그는 한 시간 째 능청스런 얼굴로 그의 질문을 요리조리 잘도 회피하며, 꼭 필요한 진술에 묵비권을 행사 하는 김준오 때문에 제대로 열이 받아 있었다.
“야! 그래서 거짓말을 했단 거야? 안 했다는 거야?”
“당연히 안 했죠.”
“뭐?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 너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래서 점점 그에게 하는 말이 거칠어지고 있었는데, 하필 그가 김준오에게 대 놓고 욕을 했을 때, 녀석의 변호인이 취조실에 들어왔다. 그러며 하는 소리가....
“지금 저희 직원에게 폭언과 욕설, 거기다가 고문까지 하겠다고 한 겁니까?”
그러면서 녹음 중인 핸드폰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니까 취조실 앞에서부터, 바로 안 들어오고 핸드폰으로 이 형사의 말을 녹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만약 저 녹음 내용이 경찰서 밖으로 유출 된다면....
아무리 베테랑 형사라지만, 이건 시말서 한 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형사는 저 변호사에게 제대로 코가 꿰인 것이다.
“원하는 게 뭐요?”
베테랑 답게 이 형사가 김준오의 변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변호사가 상당히 상식적인 요구를 했다.
“사건이 있은 그 시각 지하철 안의 CCTV 영상이요. 그걸 보여주세요.”
당연히 그 사이 증거 확보를 위한 조치가 있었고, 지하철 안의 CCTV 영상도 지하철 공사에서 확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형사도 그걸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었으니까.
부장 판사는 무죄고, 그를 성추행 범으로 몬 젊은 남자는 유죄로 말이다.
이 형사는 변호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그 지하철 안의 CCTV 영상을 빼내 와서 조사실에서 확인했다.
“허어....”
그랬더니....대머리 정 부장 판사가 버젓이 젊은 여자 뒤에서 성추행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기가 차하는 이 형사를 보고 김준오의 변호인이 말했다.
“이거 터트려도 되죠?”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이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로 그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어차피 이 모든 책임은 송파경찰서장이 다 지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
“핸드폰에 녹음 된 내 목소리를 지워 주신다면....”
“물론이죠.”
김준오의 변호인은 이 형사가 보는 앞에서, 그의 목소리가 녹음 된 음성 파일을 삭제했다.
그리곤 이 형사가 가져 온 결정적인 증거, 대머리 정 부장 판사가 젊은 여자를 성추행하는, 지하철 안 CCTV 영상을, USB에 카피해서는 곧장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