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80화 (2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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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지훈은 예정대로 아버지인 백동구와 같이 서울로 올라갔다. 짐은 당장 입을 옷가지들로만 챙겨서, 백동구의 차에 싣고서.

“오피스텔에 침대, 냉장고, 에어컨, 식탁 등등 필요한 건 다 있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오피스텔 맞은편에 전자상가와 XX마트가 있으니까 거기서 구입하면 되고.”

“네. 그럴게요.”

백동구도 서울 올라 간 김에, 서울에 있는 그의 소유 건물들을 두루 살펴보고 올 계획이라, 하루를 더 서울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따 호텔 방을 잡겠다는 아버지에게 백지훈이 말했다.

“뭐 하러 그래요. 하룻밤인데. 그냥 저랑 같이 계세요.”

“그럴까?”

그렇게 두 부자가 같이 밤을 보내기로 하고, 서울로 올라간 두 사람은 먼저 오규동 비서실장의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여기 상갓집 맞니? 뭐가 이리 썰렁해?”

“그, 그러게요. 아버지는 여기 계세요. 저만 빨리 갔다 올게요.”

백지훈은 얼굴도 한 번 본적 없는, 전 비서실장 오규동의 위패에 절을 하고는, 가져 간 부의금을 넣고 상주들과 맞절을 한 후, 삼가 조의를 표한다는 말을 건넨 뒤 바로 그곳을 나섰다. 뭐 좀 드시고 가라는 말에 간곡히 거절을 하고서.

널찍한 자리에 몇 사람이라도 앉아 있었다면 또 모를까. 아무도 없이 썰렁한데, 젊은 백지훈 혼자 덩그러니 거기 앉아서 뭘 먹는다고 그게 먹히겠나?

“아버지.”

“어어. 뭐 이리 빨리 나와.”

장례식장 입구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백동구가, 방금 들어간 아들이 금세 나오자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빨리 가요.”

“어어.”

아들이 재촉을 하자 그래도 백동구가 눈치껏 백지훈을 따라 움직였고, 차에 타자 바로 아들에게 물었다.

“뭔데?”

“상갓집 안에 손님이 한 명도 없어요.”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상, 당한 사람이 비서실장이라며? 삼명그룹에 비서실장이면 실질적인 2인자 아니냐?”

“그렇긴 한데....인덕은 없는 사람이었나 보죠. 뭐.”

“허어. 정승이 죽으면 파리만 날린다더니. 딱 그 짝이구나.”

“그러게요.”

이어서 두 부자는 서재국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곳은 그래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래서 오히려 두 사람이 앉을 자리가 없어서 조문만하고 바로 나와야 했다.

그렇게 두 부자는 상갓집 두 곳을 방문하고 백지훈이 앞으로 살게 될 오피스텔 건물로 향했고,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간 백지훈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냐? 괜찮지?”

“네. 제법 널찍하네요.”

“내가 여기 오피스텔 중에서 제일 넓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골라 놓으라고 했거든.”

두 부자는 차에서 들고 올라온 짐을 풀고 자장면에 탕수육, 그리고 고량주를 시켜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또 알딸딸하게 술에 취했다.

그 뒤 내일 두 사람 다 바쁠 예정인지라, 두 부자는 일찌감치 씻고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아침. 백지훈이 잠에서 깼을 때 부친 백동구가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씻고 빨리 출근 준비해라. 8시까지 가야 한다며?”

졸린 눈의 백지훈은 시간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헉!”

7시에 핸드폰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벌써 7시 20분이었던 것. 그런 백지훈을 보고 백동구가 말했다.

“알람 해 놓고 자면 뭐하니? 계속 끄는데. 너 아무래도 알람시계 하나 사야겠다.”

“그래야겠네요.”

대답과 동시에 벌떡 일어난 백지훈. 그는 곧장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다 끝냈을 때 부친 백동구가 불렀다.

“간단하게 계란 프라이 하고 베이컨, 커피, 토스트 준비했다. 먹어라.”

“네.”

이미 차려져 있는 거 먹는 데 5분도 안 걸리기에, 백지훈은 식탁에 앉아서 열심히 포크를 놀렸다. 그때 같이 식사를 하던 백동구가 아들에게 말했다.

“회사까지 차 태워 줄 테니까 천천히 먹어도 돼.”

걸어서 10분 거리의 삼명그룹 본사. 근데 아버지가 차로 태워 준다면 5분 안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백지훈은 좀 더 여유 있게 식사를 하고, 아버지와 같이 오피스텔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 주차 되어 있던 아버지 차를 타고, 삼명그룹 본사로 갈 때였다. 운전 중인 백동구가 넌지시 아들에게 물었다.

“지훈아. 혹시 어제 그 비서실장 자리 누가 내정 되었다는 얘기 들었니?”

“아뇨.”

“그럼 그 자리에 백준열이 오는 거 아닐까?”

“네? 푸하하하하....”

백동구의 그 말에 백지훈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자 백동구가 기가 찬 얼굴로 아들에게 말했다.

“야 이놈아. 애비 말이 그렇게 웃기디?”

“크크크크. 그럼 웃기죠. 그룹 오너의 아들이 비서를 왜 해요. 비서실장도 결국은 회장님 비서에 불과하잖아요? 비서는 원래 머슴들이 하는 거예요.”

부동산 쪽은 잘 아는 부친이지만 사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 백지훈은 아버지가 알아듣기 쉽게 나름 설명을 했다.

“아아. 그렇구나. 비서실장도 결국 머슴이었어. 백준열이 그 머슴노릇을 할 리 없겠군.”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하는 아버지를 보고 백지훈이 싱긋 웃었다. 잠시 후 백지훈을 태운 차가 본사 건물 앞에 도착하자 백지훈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 저기 내려주세요.”

“왜? 더 들어가서 내리지.”

“저기 입구에서 내리면 제가 임원인 줄 안다고요.”

“너 임원급 아냐? 미전실 직원인데?”

“아니에요. 미전실에서 과장은 돼야 임원 취급 받아요. 전 이제 미전실 들어간 말단이고요.”

“젠장. 그래도 삼명 화학에서는 실장이었잖아?”

“미전실이 다 그래요. 최소 계열사 과장급부터 시작인데 대개 차장, 부장들이 들어가는 곳이에요. 저는 직급은 실장이라도 나이가 어려서, 그냥 평직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거기서 과장, 부장이 되는 건 아무래도 제가 빠를 거예요.”

“백준열이 있으니까?”

그 말을 하면서 백동구가 비상 깜박이를 켜고, 아들이 원한 보도 쪽에 차를 댔다.

“네. 저 갈게요. 운전 조심해서 내려가시고요. 퇴근하면 전화 드릴게요.”

“그래. 어서 들어가라.”

그렇게 아들이 삼명그룹 본사 건물로 들어가는 걸 잠시 지켜보던 백동구.

그는 이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차선으로 들어가서 U턴을 한 후 아들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도 바빴지만 그래도 아들 집 정도는 치우고 움직여도 됐다.

어째든 그는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였으니, 약속 시간 30분 쯤 늦어도 상관없었다.

* * *

솥뚜껑에 구워 먹는 삼겹살은 맛이 있었다. 내가 삼겹살을 다 구워 먹고 물냉면으로 입가심을 하고 있을 때, 옆에 문대식은 솥뚜껑 가득 삼겹살을 구워 놓고 허겁지겁 그걸 먹고 있었다.

“우와....”

그런데 저건 고기를 씹어 먹는 게 아니라 흡사 흡입하는 수준이었다. 무슨 유튜버 먹방을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다른 경호팀원들도 잘 먹었지만, 문대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돼지고기도 저렇게 잘 먹으면서, 삼계탕에 왜 그리 집착하는 것일까? 내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있던 경호팀원 중 하나가, 한 말이 나의 그 의문을 바로 해소시켜 주었다.

“우리 팀장님은 어떻게 음식 앞에 ‘삼’자만 들어가면 사족을 못 쓴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

“뭔데? 뭔데?”

“이건 비밀인데. 팀장이 5년 전인가? 일이 하도 안 풀려서 점을 보러 갔데. 그랬더니 거기 점쟁이가 그랬데. 당신은 ‘삼’이 들어간 게 아니면 뭘 해도 안 된다고. 그래서 삼명그룹 경호팀에 들어갔고, 삼남인 지금의 우리 대표님을 모시고 있는 거잖아.”

“어? 우리 팀장님이 원래 삼명그룹 경호팀 소속이었어요?”

“몰랐어? 그래서 대표님이 미국 유학 가실 때, 사표 내고 대표님 따라 간 것 때문에, 당시 경호팀에서도 꽤 말들이 많았다고 들었어.”

“이야. 우리 팀장님 의리파시네.”

“그러니 우리 대표님도 우리 팀장님께 잘하시는 거고.”

“그런 팀장님 밑에 있는 우리한테도 이렇게 잘하는 거고?”

“그런 셈이지. 먹자 먹어. 모자라면 더 시켜.”

어쭈? 이것들이 누구 마음대로 더....하지만 나도 몰랐다. 문대식이 원래 삼명그룹 경호팀 소속이었던 거 말이다.

근데 백준열은 그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걸 알고 나자 그에 대한 기억의 봉인을 풀었다.

그러자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에휴....”

왜냐하면 문대식이 나와 같이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게 다 백준열 때문이었던 것.

원래 문대식은 편찮으신 모친을 두고 미국에 갈 생각이 없었다. 한데 백준열이 월급을 2배로 주겠다고, 문대식을 꼬드긴 것. 그래도 문대식이 거절하자 그의 다리를 잡고 울고불고....

‘쪽팔리게....’

그렇게 겨우 문대식을 데리고 미국에 갔는데, 그럼 미국에서 좀 잘해 주던지, 고생은 다 시키고 말이다.

그때 기억 때문에 문대식이 삼겹살 10인분을 먹고, 3인분을 더 시켜도 나는 참을 수가 있었다. 물론 다른 경호팀원들도 더 시켰고, 점심 밥값이 100만원 가까이 나왔다.

‘이 돼지 새끼들....’

계산을 하고 나오니 이것들이 또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뭐?”

그랬더니 이것들의 시선이 맞은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커피 전문점이 있었고. 좀 전에 계산 할 때 보니까 카운터 건너편에 커피 자판기 있더구먼.

‘이것들이 입만 고급이 돼서....’

하지만 어쩌랴. 저들의 입맛을 고급으로 만들어 놓은 게 바로 나 인 것을. 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홱!

그러자 그걸 귀신같이 낚아 챈 문대식. 녀석이 그 카드를 수하 경호팀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대표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카라멜마끼야또.”

“넵!”

문대식에게서 경건히 카드를 받아 챙긴 경호팀원, 잠시 뒤 카드를 돌려 줄 때 영수증까지 같이 가져 왔고, 내가 그 영수증을 보려 하자, 문대식이 재빨리 낚아채서 구겨버렸다.

“여기....”

그리곤 카드만 내게 돌려줬다. 문대식은 내가 그 영수증의 금액을 못 본 줄 안다.

하긴 보통 사람이라면 받자마자 구겨버렸으니 못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나는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을 쓸 수 있기에 기어코 그 금액을 봤다.

‘뭔 커피 값이 30만원이 넘어?’

경호팀원이라 해 봐야 10명도 안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저건 케이크....’

그러니까 경호팀원들이 이따 당 떨어지면 먹을 거라고, 조각 케이크를 무슨 식빵 사듯 산거다.

“이것들이....”

내가 대표로 문대식을 쏘아보자, 그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게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돈도 많으면서 쪼잔 하게....”

“뭐? 쪼잔....거기서!”

내가 서라고 한다고 설 문대식이 아니었다. 그렇게 길바닥에서 문대식과, 한 10분 정도 티격태격 싸우는 동안 얼추 소화가 다 된 거 같았다.

“이제 가자.”

“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란히 한 차에 타서는 JYB엔터 사옥으로 향했다.

* * *

삼겹살집에서 생각이 났지만 바로 옆에 문대식이 있었고, 또 차를 타고 올 때도 곁에 그가 있었기에, 나는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해서 JYB엔터의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아까 오전에 전화한다는 게 깜빡했네.”

=워낙 바쁘시지 않습니까? 그러실 수 있습니다.

“나만 바쁜가? 양 상무도 바빴지? 태천파 조직 수습하느라 말이야.”

=네. 뭐....며칠 못 잤더니 좀 헤롱헤롱 합니다.

“아직 멀었어?”

=아뇨. 대충 정리가 됐습니다. 이제 좀 쉬려고요.

“그래. 고생했어. 쉬어. 근데 일 하나 밑에 애들한테 시키고 쉬어.”

=네. 말씀하십시오.

“문대식 팀장 말이야. 최근 아버지를 만난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요양병원에 있는 거 같은데 도통 말을 안 하니....”

=문대식 팀장 주변을 탐문해 보란 말씀이시죠?

“그렇지. 알아내서 내일까지 알려 줘. 가능하지?”

=내일까지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 좀 할게.”

그렇게 양태석과 통화를 끝낸 뒤, 나는 인터폰을 눌렀다. 그러자 김 비서가 바로 대답했ᄃᆞ.

=네. 대표님.

“좀 있다가 손님이 찾아올 거야. 아마 차은석 부문장이 데려 올 거 같은데, 오면 내 방으로 들여 보네.

=네. 알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차은석 부문장은 전 직장의 자기 사수를 내게 소개 시켜 주기로 했다.

내가 그녀에게 듣기로 그 사수와 같이 점심을 먹고, 바로 여기로 데려 온다고 했으니 곧 오겠거니 생각하고 밀린 업무를 볼 때였다.

삐이이익!

“네?”

김 비서가 인터폰을 눌렀고 내가 받자 그녀가 말했다.

=손님이 오셨는데 김효석님이라고....제가 여쭤보니 차은석씨를 알고 계시네요. 어떻게 할까요?

“차은석 부문장에게 연락해 봤어요?”

=네. 했는데 핸드폰도 안 받으시고, 부서에 연락해도 자리를 비우셨다고....

“으음....그럼 10분쯤 있다가 들여보내세요.”

차은석을 통해 소개 받는 게, 그쪽도 나도 편한데 그게 안 돼도 나한테는 별 상관없었다.

어차피 김효석이라는 사람이 뛰어난 인재라면, 내가 한눈에 알아 볼 테니까.

나는 하던 일을 마저 끝을 보고 책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응접 소파 상석에 앉은 다음, 김 비서에게 인터폰을 눌렀다.

=네. 대표님.

“됐으니까 손님 안으로 들이세요.”

잠시 뒤 ‘똑똑똑’ 노크 소리 뒤 달칵 소리가 나면서 대표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먼저 김비서가 안으로 들어와서, 김효석이라는 사람을 대표실 안으로 들였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이리 와서 앉으세요.”

“아네.”

내가 그에게 자리를 권하자 그가 나를 힐끔거리며 살피면서 내게로 다가와서, 내 오른쪽 소파에 앉았다. 물론 나도 그와 같이 자리에 앉았고. 그때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료는 뭐로 내어 올까요?”

“뭐 드시겠습니까?”

“저는 물이면 됩니다.”

“물 한잔만.”

나는 별로 음료가 당기지 않아 주문을 하지 않았다.

“아참. 이건 제 전 직장 명함인데....”

그때 김효석이 깜빡했다며, 뒤 호주머니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근데 그의 전 직장이 QH엔터다. 조폭 두목 홍대복이 대표로 있는 그곳 말이다.

물론 지금은 홍대복이 경찰서에서 열심히 조사를 받고 있겠지만.

‘아니면 검찰에 넘어갔던지.’

죄목이 꽤 되는 데 살인죄까지 추가가 될 거라고, 아까 오전에 중앙지검의 서 검사에게 전화를 받았었다.

그때는 아직 검찰로 송치가 안 됐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또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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