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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태석규의 몸에서는 무려 다섯 가지 빛이 서려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그 중 제일 짙은 빛은 역시 검은 빛이었다. 즉 태석규는 지금은 내게 나쁜 의도로 접근한 거다.
그리고 갈색, 노란, 하얀 빛도 섞여 있었는데, 특이하게 연분홍빛이 그들 네 가지 빛을 빙 둘러 감싸고 있었다.
검은 계통은 죄 나쁜 쪽을, 갈색은 허영과 질투, 노란 빛은 소신이 없음을, 하얀 빛은 신뢰를 뜻한다는 건 나 역시 잘 알았다.
뜻밖에도 태석규도 나름 신뢰는 있는 인간이었던 것. 하긴 그러니 망한 재벌 3세 치고 지금껏 밥 벌어먹고 살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연분홍빛은 처음이라 내가 어리둥절해 할 때였다. 견신 시스템에서 반응을 보였다.
-연분홍빛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면서 태석규가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견신 시스템이 내게 알려 주었다.
-지금 태석규는 돌아가신 선친이 남긴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혈육입니다. 그런데 정작 태석규 본인은 그걸 모릅니다.
‘비자금?“
그러고 보니 우주그룹 창업주이자, 태석규의 조부 되는 태영호 회장은, 군사정부시절에 그 독재자에게 특히 많은 정치자금을 내 놓은 인물로 유명했다. 그래서 삼명그룹이 그 독재자의 눈 밖에 날 뻔한 적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대가로 쑥쑥 성장한 우주그룹. 자기 아버지가 뇌물 쓰면서 잘도 커가는 걸 지켜 본, 2대 회장 태석훈이 뭘 배웠겠나?
부친의 전철을 뒤따르다가 문민정부 때 게이트 사건에 연루 되어, 폭삭 망해 버린 게 우주그룹이었다.
그런 만큼 뇌물에 쓰려고 많은 비자금을 조성해 뒀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막상 뒤져보니 빚 밖에 없었다는 우주그룹.
그래서 빛 좋은 개살구 소리를 들었던 우주그룹이 알고 보니 역시나, 태석훈 회장이 막대한 비자금을 어딘가에 숨겨 둔 것이다.
근데 견신 시스템에서, 그 얘기를 왜 내게 하는 거지?
‘설마 나보고 그 비자금을 찾아내란 건가?’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견신 시스템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 비자금은 내년 쯤 태석규가 결국 찾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돈을 흥청망청 다 써 버린 뒤, 빚까지 지게 된 태석규는 도망치다 결국, 플로리다의 한 도로가 모텔에서 권총 자살로 삶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견신 시스템의 장황한 설명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태석규가 그 비자금을 찾아내서 어떻게 쓰던 말든, 또 빚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해답을 견신 시스템이 바로 내게 말해 주었다.
-태석규는 견족으로, 그를 당신의 일족으로 받아 드릴 시, 충견이 5마리 이상이 되므로 개지수 30포인트를 획득하게 됩니다. 여기서 태석규는 버림받은 견족으로, 그를 당신이 일족으로 거둘시 추가 보너스 포인트와 함께, 견신의 재량으로 아이템과 스킬 중 하나를 획득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나는 예전에 견신 시스템으로부터 스페셜 미션을 부여 받은 상태였다. 일족을 이루라고 말이다.
그 미션 상, 내가 거둔 견족이 5마리를 넘어서게 되면 나는 일족 +1마리가 늘어 날 때마다 개지수 30포인트를 지급 받기로 되어 있었다.
고로 태석규를 내가 일족으로 거둬서 얻게 될, 개지수 30포인트는 사실 그다지 매력적인 결과 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태석규를 거둠으로 해서, 내가 아이템과 스킬 중 하나를 획득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그것도 견신의 재량으로 주는 거라면 더더욱!’
견신과 연관되면 나는 무조건 콜이었다. 왜냐하면 견신은 내게 무조건 득을 주는 존재였기 때문에.
해서 나는 별 쓸모없어 보이는 태석규를, 내 일족으로 거두기로 결정을 내렸다.
비록 태석규는 개똥같은 존재지만, 언제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을 때, 그때 녀석을 써 먹으면 될 일 아닌가?
나의 그 생각을 읽은 견신이 말했다.
-디링! 견신이 당신의 그 긍정적인 마인드에 감복했습니다. 보너스로 개지수 20포인트 지급합니다.
‘역시 견신님. 정말이지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그때 견신 시스템이 개 짜증을 내며 말했다.
-작작 하고....하아....견신이 당신에게 꼭 필요해 보인다면서 아이템, 「개 알약」(일,Up-1일 3회, 외상에 한정)을 지급하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안 받아드리는 걸로 갈까요?[Y/N]
“예....뭐, 뭐야?”
나는 당연히 견신님께서 주시는 아이템을 감사히, 백골난망하며 받아드리려 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예스하면 견신께서 주시는 아이템을 안 받는다는 소리였으니까.
“이 개 같은 시스템이....”
내가 부글부글 끓는 화를 겨우 참으며, 견신 시스템을 욕할 때 견신 시스템이 되레 나를 비꼬았다.
-선택 안 했으면서, 괜히 시스템 욕하지 맙시다.
“뭐, 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내가 씩씩거릴 때 견신이 나를 다독여 주었다.
-디링!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지만, 이상하게 질투 같은 걸 많이 한다며, 견신께서 이해하라 십니다. 대신 개지수 10포인트를 선물합니다.
나는 감사히 그 개지수를 받으며, 견신 시스템에게 「개 알약」아이템을 받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견신 시스템에 바로 바뀐 상태창을 내 눈앞에 띄웠다.
* * *
[이름: 백준열(Lv6)]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2Up), 「개좆」(Up)], 「개목걸이」(1Up), 「개코」(Up), 「개방울」(Up), 「개 알약」(일,Up-1일 3회, 외상에 한정)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Up), 「충견」(일,2Up), 「개 끗발」(역,Up), 「개호구」(역,1Up), 「만능 오프너」(일,Up-방문, 차문 한정), 「개멋져」(일,Up)
[인벤토리: 개톤백(In)
[특성: 개(3차UP완료)]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친화력이 뛰어납니다.*
[개지수: 110]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건 역시 보유 아이템 항목이었다. 거기 「개 알약」(일,Up-외상에 한정)이 확실히 들어가 있었다.
그러자 뒤늦게 견신 시스템이 「개 알약」아이템의 효력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어떤 외상이든 「개 알약」아이템을 사용하면, 바로 낫는다 이거로군. 하루에 3번 쓸 수 있고.”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외상 보다는 내 몸 내부에서 병증들이었다.
외상이야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되니까. 물론 흉터며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
그래도 효용 상으로 봤을 때 「개 알약」아이템이, 외상 밖에 효력이 없단 사실은 살짝 나를 맥 빠지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디링! 견신이 실망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신체 내 병증도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업그레이드가 어디 쉬운가? 내가 막 그 생각을 했을 때였다. 견신 시스템이 즉시 반응을 했다.
-개지수가....하아....100점을 넘기면서 당신의 레벨이....Lv6에서 Lv7로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이에....바득....「개좆」, 「개방울」, 「개 알약」 아이템과....「말하는 개」, 「개 끗발」, 「개멋져」 스킬이 1UP이 됩니다.
라고 말하고 나더니, 내 눈앞에 또 다시 바뀐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백준열(Lv7)]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2Up), 「개좆」(1Up)], 「개목걸이」(1Up), 「개코」(1Up), 「개방울」(1Up), 「개 알약」(일,1Up-1일 3회, 외상과 일부 내상(체내 염증, 1일 1회) 한정)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1Up), 「충견」(일,2Up), 「개 끗발」(역,1Up), 「개호구」(역,1Up), 「만능 오프너」(일,Up-방문, 차문 한정), 「개멋져」(일,1Up)
[인벤토리: 개톤백(In)
[특성: 개(4차UP진행시작)]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친화력이 뛰어납니다.*
[개지수: 10]
나는 내 눈앞에 상태창을 보고 ,입 꼬리를 말아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믿을 수 있는 나의 은혜로운 견신님. 제게는 당신이 유일신이십니다.”
나는 진짜 견신님을 위한 찬송가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태창은 견신님께서 내려 주신 개지수로, 100점을 훌쩍 넘기면 레벨이 올랐고 그 덕에, 내 아이템과 스킬들이 대부분 업그레이드를 했다. 거기에 「개 알약」아이템도 포함되면서, 업그레이드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외상 뿐 아니라 내상도 치료가 가능해졌다. 물론 그 치료 범위가 몸속의 염증에 한정 되었지만 그게 어딘가?
원래 체내에 문제가 생기면 염증부터 일으킨다.
그 염증이 치료 된다는 건, 병증이 암이나 다른 여러 불치병으로 진행 되는 걸, 원천 차단해 버린다는 뜻이 되니, 지금 내 나이에 체내 염증 치료만 되더라도 중년, 장년 때 갑작스럽게 큰 병이 생기는 걸, 미연에 예방 할 수 있었다.
단지 이제 와서 아쉬운 점을 또 하나 말하자면, 「개 알약」아이템이 일반용이란 점이었다.
즉 나만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개 알약」아이템을 역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쓸 수 있다면,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도 내가 챙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 *
내가 막 그 생각을 했을 때였다. 견신이 말했다.
-디링! 견신이 당신의 레벨이 10이 되었을 때, 당신이 보유 중인 각 아이템과 각 스킬 중 하나 씩에, 역 아이템 화와 역 스킬 화를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거라고 말해 줍니다.
나는 견신의 말씀을 듣고 주위에 보는 사람만 없었으면, 당장이라도 견신이 있는 쪽으로 무릎을 꿇고 절을 했을 거다.
아아!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은 이랬다.
엘리베이터에서 태석규를 데리고 내린 나는, 녀석과 같이 대표실에 들어왔다.
물론 문대식과 경호원 둘이 만약을 위해 나와 같이 대표실에 들어왔고, 거기에 김 비서가 지금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대표실의 응접 소파 상석에 앉아 있었고, 태석규는 엘리베이터에서의 뻔뻔했던 모습은 어디에 갖다버렸는지, 지금은 찾아 볼 수 없고 전체적으로 복잡한 얼굴에, 불안한 눈으로 열심히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할 말 하라고 내 방으로 데려와서 자리까지 깔아주었는데, 정작 그때부터 말을 제대로 못하는 쫄보. 그게 태석규란 인간의 본질적인 천성이었다.
나야 녀석이 말이 없어도 별 상관없었다.
지금 나에게는 견신 시스템으로부터, 챙길 거 확실히 챙기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체내 염증 치료가 하루에 한 번이니까, 지금 내가 사용해 봐도 되겠지?’
나는 시험 상 「개 알약」아이템을 지금 바로 써 보기로 했다.
물론 외상 말고 내 몸속에 지금 있을지 모를 염증을 죄 없애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견신 시스템이 유의 사항을 내게 전했다.
-최초 체내 염증 치료를 위해 「개 알약」아이템을 쓰게 될 시, 치료가 되는 과정에서 생성 되는 가스로 인해, 방구 냄새가 엄청 지독할 수 있음.
‘방구 냄새?’
냄새 하니까 이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문대식과 경호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 비서를 내가 쳐다보자, 너무 눈치가 빠른 김 비서가 내게 물었다.
“잠깐 나가 있을까요?”
“어? 어어. 그래. 5분만 나가 있다가 들어 와.”
5분이면 방구 뀌고 환기까지 다 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나와 지근거리에 앉아 있는 태석규는 예외다.
‘넌 냄새 좀 맡아도 돼.’
어차피 녀석은 내 일족으로 등록이 될 녀석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왜냐하면 녀석을 내 일족으로 만든 뒤에 방구를 뀔 것인가? 아니면 방구를 뀌고 나서, 녀석을 내 일족으로 만들 것인가를 두고 서 말이다.
근데 생각해 보니 그게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 인가와 다를 게 없었다.
‘뭐 방구부터 뀌어보자.’
막 나간 김 비서와 문대식이 경호팀원들과 다시 대표실 안으로 들어오려면 5분 남았다.
그 시간 동안 확실하게 환기를 해야 하니 먼저 뀌고 나서, 환기를 하면서 천천히 태석규를 내 일족으로 만드는 게, 아무래도 시간을 더 잘 활용하는 법인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견신 시스템에게 부탁을 했다. 「개 알약」아이템의 체내 염증 치료를, 지금 내 몸에 쓰겠다고 말이다.
* * *
태석규는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해서 JYB엔터 경비 아저씨들을 공략했다.
특히 입구인 정문 쪽을 말이다.
“이것도 좀 드시죠.”
“이따 점심 먹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태석규가 사온 비싼 제과점 빵을, 야금야금 잘도 먹는 JYB엔터 정문 경비 아저씨들.
“자자. 목마르시겠다. 이것 좀 마시세요.”
태석규는 재빨리 우유팩에 빨대를 꽂아서 경비 아저씨들에게 건넸다. 그러다 슬쩍 물었다.
“여기서 일하시려면 대표님과 임원들 차번호는 아셔야겠네요?”
“그럼 당연하지. 그래서 저기 적어 뒀잖아.”
경비 아저씨가 정문 경비실에 붙여 놓은 작은 칠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태석규가 그 칠판을 쳐다보니, 왼쪽 구석에 4자리 숫자들이 보였다.
그 중 경비 아저씨가 제일 위에 번호를 그대로 말하며, 태석규에게 엄지손가락을 슬쩍 들어 보였다.
“2887!”
그러니까 대표 차가 2887이란 소리다. 태석규는 그것 말고도 이곳 JYB엔터의 경호체계에 대해서도, 경비들의 말을 듣고 대충 유추가 됐다.
그렇게 JYB엔터의 정문 경비실에서 필요한 정보를 취한 뒤 나온 태석규 앞에, 검은 승용차 몇 대가 훅 지나갔다.
“어?”
그런데 그 중 한 대의 차량 번호가 분명 2887이었다. 태석규는 뒤돌아서 휑하니 JYB엔터 사옥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태석규는 이미 백준열이 경호팀원들과 지하 주차장에서, 주로 어떤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실로 올라가는지 파악해 두고 있었다.
해서 그 엘리베이터를 1층에서 잡아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준열을 조우했고, 태석규는 정말이지 백준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생각이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바로 백준열에게 몸을 던졌다가, 경호원들에게 막혀 처참히 제압을 당했다.
참담한 심정에서 태석규는 절규했고, 그게 백준열에게 먹힌 모양이었다.
지금 이렇게 태석규는 잘만 손을 뻗으면 백준열을 만질 수도 있는 거리에서, 그와 독대할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백준열. 내가 너한테 꼭 해 줄 말이 있는데....그걸 지금 맨 정신에는 못할 거 같다. 그래서 말인데....이따 밤에 나랑 같이 술 한 잔 같이 하면서 얘기 하는 게 어떨까?”
태석규가 나름 용기를 내서, 겨우겨우 자신의 생각을 백준열에게 전했다. 그리고 백준열이 그 말에 대단 대답을 내 놓았다.
뿌우우우웅!
아주 요란하게, 입이 아닌 똥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