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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저께 전화 왔을 때 아버지는 분명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하셨다.
위에 뇌물 좀 쓰면 불명예 퇴진까지 가진 않을 거라고 했었지 않은가?
그런데 딴 곳도 아니고, 대검 중수부에서 아버지 방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이건 위에서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소리였다.
대검 중수부가 어떤 곳이던가?
정확한 명칭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대검찰청의 공직자 비리 수사 처로 공안부와 함께, 검찰의 양대 중핵을 이루어온 핵심 부서다.
산하에 수사기획관실과 중수 1,2과, 첨단범죄수사과가 있으며, 정예검사와 수사관이 포진하고 2년 임기가 보장된 곳으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검찰총장이 직접 지휘한다는 점이다.
검찰총장의 직할 수사조직으로,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하명(下命)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대검 중수부가, 아버지를 노리고 있다는 건 이미 윗선에서 얘기가 다 끝났다는 소리.
“빌어먹을....”
정재욱도 아버지가 지금 물러나면, 경찰 조직에 다시 발붙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래서 기를 쓰고 서울경찰청장인 박대순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노력 한 거고.
그랬지만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다. 경찰청장까지 하신 분이니, 정계 진출로 제 2의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국회의원이 되시면 좋고 못해도 시, 구의원만 되도 그게 어딘가? 그런데 이거 잘못하면 전과자로 될지 몰랐다.
이미 전화는 끊은 상태. 그런데 그때부터 계속 걸려오는 전화. 정재욱은 아예 전화선을 뽑아버리고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는 가는데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 아버지.
“젠장. 전화를 왜 안 받으시는 거야?”
정재욱은 곧장 경찰청에서 그나마 아버지와 제일 친하게 지내셨고, 또 그가 제일 존경할 만한 경찰관인 수사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본청 수사국장인 이명수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저씨. 저예요. 재욱이.”
=어어. 그래.
“아버지와 연락이 안 되네요. 혹시 뭐 아시는 거 있으세요?”
=뭐? 수육? 할매집에서 먹지 뭐. 그럼 점심 때 거기서 봐.
뚜뚜뚜뚜뚜뚜....
이명수는 자기 할 말만 혼자 떠들더니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지만 정재욱은 경찰이었다.
이명수가 그렇게 한 의도 정도는 바로 간파했다.
“C발. 지금 본청 수사국까지 감시 받는 거야?”
그러니까 누군가가 아버지와 친한 사이인 본청 수사국장 이명수에게도 감시를 붙인 거다.
즉 이명수는 점심 때 본청에서 좀 거리가 있는, 할매집이라는 돼지국밥 집에서 정재욱을 보자고 말 한 거고.
시간을 확인한 정재욱은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할매집까지 거리상, 지금 움직이면 점심시간에 맞춰 거기 도착할 수 있었다.
정재욱은 일부러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계단을 통해 서울경찰청 건물 옆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빙 둘러서 주차장으로 움직였는데, 소식을 접한 기자들이 개떼같이 서울경찰청 건물 정문 앞에 모여 있었다.
정재욱은 허리까지 숙인 체 자기 차로 움직였고, 차에 타자 바로 시동을 걸고 서울경찰청을 신속하게 빠져나왔다.
다행히 기자들이 그가 몰래 서울경찰청을 빠져 나가는 걸 눈치 채지는 못했다.
“휴우....”
서울경찰청을 빠져 나와 큰 도로에 접어들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정재욱. 그는 곧장 할매집으로 향했고, 그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5분 쯤 기다렸을까?
눈에 익은 얼굴의 장년의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저씨!”
“어어.”
본청 수사국장 이명수가 곧장 정재욱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와서는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빛이 영 어두운 게, 정재욱은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이명수의 말을 듣지 않고도 충분히 유추가 됐다.
이명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는데 정재욱의 예상대로였다.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가 본청 감사관실에 있다는 거네요?”
대검 중수부에서 청장실을 압수수색 당한 걸로 모자라서, 정세현 청장은 경찰조직에게도 버림을 받은 신세였다.
“곧 청와대에서 네 아버지 경질을 발표 할 거라고 하더구나. 더불어 네 아버지 수사를 맡아 할 새로운 경찰청장도 내정할 거라고 하고.”
“하아....”
그 새 경찰청장이 누굴 지는 뻔했다. 이렇게 되면 정재욱에게 있어 백준열의 존재가 더 중요해졌다.
그러니까 태석규는 오늘 무슨 수를 쓰든, 자신과 백준열을 만나게 해줘야 했다. 그러면서 정재욱이 퍼뜩 든 생각은....
‘1억 가지고는 약해.’
아무래도 태석규가 제대로 그 일을 해 내려면, 보상을 더 세게 불러야 하지 않나 싶었다.
* * *
태석규는 특급 호텔은 아니지만 그래도 번듯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뚝배기 해장국으로 배를 채웠다.
“이게 사람 사는 건데 말이야.”
이미 호텔에서 깨끗하게 씻고 면도까지 한 터라, 외견 상 태석규는 예전의 재벌 3세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느긋하게 정재욱에게서 빌린 차를 몰아서 JYB엔터로 향했다.
그렇게 그곳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니 시간이 벌써 11시.
“일단 물주를 안심 시켜 놔야겠지?”
태석규는 JYB엔터 본사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정재욱에게 전화를 했다.
원래 태석규의 계획은 정재욱에게 돈을 받고, 그를 위해 일하는 척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척 만 하고 말 생각이었다.
정재욱에게 자기가 JYB엔터 백준열 대표와 친한 거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뉴욕 파티에서 몇 번 본 게 다였다.
같은 재벌 3세라 인사 정도는 했는데, 백준열이 그를 바로 까버려서, 제대로 인사다운 인사도 나누지 못한 사이. 그게 진실 된 백준열과 태석규의 관계였다.
그런 백준열을 찾아가서, 태석규가 만나자고 하면 과연 백준열이 그를 만나줄까?
당연히 아니지. 태석규가 아는 백준열은 엄청 바쁜 인간이었다. 그런 백준열이 그를 만나 줄 리 없었다.
해서 태석규는 JYB엔터에 가는 척만 하고 딴 데 가서 놀다가, 이따 정재욱에게는 백준열을 만나기는 했는데, 그가 너무 바빠서 오늘 만남을 다음으로 미뤘다고, 거짓말을 할 생각이었다.
“1억이 탐나기는 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백준열을 만날 수가 없었다.
안 되는 거에 욕심내다가 훅 가버리는 경우를 하도 많이 봐 온 태석규.
그는 자기 주제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랬기에 우주그룹이 망해도, 그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우주家의 남자들은 다들 감빵에 들어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왕 온 김에 JYB엔터나 구경하고 가자.”
태석규는 별 생각 없이 JYB엔터 사옥 안으로 들어갔고,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이게 일개 엔터테인먼트 사옥이라고?”
지금은 망했지만 우주그룹의 본사 사옥과 견주어도, 그 규모 면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 태석규가 놀라는 게 당연했고.
지이잉!
그때 태석규의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전송 되어왔다. 태석규는 핸드폰을 꺼내서 바로 확인했다.
“재욱이가 보낸 거네.”
그러면서 정재욱이 무슨 메시지를 보냈을까 확인한 태석규.
“뭐? 1억이 아니라 3억?”
순간 자기 주제를 잘 알던 정재욱의 두 눈이 탐욕에 물들었다.
3억이면 서울 변두리 쪽에 ,그가 살 만한 보금자리와 함께 편의점을 차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럼 더 이상 노가다를 뛰지 않아도 됐고, 더는 먹고 사는 걸로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 까짓 해 보자. 백준열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 보지 뭐.”
태석규가 변했다. 때로 생계유지라는 게, 사람이 변하는 매우 강력한 핑계거리가 되어주기 때문에.
* * *
나는 일단 JYB엔터에 출근했다가, 간단한 업무 좀 보고 바로 블랙머니로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JYB엔터 본사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실로 올라간 나는, 대표실에 들어가기 전 김 비서를 보고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김 비서가 내게 인사를 하며, 곧장 대표실 쪽으로 걸어가서는 대표실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그때 낭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정민지 경호팀원이 보였다.
보아하니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내 근접 경호원 노릇을 할 모양이었다.
“그래요. 아아. 토요일에는 고마웠어요.”
서울CC까지 오토바이로 태워다 준 거에 대해, 그 고마움을 막 표하고 대표실로 들어가려는 데, 정민지의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털털한 성격의 정민지 다운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뒤에서 문대식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대표 앞에서 그게 무슨 말 버릇이냐며 말이다.
나는 별 상관없는 데 경호팀장인 문대식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런 일까지 대표가 관여하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 나는 모른 척 하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가서, 걸치고 있던 정장 상의부터 벗었다.
그러자 대표실 안에서는 내 그림자나 마찬가지인 김 비서가, 즉시 그 상의를 받아 주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할 말은 똑 부러지게 잘하는 김 비서.
“오전에 급하게 처리하셔야 할 일은 모두 3가지로....”
나는 김 비서가 알려 주는 대로 급한 일 처리를 금방 해치웠다. 그리고 블랙머니로 가기 위해 다시 정장 상의를 입은 뒤, 핸드폰을 꺼내서 차은석 부문장과 잠깐 통화를 했다.
그래도 그녀는 알아야 할 거 같아서 말이다. 정재욱 문제는 오늘 중으로 내 선에서 다 해결이 될 테니까.
박대순 청장과의 통화는 오후에 하기로 했다. 오전에는 박 청장도 바쁠 테니까.
그렇게 한 시간 정도 JYB엔터에 있다가, 블랙머니로 이동한 나는 그곳에서 주간 회의를 주관했다.
사실상 업무를 장 총괄본부장에게 위임한 터라 내가 할 일은 딱히 없었지만, 블랙머니라는 배가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 그걸 고쳐 주는 컨트롤 타워 역할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당연히 투자 독려도 해야 했고.
“지금은 증시가 한동안 횡보가 지속 될 거 같으니....외국인 투자자들도 마찬가지고....그래도 며칠간은 지켜 볼 거 같으니까....지금이 투자의 적기일 거 같군요. 한발 먼저 공격. 무슨 말인지 아시죠?”
“네. 대표님.”
그래서 회의 내내 집중해야 했고, 회의가 끝났을 때는 살짝 머리에 두통이 왔다.
“박 비서?”
회의 후 내 방으로 간 나는, 박 비서를 불러서 어젯밤에 문자로 지시한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 블랙머니를 나섰다.
시간 상 JYB엔터 본사로 가면 딱 점심시간이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JYB엔터 본사로 갈까 생각했는데, 딱 그 시점에 김 비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왜?”
=좀 전에 긴급 뉴스가 나왔는데 대표님께서 아셔야 할 거 같아서요.
“뭔데?”
=정세현 경찰청장이....
아무래도 한가하게 점심 먹을 때가 아닌 거 같았다. 내 예상과 달리 청와대에서 정 청장을 곱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진 않을 모양이었다.
정 청장은 원래 대통령 쪽 사람이었다. 때문에 퇴진을 시켜도 조용히 내려야 정상인데, 그런 그를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한다는 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뭔가를 덮으려 한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뭔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뭔가는 아무나 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나, 백준열이라면....
‘재미있겠네.’
하고 싶으면 해야지. 나는 점심보다는 그 뭔가를 캐는 게 더 당겼다. 그래서 그걸 진짜로 캐 보기 위해서, 일단 JYB엔터 본사로 향했다.
* * *
오늘 따라 차도 밀리지 않고 또 신호도 잘 받은 탓에, 나를 태운 차가 11시 40분쯤 JYB엔터 본사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나는 문대식과 경호팀원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는데,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당연히 내릴 줄 알고 기다렸는데 그 사람이 안 내렸다.
그래서 우리가 타고 엘리베이터가 막 올라 갈 때였다. 엘리베이터의 선객이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막아!”
문대식이 바로 반응을 하면서, 그 자가 나를 덮치는 건 막았다. 그리곤 나머지 경호팀원들이 그 자를 제압했다. 그러자 그 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악! 백준열! 나야! 나! 태석규!”
“태석규?”
나는 그 자의 이름을 따라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내 옆에 문대식이 물었다.
“아는 잡니까?”
“아니.”
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백준열도 잘 모는 자니까 기억이 없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자 그 자가 또 소리를 질렀다.
“뉴욕 파티 장에서 만났었잖아? 나 우주그룹 3세 태석규라고.”
“우주그룹?”
우주그룹이야 나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은 참 망하지 쉽지 않았다.
재벌이 망하면 경제위기 운운하면서, 정부가 알아서 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몇몇 권력자들이, 그 재벌이 뿌리는 돈을 챙기는 거고.
“놔 줘봐.”
내 말에 태석규를 제압하고 있던 경호팀원들이 그에게서 손을 뗐다. 그러자 태석규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옷 다 구겨졌네. 이게 얼마짜린데.”
그런데 내가 봤을 때, 태석규가 걸치고 있는 정장은 소위 말해서 서울에서 부자들이 입는 이태리제 정장이 아니었다.
백화점에서 파는 국산 브랜드 정장이지. 그러니까 경호팀원들이 입고 있는 정장이나, 태석규가 걸치고 있는 정장은 비슷한 수준이란 얘기다.
그런 국산 정장이 구겨졌다고 저렇게 인상을 쓴다는 건....그 동안 그의 주변과 신상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
‘아무래도....’
「개눈깔」아이템을 써야 할 거 같았다.
‘태석규라? 넌 대체 뭐하는 인간이니? 왜 내게 접근한 거고?’
그 모든 대답은 곧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내게 알려 줄 테지만, 나는 우선 그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보아하니 내게 볼일이 있나 본데. 뭐지?”
“넌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하냐? 하다못해 물 한잔이라도 내 놓고 물어라. 뉴욕에 있었을 때도 까칠하더니 그 버릇은 여전하네.”
아주 대 놓고 뻔뻔하게 나오는 태석규를 보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 사이 「개눈깔」아이템이 효력을 발휘하며, 태석규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