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73화 (27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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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미전실장 강규석이 실종 된 것은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 수혜자들을 꼽자면 제일 먼저 거론 되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바로 미전실장 밑에 두 부장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인 최세형 부장은 출근 하고부터 계속, 초조하게 회장실에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전화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드디어....’

최세형은 자신이 미전실장 자리에 오를 확률을 50%이상으로 꼽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자신하는 건, 바로 자신이 백승렬 회장이 미전실에 심어 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

즉 백 회장에 대한 충성심을 충분히 검증 받은 상태인 그가 아니면, 누가 미전실장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네?”

하지만 백 회장에게서 온 연락은, 그가 원하는 인사발령이 아닌 다소 황당한 지시였다.

“삼명전자 이동훈 상무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설마 이동훈 상무를 미전실장 자리에 앉히려는 건 아닐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럴 거 같으면 진작 인사발령을 냈겠지.

이런 식으로 미적지근하게 일 처리 할 백 회장이 아니었다.

그럼 이런 조치를 최세형은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나? 최세형뿐 아니라 다른 미전실의 다른 부장과 과장들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이동훈 상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하필 그 전화를 받은 미전실 직원이, 최세형을 따르는 직원이다 보니 그 전화를 최세형에게 돌렸다.

“네. 여보세요?”

=나 이동훈 상문데.

“네. 상무님.”

=회장님께 연락 받았지?

“네. 상무님.”

=긴급을 요하는 일이다. 먼저 본가 경호팀에 연락해서....

이동훈의 지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삼명家 본가 저택에 최 집사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 또 하나는 최 집사의 뒤를 낱낱이 캐는 것.

그러니까 이동훈 상무가 겁도 없이 삼명家 본가의 실세인 최 집사를 내사하겠다는 것.

‘미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 가장 총애하는 걸로 알려진 사람을....

‘가만....’

하지만 이게 또 헷갈리는 건, 백 회장의 지시를 이동훈이 따르고 있다는 점.

즉 이동훈은 지금 백 회장이 휘두르는 칼이었다. 그 칼이 최 집사를 지목하고 있었다.

그의 목을 베겠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회장님께서....최 집사를 진짜 제거하려 하신다.’

그 결론이 내려지자 최세형은 거칠 것 없이 움직였다.

“지금 본가 경호팀장이 누구지?”

“유재봉 팀장입니다.”

“유 팀장에게 지금 바로 연락해서....장 과장은 본가 최 집사 최근 동향을 전부 다 파악해서....”

최세형의 지시가 점점 더 구체화되기 시작하자, 삼명그룹 미전실이 알아서 그쪽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채 30분도 되기 전에 충격적인 장면 몇 개와 증거가 포착이 됐다.

최 집사가 수상쩍은 행동을 했고, 그걸 역 추적하자 그가 삼명家 본가에서 뭔가를 빼돌린 게 확인 된 것이다. 그게 뭔지도 곧 구체적으로 밝혀졌고.

“그건 바로....회장님께서 최근 관심 깊게 보시던....유로피안 프로젝트Z로 밝혀졌습니다.”

“뭐야? 최 집사가 진짜 쥐새끼였어?”

최 집사가 삼명그룹의 특급 비밀 프로젝트를 빼내서, 어딘가로 넘긴 게 실제로 밝혀지자 미전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는 즉시 삼명그룹 회장실로 직보가 되었다.

* * *

월요일 아침에 회장실에서, 계열사 대표들로부터 화상으로 주간 보고를 받고 있던 백승렬 회장.

그가 수행비서에게 귀띔을 받고는 안 그래도 굳은 표정이 더 싸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백 회장은 끝까지 계열사 대표들의 보고를 받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시사항을 전한 뒤, 주간 보고를 마쳤다.

“허어. 준열이 말이 다 사실이었군.”

기가 차다는 듯 말하는 백 회장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는, 허탈함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만큼 최 집사를 믿었는데, 그 믿음이 배신으로 되돌아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이 노회한 사업가는 금방 그 실의를 털어냈다.

그가 어디 이런 식의 배신을 한두 번 당해봤겠나? 이보다 더한 배신에 치를 떨고, 분개한 적도 많았다.

그 때마나 그는 단호하게 그 배신에 대한 처분을 내리며, 참초제근(斬草除根)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동훈이 알아서 그런 식으로 처리하겠지만, 그래도 최 집사에게 묻고 싶었다. 왜 그랬냐고 말이다. 하지만 백 회장은 이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를 배신한 자들에게, 그 동안 백 회장이 그런 식으로 물어 본 게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그때마다 살아보겠다고, 온갖 구차하게 변명하는 자들을 보면서, 백 회장은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오늘 또 백 회장은 전에 그가 했었던 그 질문을 또 최 집사에게 하려하고 있었다.

“다 부질 없는 짓이지.”

해서 백 회장은 이 번 만큼은 최 집사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순리대로, 이동훈이 최 집사를 처리하는 걸 두고 볼 생각으로 말이다.

“준열이 한데 전화 해.”

백 회장은 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막내아들인 백준열과 간단히 통화를 했다.

“그래. 니 말대로더구나. 등잔 밑이 확실히 어두웠어. 음. 내일 아침에 보자꾸나.”

통화 후 백 회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음은 재경부 장관과 미팅이라고 했던가?”

“네. 회장님.”

“가지.”

백승렬 회장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사실상 그의 오른팔, 왼팔이라고 볼 수 있는, 비서실장과 미전실장이 없는 가운데, 이제 본가에서 그가 가장 믿었던 최 집사까지 쳐 내고 있는 지금에도, 백승렬 회장은 전혀 흔들림 없이 삼명그룹 회장 노릇을 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백 회장은 대기 중인 차에 오르자,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풀며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아....”

그리고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만 계속 쳐다보며, 끝까지 자신의 복잡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회장인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이런 자리를 꼭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 줘야 하나 하고 말이다.

특히나 자신이 점찍은 막내 녀석은, 이 자리 앉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그게 본심인지는 아직 확인 해 보지 않았지만.... 설령 막내의 생각이 그렇다고 해도 녀석이 반드시 회장 자리에 올라야 했다.

‘약해지면 안 돼. 삼명그룹은....누가 뭐래도 백씨의 것이다.’

백승렬 회장은 선친도 가졌을, 이 회장 자리에 대한 딜레마를 떨쳐내고,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 * *

최 집사의 본명은 최명도. 나이는 올해 55세.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엄청난 악재가 생겼다. 회사의 공금을 횡령한 직원이 그를 공모자로 물고 늘어졌던 것. 최명도는 정말이지 억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 보다는 죄를 지은, 직원의 말을 더 믿었다.

그러다 결국 회사에서 잘리고 민, 형사상 책임까지 져야 할 신세에 놓인 그는, 가정이 깨질 위기에까지 직면하자, 모든 게 끝났다고 보고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랬던 그에게 다가 온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금도그룹 쪽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최명도에게 원한 건, 어느 대기업 회장 집에 들어가서, 거기서 일하는 것. 그를 위한 모든 지원은 그들이 다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공하면 금도그룹에서 그의 뒤를 계속 봐 줄 것이고, 실패해도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때 최명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왜 자신을 선택했냐고.

그랬더니 그들 중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최명도씨가 대학 때 연극 동아리에서 활약 한 것을 안다고. 그러니까 그들은 최명도의 연기력을 보고, 그를 어느 대기업 회장 집에 첩자로 심으려고 한 것이다.

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고 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최명도에게 있어서도 서로 윈윈(Win-Win)하는 제안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최명도가 진짜로 그 대기업 회장 집에 들어가는 데 성공하고, 거기서 인정까지 받게 되자, 상황이 돌변했다.

최명도의 담당이 대리에서 과장, 과장에서 부장, 부장에서 실장까지 계속 변하면서, 첩자로서 그의 중요도가 급상승했다.

왜냐하면 최명도가 들어가는 데 성공한 그 대기업 회장 집이, 바로 대한민국 굴지의 No.1 재벌가인 삼명家 본가 저택이었으니 말이다.

최명도는 처음에는 몰랐다. 삼명家란 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말이다.

그랬기에 처음 삼명家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최명도는 깨달았다. 여기는 그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이다.

만약 그가 첩자인 게 들킨다면....그 역시 그가 본 시체가 되어서 이곳을 나가게 될 테니까.

하지만 금도그룹은 집요했다. 그를 설득 시키면서 그에게 계속 당근을 제시했다. 그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까지도 손을 뻗쳤다.

그러다보니 달달한 당근의 맛에 길들여진 최명도의 가족들이, 그가 삼명家 본가를 나오는 걸 말렸다.

“여보. 좀 더 거기 있어요. 참 금도그룹에서 제게 차를 보냈지 뭐에요. 그것도 벤츠를....”

“아빠. 이거 봐. 나 닌텔도 스위치 받았다. 그 아저씨가 게임팩도 10개나 사줬지 뭐야. 히히히히. 너무 좋아.”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고, 최명도의 명연기는 계속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최명도는 더 많은 삼명家의 본 모습을 보게 되었고, 여기 있다가 진짜 큰일 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거길 나오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금도그룹에서 또 그를 회유했다. 당연히 가족까지 동원했고. 하지만 최명도도 이번만큼은 확고했다.

아무리 금도그룹의 대우가 좋은들, 그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그러자 금도그룹에서 당근 대신 채찍을 꺼내들었다.

“최명도씨. 당신이 우리 쪽에서 심은 사람이란 걸, 백 회장이 알면 어떻게 될까?”

“뭐, 뭐라고요?”

“당신 뿐 아니라 당신 가족들도 과연 무사할까?”

하필 그때 백승렬 회장은 자신을 배신한 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서, 그 가족까지 한국에서는 못 살게 만들었다.

그런 지시를 내리는 백 회장의 모습을 쭉 지켜봤던 최명도.

그로서는 백 회장이 자기 가족들도 그렇게 만들 거 같았고, 금도그룹의 채찍은 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 뒤 최명도는 더욱 더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백 회장의 신뢰를 얻었고, 금도그룹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빼내서, 그들에게 넘겨왔다.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이다.

* * *

20년 넘게 살아 온 삼명家 본가 저택. 이곳에서 최 집사가 모르는 일은 없었으며, 그의 허락 없이 진행 되는 일도 없었다.

백승렬 회장의 부인인 서지현 사모님이 있었지만, 사실상 본가의 안 살림은 최 집사가 다 맡아서 처리해 오고 있었다.

그 말은 본가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바로 최 집사란 소리였다.

“나 좀 나갔다가 올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요.”

최 집사야 늘 본가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에게 물어보면 됐다.

하지만 그가 부재 시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그렇지만 최 집사는 그 대안을 따로 두지 않았다.

자기가 없으면 누군가에게 자기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

그러니까 끝까지 본가의 권력을 자기가 쥐고 있겠다는 얘기였다.

문제가 생기면 전화로 해결 하면 되니까. 실제 그렇게 해 왔고, 그로인해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최 집사가 외출을 해도 본가 사용인들은 그런가 보다 했다. 어차피 문제가 생겨도 최 집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의 지시대로 하면 되니까.

“응?”

그렇게 외출 준비를 끝내고, 저택 내 차고 안에 주차 되어 있던 자기 차로 향하던 최 집사. 그런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움찔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피하는 경호원.

평소라면 최 집사가 뭘 하든, 이 저택의 사물처럼 여기며 관심이 전혀 없어 하던 경호원이, 갑자기 그를 보고 놀란 반응을 보인다?

그것도 여기 처음 온 경호원이 아닌, 여기서 일한지 3년은 된 베테랑 경호원이?

‘이상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 집사의 눈을 속을 수는 없었다. 그는 몸을 돌려서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였다.

“최 집사님!”

저택의 경호팀장 중 한 명인 유재봉 팀장이 헐레벌떡 그에게 뛰어왔다.

그런 그를 보며 최 집사는 일단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런 그 앞에 뛰어 온 유재봉 팀장에게 최 집사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물었다.

“뭔가?”

“그게....”

순간 유재봉 팀장이 최 집사 옆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그걸 본 최 집사가 옆으로 고개를 돌릴 때, 언제 다가왔는지 최 집사가 이상하다고 여긴, 경호원이 뒤에서 와락 최 집사를 끌어안았다.

“뭐, 뭐야. 이게?”

놀란 최 집사가 당황한 얼굴로 유재봉 팀장을 쳐다보자,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긴? 쥐새끼 잡은 거지.”

“....”

유재봉 팀장의 쥐새끼란 말에 최 집사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하지만 20년도 넘게 백승렬 회장과 이곳 삼명家 본가를 속여 온 최 집사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걸 회장님께서 아시면 너희를 가만 두실 거 같아?”

당당하게 호통 치는 최 집사. 그런 그는 누가 봐도 결백한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유재봉 팀장은 그런 최 집사의 연기에 속지 않았다.

“어쩌나? 금도그룹 함평도 실장이 당신을 꽤나 기다릴 거 같은데?”

“....”

유재봉 팀장의 입에서 금도그룹과, 그곳 비서실장인 함평도 실장이 언급되는 순간, 최 집사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그가 금도그룹 첩자란 게 누가 봐도 명확하게 밝혀졌다.

여기서 그가 더 연기해 봐야 소용없단 걸 그도 깨달은 것이다. 차라리 이럴 때는 침묵이 해답이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모든 건 하늘에 맡기고 말이다. 물론 그 결말이야 뻔했지만.

그 사이 4명의 경호원들이 더 나타나서, 사방에서 최 집사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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