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71화 (271/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그런데 토요일 오후가 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승렬 회장은 형인 백승호 회장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에 조바심이 난 백승호 회장이 자신의 부인인 강경심에게, 사돈댁인 전 대통령 서재국의 문상을 핑계로, 거기 가서 동서 사이인 서지현에게 잘 말해, 어떡하든 백승렬 회장이 자기 병문안을 오게 만들라고 특명을 내렸다.

근데 그 특명을 수행하러 가는 마당에, 사고뭉치 아들 녀석이 따라가겠다고 난리였다.

안 그래도 백준기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백승호 회장은, 이번 일만 해결 되고 나면 백준기를, 저 동유럽 지사나 아프리카 지사로, 보내 버리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안달이 난, 못난 아들 때문에 강경심 여사도 혈압이 치밀었다.

“뭣들 해. 저놈 다시 제 방으로 들여보내.”

“엄마. 진짜 이럴 거야?”

“그래. 이 미욱한 놈아. 한 시간 전에 내가 무슨 전화 받은 줄 아니? 네 장인이 전화해서 니 마누라 데려 가겠다고 하더라.”

“뭐, 뭐?”

“아직 혼인 신고도 안 했다면서?”

“그, 그거야 그 사람이 좀 미루자고 해서....”

“넌 하는 게 왜 그 모양이니? 혼인신고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 무슨 사업을, 사회생활을 하겠다고....쯧쯧쯧.”

혀를 차던 강경심 여사. 그녀는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지만, 오늘 만은 백준기가 꼴도 보기 싫은 지, 크게 손짓을 하며 버럭 소리쳤다.

“뭣들 해. 저놈 내 눈앞에서 당장 치우지 않고.”

“네. 사모님.”

CH그룹의 경호팀이 우르르 움직였고, 그들은 반항하는 백준기의 사지를 하나씩 들고는 그를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

“야이 새끼들아. 이것 놔! 놓으라고! 으아악!”

그리곤 그를 방 안에 던져 넣고는 경호원 둘이서 문고리를 잡고 버텼다.

백준기가 도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말이다. 강경심 여사는 준비가 끝나자, 현 금감 원장의 여식인 큰 며느리를 데리고, 서재국 전 대통령의 문상에 나섰다.

제 아무리 삼명家라도 금감 원장의 여식을 무시하진 못할 테니, 큰며느리를 방패삼아서 말이다.

사실 이러려고 재벌가에서 고위 공무원과 사돈 맺는 거 아니겠나? 이동 중 강경심 여사는 미리 서진병원에 보내 놓은, 그녀 쪽 사람에게서 그쪽 동향을 보고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백승렬 회장과 그 아들들은 아직 문상 전이란 말이지?”

=네. 사모님.

“서지현은?”

=삼명그룹 사모님은 안에서 조문객을 맞고 계십니다.

“알았어.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연락주고.”

=네. 사모님.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강경심 여사는 오늘 무난히 자기 할 일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녀가 데려가고 있는 큰 며느리도 마찬가지지만, 강경심 여사도 백승호 회장과는, 정상적인 부부사이라기 보다는, 비즈니스 적인 파트너라고 보는 게 더 맞았다.

해서 그룹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강경심 여사도 이런 식으로 발 벗고 나섰다.

그녀가 기여하는 바가 있으니, 백승호 회장도 그녀를 얕잡아 보지 못하는 것이고.

“제 밥그릇은 제가 챙겨야 하는 법인데....”

이런 간단한 이치도 아직 깨우치지 못하는, 아들 백준기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강경심 여사였다.

그런 모자란 아들에 비해, 이미 재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삼명家의 막내 백준열.

이번 CH그룹의 위기도 그 발단은, 그 백준열 때문이란 걸 알고 나서, 강경심 여사는 속이 더 부글부글 끓었다.

분명 백준열이 유학가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아들들이 더 인정을 받았었다.

그런데 유학 다녀 온 뒤부터 백준열이 치고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저 하늘 위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거기다 그녀가 삼명家와 삼명그룹에 심어 놓은 프락치들을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막내 백준열이 삼명그룹 후계자로 급부상 중이란다.

“다른 건 몰라도 백준열이 삼명그룹 회장이 되게 해선 안 돼.”

왜냐하면 백준열과 CH그룹의 2세들과의 사이가 유독 나빴으니까. 그런 백준열이 삼명그룹의 회장이 된다면....

CH그룹의 미래는 없다고 보면 됐다. 그걸 잘 아는 강경심 여사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백준열이 회장이 되는 걸 막아야 했다. 그러려면 든든한 우군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서지현이고....”

백준열과 사이가 나쁘다고 알려진 삼명家의 안주인. 서지현을 잘 꼬드긴다면 백준열을 후계자에서 낙마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단지 강경심 여사가 모르는 게 있다면, 그 삼명家의 안주인이 딸내미 백지연과 같이, 곧 삼명家에서 축출 될 거란 거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 하려는 게 다 허사란 걸 모른 채, 강경심 여사는 헛심 쓰러 지금 문상을 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단 건데, 강경심 여사는 자신이 삼명家와 삼명그룹에 심어 둔 사람들을 너무 맹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삼명家와 삼명그룹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야말로 표면적인 것들뿐이었다.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 자기 부인과 딸을 외국으로 보내 버리기로 결정한, 그 극비 사항을 그들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 * *

안 그래도 조용한 삼명家 본가 저택. 안주인인 서지현과 직계 혈족 중 본가에 유일하게 얹혀살고 있던 그녀의 딸, 백지연이 없는 그곳은 삭막하기 까지 했다.

그런 그곳의 안방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돋보기안경을 쓰고, 신문을 보고 있던 백승렬 회장.

그가 불쑥 말했다.

“준열이한테 연락해서 점심시간 비워 두라고 해.”

“네. 회장님.”

오늘 따라 더 군기가 들어 보이는 수행비서. 아무래도 비서실장인 오규동이 죽고 나자 비서들도 백 회장 눈치 보기에 돌입한 듯 보였다. 새로 올 비서실장이 누가 될지 수행비서들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백승렬은 느긋했다. 여태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어디 한두 번 겪었겠는가?

지금 그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집 밖의 사람들은 예의주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걸 기반으로 유추를 해 내려고 애를 쓰겠지. 누가 차기 비서실장이 될지, 미전실장이 될지를 두고서 말이다.

“자네도 궁금한가?”

백 회장이 아침에 몇 가지 약을 먹어야 하는 그를 위해, 직접 물을 가져 온 최 집사에게 불쑥 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백 회장을 쳐다보는 최 집사. 그런 그의 눈에는 욕심 같은 건 전혀 읽히지 않았다. 이런 최 집사가 좋아서 지금껏 곁에 두고 있는 백 회장.

“아닐세. 그만 나가 봐.”

“네. 회장님.”

최 집사는 진짜 물 한 잔 백 회장에게 올리고 그대로 안방을 나갔다. 하지만 주위에 보는 눈이 없자 얼굴빛이 싹 돌변하는 최 집사.

“제기랄....늙은이 눈치 챈 건 아니겠지?”

늙은 생강이 맵다고 어째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백 회장이 자신을 보는 눈도 매서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 집사 역시 늙어 가는 건 마찬가지. 그의 연기력도 향상 되면서 매번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늙은이가 막내를 후계자로 점찍은 거 같단 말이지.”

최 집사는 확실하지 않은 정보는 금도그룹 측에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보다 확실해지면 알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 일은 금도그룹에 알려야 할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으로, 금도 측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어째 께름칙한 최 집사.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겠어.”

안 그래도 금도 측에 물어 볼 것도 있고 말이다.

무려 20년 넘게 첩자 노릇을 해 오고 있는 최 집사였다. 이제 그도 늙었고 노후 걱정도 슬슬 해야 했다. 따라서 향후 금도 측에서 자신에게 어떤 예우를 해 줄지 지금 쯤 체크 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게 시원찮으면....”

이 짓도 그만 둬야지. 최 집사도 목숨이 여벌로 있는 거 아니니까. 만약 백 회장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죽어도 그냥 죽이지 않을 양반이었다. 자기 믿음을 배신 한 자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작자니 말이다.

그런 경우를 하도 많이 봐 온 터라, 최 집사는 독약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만약 들키면 그 자리에서 그 독약을 먹고 바로 죽으려고 말이다. 그 만큼 최 집사 필사적으로 용담호혈인 삼명가 본가에서 첩자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금도그룹에서 서운하게 군다면, 그가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짐 싸서 해외로 튀어야지. 그에 대한 준비는 늘 되어 있는 최 집사였다.

이미 외국 모처에 자기 살 집도 마련 해 둔 상태고 말이다. 그곳은 삼명그룹이 아니라 미국 CIA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최 집사가 국내를 뜨는 비행기만 탈 수 있다면, 그 뒤부터 제아무리 삼명그룹도 그를 잡을 수 없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그것만 쭉 생각해 온 최 집사였다. 빈틈이나 허점 같은 건 절대 없었다.

최 집사는 삼명가 본가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한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금성상사죠? 어제 들어 온 생선들이 영 싱싱하지가 않던데. 그래서 말인데 내가 직접 가서 봐야겠어요. 네. 시간은 그쪽에서 정해서 연락 주세요. 네.”

통화 후 최 집사는 평소 자기 하던 일을 그냥 했다. 그랬기에 그의 전화 통화를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삼명그룹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는 쌍두마차 중 한 곳으로 평가 받는 금도그룹.

최근에 삼명그룹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었다. 일인자 삼명그룹과 겹치는 부분이 워낙 많다 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충돌에서 늘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건 금도그룹이었다.

금도그룹의 비서실장 함평우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회장님 챙기기 바빴다. 그렇게 회장님 출근 의전에 오전 회의까지 끝내고 나니 진이 다 빠지는 함평우. 그가 그나마 한숨 돌리고 자기 자리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그의 호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그룹 내의 일이 아닌 외부의 일에 주로 쓰는 핸드폰이었다. 함평우는 일단 주위부터 살핀 뒤 핸드폰을 꺼내서 받았다.

“여보세요?”

=금성상삽니다.

“무슨 일이야?”

금성상사는 금도그룹의 국내의 각 기관이나 정부부처, 기업, 특정인의 주변에 심어 둔 첩자들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림자 1호에게서 좀 전에 연락이 왔는데, 직접 보잡니다.

“뭐? 그 인간이 미쳤나?”

첩자가 자신을 노출 시키겠단 소리니 함평우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수 없었다.

“다른 말은?”

=시간은 저희가 정하라고 했습니다.

날짜가 없다는 건 오늘 중 보자는 거고. 이는 자신을 노출 시켜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를 이쪽에 전달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었다.

그림자 1호의 담당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 만큼 중요한 첩자란 소리고 믿을 수 있는 자였다.

그 동안 금도그룹이 삼명그룹과 한 걸음 떨어져서, 2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다 그림자 1호 덕분이었다.

그만큼 그림자 1호가 삼명그룹에서 빼내서 보내 준 정보는, 금도그룹의 성장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그림자 1호가 진짜 중요한 정보를 그에게 넘기려고 만나자고 하는 거라면....

“오전은 어차피 틀렸고. 오후 3시 30분에 만나자고 전해.”

금도그룹에서 그림자 1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두 명 뿐이었다. 금도그룹 구도철 회장과 바로 자신. 하지만 그림자 1호와의 접선 장소는 오로지 자신만 알았다.

“실장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때 금도그룹 구 회장의 호출. 함평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자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곧바로 회장실로 향했다. 그런 그의 자리에 남은 찻잔의 찻물이 절반 이상 남아 있었다. 함평우가 제대로 티타임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 정도로 바쁜 게 대기업 회장의 비서실장이었고 함평우는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그림자 1호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 만큼 그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또 구 회장의 요구도 까다로웠다. 하지만 오후 3시가 되자 그는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그림자 1호와 접선 장소인 한성은행 본점으로 말이다.

* * *

아침에 깨어 씻고 식사하고 옷 챙겨 입고 호텔을 나서니, 문대식이 경호팀원들과 대기 중이었다.

문대식이 직접 열어 준 차에 탑승하자 바로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삼명가의 수행비서 중 한 명인 이 과장.

나에게 오규동 비서실장의 죽음을 알려 준 바로 그 인간이다. 이 시간에 그가 내게 전화한 건 백승렬 회장이 뭔가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네.”

=도련님. 회장님께서 점심시간 비워두라고 하십니다.

일방적인 통보다. 예전의 백준열이었다면 아무리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다 취소했을 거다. 그에게 백 회장이 최우선 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다.

“안 되는 데. 약속 있어서.”

=네?

“선약이 있다고요.”

=그, 그런....

내가 선약이 있다는 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 과장.

아무래도 내가 백 회장의 지시를 생 까겠다고 하니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 과장은 지금, 내 말을 백 회장에게 피드백 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에게는 이 사태를 해결 해 줄 상사가 없었다. 바로 오규동 비서실장의 부재. 따라서 이 과장이 직접 백승렬 회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데, 일개 수행비서가 백 회장에게 막내 아드님이 선약이 있어서, 점심시간 못 비우겠다고 말하더라고 전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하아. 알았어요. 내가 회장님께 직접 연락 하죠.”

=고, 고맙습니다. 도련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과장은 자신이 감당키 어려운 짐을 자기 어깨에 올렸다가, 도로 그 짐을 가져 가 준 나에게 거듭 고마워하며, 지금 전화하면 백 회장이 내 전화를 바로 받을 거라는 팁을 주었다. 해서 나는 바로 백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