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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 흐름을 내가 바꾼 다기 보다는, 중국 투기 자본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면, 이후 제주도가 입게 될 피해도 적어 질 것이고, 특히 질 나쁜 중국인들로 인해 제주도 원주민들이 입게 될 피해 역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기....백 대표님?”
제주경찰청의 2인자인 경찰차장이 언제 왔는지 내 옆에서 굽실거리며 말했다.
“뭡니까?”
나는 자신은 정작 무능하면서, 남에게 빨대나 꽂고 사는 주제에, 잘난 척하는 인간은 딱 질색이다.
바로 내 눈앞에 경찰차장 같은 인간처럼 말이다. 싫어하는 인간이 말을 거니, 나로서도 퉁명하게 대꾸할 밖에.
“아니. 내가 뭘 잘못 했는지 모르지만....”
“모르면 됐습니다. 굳이 아실 필요도 없고요. 그쪽 인생 그쪽이 알아서 사는 거지, 내가 알 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테 이러실 거 없습니다.”
그냥 너하고는 더 할 말 없다는 소리였다. 그 말 후 실제로 나는 아예 경찰차장에서 몸을 돌려버렸다.
그때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중년의 경찰이 보였고, 나는 한 눈에 그가 최철호 경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에 두르고 있는 하얀 빛이 눈부실 정도였으니까.
그에 비해 경찰차장의 몸에 두른 빛은 누리끼리 했다. 내가 봤을 때 경찰차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인간이었다.
나는 곧장 최철호 경정이 유력한 그 중년의 경찰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혹시 최철호 과장님?”
“네. 맞습니다.”
내가 한눈에 자신을 알아보자 잠시 희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최철호 경정. 그런 그에게 내가 웃으며 먼저 한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백준열입니다.”
“아네. 백 대표님.”
박대순 청장이 나에 대해 최철호 경정에게 무슨 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가 정중히 머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 * *
최철호는 박대순 청장과 전화 후 애월읍으로 가면서 백준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과연 젊은 남자가 그의 전화를 받았는데, 5분 정도 통화를 하면서 그 젊은 남자의 제주도에 대한 식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외지인이....이곳 경찰청장보다 제주도를 보는 눈이 나은 건지....’
특히 백 대표는 중국인에 대한 우려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 문제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운전,중인 그가 계속 통화를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마도 그걸 고려 한 듯 백 대표도 최철호에게 그가 있는 곳에 와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렇게 백준열 대표와 통화 후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최철호의 차가 애월읍에 위치한 제주도에서 가장 큰 별장에 도착했다.
지금도 제주도에는 으리으리한 별장들이 지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규모나 그 화려함에서 이곳 별장을 따라 갈 곳은 없었다.
그런 별장이 지어진지 100년도 넘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곳.
그곳이 바로 이곳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 소유의 별장이었다.
제주도 사람들 중에 이곳 별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별장 주인이 정작 국내 최고 굴지 그룹 삼명그룹 백 회장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걸 아는 제주도 원주민 중 한 명이 최철호였고.
“백 회장의 막내아들이라고 했던가?”
박대순 청장 전화를 받고 급하게 알아 본 백준열.
그는 특이하게 백 회장의 아들 중, 유일하게 삼명그룹에서 일하지 않고 자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딴따라 사업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미 미다스의 손이며, 투자의 신이라고 불리며, 재계에서 기린아로 꼽히고 있는 전도유망한 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제주도에 와서 박대순 청장까지 움직여 가며, 자신에게 할 부탁이란 게 무엇일지 최철호도 궁금했다.
근데 별장에 도착해 보니 가관이었다. 제주경찰청 소속 경찰특공대가 보이고, 그들을 직접 이끌고 온 것으로 보이는 경찰차장.
“하아. 또냐?”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빠지는 법이 없는 경찰 차장이었다. 그런데 그게 또 잘 먹혀들어서 문제지. 보여주기 식 이런 이벤트가, 백 대표 뿐 아니라 제주도민들의 눈도 현혹하는 거다.
“어?”
그때 최철호의 눈에 경찰차장이 웬 젊은 남자에게 굽실거리며 다가가는 게 보였다. 그런데 정작 그 젊은 남자는 경찰차장이 자신에게 오는 게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최철호는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젊은 남자와 경찰차장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허얼....”
여태 경찰차장을 저렇게 막 대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남자가 말이다.
예의를 중시하는 경찰차장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젊은 남자를 따끔하게 혼내고 있어야 맞았다. 하지만 경찰차장은 처음부터 계속, 그 젊은 남자 눈치 보기 급급했다.
그러다 결국 젊은 남자에게 외면당하고 마는 경찰차장. 그때 그 젊은 남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봤다.
‘뭐지?’
최철호는 처음에는 그 젊은 남자가 자신이 아닌, 자신이 있는 쪽에 다른 누구를 쳐다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젊은 남자는 시종일관 자신을 쳐다봤고, 정확히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자신의 이름 까지 언급하더니 그의 정체를 밝혔다.
‘이 사람이 백 대표?’
최철호는 백준열 대표와 악수 후,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 밖에서 매몰차게 무시당한 경찰차장과는 달리.
* * *
최철호 경정과 길게 얘기할 시간은 없었다.
성산호텔로 가서 엘베를 이곳 별장에 데려다 놓고, 나는 또 요트 타고 남해로 가야했다.
그래서 최 경정을 데리고 별장 안으로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며, 그와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나눴다.
“그러니까 저보고 제주도내의 중국 조폭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부탁하시는 겁니까?”
최 경정이 눈빛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맞습니다. 오늘 막상 짱깨들에게 당해보니 알겠더군요. 제주도가 한국 땅이 아니라 중국 땅 같다고.”
“그, 그건....”
“알아요. 중국 자본을 유치하다보니, 중국 사람들이 늘어난 거고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일 뿐이라는 거. 하지만 여기가 한국 땅이라는 건, 중국인들도 확실히 알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씀은 맞습니다. 무엇보다 중국 조폭들이 제주도를 무슨 자기 안방처럼 여기게 해선 안 되겠죠.”
“일단은 거기까집니다. 내 부탁 들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건 외지인이 와서 할 부탁이 아니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했어야 할 숙제였지. 그걸 아는 듯 최철호 경정이 한숨을 내 쉬며 대답했다.
“하아....백 대표님의 의도가 뭔지 모르지만, 제주도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네요. 하지만 그 부탁은 확실히 접수했습니다.”
“누가 오게 되던, 새로 올 청장도 최 경정님을 최대한 지원해 줄 겁니다.”
최 경정에게는 다른 말 보다 이 말이 더 듣고 싶었을 거다.
최 경정이 아무리 설쳐도, 본청에서 지원이 없으면 중국 조폭 수사는 나가리 되고 말 테니까.
“철저하시군요. 덕분에 일할 맛 좀 나겠습니다.”
최 경정이 그제야 웃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 같군요.”
최 경정이 아까처럼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아까처럼 머리를 숙이지는 않았다.
대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뭔가를 읽어내고 싶어 하는 눈빛을 띠었다.
나는 그걸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기고, 그에게서 잡혀 있던 내 손을 빼내며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전화 주십시오.”
“그러죠.”
나의 축객 령에 그가 웃으며 몸을 일으켜서, 별장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박대순 청장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만, 내일 당장 최철호 경정은 생활안전과장에서 수사과장로 보직이 변경 될 것이다.
그 다음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 될 것이고, 제주도의 중국 조폭들이 일망타진 되겠지.
그 과정에서 중국 조폭들과 연루 된 문제들이 우후죽순 터져 나올 테고, 거기서 중국 정부가 벌이고 있는 불법적인 일들도 까뒤집어 질 수밖에 없었다.
“현 정부가 골치 아파 지겠군.”
아는 뜨거운 감자를 현 정부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걸 어떻게 핸들(handle)할지는 그들이 잘 알아서 할 일 이었고.
* * *
어르신에게는 엘베를 여기로 보내겠다고 미리 말해 둔 터라, 나는 따로 어르신에게 인사 하지 않고 애월 별장을 나섰다. 어차피 내가 새로 구입한 람보르기니 요트 때문에, 다음 주에 다시 올 제주도였다.
그렇게 애월 별장을 나와 성산호텔로 가는 도중, 나는 김훈 대표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서운 합니다. 남해에 오셨으면 오셨다고 저에게 말씀을 하셨어야죠.
“낚시 갔다면서요? 그것도 먼 바다로?”
사실 남해에 갈 때 김훈 대표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가 내 전화를 안 받았을 뿐. 하도 안 받아 걱정돼서, 김훈 대표의 에이전시 사무실 쪽에 전화까지 했었다. 그랬더니 그가 배타고 통화가 되지 않는 먼 바다로 낚시를 나갔다나?
김훈 대표는 내가 진짜 남해로 내려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뭐 나도 엘베 때문에 제주도로 가야 해서, 그 경로 상 남해를 거쳤을 뿐 애초 남해 올 생각은 없었다.
=어? 혹시 저한테 전화 하셨습니까?
“네. 남해로 가는 길에 전화했죠.”
=이거 죄송하게 됐네요. 혹시 남해로 오실 겁니까?
“네. 좀 있다가 요트 끌고 남해로 갈 예정입니다만.”
=요트를 가지고 계셨군요. 잘 됐습니다. 그 요트 타고 선상 파티 어떠십니까? 대표님께서는 요트만 제공하시면 됩니다. 나머지 술과 음식, 미인은 제가 제공하겠습니다.
선상 파티라....
혹 할 만 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일 출근해야 했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 관계로 다가. 그래서 막 김훈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려는데....
‘선상 파티 즐기고 헬기타고 서울 가면 되잖아?’
내게는 한국에서 이용하기 최상의 교통편인 헬기가 있지 않은가? 물론 밤늦게 서울 가려면 헬기 조종사를 설득해야 하겠지만, 그거야 뭐....
‘돈으로 해결하면 되고.’
대한민국에 돈으로 해결 안 될 일은 거의 없다. 나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김훈 대표에게 말했다.
“그래요. 선상 파티 합시다.”
=이야호! 드디어 나도 선상 파티를 해 보게 되네요.
너무 기뻐하는 김훈 대표. 그래서 뭐가 그리 좋냐고 묻자, 김훈 대표가 선상 파티 해 보는 게 자신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라나?
“네. 그럼 5시에 베네치아 리조트 앞 선착장에서 봅시다.”
김훈 대표와 그렇게 약속을 잡고나자, 나를 태운 차가 성산호텔 앞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고, 곧장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때 엘베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월월월?....워월월?(왜 이렇게 늦었어? 어디 갔다 온 건데?)”
“애월읍 별장에. 참 김씨 아저씨라고 알아?”
내가 어르신에 대해 묻자 엘베가 바로 대답했다.
“머멍엉?....멍멍멍멍....머머엉멍?(김동만씨? 당연히 잘 알지. 근데 김씨는 왜?)”
“너 여기 있을 거라며? 그래서 김씨 아저씨한테 얘기 했더니 널 맡아주시겠데.”
“월?....워월....월월월월월?(그래? 잘 됐네. 그런데 거기 다른 개는 없었어?)”
“어. 다른 개는 안 보였는데 왜?”
“워어월월월월월....(전에 별장에서 키우던 개가 있었거든.)”
엘베의 말에 따르면 애월 별장에 키우던 진돗개가 한 마리 있었단다.
이름은 동순인데 엘베와 친하게 지냈던 개로, 지금 없다는 내 말에 엘베가 실망한 얼굴이 역력했다.
그래서 혹시 몰라 김씨 아저씨, 즉 별장 어르신께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동순이 말입니까? 도련님이 동순이를 다 기억하시고. 기억력이 정말 좋으시군요. 동순이는 3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래요?”
=네. 대신 동순이 새끼 두 마리를 여기서 키우고 있죠.
“어? 아까는 안 보였잖습니까?”
=집 사람이 접종 시킨다고 시내로 데려 나갔거든요. 지금은 와 있습니다.
“아아. 다행이다.”
=네?
“아뇨. 엘베가 동순이 보고 싶어 할 거 같아서요. 그 새끼들이라도 있다니 다행이다 싶네요.”
=으음. 하긴 엘베와 동순이가 친하게 지내긴 했지요. 아마 동순이 새끼들 보면 좋아할 겁니다.
“네. 그럼 엘베 데리고 그쪽으로 바로 갈게요.”
그렇게 어르신과 통화 후, 내가 엘베에게 동순이 새끼 두 마리가 별장에 있다니 엘베도 기뻐했다.
그렇게 나는 엘베를 데리고 성산호텔을 나섰다. 당연히 체크아웃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성산호텔 사장인 임규식이 난리를 칠 테니까.
대신 남해로 가면 예의상 문자 메시지 한통은 보내줘야겠지.
급한 일로 서울로 갔다고. 다음에 꼭 한잔 하자고 말이다.
* * *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성산 호텔을 빠져 나온 우리는 애월읍 별장으로 다시 갔다. 그 사이 별장 주위에 북적거렸던 경찰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대문 앞에서 엘베를 어르신에게 넘겼다.
“왈왈(꼭 와.)”
다음 주말에 오기로 엘베와는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제 어르신에게도 말했다.
“다음 주에 또 올 일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니 그때 봬요.”
“그러십시오. 도련님. 저야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렇게 별장 어르신과 작별하고 요트를 정박해 둔 선착장으로 향했다.
타고 온 렌터카는 선착장 주차장에 세워두면, 성산 호텔 측에서 알아서 가져갈 거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해서 우리는 올 때처럼 ‘우르르’ 요트에 올랐고, 운전석으로 간 나는 요트 시동을 걸었다.
시끄러운 보트 엔진 소리와 달리 ‘우웅’ 거리는 소리가 비교적 넓은 음폭으로 주위에 울리는 가운데, 천천히 선착장을 빠져 나온 요트는 북쪽을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어제와 같이 잔잔한 파도 위를 달리는 요트는, 갑갑한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다.
오전과 달리 송 부 팀장과 경호팀원들도, 한결 평온한 상태로 요트 위에서 상쾌한 바람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