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해동의원 박태욱은 전화 연락을 받고 투덜거리며 루카스가 입원 중인 병실로 향했다.
“새끼가 좀 참을 것이지....”
해동의원이 있는 건물은 지하1층/지상5층의 용산 역세권에 있는 근린상가 건물로, 건물주는 박태욱의 장모가 되시겠다.
장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딸인 와이프가 물려받게 될 건물이지만, 현재는 박태욱이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이용하고 있었다.
그 건물에서 박태욱은 4층과 5층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4층인 병원과 5층인 주택이 따로 분리 되어 있어서, 현재 박태욱의 가족들은 5층 주택에 살고 있었다.
장모님은 그래도 딸이 사는 곳이고, 외손자들 눈치도 보이고 해선지 5층 주택의 월세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로 유명하지도 또 유능하지도 않았던 박태욱은, 4층 월세 내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수입이 많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바로 나이지리아 마약 조직원들이었다.
그 두목인 프랭크와 박태욱은 우연히 골프장에서 만나 친해졌고, 지금은 인종을 뛰어 넘어 우정을 나누는 절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들이 친해진 데에는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서 그렇지만, 중요한 건 어차피 결과 아니겠는가?
나이지리아 마약 조직은 주치의와 언제든 이용 가능한 병원이 생겨서 좋았고, 박태욱은 돈 벌어서 좋았고 말이다.
“루카스. 많이 아파?”
병실에 들어간 박태욱은 좀 전까지 귀찮고 짜증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나긋나긋하니 친근한 얼굴로 루카스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10분 전부터 불알이 너무 아파요.”
“마약 효과가 다 돼서 그래. 잠시만 기다려. 내가 안 아프게 해 줄 테니까.”
박태욱은 루카스의 고통을 없애 줄 진통제를 가지러 병실을 나와서 처치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우욱....”
갑자기 의원 입구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박태욱은 그쪽으로 가 보지 않고 그냥 가던 처치실로 계속 갔다. 그리곤 처치 실에서 진통제와 항생제 주사액을 같이 챙겨서 다시 루카스가 누워 있는 병실로 향했다.
달칵!
좀 전에 들락거렸던 병실이라 박태욱은 별 생각 없이 그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훅하니 풍겨 온 것은 비릿한 피 냄새였다. 그리고 박태욱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이마 한 가운데 총구멍이 뚫린 체 두 눈 부릅뜨고 죽어 있는 루카스였다.
척!
그때 병실 안에 들어 선 박태욱의 관자놀이에 총구가 와 닿았다. 그 총구는 좀 전 총알을 발사한 듯 뜨끈뜨끈 했다.
“If you don't want your head to fly away, be quiet.”
대가리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라는 상대의 말에 박태욱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차마 옆을 돌아보진 못했다. 그랬다가 자기를 봤다고 상대가 자신을 살인멸구 할지 모르잖은가?
“Where did frank go?”
그때 상대가 이어서 질문을 했다. 프랭크 어디 갔냐고 말이다.
그때 박태욱의 눈에 병실베드에 누워 죽은 루카스 말고, 나이지리아 마약 조직원 한 명이 창가 벽에 기대 앉아 죽어 있는 게 보였다.
그 녀석은 루카스와 달리 앞가슴에 두 방의 총알을 맞은 채 죽어 있었는데,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즉 지금 상대가 프랭크가 어디 있는지 그에게 묻는 이유는, 그걸 물을 사람까지 다 죽여 버려서 였다. 그러니까 지금 박태욱이 프랭크가 어디 있는지 상대에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눈앞의 두 구의 시체처럼 될 수 있단 소리.
“프랭크 어디 있는지 말하면 살려 주는 거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박태욱은 영어로 대답해야 하는 데 그만 한국말로 말해 버렸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살려준다. 프랭크 어디 있는지 말하면.”
비교적 정확한 한국말이 상대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말 꼭 지키시오. 프랭크는 지금 그의 나이지리아 마약조직의 아지트에 가 있을 겁니다.”
“거기가 어딘가?”
“그곳은....”
박태욱이 쭉 프랭크가 가 있을 나이지리아 마약조직 아지트 위치를 설명할 때였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나고 얘기 중인 박태욱이, 두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고 갑자기 픽 쓰러졌다.
프랭크가 어디 있는지 파악이 끝난 세르게이가 들고 있던 권총으로 박태욱의 관자놀이를 쳐서 기절시킨 것이다.
어째든 약속대로 박태욱을 죽이지 않은 세르게이. 그가 무심한 눈으로 쓰러진 박태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날 쳐다보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었어. 하지만....”
세르게이는 박태욱을 살려준다고 했지 그를 멀쩡하게 살려 준다는 약속을 한 적은 없었다. 마침 이곳은 병원이고, 박태욱의 손목 힘줄이나 아킬레스건을 간단히 끊어 줄 날카로운 메스가 제법 있었다.
세르게이는 돈 때문에 마약조직 놈들이나 고쳐주고 있는 의사 하나 쯤은, 이 사회에서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 * *
해동의원을 나선 세르게이. 그는 큰길로 이동, 역시 택시를 타고 프랭크란 놈이 있다는 나이지리아 거리로 향했다.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일이 한 시간 연장이 되었다.
“철수....”
이게 다 철수가 프랭크란 놈이 있는 곳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철수를 탓하진 않았다. 철수가 김훈 에이전시의 분석실에 물었을 때, 프랭크는 분명 해동의원에 있었을 테니까.
굳이 누구 탓을 하자면 프랭크, 그놈이 운이 좋았던 것이다.
반대로 프랭크와 지금 같이 있을 나이지리아 마약조직 놈들에게는, 오늘 밤이 정말 역대급 재수 없는 날이 될 테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프랭크를 비롯해서, 거기 있는 마약조직원들에게 있어서, 내년 오늘이 그들 제삿날이 될 공산이 컸으니까.
“거기 위험한 덴데....”
택시 기사가 우려 섞인 얼굴로 세르게이를 쳐다봤다.
손님이 가자니까 가긴 하는데 나이지리아 거리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택시 기사도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척 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 택시 기사나 자신에게 좋을 게 전혀 없었다.
괜히 어쭙잖은 말을 했다가 그게 택시 기사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도 있었고 또 그게 자신을 노출 시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조심하겠지만 세르게이도 말실수를 할 수 있는 노릇이고.
“....”
그렇게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택시는 검은 이태원이라고도 불리는 나이지리아 거리에 도착했다.
이태원 소방서 뒤쪽 이화시장길 구석구석에서 아프리카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꼬불꼬불 머리를 땋은 레게머리 사진 간판이 마치 어서 오라며 세르게이를 반기는 듯했다.
영업은 끝났지만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흘러나오는 아프리카 음식점을 지나치자, 간간이 보이는 흑인들.
근데 다들 눈빛이 심상찮았다. 하지만 그런 흑인들의 험악한 분위기가 세르게이에게는 전혀 위화감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가소로웠다. 그때 간 큰 흑인하나가 세르게이에게 접근했다.
“이봐. 돈 좀 있어?”
아주 대 놓고 강도짓이다. 하긴 세르게이는 혼자고 놈들은 셋, 아니 모두 여섯인가? 세르게이의 눈에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흑인 세 놈도 보였다.
척!
“힉!”
세르게이가 권총 총구를 대 놓고 강도짓 중인 흑인 놈의 이마에 겨누자, 사색이 된 흑인 놈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말했다.
“살, 살려줘.”
그런 녀석에게 세르게이가 물었다.
“프랭크 어디 있어?”
그 물음에 녀석이 움찔했고, 어둠 속의 흑인 놈들이 움직였다.
시끄러워 좋을 것이 없기에 권총을 챙길 때, 소음기도 같이 챙긴 세르게이.
현재 그의 권총에는 3발의 총알이 남아 있었고, 그 3발이면 그의 눈앞에 세 흑인을 제거하는 데 충분했다.
피슝!
첫발이 그가 질문했던 흑인 놈의 이마를 꿰뚫었다.
피슝! 피슝!
나머지 두 발의 총알이 흑인 놈의 일행 둘의 가슴과 관자놀이에 구멍을 냈다.
그 사이 어둠속에 숨어 있던 세 흑인이 사라졌다.
뭐 상관없었다. 양들이 뭉쳐 봐야 사자를 사냥할 수는 없으니까.
세르게이는 익숙한 손길로 좀 전 자신이 제거한 흑인들의 몸을 뒤졌다.
그러자 총은 없었고 아주 쓸 만한 칼 한 자루가 나왔다.
“이걸 어디서 구한 거지?”
바로 러시아제 발리스틱 나이프였다.
세르게이가 러시아에서 스페츠나츠로 복무 중일 때 써 본 녀석이긴 한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판매가 금지 된 탄도단검이다.
이 녀석은 평소에는 단검이지만 버튼을 누르면, 안에 있는 스프링이 튕기면서 칼날이 총알같이 쏘아지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걸 가지고 있었던 흑인은, 발리스틱 나이프의 이 기능을 모르고 여태 이걸 가지고 다닌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인 셈이었군.”
세르게이는 발리스틱 나이프를 챙겨 들고, 좀 전 사라진 세 흑인들의 뒤를 쫓아 움직였다.
* * *
한국은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고로 총기 사고가 터지면 큰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오늘 밤 이태원 클럽에 터진 총기 사고는 어째 조용히 묻히는 분위기였다.
그럴 것이 경찰에서 그 사건을 쉬쉬하며 덮으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 놓고 언론에도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당시 이태원 클럽 안에 있었던 사람들까지 경찰이 다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중 실제 거기 있었던 한 외국인이, 그 당시 동영상을 SNS와 유튜브에 올려 버리면서, 그 사실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필 오늘 당직인 용산 경찰서 수사2팀장 하일산.
그는 서장 이하 과장들의 연락을 받고, 어떡하든 이태원 클럽 총기 사건을 덮으려 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 가는, 당시 그곳에서 있었던 동영상을 막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그 사실을 새벽 3시에 그의 직속상관이라고 볼 수 있는, 수사과장에게 전화상으로 힘없이 보고를 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인터넷으로 퍼지는 걸 우리가 어떻게 막아? 내가 서장님께 잘 얘기할게.
“고맙습니다. 과장님.”
하일산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자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다고 이대로 자책하고 있는 다고해서 이번 일이 잘 해결 될 것도 아니고.
하일산은 당직실 소파에 몸을 뉘였다.
아침까지 3-4시간을 잘 수 있었다. 원래는 아침에 퇴근해서 쉬어야 하지만 보아하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일로 인해 서장실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불려 다닐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하일산이 막 잠이 들었을 때였다.
벨레레레. 벨레레레....
당직실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고, 선잠 든 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그 전화를 받은 하일산.
“네. 네. 뭐어?”
이태원 ‘나이지리아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져서, 지금 십 수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신고가 접수 되었단 얘기에 하일산이 잠이 확 깼다.
용산 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졌다. 아니 서울경찰청이 난리가 났다.
이태원 ‘나이지리아 거리’로 즉시 경찰 특공대와 함께 경찰 기동대가 급파 되었고, 서울 모든 경찰서가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충성!”
아침에나 볼 줄 알았던 경찰서장과 수사과장, 형사과장의 등장에 하일산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어떻게 됐어?”
간결하게도 묻는 서장. 하지만 하일산이 할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본청에서 지휘권을 모두 행사하고 있어서....”
그쪽에 알아봐야 알 수 있단 소리였다. 하긴 이제 이 일은 일개 경찰서의 수사팀장이 왈가왈부할 수준을 훌쩍 뛰어 넘어 버렸다.
“알았어. 김 과장. 본청에 알아보고, 하 과장. 그쪽에서 무슨 연락 없었어?”
“네. 없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으음. 좋아. 그쪽과 라인 다 끊어. 지금부터 우리는 그쪽과 모르는 사이다. 흔적도 다 지우고.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서장님.”
여태 나이지리아 마약 조직의 뒤를 봐주면서 서장은 강남에 건물 한 채, 과장들은 아파트 한 채 씩을 장만해 놓고, 이제 와서 손절하겠다는 저들을 보며 하일산은 입맛이 썼다.
물론 하일산도 전셋집 전전하다가, 이번에 빌라지만 내 집을 장만했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겠나? 그래서 간밤에 그렇게 돈 값 하려고 노력 했는데....
‘어쩔 수 없지.’
하일산도 할 만큼 했다. 흑인 놈들 살리자고 자기까지, 파멸의 구렁텅이로 뛰어들 수는 없지 않은가?
* * *
프랭크는 자신의 나이지리아 마약조직 본거지에 오자마자,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렸다.
서울에 있는 흥신소 중에서 프랭크가 아는 곳은 전부 다 연락을 했고, 서울 외곽 쪽의 흥신소 몇 군데에도 연락을 했다.
흥신소에 연락 할 때는 밤낮이 따로 없었다. 그들 일이 워낙 불규칙하니 말이다.
그래서 프랭크는 부담 없이 흥신소에 전화를 걸었고, 대부분 돌려진 전화를 누가 받아도 받았다. 그게 흥신소 실무자든, 아니면 흥신소 사장이든 말이다.
그렇게 프랭크는 자기 동생 루카스를 고자로 만든, 그 백인 놈의 대략적인 용모파기를 흥신소에 알려주고, 놈을 찾으면 1억을 주겠다는 말을 꼭 했다.
이래야 흥신소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 놈을 찾아 낼 테니까.
“하아. 피곤하네.”
한 시간 넘게 전화통을 붙잡고 있다 보니, 목도 깔깔하고 또 시간이 새벽 아니겠는가?
평소에는 자고 있어야 할 시간에 깨어 있는 거 자체가 사실 피곤할 일이었다.
프랭크는 자기 방 냉장고 안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서 마시며 잠을 쫓았다.
그리곤 담배 하나 태우고, 다음 전화 할 곳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