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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김훈 에이전시 분석실에서 어떤 식으로 타깃을 제거 했는지 세르게이가 러시아어로 말하고, 그걸 철수가 통역해서 한국말로 전하자, 분석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어....”
“이야. 진짜 간단하게 처리했네.”
“그러게 말이야. 최고다. 최고야.”
“어려운 것도 쉽게 해치우는 거, 그게 바로 레전드지.”
삼명그룹 2인자를 너무도 쉽게 제거한 세르게이를 향해 분석실 안에서, 특히 처리자들이 경외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그런 처리자들의 눈길이 많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철수. 설명 다 했으니 우리 그만 철수하자.”
“어어. 잠깐만....”
철수가 한국말로 뭐라 뭐라 떠들고 나서 얼마 후, 철수가 세르게이를 보고 말했다.
“이제 가도 될 거 같다.”
“그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철수가 몸을 일으켜서는 곧장 분석실을 나섰다.
“같이 가.”
그런 세르게이를 후다닥 쫓아서 철수도 그곳을 나왔고. 그렇게 둘은 곧장 김훈 에이전시 아지트를 빠져 나왔다.
그 직후 세르게이가 괜히 친한 척, 철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철수. 저번에 말한 소개팅. 지금 가능하지?”
“응? 소개팅?”
그랬다. 세르게이가 통역으로 유독 철수를 집착하는 이유.
그건 바로 철수가 여자들을 많이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몇 차례 세르게이에게 소개도 시켜 줬고.
세르게이는 그 여자들과 그 동안 뜨거운 밤을 보냈다.
문제는 세르게이가 철수가 소개 시켜주는 여자와, 한 번 만나고 나면 다신 안 만나다는 점이었다.
철수야 세르게이가 여자를 찾기에, 한국에서 여자를 사귀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세르게이가 좀 나쁜 남자 스타일이니, 현지처 정도 두려고 그러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세르게이에게 여자는 오로지 즐기는 것, 그것 밖에 안 되는 존재였다.
즉 철수가 여자를 소개 시켜 주면, 그 여자와 원나잇 스탠딩을 가진 뒤, 다시는 여자 쪽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고.
덕분에 소개팅 주선자인 철수만 욕을 처먹었다. 그 짓을 몇 번하고 났더니 이 바닥에 소문이 쫙 퍼졌다.
철수가 외국인 바람둥이에게, 한국 여자를 팔아먹고 있다고 말이다.
“세, 세르게이. 우리 오늘은 같이 술이나 마시자. 여자는 나중에....”
“뭐? 철수. 실망이야.”
철수의 회의적인 반응에 바로 삐진 세르게이. 그가 철수는 두고 혼자 자기 갈 길을 가 버리자 그걸 넋 놓고 지켜보던 철수가 긴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하아아....소개 해 줄 여자가 있어야지. 젠장맞을, 나보고 어쩌라고?”
* * *
세르게이는 사람을 죽이고 나면 꼭 여자를 안는 버릇이 있었다.
그게 버릇이 된 건, 그 만큼 그가 살아 온 곳에서는 여자 구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동유럽 쪽에서는 길거리에 여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타깃을 죽인 이후 차를 끌고 나가면, 길가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바로 안을 수 있었다.
물론 돈이 없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짓이지만, 사람 죽이고 세르게이가 버는 돈에 비한다면 여자 몸값은, 한국에서 표현하자면 껌값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데 한국에서는 도통 여자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창가도 없어졌고, 불법적인 곳을 알아내서 겨우 연락처 저장해 놓으면, 그새 경찰에 덜미가 잡혀서 사라져 버리고.
그때 세르게이가 이용한 게 바로 그의 통역 철수였다.
한데 철수도 그 약발이 다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세르게이가 직접 나서서 여자를 찾을 수밖에.
세르게이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외국인이 한국 여자와 원나잇 스탠딩하기 가장 쉽다는 이태원 클럽으로 향했다.
거기 클럽에 금발 머리 잘 생긴 외국인 남자는, 들어가기만 하면 데리고 잘 한국 여자를 달고 나온다나?
그 말이 100%확실하다고 볼 수 없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가 볼 일이었다.
해서 철수와 헤어진 세르게이는, 근처 택시 승강장에서 대기 중이 택시를 잡아타고는 기사에게 말했다.
“이태원 클럽. 많은 곳. 갑니다.”
“네. 손님.”
세르게이의 말이 먹힌 듯, 택시 기사는 세르게이를 사람 많은 이태원거리 한 복판에 내려주었다.
가로등과 네온사인 불빛이 은은하게 남아있는, 이태원 밤거리를 많은 인파 속에 끼어 걷던 세르게이.
그는 헤밀튼 호텔가는 길목에 위치한 한, 이태원 클럽에 들어갔다.
이태원의 클럽들은 주로 힙합, 일렉트로니카, 재즈음악 위주로 공연 및 DJing, 파티 등을 개최했다.
홍대나 강남에 비해 정장 패션을 잘 받아 준다더니, 진짜로 정장 차림의 세르게이도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게 가능했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외국인 또는 주한미군이 꽤나 많았다. 그리고 그런 외국인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있는 화려한 화장에 헐벗은 한국 여자들.
“오오. 그 얘기가 진짜였나 보네?”
세르게이가 인터넷의 한 블로그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이태원 클럽에 한국남성은 애초 출입조차 되지 않는단다.
그렇지만 유창한 영어로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해, 클럽 안에 들어갔더니 평범해 보이는 한국 여성들이 반라 차림으로 클럽을 헤매면서, 처음 보는 외국인 남성들이 말을 걸자, 불과 몇 분 만에 그들의 품에 안겨 교태를 부리며 몸을 맡기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또 자신이 그 클럽에서 직접 목격했다며, 어느 한국 여성이 처음 본 외국인이 술에 약을 타서 줬는데도, 의심 없이 받아 마신 얼마 뒤 이성을 잃었고, 외국인들에게 끌려가 다른 남성들이 보는 데서 집단 성교를 벌인 것을 봤다고도 했다.
그런데 클럽을 돌아보던 세르게이는, 여기 있는 외국인들의 억양이나 말투, 사용하는 단어 수준이 이상하다는 걸 곧장 눈치 챘다.
그래서 그들에게 접근해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부분이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등 영국 식민지였던, 저개발국가 출신이거나 자기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자,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사회 부적응 자들이었다.
그들은 ‘Korean Pussy is Best!’라며 대놓고 조롱했는데, 여기서 ‘Best’라는 표현은 ‘헤픈 여자들’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라 볼 수 있었다.
그때 세르게이의 눈에 흑인 하나가, 한국 여성에게 영어를 가르쳐 준다고 접근하고 있는 게 보였다.
“영어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딱 봐도 저 흑인이 한국 여성에게 원하는 건 섹스, 그것도 변태적 섹스뿐이었다.
세르게이는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저 좆도 아닌 흑인 새끼보다야, 자신이 더 낫다고 판단한 거다.
여자 입장에서도 되도 않는 영어 지껄여대는, 서남아시아 흑인 새끼 보다가 5개 국어가 가능한 자신이 더 나을 테고.
* * *
프랭크는 나이지리아 사람이다.
나이지리아는 산유국이기도 하지만, 극빈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30년 이상 계속된 내전으로 나라는 피폐해졌고, 사회정의는 사라졌다.
나이지리아는 국민 평균수명이 작년 말 기준 47.81세에 불과할 만큼 보건도 열악한데, 때문에 나이지리아의 전체 인구 대비 AIDS 감염자 비율은 6% 내외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나이지리아 남자들이 한국에 쉽게 들어와서는, 자유롭게 활동하며 한국 여성들을 사귀려 접근했다.
이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국적을 취득할 경우, 다른 국가로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프랭크는 4년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지금은 이곳 마약조직 두목이 됐다.
그는 ‘미국인 사업가’라며 유창한 영어를 사용, 한국 여성들을 유혹해서 이용해 먹었다.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한국 여성들의 수가, 두 자리 수를 훌쩍 넘어서자 언론에서 보도가 되고, 경찰이 그를 잡으려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프랭크는 잡히지 않고, 지금도 버젓이 이태원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오늘 프랭크가 이태원 클럽을 찾은 것은,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할 한국 여성이 필요해서였다.
근데 그의 동생인 루카스가, 자기 대신 한국 여자를 꼬시겠다고 나섰다.
루카스도 외국 남성이 한국 여성들을 유혹하는 데,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브라더. 내 친구 제이크 알지? 나 보다 10배 못 생기고 땅딸보에 배까지 튀어 나온 새끼 말이야.”
“잘 알지. 그 닌자 거북이 같이 생긴 놈 말이잖아?”
“맞아. 근데 그 새끼가 매주 다른 한국 여자들과 떡쳤다고 자랑하고 다닌다잖아.”
“정말?”
“한국 여자들은 참 이상해. 외국인에 대한 환상이 너무 강한 거 같아. 외국인이라고 하면 모조건 좋다고 하고, 조금만 매너 있게 행동해도 금방 넘어오고 말이야.”
동생 루카스의 말을 듣고 프랭크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 년들을 괜히 ‘이지 걸’(Easy girl. 헤픈 여자), ‘옐로우 택시’(Yellow taxi, 동양인을 칭하는 ‘옐로우’와 ‘쉽게 타고 내린다는 택시의 결합어’)로 부르는 게 아니지.”
실제 ‘한국여자는 쉽다’라는 사이트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던 한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여자들은 외국인이라면 껌뻑 죽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 팽배한 영어 사대주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이왕 꼬실 거 쭉쭉 빵빵한 년으로 꼬셔 올게. 기다려.”
루카스는 자신 있게 형과 형의 부하들과 같이 있던 룸을 나섰다. 그러자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귀가 찢어질 거 같이 시끄러운 EDM음악이 울려왔고, 헐벗은 남녀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몸을 뒤엉킨 체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이곳은, 이태원에서도 유명한 클럽이다.
오직 외국인과 한국 여성만 들어 올 수 있는, 이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한국 여자들이었다.
그러니 외국인들에게 있어 여기는 물 반, 고기 반인, 최고의 헌팅 장소이자, 원나잇 스탠딩을 즐길 수 있는 명소인 셈이었다.
“자아. 누가 좋을까?”
루카스는 클럽 안을 빠르게 훑었다.
“저년은 별로고....저년은 키가 너무 작아....저긴 가슴이 너무 빈약하고....저년은....빙고!”
루카스 눈에 딱 마음에 드는 한국 년이 한 명 포착 됐다.
얼굴은 그리 예쁘지 않았지만 몸매가 끝장인, 글래머러스한 그 한국 여자를 향해서 루카스가 직진했다.
* * *
박혜수. 그녀는 잘난 언니 박혜지에 치여서 늘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아왔다.
언니처럼 예쁜 것도 아니요, 공부를 잘해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래도 끼는 있어서 운 좋게 예대에는 들어갔지만, 성격이 소심해서 예대에서도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언니와 닮은 몸매 하나는 끝장이어서, 그녀의 그 명품 몸매를 보고 몰려드는 남자들은 많았다.
그리고 사실 언니에 비해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거지, 박혜수도 보기 싫을 정도의 얼굴은 아니었다.
해서 대학에서도 그녀와 어떻게 CC가 되어 보고자 하는 남자들은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언니처럼 박혜수도 남자들에게 도도하게 굴었고, 진짜 괜찮은 남자가 아니면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박혜수에게 붙은 별명이 ‘얼음녀’였다.
박혜수는 자기도 ‘H여대 퀸카’로 불리는 언니처럼 ‘예대 퀸카’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그녀를 ‘얼음미녀’도 아닌 ‘얼음녀’, 줄여서 ‘얼녀’로 불렀다.
그 얼녀 박혜수가 오늘 여고 때 친구를 만났다.
학교 다닐 때도 좀 놀았던 친구는, 박혜수에게 신세계를 보여주겠다며 이태원 클럽으로 데려갔다.
“신세계이긴 하네.”
왜냐하면 여기 클럽에 한국 남자라고는, 종업원 밖에 없었으니까.
박혜수도 언니 박혜지처럼 성적으로 개방적이었다.
클럽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원나잇도 했고. 하지만 언지처럼 어떤 한 남자를 계속 사귀지는 않았다. 성적으로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같이 자긴 해도 길게 사귀는 건 질색했던 것.
그랬던 언니가 최근에 연예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집 식구들은 다들 그녀가 대학 졸업 후, 연예 기획사에 들어 갈 거라 생각 했었는데, 몇 달 빠른 선택에 다들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녀가 계약한 연예 기획사가, 국내 빅 4 중 한 곳인 JYB엔터임을 알고는 그녀 선택을 환영했다.
그렇게 언니 박혜지는 이번에도 가족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에 비해 예대 다니는 박혜수는, 아직 예능인으로서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오늘 만난 친구가 귀가 솔깃한 소릴 했다.
이태원 클럽에서 미국이나 영국 쪽 남자 하나 잘만 물면, 인생 노 난다고 말이다.
그러던 차에 친구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웬 흑인 남자하나가 박혜수 앞에 나타났다.
박혜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듣는 수준은 됐다.
그래서 흑인 남자가 자신의 이름이 루카스란 것과, 미국에서 사업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그녀, 신데렐라를 왕비로 만들어 줄 왕인 ‘미국인 사업가’가 그녀 앞에 드디어 나타 난 것이다.
근데 그 사업가가 흑인이라는 게,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흑인은, 백인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인종이었으니까. 그때였다.
“Hi. 수지. What are you doing here? who's next to you?”
웬 키 크고 잘 생긴 백인 남성이 마치 박혜수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친하게 다가와서는, 심지어 그녀 옆에 앉기까지 하며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말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옆에는 누구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수지가 아니라....그때 옆에 백인 남성이 슬쩍 박혜수의 귀에 대고 한국말로 재빨리 말했다.
“사기꾼. 조심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박혜수는 색안경을 끼고, 자기 눈앞에 흑인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영어로 그 흑인 남자에게 물었다.
“Where do you live in the US?”
“What?”
미국 어디서 사냐는 박혜수의 간단한 질문에도, 흑인 남자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놓고 영어로 횡설수설했는데, 아까는 분명 유창해 보였던 흑인 남자의 영어가, 자세히 들어보니 엉망진창이었다.